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일반인들이 취미로 농구를 즐긴다고 할 때 우리는 대게 코트에서 땀을 흘리는 남자들을 생각한다. 야외 코트가 즐비한 곳을 둘러봐도 농구는 남자들의 전유물이다. 종종 농구공을 튀기고 슛을 던지는 여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지만 ‘정상적인 농구’를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체육이 보편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운동량이 많고 몸싸움이 격렬한 농구를 여자들이 취미로 즐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한 일과를 마치고 찾아온 시간에 직접 뛰는 스포츠로 자신의 여가를 선용하는 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 주중 내내 죽도록 일만 하고, 주말에는 또 죽도록 운동만 하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월요일 출근길(혹은 통학)에 오르며 “개운하다”고 외치는 특별한 종족들은 때론 주중에도 몸을 던져 자신의 취미 활동에 투신한다. 대부분 남자들이다. 어쩌면 이것이 ‘남자들의 세계’라는 생각에 거친 매력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남자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당당한 여자들이 있다. 이제 갓 스무 살 무렵의 여학생들이 오로지 농구에 빠져서 쉼 없이 볼을 던지고 있는 것.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농구 동아리 EFS가 그 주인공이다.

여자농구 대학 동아리 최강팀을 만나다
아마추어 농구 동아리인 만큼 인터뷰도 진행하며 원포인트 레슨도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국가대표 출신인 김은혜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이 함께했다. 농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일반인들을 위해 기초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가르쳐주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이 학생들, 장난이 아니다.

체육관에 도착해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훈련을 지켜보던 김은혜 위원은 이들의 수준에 감탄했다. 사회인 농구 동호회에도 몇 번 나가본 적이 있고, 일반 학생들을 몇 차례 지도해본 적도 있지만 이 학생들의 수준은 전체 여자 팀 중에서는 상당히 상위권이라는 것. 

이화 프리스타일(Ewha Free-Style)의 약칭인 EFS는 지난 2008년에 만들어졌으며 대학 여자농구 동아리 중에는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2916년에는 이화여대배와 국민대배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입상한 경력이 있다. 스스로도 대학 동아리 중 자신들이 상위권에 있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여자 대학 농구 동아리’를 방문한다고 했을 때, 긴 머리 찰랑찰랑한 아가씨들이 드리블 연습을 하고 두 손으로 골밑에서 슛을 던지는 모습을 상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 만화 <슬램덩크>에서 주인공 강백호와 아침에 특별훈련을 하던 채소연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기대는 첫 만남부터 와장창 깨졌다.

<더 바스켓> 취재진이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이들은 2대2 플레이를 연습하고 있었다. 구석에서 통통 거리면서 드리블 연습을 하는 이는 없었다. 드리블을 할 때 이들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공이 아닌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미들레인지에서 던지는 슛도 거침이 없었고, 과감한 레이업 슛은 물론 양손을 모두 활용한 골밑 플레이까지... 

“방학 때는 모이기가 힘드니까 1주일에 한 번, 3시간씩 운동하고 학기 중에는 그래도 꾸준히 1주일에 두 번 정도 해요. 매주 5시간씩은 하는 것 같아요.”

이들은 그냥 ‘농구하는 여자들’이 아니라 ‘농구에 미친 여자들’이었다.

농구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체대다 보니까 학교에 오기 전에 입시 체육으로 농구를 했었어요. 농구, 테니스, 배구 중에 하나는 하고 오는 데 그때 농구를 했던 학생들이 많이 가입하고 있어요.”

이제 이들이 보여주는 기본기가 설명이 된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농구를 경험했던 학생들이 입학 후 동아리에 가입해서 더욱 농구에 특화된 것. 여기에 농구에 대한 관심이 더해졌다. “농구를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들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황하는 모습도 역력했다. ‘왜 하는지’ 고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재밌잖아요. 재미있으니까요.”

어렵게 나온 대답이다. 그냥 재미있어서, 좋아서 하는 게 농구라는 것. 해야 하는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농구는 혼자서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한 명이 할 수 없는 걸 코트에서 5명이 함께하면서 해내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매년 EFS에 가입신청을 하는 학생 수는 10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입시 체육 때 전공 실기로 농구를 선택했던 학생들 중 대부분은 농구 동아리에 관심을 갖는데 이중 끝까지 남는 인원들이 꾸준히 EFS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이다. 현재는 총 13명.

물론 예외도 있다. 1학년 이채원 양(1학년)은 농구가 아닌 배구를 선택해 이화여대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EFS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도 농구를 하고 싶었다”는 이 양은 “농구공이 그물을 통과할 때의 소리가 너무 좋다”며 농구 예찬론을 폈다. 배구도 배구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농구 또한 그렇다는 것.

농구, 어디까지 미쳐봤니?
‘운동량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주장인 임정현 양(3학년)은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들의 훈련이 조금도 많다고 느끼지 않는 표정. 다른 부원들은 임 양이 동아리 훈련시간 외에도 따로 농구를 하는 시간이 많다며 졸업하면 WKBL에 일반인 드래프트라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WKBL은 일반인 드래프트가 없다. 그냥 마음에 드는 구단 하나를 정해서 연습생으로 들어가면 된다. 물론, 입단테스트는 통과해야 한다. 

부모님들은 주말에 아들이 밖에 나가서 여가활동으로 스포츠를 즐기다가 다쳐서 들어오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딸도 마찬가지다. 3학년 오승혜 양은 발목에 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농구하다가 발목 인대가 나갔어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지금은 반깁스를 떼고 보호대만 착용하고 있다. 농구를 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굳이 1시간 넘는 통학길에 나섰다. 같이 농구를 할 순 없어도 프로 선수 출신이 와서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면 보기만 해도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한다. 순수한 ‘농구 사랑’ 측면에서는 물개 박수가 아깝지 않지만 부모님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오로지 농구다. 오 양은 “3년째 신어서 거의 걸레(?)가 된 배구화만 신고 농구를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발이 작아서(230mm) 맞는 농구화를 구할 수 없다는 것. 주니어용으로 나온 농구화는 쿠션이 약하다며 누가 신던 거라도 좋으니 사이즈만 맞으면 농구화를 구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물론, 신발 때문에 발목을 다친 건 아니라고 믿는다.

WKBL에 푹 빠진 ‘농구빠’도 있다. 1학년 이희주 양은 부천 KEB하나은행과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를 좋아하는 WKBL 팬이다. “집이 부천이라 경기장도 자주 간다”는 이 양은 그래서 하나은행의 강이슬과도 친분을 갖게 됐다. 덕분에 지난달에는 강이슬이 직접 짬을 내서 EFS를 방문해 슛 폼을 잡아줬다고 한다.

국가대표 슈터의 슛 자세 교정. 동기들과 언니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선물한 이 양은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김단비(신한은행)와 이경은(구리 KDB생명)을 꼽았다. 강이슬 파이팅... 

오직 농구.. 농구... 농구......
‘스무 살 전후의 여대생’이라면 왠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라는 느낌이 있다. 여자들 스스로도 그 시기에 대해 ‘가장 꿈이 많고 꾸미지 않아도 예쁠 때’ 라고 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공감하며 한창 하고 싶은 일도 많을 때다. 그런데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농구 뿐이란다. 평소의 취미를 따지지 않고 지금 관심 있는 게 무언지 말해보라 하자 “딱히 농구 말고는...”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동경하는 연예인, K-POP, 남자친구, 뷰티, 패션 등 20대 초반의 여자들이 좋아할 관심사들은 차고 넘친다. 아무리 경제가 위기라지만 그래도 1인당 국민소득 28,000달러를 넘어선 대한민국이다. 무언가 관심을 둘 대상들은 충분히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들은 ‘뷰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빵~ 하고 터져버렸다. “호호호”도 아니고 “깔깔깔”하며 자지러지게 웃던 이들은 이내 정색을 하고 “뷰티가 뭔가요?”라며 되물어왔다. 발목에 깁스를 한 오승혜 양은 “언니가 화장 좀 하고 다니라고 난리”라면서도 “막상 해보면 안 하는 게 낫다”고 담담하게... 아니 도도하게 말했다. 

그러나 도도함은 순간일 뿐, 우연찮게도 EFS 회원 중 남자친구가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농구에 빠져서 남자친구 사귈 시간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남자친구가 없는 핑계를 농구에게 덮어씌울까? 이들은 ‘설마 농구때문이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어쨌든 지금 현재, 그들에게는 ‘남자친구’보다 ‘농구’가 더 관심의 첨단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이 동호회를 수녀님들의 농구모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진지하게 EFS 앞에 SAINT를 붙이는 것을 추천한다.

코치 급구!
아무런 정보 없이 EFS를 찾은 <더 바스켓>은 이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농구공을 들고 찾아갔다. 그러나 곧 “괜한 짓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육관에는 이들을 위한 농구공이 브랜드 별로 넘쳐났다. 동행한 김은혜 위원은 “차라리 공은 나를 달라”고 할 정도. 이들 역시 농구공 보다는 테이핑 같은 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농구공을 양보하지는 않았다.

남다른 열정과 실력을 자랑하는 EFS는 김은혜 위원과의 내기에서도 이겼다. 김 위원은 과거 박혜진(우리은행)은 물론 모교인 숭의여고를 방문해서 진행했던 슈팅 내기에서 남다른 승부욕을 자랑하며 지지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김 위원의 3점슛과 이들의 자유투를 통해 진행된 내기에서 뜻밖에 패하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슛 내기에서 졌다”며 환하게 웃은 김은혜는 EFS 선수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쏘기도 했다.

“경기를 하다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플레이가 나올 때도 있는데 좋아서 세리머니를 하기 보다는 다음 플레이를 생각해요. 수비해야 되니까... 그리고 실수 안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순간 농구 동호회를 찾아온 건지 프로구단을 인터뷰하고 있는지 혼동이 왔다. 이처럼 이들은 모든 생활과 생각이 ‘농구 중심’이다. 그리고 지금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팀에 코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원래 있던 코치가 개인 사정으로 팀을 맡을 수 없게 된 후 이들은 주장의 통솔 아래 스스로 훈련을 해오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농구’다.

“가끔 한 번씩 봐 주시는 분들은 ‘선수도 아닌데 그 정도면 됐다’ 정도로 가르쳐주기도 하세요. 그런데 저희는 진짜 농구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정말 열심히 배우고 잘 할게요.”

코치의 조건은 남녀불문. 농구를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누구라도 환영이란다. 비록 명예 봉사직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열정으로 똘똘 뭉친 학생들과 즐겁게 땀을 흘리고자 한다면 정말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더 바스켓>이 보장한다.

단,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여대생’과 ‘캠퍼스의 샤랄라한 동화같은 분위기’를 상상한다면 비추다. 그건 체육관에 들어가기 전 까지만 가능하니까...

▲ EFS 농구동아리
- 2008년 창단, 이화여대 체대 농구 동아리 / Ewha Free Style
- 인원
오승혜, 유아현, 이다혜, 임정현(이상 14학번),
박재연(15학번),
박예원, 신나라, 이채원, 이희주, 정수연, 정유진, 조주연, 최하나(이상 16학번)

해당 기사는 <더 바스켓> 2016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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