[루키] 강하니 기자 = 지난 11월 9일(한국시간) 미국에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 트럼프는 내년 1월 말부터 버락 오바마에 이어 백악관을 물려받을 전망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과연 NBA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의 정치적 입장과 그간 공약을 통해 살펴보았다.

# 트럼프의 이민 정책과 NBA의 인종 문제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줄기차게 자신의 콘셉트로 내세웠던 것이 있다. 바로 폐쇄적인 이민 정책이다.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지난 8년 간 미국을 이끌어온 오바마 정부와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불법 이민자를 외국으로 추방하고, 향후 있을 불법 이민을 철저히 봉쇄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트럼프는 멕시코인들의 불법 이민을 철저히 막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터무니없는 공약을 내걸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불법 이민자 추방군 창설, 속지주의 국적 제도 폐지, 원정 출산 원천 봉쇄, 난민 수용 중단과 출입국 절차 강화 등 이민자에 대한 관용보다는 공격에 가까운 공약들을 내세웠다.
문제는 NBA가 흑인 중심의 리그라는 점이다. 흔히들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고 한다.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 동부 연안에 정착한 것이 미국 건국의 시초가 됐다. 이후 미국의 농장 지주들은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을 북미 대륙으로 데려와 노예로 삼았고, 현재 대다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조상이 바로 이들이었다. 다시 말해, NBA 흑인 선수들 역시 아프리카계 흑인 이민자들의 후예이다.
흑인들은 미국에서 수없이 많은 인종 차별을 겪었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그들에게 미국의 역사는 곧 투쟁의 역사다. 백인들로부터 억압받던 삶에서 벗어나 조금씩 권리를 획득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 이민자들을 내쫓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곱게 보일 리 없다. 트럼프가 쏟아내는 발언에는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뉘앙스가 내재돼 있다. 트럼프에게 공격받는 수많은 라틴계 이민자들을 보면서 흑인들은 아직까지도 차별받는 자신들의 모습을 대입하기도 한다. (실제로 트럼프의 당선 이후 미국 내에서는 인종차별과 관련한 혐오 발언이나 신체적 공격을 받았다는 경험담이 줄을 지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2015년 미국의 ‘스포츠 다양성 및 윤리 연구기관(Institute for Diversity and Ethics in Sports)’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역 NBA 선수 중 백인 선수는 전체의 23.3%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흑인 선수는 무려 76.5%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마저도 2014년에는 80%가 넘던 것이 소폭 감소한 수치다. NBA 선수 10명 중 8명은 흑인이라는 얘기다. 이런 NBA가 흑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적극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흑인 선수들이 없다면, NBA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NBA는 북미 4대 스포츠 중 가장 빠르고 적극적으로 인종의 벽을 깨부순 리그로 꼽힌다. 흑인 선수들의 목소리가 리그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지난 7월 열린 ESPY 시상식에서는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써니, 크리스 폴이 함께 연단에 서서 미국 내 인종 갈등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NBA 선수들에 대해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한 것이 들통 난 도널드 스털링 전(前) 클리퍼스 구단주가, 현역 NBA 선수들과 팬들의 강력한 반발 끝에 결국 NBA 사무국으로부터 영구 제명을 당했다. 끝까지 클리퍼스에 대한 지분을 포기하지 않던 스털링 구단주는 NBA 사무국의 강력한 조치에 스티브 발머 현 구단주에게 지분을 모두 넘기고 클리퍼스 구단 경영에서 손을 떼야 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많은 NBA 선수들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성추문에 휩싸인 트럼프가 자신의 성희롱 발언에 대해 “라커룸에서 나누는 대화 같은 것이다”라고 해명하자 르브론 제임스, 아이재아 토마스 등의 선수들은 “그건 결코 라커룸 토크가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다. 현역 선수 중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르브론 제임스의 경우 아예 힐러리 클린턴 지지 선언까지 했다.
대선이 끝난 후에도 트럼프에 대한 NBA 선수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백악관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리차드 제퍼슨(클리블랜드)은 “내가 당분간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만난 마지막 NBA 팀의 일원이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영광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SNS에 남겨 화제를 모았다. 제퍼슨의 말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향후 4년 동안은 NBA 선수들이 백악관을 방문하길 거부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미 NBA 선수들의 ‘트럼프 보이콧’ 행위는 일어나고 있다. 밀워키, 멤피스, 댈러스 3개 구단은 뉴욕과 시카고에 있는 트럼프 호텔에 묵지 않기로 결정했다. 향후 이 구단들은 뉴욕과 시카고 원정을 떠날 때 트럼프 호텔이 아닌 호텔을 찾을 계획이다. 얼마나 트럼프가 싫으면 그랬을까. 심지어 이 사실이 보도된 후 밀워키의 자바리 파커는 “내가 밀워키 구단의 일원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구단의 결정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이번 대선 결과 전체의 70%에 가까운 흑인 유권자들이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에게 표를 줬다고 한다. 트럼프에 대한 미국 흑인 사회의 반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흑인 사회의 구성원인 NBA 선수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스티브 커, 스탠 밴 건디 등 NBA 감독들조차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적어도 NBA라는 리그는 트럼프에 대해 절대 호의적이지 않다. 그간 NBA가 추구해온 길이 트럼프가 쏟아낸 막말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의 폐쇄적인 이민 정책이 NBA에 당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다. NBA 사무국이 곧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굳이 적이 될 필요도 없다. NBA는 엄연히 민간 프로 스포츠 리그이고, 트럼프 행정부가 그런 NBA의 리그 운영 기조에 간섭할 권리는 없다.
다만 이전 8년 동안 미국을 이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농구를 무척 좋아하고 종종 NBA 경기장을 방문할 정도로 NBA에 친화적인 지도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트럼프의 당선은 NBA 입장에서는 딱히 득이 될 게 없는 일이기도 하다. 리차드 제퍼슨의 말처럼 앞으로 NBA 선수들이 백악관 방문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스테픈 커리가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골프를 치며 친분을 쌓는 일은 이제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코비 브라이언트의 “Mamba Out”을 패러디해 “Obama Out”이라고 외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 행정부는 NBA와 굳이 적대관계가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NBA와 친밀한 사이가 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 트럼프의 보호무역 VS NBA의 세계화
NBA는 북미 4대 스포츠 중 세계화가 가장 잘 된 리그로 꼽힌다. 미국 내에서도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NFL은 굳이 세계화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입장이다.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MLB와 NHL은 팬 층이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 야구는 북중미와 동아시아를 제외하면 즐기는 나라가 많지 않다. NHL은 캐나다와 미국의 스포츠로 불린다. 세계화를 원한다고 해도 공략할 만한 대상이 많지 않다.
반면 NBA는 세계화가 매우 용이한 리그다. 농구는 팬 층이 전세계적으로 분포돼 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모두 프로농구 리그를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비미국인이 프로농구 선수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유럽에서의 농구 인기 확산과 2000년대 초반 야오밍의 등장은 NBA의 세계화를 가속화했다. 요즘에는 오프시즌이면 중국과 필리핀을 방문하는 NBA 선수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여름에는 디안젤로 러셀과 칼-앤써니 타운스가 중국에 머물며 훈련과 개인 행사를 동시에 가졌다. NBA 내에서 상대적으로 비인기 팀으로 꼽히는 밀워키의 자바리 파커가 중국의 음료수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 프리시즌이면 NBA 팀들은 유럽을 방문해 유럽 팀과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프리시즌에도 오클라호마시티가 스페인을 방문해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농구 팀과 경기를 치렀다. 영국에서 NBA 정규시즌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NBA는 해외 팬들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예 ‘인터내셔널 리그패스’라는 시청 시스템을 구축해 해외 팬들이 고화질로 언제든지 경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국내 팬들이 NBA 경기를 시청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일이었다. AFKN에서 중계하는 경기를 간혹 챙겨보거나, 나중에 경기 영상을 찾아서 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정 수준의 구매력만 있다면 NBA의 모든 경기를 자유자재로 시청할 수 있다. (물론 NBA 리그패스의 질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이 많다. NFL의 게임 패스, MLB의 AT BAT 등에 비해 경기 시청 시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가 너무 적고, 중계 속도도 느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원하는 시간에 고화질로 경기를 마음껏 시청하고 싶다면 리그패스만한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들어 NBA는 그 어떤 리그보다 발 빠르게 세계화를 추진해왔고, 이미 어느 정도 성공했다. 현재 NBA 팬 층의 상당수는 비미국인이다. NBA 올스타전, 파이널이 열릴 때면 수많은 나라의 취재진과 중계진이 현장을 찾기도 한다. 미국 밖에서 NBA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NBA 선수들의 국적도 다양해졌다. 각 팀이 비미국인 선수를 몇 명씩 보유하는 시대다. 더 이상 NBA는 미국인만의 리그가 아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운 공약들은 세계화를 추구하는 NBA의 기조와 거리가 멀다. 트럼프는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말 그대로 미국인들을 최우선으로 삼는 공약들을 쏟아내면서 지지를 얻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야말로 트럼프가 추구하는 모든 정책의 핵심이다.
특히 트럼프가 추구하는 무역 정책은 NBA 입장에서는 끔찍한 수준이다. 트럼프는 보호무역을 원한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제품에 점령된 미국 시장의 주인공을 미국 국산품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트럼프는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NAFTA(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지금껏 체결한 경제협정 가운데 최악의 것”이라는 비난도 퍼부었다. 심지어 중국에 대해서는 무역 보복을 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트럼프의 무역정책을 ‘고립주의’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수년간 쌓아온 NBA의 세계화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NBA라는 리그가 미국의 무역 대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트럼프의 고립적인 무역 정책으로 인한 해외 시장의 반발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중국은 국제 관계에서 힘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공약대로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시도하거나 중국과의 무역량을 줄인다면, 당연히 중국 시장에서는 미국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커질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이니 국가 차원에서 특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NBA 시장에도 간접적인 타격이 우려된다. 혹여나 13억 중국 시장이 NBA를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NBA 입장에서는 이보다 끔찍한 일도 없다.

# NBA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NBA는 여전히 몇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유럽 시장과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세계화 정책이 아직도 진행 중이며, 안으로는 인종 갈등에 대한 선수들의 의사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문제다. 이 같은 문제는 현재 조정 중인 CBA 협상 문제와도 얽혀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그런 NBA에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줄 것이다.
지난 9월 NFL 샌프란시스코의 콜린 캐퍼닉이라는 선수가 미국 국가 연주 중에 벤치에서 한쪽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미국 내에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흑인 선수인 캐퍼닉은 7월에 있었던 댈러스 총기 난사 사건 등 최근 벌어진 흑백 갈등 사고에 대해 자신만의 신념을 드러내기 위해 이 같은 퍼포먼스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적지 않은 미국 스포츠 선수들이 캐퍼닉의 행동을 지지하며 그의 퍼포먼스를 따라했고, NBA에서는 국가 연주 시에 선수들이 함께 팔짱을 끼고 서 있는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골든스테이트의 스티브 커 감독을 비롯한 많은 NBA 관계자와 선수들은 캐퍼닉의 행동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심지어 NBA 사무국은 선수 노조와 협력하여 인종 갈등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돕겠다는 성명까지 냈다.
지난 8월에는 샬럿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NBA 올스타전이 취소되고 개최지를 뉴올리언스로 옮기는 일도 벌어졌다. 유례없는 올스타전 개최지 이전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샬럿이 위치한 노스캐롤라이나주(州)가 인종 혹은 성차별에 대한 소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최근 NBA는 수많은 정치적 문제들에 휩싸여 있다.
NBA와 도널드 트럼프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공놀이는 공놀이일 뿐이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NBA는 단순히 농구 경기만 치르고 끝나버리는 일시적 대회 같은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NBA라는 공동체와 관계를 맺거나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삶은 결국 정치와 깊게 연관돼 있다. 게다가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내세운 공약들이 파격적인 수준을 벗어나 ‘과격’하기까지 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NBA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대해 미리 준비해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과연 NBA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공존해 나갈까?
사진 캡처 =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twitter.com/realDonaldTrum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