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최기창 기자] 덕성여대를 방문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금요일 오후 6시였다. 여대라는 기대를 잔뜩 안고 캠퍼스를 걸었다. 하지만 시험 기간이 끝난 불금은 잔인했다. 여대생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낙엽만이 환영의 손짓을 했다. 이러려고 여대에 왔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소득 없이 체육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공 튀기는 소리가 많이 났다. 눈은 커졌고,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체육관 문을 열자 농구에 열중인 한 무리의 여대생을 발견했다. 불금에 농구하는 여자들, 덕성여대 여자농구부 CLUTCH를 만났다.

덕성여대 농구 동아리인 CLUTCH(클러치)는 팀명에서 알 수 있듯 농구 용어 중 가장 극적인 단어를 팀 이름으로 붙였다. 주장인 편소현(3학년) 양은 “클러치는 결정적인 순간을 뜻한다. 클러치 상황에서 실책을 범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보다 잘할 때의 의미다. 모든 팀원이 가장 중요할 때 잘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CLUTCH는 덕성여대 생활체육학과생들로만 구성된 동아리다. 하지만 생활체육학과로만 구성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다만 다른 과 학생 중 지원자가 없었다고.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앞으로 농구에 관심이 있는 덕성여대생은 언제든 환영이라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대회 참가를 계기로 출발한 농구 동아리
덕성여대 CLUTCH가 출발한 계기는 농구 대회였다. 2014년에 개최된 이화여대배 여자대학동아리농구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팀으로 꾸려졌다. 팀에서 가장 학번이 높은 13학번인 박소연(4학년), 김자영(4학년) 양에게 창단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원래 B팀이라고 막농구 팀이 있었어요. 공격할 때나 수비할 때, 공 따라서 우르르 몰려가는 팀이요. 그런데 하루는 선배가 대회가 있다면서 대회용 팀을 하나 따로 꾸리자고 하더라고요.”

덕성여대 팀은 첫 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다. 뜻밖의 호성적은 팀원들을 한껏 자극했다. 제대로 팀을 꾸린다면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확신도 생겼다. 그 뒤로 클러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창단 과정을 지켜본 둘은 어느덧 4학년이 됐다. CLUTCH는 주로 1~3학년 위주로 구성됐다. 취업준비나 대학원 진학으로 바쁜 4학년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동아리에서 나올 수 있다. 나름 명예로운 은퇴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특히 김자영 양은 ‘은퇴’를 선택했음에도 동아리에 가끔 찾아오곤 한다.

“사실 저는 명단에 없어요.(웃음) 1학년 때부터 연습을 정말 힘들게, 열심히 했거든요. 결국 1학년 때부터 항상 농구를 해 온 거잖아요. 이게 버릇이 됐어요. 농구하는 게 습관이 돼버린 거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오게 돼요.”

대회를 하루 앞둔 벼락치기 강습
이날은 덕성여대배 여자동아리 농구대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몸을 풀던 학생들은 이내 두 줄로 섰다. 레이업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일선 엘리트 농구부에서나 보던 장면이 연출됐다.

단순 레이업이 아니라 뛰면서 서로 위치를 바꾸는 크로스 레이업 연습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보아왔던 연습과는 분명히 달랐다. 무언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였다. 동행했던 박건연 <더 바스켓> 대표가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연세대와 우리은행, 국가대표팀에서도 지도자 생활을 했던 박 대표는 처음 “일반인은 가르쳐본 적이 없는데 큰일났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연습이 시작되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훈련을 관찰한 후,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직접 시범도 보였다.

“레이업 할 때 마지막 발이 너무 골대에서 가까워. 그러니까 자꾸 공이 림에 맞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 레이업을 크로스로 하는 이유를 아니? 크로스로 뛸 때는 코트를 넓게 써야 해. 그리고 드리블보다는 패스 위주로 해봐. 이렇게 말이야. 자! 처음부터 다시 해봐!”

지도를 받은 학생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느껴졌던 어색함은 사라졌다. 그때 다시 박 대표가 나섰다.

“자, 이제 두 명이 했으니까 세 명이 함께 해보자. 수비도 세워볼까? (다른 쪽을 가리키며) 너희들은 이쪽으로 와. 너희들은 수비야. 수비면 어떻게 해야겠어? 공 못 잡게 해야겠지? 그러니까 공격자가 공을 잡지 못하게 해야 돼.”

이어 그는 다시 공격을 맡은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공이 없을 때 공격자가 수비를 따돌리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며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동작으로 직접 시범을 보였다. 몇 가지 동작을 선보이자 학생들의 입에서 “와~ 대박”이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5대5 연습도 진행했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는 패턴을 주로 훈련했다. 스크린부터 패스, 공 없는 사람의 움직임, 컷-인 등 슛 기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동작이 주를 이뤘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훈련에 집중력을 잃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부주장을 맡은 김지원(2학년) 양은 “이렇게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예전에 코치님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벼락치기로 배운 것이지만, 오늘 배운 것을 꼭 내일 써먹고 싶다”고 말했다.

‘SK 나이츠 팬클럽’ 혹은 ‘김선형 팬클럽’
연습하는 학생들과 말을 섞어봤다. 팀원들의 공통점이 쉽게 발견됐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대부분 좋아하는 팀은 SK 나이츠를, 좋아하는 선수는 김선형(SK)을 꼽았다. 마치 SK 팬클럽, 혹은 김선형 팬클럽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당한 여성이 매력적인 시대’에 사는 여대생답게 좋아하는 이유를 밝히는 대도 주저하지 않았다.

주장인 편소현 양은 SK 팬이다. 그는 “SK와 김선형의 팬이다. 서울팀인 데다 김선형의 화려한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자영 양도 “SK 나이츠를 좋아한다. 잠실이라서 가까운 것도 있고, 농구단 이미지가 뭔가 세련된 느낌이라서 좋다. 또 선수들이 제일 잘 생겼다”며 웃었다.

이아현(2학년) 양 역시 “원래 원주에서 태어나서 동부 팬인데, SK도 좋아한다. 선수는 통틀어서 김선형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 얼굴과 실력을 둘 다 봤을 때 KBL 최고의 선수”라고 주장했다.

이상하리만큼 SK 나이츠에 열광하는 여자들. 그 원인이 궁금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황현정(2학년) 양에게 클러치 팀원 모두가 SK의 팬이 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해 후원해주시는 곳으로부터 SK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많이 받았어요. 농구를 좋아하는데, 티켓도 생겼겠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학생체육관을 찾아 SK 나이츠 경기를 본 거죠.(웃음) 거기 가서 응원도 하게 되고, 자주 가니까 잘하는 선수와 잘생긴 선수도 알게 된 거죠.”

“농구 얼~마나 재밌게요”
덕성여대 CLUTCH 학생들에게 대학생활은 곧 농구였다. 그들의 삶 곳곳에서 농구가 묻어났다. 졸업반인 박소연 양은 최근까지 행정 보조 계약직으로 일했다. 그는 일하는 중에도 매일 농구 동영상을 봤다고 고백했다.

“사실 회사에서 매일 프로농구를 봤어요.(웃음) 아무것도 안 할 때가 있거든요. 그때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몰래 봤어요.”

황현정 양은 대학 진학 후 CLUTCH에 가입하고부터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우게 됐다고 한다. 늦게 배운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는 농구의 재미에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푹 빠져버렸다. 농구는 황 양의 희망직업에도 영향을 줬다. 그는 현재 프로농구단에서 일하겠다는 목표가 생긴 상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SK와 오리온스 경기를 보러 갔어요. 그날 입석으로 들어가서 쪼그려 앉아서 봤어요. 당시에 제가 수학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공부하려고 수학의 정석을 복사해 놓은 것이 있었거든요. 심지어 양면이었는데, 거기에 사인도 받았어요. 그날 ‘와,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티켓에 일기도 썼어요. 꼭 프로구단에 입사해서 농구 속에 파묻혀 살고 싶습니다.”

농구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이 유난히 컸던 이유는 이날이 대회 전날 열린 마지막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장인 편소현 양의 얼굴은 편치 않았다. 며칠 전 교내 체육대회 도중 코를 다쳐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된 탓이다.

그는 아픈 마음을 달래며 동료들의 훈련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가 유독 아쉬워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대회는 그가 참가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대회였다. 편 양은 내년이면 4학년이 된다.

자타공인 CLUTCH 전력의 90%인 그는 덕성여대에 진학 후, 시간이 날 때마다 개인 연습에 매진했다. 재미있는 농구를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쉬워요. 저희는 4학년이 잘 안 하니까 마지막 대회나 다름이 없거든요. 지난 대회 때도 다쳐서 참가를 못 했어요. 그래서 더욱 준비를 열심히 해왔는데 아쉬워요. 학교 체육관에서 개최하는 거라 꼭 우승 트로피와 MVP 트로피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그의 부재가 컸던 탓일까. 두 팀으로 나눠 출전한 클러치는 다음날부터 이틀간 열린 대회에서 두 팀 모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편 양은 “제가 못 뛰어서 그런 것 같다”며 다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그가 달라져 있었다. ‘다음 대회’라는 단어를 써가며 농구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가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농구가 재밌기 때문이다.

“다음 대회에 나가게 되면 진짜 열심히 해서 꼭 우승하고 싶어요. 물론 애들이 도와달라고 해야겠지만요.”(웃음) 

▲ CLUTCH 농구동아리
- 2014년 창단, 덕성여자대학교 농구동아리
인원
 선수 : 박소영, 김나영, 김자영(이상 13학번), 편소현(14학번), 김다은, 김지원, 엄계원, 장수지, 황현정, 신정상, 이아현, 김소이, 이재린(이상 15학번), 백민주, 최승연, 최유정, 이지수, 이유린, 정서연(이상 16학번)

해당 기사는 <더 바스켓> 2016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정금선 작가 yaeson20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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