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편집부 = 괄목상대.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만들었다. ‘2% 부족한 고속정' LA 클리퍼스가 훌쩍 나아진 경기력으로 올 시즌 첫 13경기에서 11승을 거두는 등 눈부신 행보를 보였다. 1970년 창단 이래 최고 성적.

현재는 19승 7패로 서부 컨퍼런스 3위에 올라 있다. 잠시 주춤했지만 곧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이들의 순항에는 이유가 있다. 정점을 찍은 수비 조직력과 벤치 생산성 강화가 바탕이 됐다. 컨퍼런스 결승 진출의 꿈이 영글고 있다.

◆ 정점 찍은 ‘팀 디펜스'…수비 강화라는 묘약

팀 디펜스 완성도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클리퍼스는 원래 공수 밸런스가 잘 잡힌 팀이다. 지난 시즌 NetRtg +5.6을 챙기며 이 부문 리그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밑바탕엔 탄탄한 수비가 있었다. 팀 실점 7위, DRtg(100번의 수비 기회에서 실점 기대치) 6위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 가장 효과적인 ‘짠물 농구'를 펼친 팀 가운데 하나였다.

올해 팀 수비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10월 31일(이하 한국 시간) 유타전부터 7경기 연속 98실점 이하를 기록했다. 비결로는 흠잡을 데 없는 수비 조직력이 꼽힌다. 이번 시즌 그들은 첫 13경기에서 평균 109.6점을 넣었다. 이 기간 평균 실점은 95.4점에 불과했다. 당시 득실점 마진은 무려 +14.2점으로, 독보적인 1위였다. (물론 현재는 수치가 다소 하락했다.) 

첫 8경기에서 세 자릿수 실점은 개막전이었던 포틀랜드와의 경기(106점)뿐이었다. 디펜시브 팀 단골손님 폴과 디안드레 조던이 내외곽 수비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룩 음바 아무테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클리퍼스의 카와이 레너드"라는 호평을 얻을 정도로 일취월장한 수비 솜씨를 뽐냈다.

이들은 대풍(大豊) 염원을 숨기지 않았다. 개막 전 인터뷰에서 시즌 농사 키워드를 밝혔다. 닥 리버스 감독은 서슴없이 ‘수비 강화'를 꼽았다. 어느덧 지도자 데뷔 16년째를 맞은 이 베테랑은 클리퍼스가 더 높은 곳에 다다르기 위해선 수비 조직력을 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는 의아해 했다. 이들은 클리퍼스 문제로 수비를 언급하지 않았다. 낮은 벤치 생산성이라고 봤다. 이 탓에 빚어지는 비효율적인 주축 선수 로테이션 관리가 늘 정규 시즌 이후 그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시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에너지 레벨 높은 공격수 부재, 리더십 논란, 몇몇 선수의 큰 경기 징크스 등을 지목했다. 경쟁력 높은 서부 컨퍼런스에 속했다는 사실을 꼬집는 전문가도 있었다.

최근 5년간 클리퍼스를 거쳐 간 백업 멤버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벤치에서 개인 전술을 수행할 수 있는 요원이 저말 크로포드밖에 없었다. 오스틴 리버스는 불안했고 랜스 스티븐슨은 실패작이었다. 조시 스미스는 더 많은 출전시간을 원했다. 노쇠화 된 폴 피어스와 히도 터컬루, 공격 한계가 뚜렷한 콜 알드리치, 스펜서 허즈로는 효과적인 2·3쿼터 싸움을 벌일 수 없었다. 부상으로 폼이 떨어진 대니 그레인저와 라마 오덤은 어땠는가. 전성기가 지난 앤트완 재이미슨, 그랜트 힐, 천시 빌럽스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에릭 블렛소, 닉 영의 클리퍼스 생활은 길지 않았다. 주전 라인업이 적립한 점수 차를 벤치진이 2·3쿼터 동안 ‘0'으로 수렴시킨 경우가 빈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비 강화 발언은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맥을 잘못 짚은 게 아니냐는 빈정거림이 또아리를 틀었다.

그러나 ‘리버스의 시선'은 옳았다. 완벽을 목표로 한 팀 수비 발전 플랜은 눈부신 스타트로 돌아왔다. 그 중심에는 폴이 있다. 올-NBA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여섯 번이나 선정될 정도로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올 시즌에도 최고의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다. 

수장(首長)도 주전 포인트가드를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버스 감독은 “팀 공격 지휘만으로도 힘들텐데 동료들 수비 동선까지 일일이 체킹하고 있다. 핀치에 몰렸을 때 선수 전원을 불러 모아 분위기를 다잡는 리더십도 훌륭하다. 경기 흐름을 읽는 눈이 경지에 올랐다. 탁월한 대인방어는 물론 1선에서의 지역방어 조율도 빼어나다. 몸 상태가 좋다. 그러다보니 뉴올리언스 시절의 에너지 레벨을 회복한 점도 고무적"이라며 폴의 경기력을 크게 칭찬했다.

공신 목록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올 시즌 주전 스몰포워드로 낙점된 음바 아무테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에이스 스토퍼로 성장했다. 11월 10일 포틀랜드전에선 슈퍼스타 데미안 릴라드를 단 8점으로 묶었다. 그는 1번부터 3번 포지션까지 전담 수비수로 나설 수 있다. 그가 리버스 감독의 수비 전술 운용 폭을 크게 넓혔다. 애초 앨런 앤더슨이 주전 3번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수비 강화에 방점을 찍은 리버스 감독의 의중에 따라 음바 아무테가 주전으로 올라섰다. 음바 아무테는 감독 기대에 정확히 부응하며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리버스 감독은 11월 14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경기 뒤 인터뷰에서 “단언컨대, 이번 시즌 음바 아무테보다 뛰어난 수비를 보이는 선수는 리그에 없다. 그가 디안드레 조던과 함께 코트에 서면 우리 팀 수비는 특별해진다. 또 이따금 기민한 득점으로 팀 승리에 한몫한다. 플레이 하나 하나가 ‘육즙'처럼 영양가가 높다"며 소속 팀 선수 성장세를 흐뭇해했다.

클리퍼스는 리그 최고 1선 수비를 자랑한다. 그러나 골밑 수비도 일품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림 가까이에는 리그 최고 수비형 센터가 매섭게 호령하고 있다. 디안드레 조던은 독보적인 보드 장악력과 림 프로텍팅으로 클리퍼스 인사이드를 단단히 조이고 있다. 공격 롤이 넓은 블레이크 그리핀, 모리스 스페이츠와 궁합도 훌륭하다. 빅맨 파트너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 중이다. 올 시즌엔 순간적으로 1선을 압박하는 기민한 움직임까지 장착했다. NBA 최고 디펜더로서 손색이 없다.

클리퍼스는 올 시즌 초반 7연승을 질주했는데, 이때 매치업 상대의 전력이 흥미로웠다. 클리퍼스가 승리한 7구단 가운데 5팀이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멤피스, 샌안토니오, 디트로이트, 포틀랜드, 오클라호마시티를 홈/원정 가리지 않고 잡았다. 이들과의 점수 차도 상당히 컸다. 벤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해 3쿼터 이후 원사이드 흐름을 챙기거나 경기 극초반부터 리드를 뺏기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가 많이 나왔다. 멤피스전 +11점, 샌안토니오전 +24점, 디트로이트전 +32점, 포틀랜드전 +31점 등 예사롭지 않은 ‘창과 방패'를 뽐냈다. 

‘폭스(FOX) 티비'에서 클리퍼스 구단 분석가로 활동하는 코리 매거티는 "클리퍼스를 보면 2년 전 골든스테이트가 떠오른다. 완벽한 공수 조화가 인상적이다. 서부 컨퍼런스 결승을 넘어 진지하게 동부 구단과 마지막 무대를 기대할 수 있는 페이스"라고 평가했다. 지난 시즌 6할대 승률 이상 팀을 상대로 3승 13패에 그쳤던 클리퍼스. 이들은 이제 ‘약팀에만 강한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깔끔하게 털고 있다.

 

클리퍼스 벤치에 큰 힘을 보내주고 있는 모리스 스페이츠 ⓒ NBA 미디어 센트럴

 

◆ 달라진 벤치…환골탈태한 '여섯 번째 남자들'

클리퍼스는 최근 수년 동안 허약한 벤치 전력으로 고생했다. 올해의 식스맨 통산 3회 수상에 빛나는 크로포드를 제외하면 마땅히 내세울 수 있는 벤치 자원이 없었다. 그러나 올시즌은 다르다. 기존 크로포드 외에 새 식구가 된 레이먼드 펠튼-모리스 스페이츠가 클리퍼스의 달라진 2·3쿼터 싸움을 이끈다. 나머지 요원들도 베테랑 3인 활약 덕분에 덩달아 경기력이 상승하는 낙수 효과를 누렸다.

펠튼은 올시즌 크리스 폴의 휴식 시간을 책임지고 있다. 24경기에 나서 평균 5.3득점 1.3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얼핏 수치만 보면 평범하다. 그러나 실제 경기력은 숫자 이상이다. 백전노장의 아우라를 뽐내고 있다. 클리퍼스는 숙원이던 경기 템포 조율이 가능한 베테랑 백업 포인트가드를 얻었다. 펠튼은 안정적인 리딩과 적은 턴오버, 쏠쏠한 외곽포(경기당 0.8개 성공)로 팀의 유기적인 볼 흐름을 도왔다.

3점슛 성공률도 훌륭하다. 43.9%로 훌륭한 외곽 라인 생산성을 보였다. 세트 오펜스뿐만 아니라 트랜지션 상황에도 너끈히 반응했다. 속공 마무리 시에도 판단이 빠르고 정확성도 나쁘지 않았다. 힘이 좋아 상대 빅맨과 스위치가 이뤄져도 효과적인 디펜스를 펼친다. 데뷔 10년차 베테랑답게 새 팀에서 빠르게 전술에 녹아드는 노련미까지 담아내고 있다. 클리퍼스 이적 뒤 5시즌 동안 평균 34분 12초를 소화해야 했던 폴은, 펠튼 덕분에 체력 부담을 한결 덜고 있다.

리그 최강 골든스테이트에서 데려온 ‘스트레치형 빅맨' 스페이츠도 빼놓을 수 없다. 26경기에 출전해 평균 9.0점 5.1리바운드 0.5블록슛를 기록 중이다. 야투 및 외곽슛 성공률이 들쑥날쑥하고 대인방어가 약한 게 단점이지만 긴 슛 거리를 지녀 상대 빅맨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데 존재감을 발휘한다. 동료 가드의 돌파 공간을 넓혀주는 점이 최대 가점 요소다. 대부분 공격이 림 가까이에서 이뤄지는 디안드레 조던, 룩 음바 아무테, 다이아몬드 스톤과 좋은 궁합을 보이는 것도 호재. 클리퍼스는 크로포드와 함께 개인 공격 전술을 수행할 수 있는 스페이츠 합류를 반겼다. 통산 공격 점유율(USG%)이 24.8%로 상당히 높지만 3점슛과 자유투에 보정을 가한 슈팅 효율성 수치(TS%)에서 올 시즌 55.7%를 수확 중이다. 펠튼 리딩-크로포드·스페이츠 야투 시도 매커니즘이 시즌 초반 나쁘지 않게 작동했다.

미국 지역 언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드디어 미션을 완료했다. 클리퍼스가 수년간 자신들을 괴롭혔던 ‘고질병 처방전'을 손에 거머쥐었다"고 말했다. 이 매체는 “새 얼굴 연착륙과 기존 선수 성장이 맞물리면서 ‘클리퍼스답지 않은' 2·3쿼터가 계속됐다. 주전-벤치 간 불균형으로 시즌을 길게 내다보는 운용이 힘들었던 리버스 감독의 숨통이 트였다. (벤치 생산성만 꾸준히 유지된다면) 올시즌 진지한 대권 도전이 가능하다. 폴-그리핀이 모두 이번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이 탓에 팀 성적이 시원찮으면 클리퍼스는 내년 여름 공중분해 될 수 있다. 올해가 적기다. 파이널 진출 마지막 찬스를 클리퍼스가 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데엔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초반 명센터로 활약했던 브래드 도허티도 이 같은 목소리에 동의했다. 도허티는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에 출연해 “그동안 (클리퍼스의) 가장 큰 문제는 얕은 선수층이었다. 폴-그리핀 등 주축 선수가 다치면 이를 메울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았다. 벤치 에이스 크로포드가 부상 당하면 바로 고꾸라질 수 있는 리스크를 늘 품고 있는 팀이 클리퍼스였다. 올해는 조금 달라 보인다. 구단 첫 황금기를 도래하게 한 ‘빅 3'가 잔부상 없이 현재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사상 첫 챔피언십 도전도 꿈은 아니다. 불가능하지 않다. 충분히 (파이널 우승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팀"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클리퍼스는 현재 19승 7패를 기록, 승률 73.1%를 올리며 구단 창단 이래 최고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플레이오프 상위 시드는 무난히 거머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첫 번째 과녁은 서부 결승 진출이다. 두 번째 과녁은 아직 입 밖으로 꺼내기 섣부르다. 과연 클리퍼스는 쾌속 항해를 이어갈 수 있을까. 두 가지 숙제 풀이가, 일시적이 아닌 완벽한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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