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승기 기자 = ESPN과 SI(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紙)는 매년 자체적으로 선정한 선수랭킹을 발표한다. 루키는 지난 11월, 필진들의 의견을 모아 ‘2016-17시즌 선수랭킹 Top 10’을 선정한 바 있다. 이번에는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10명의 순위를 매겨보았다. 이는 그간 국내 그 어떤 매체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루키에서 최초로 시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선정방법
각 필진이 역대 선수랭킹 1위부터 10위를 선정한다. 1위부터 10위에게는 각각 10점부터 1점씩 역순으로 부여되며, 이를 합산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선수 10명을 뽑는다.

※ 참여자 명단
이승기, 황호재, 이민재, 강하니, 유비, 유상열(이상 루키), 박대현(스포티비뉴스)

 

10위 (1.3점)

코비 브라이언트

 

이승기

마이클 조던이 ‘슈퍼히어로’ 무비였다면, 코비 브라이언트의 커리어는 한 편의 성장 드라마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든 천둥벌거숭이 애송이가, 한 남자로, 남편으로, 슈퍼스타로, 리더로, 전설로 성장하는 과정을 매우 생동감 있게 보여줬다.

고등학교만 마치고 NBA에 입성한 코비는 세상 두려울 게 없는 철부지였다.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슛 연습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외골수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시기와 질투, 따돌림도 받았다. 코비는 생각했다. “농구만 잘하면 되지, 뭘!”

샤킬 오닐과 함께 했던 영광의 시대가 끝났다. 코비는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았다. 30~40점씩 넣어도 패하는 날이 많았다. 50점, 65점, 81점은 넣어줘야 안심이 됐다. 이때 코비는 깨닫는다. “혼자만 잘해서는 이길 수 없구나.”

2000년대 후반, 코비는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동료들에게 시계와 농구화를 선물하는 등 먼저 다가갔다. 함께 대화하는 시간도 늘려나갔다. 그렇게 두 차례 우승을 일궈냈다.

말년에는 욕을 많이 먹었다. 아킬레스건 파열 이후 신체능력과 기량이 형편없이 떨어졌지만, 본인의 농구 스타일을 끝까지 고수하며 팀 조직력을 망쳤다.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먹던 코비는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60점을 폭발시키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어쩌면 가장 ‘그’다운 은퇴가 아니었을까. “Mamba Out!” 그렇게 코비는 우리 곁을 떠났다.

황호재

수많은 고졸 스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고졸 성공신화를 이뤄낸 코비 브라이언트다. 코비는 마이클 조던 이후 가장 위대한 슈팅가드이자, 케빈 가넷과 함께 고졸의 프로직행 트렌드를 주도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원클럽맨’이 희박해져가는 요즘, 오로지 LA 레이커스의 유니폼만 입고 20시즌을 소화한 뒤 은퇴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업적 중 하나이다.

 

유비

2015-16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발표한 코비 브라이언트는 ‘포스트 조던’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제 1의 코비’가 되었다. 화려한 풋워크와 정교한 슛 터치, 상대 선수들의 끊임없는 도발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마인드 컨트롤 능력까지. 코비는 꿋꿋이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풋풋한 아프로 머리를 한 꼬마는, 훗날 5번의 NBA 우승과 18번의 올스타 선정, 역대 통산 득점 3위를 차지하는 괴물로 성장했다. 많은 선수가 조던의 플레이를 보고 영감을 얻었듯, 앞으로 나올 어린 선수들은 코비의 플레이를 보고 영감을 얻을 것이다.

박대현

마이클 조던에 이어 역대 가장 뛰어난 슈팅가드로 꼽힌다. 그가 이룩한 통산 기록만 훑어도 알 수 있다. 코비는 NBA 우승을 다섯 번이나 차지했다. 파이널 MVP 2회, 정규 시즌 MVP에 한 번 선정됐다. 올스타전 무대를 18번이나 밟은 ‘팬들이 누구보다 사랑한 선수’였고 이 가운데 4번이나 올스타전 MVP에 뽑혔다. 1997년 올스타전에선 덩크슛 콘테스트 챔피언에 오르며 전 세계 농구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올-NBA 퍼스트팀에도 11회나 이름을 올렸다. 득점왕은 2번 거머쥐었다. 통산 33,643점을 올려 리그 역대 3위에 이름을 새겼다. 2006년 1월에는 한 경기 81점을 챙기기도 했다. 윌트 체임벌린(100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한 경기 최다득점기록이었다. 국제대회서도 펄펄 날았다. 미국 남자농구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두 차례 나섰다. 두 대회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시상대 맨 위에 올라 손을 흔들었다.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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