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최기창 기자] 기말고사가 끝난 어느 날. 꽃잎이 떨어진 캠퍼스는 이미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시험이 끝난 캠퍼스는 한산했다. 하지만 체육관은 달랐다. 여학생들의 기합 소리와 공 튀기는 소리가 함께 어우러졌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름 그대로 ‘농구하는 여자들’인 연세대학교 농구동아리 Miss B를 만났다.
‘Miss B’. 'Miss Basketball'을 줄인 말이다. 학생들의 풀이는 코너 이름과 동일하게 ‘농구하는 여자들’이었다. 연세대 Miss B는 사실 최근에서야 활성화가 된 동아리다. 아직 대회에서 뚜렷한 성적을 남긴 것은 아니다. 올해부터는 꾸준히 대회에도 참가 중이다. 이날도 팀 코치에게 수업을 들으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7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농구를 배우러 NBA 캠프에 참가하다
이선영(12학번) 양은 Miss B의 창단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원래부터 농구를 좋아했던 이 양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농구를 좋아하는 여학생이 많지 않았어요. 이후 체육교육과에 농구 전공이 생기면서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뒤로 동아리가 결성됐어요. 당시에 저와 13학번 애들이 주축이 됐어요. 전 나이가 많아서 주장을 맡게 됐고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농구를 좋아하는 다른 과 학생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현재는 다른 과 학생들도 함께 농구를 하고 있어요.”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동아리. 첫 출발은 쉽지 않았다. 짜인 틀이 없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어느 날 NBA에서 주최하는 캠프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당시 저희는 농구를 너무나 배우고 싶었거든요. 배우러 거기에 가보자고 같이 동아리 친구들과 의기투합을 했죠.”
‘NBA에서 농구를 알려준다’는 문장에 현혹된 그녀들은 망설이지 않았다고 했다. 제대로 된 농구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 되었다고 했다.
“엘리트 선수들이 주로 많더라고요. 당시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몇몇 기억이 나요. 박지수(KB스타즈) 선수를 비롯한 분당경영고 선수들이 있었어요. 진안(KDB생명) 선수와 수원여고 동료 선수들도 있었고요. 순간 우리가 올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어쩌겠어요? (웃음) 이미 와버렸는데...”

'레전드' 박정은의 농구 교실
Miss B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수요일에 모인다. 일주일에 받은 스트레스를 그날 다 푸는 듯했다. 그렇지만 재미를 위한 훈련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몸 풀기부터 연습까지 모두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실제 선수들처럼 콘을 비롯한 보조기구를 이용해 훈련을 진행하는 모습도 있었다.
드리블과 레이업 연습을 진행할 때였다. 훈련을 지켜보던 박정은 전 삼성생명 코치가 코트에 나섰다. 직접 훈련 도우미로 나서 선수들에게 공을 전달했다. 해당 훈련이 끝나자 박 코치는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아까 잠깐 물어봤더니 지역방어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역방어를 연습해 볼까 해요. 2-3 수비에 대해서 배워볼까요?”
박 코치는 선수들의 위치를 하나하나 지정하며 열성적으로 강의했다. 잘못된 것은 곧바로 지적하면서 수정했다. 사실 2-3 지역방어는 기본적인 수비 전술이면서도 완성도를 높이기가 어려운 전술 중 하나로 꼽힌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우왕좌왕하고는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조직력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박정은 코치가 “좋아!”, “잘했어” 등의 긍정적인 추임새를 넣는 횟수도 점점 늘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여기서 공격자가 공을 잡을 때가 나올 거야. 그때는 수비수 두 명이 순간 달려들면 돼. 그럼 공격자가 도망가려고 하겠지? 그때는 호흡기를 떼버려!!”
박 코치의 적절한 비유와 재미있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학생들의 웃음도 함께 터졌다. 이후 “2-3는 정말 연습을 많이 해야 해”라고 말한 박 코치는 당장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1-2-2 지역방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1대1 수비연습과 드리블, 레이업, 자유투로 이루어진 슈팅 게임도 진행했다. 수업은 박수 속에서 마무리됐다.
박 코치는 “마지막에 한 것은 안 시켜도 팀원들끼리 경기나 연습 도중에 토킹(talking)하는 효과가 있다. 농구를 재미로 배우는 친구들이라 왜 토킹을 해야 하는 지 잘 모를 거다. 아마 이걸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코트에서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라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집중도가 훌륭했다. 사실 일반적으로 30분 정도 가르치면 집중력이 분산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농구를 좋아하는 열정이 프로선수들 못지않았다. 농구를 좋아하는 모습에 감명을 깊게 받았다. 원래는 내가 고려대를 더 좋아했는데 오늘부터는 연세대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원래 삼성생명 팬”이라는 사실을 밝힌 이선영 양은 “수업을 받으면서 지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농구하면서 팬심을 숨기느라 혼났다”라고 말했다.
팀 에이스 진리애(15학번) 양은 “일본에서 자라서 박 코치님이 오신다고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근데 주변에서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검색도 해보니까 정말 대단한 분이시더라. 그동안 우리 팀이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가르쳐준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셨다. 배운 게 많아서 좋다. 기술이 더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사회인 농구를 하고 있다는 최지원(14학번) 양은 “1-2-2 수비는 처음 해봤다. 팀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박 코치님이 자주 오셨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남편분과 함께 오시면 더 좋을 것 같다”라며 웃었다.
당초 박정은 코치는 남편인 배우 한상진 씨와 함께 방문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한 씨가 드라마 촬영 중인 관계로 이날도많이 힘든 것 같다며 혼자 나타났다. 학생들의 성원을 본 박 코치는 “안 되겠어. 신랑이랑 같이 오면 난 묻힐 것 같아”라며 “혼자 오길 잘했다”고 웃었다.

농구를 진짜 사랑하는 여자들
지난달 숙명여대 농구동아리 deke편을 진행할 때였다. deke의 주장인 전예슬 양은 “농구를 좋아하는 친한 언니가 ‘회 먹고 농구하러 강릉에 가자’라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그 친한 언니가 최지원 양이었다. 최 양은 “(전)예슬이와 같은 아마추어팀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회’가 아니고 ‘홍게’입니다. (웃음) 그때 바로 여기 연세대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나온 얘기였어요.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주에 농구하러 떠났죠.”
농구를 좋아하는 최 양은 이런 일들이 일상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농일로’라는 단어를 꺼냈다. 본인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는 아닌데, 주변에서 ‘농일로’를 떠난 적이 있어요. 내일로 티켓(한국철도공사에서 판매하는 패스형 철도 여행 상품)을 사서 농구를 하러 돌아다니는 거죠.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짧게 갔다 왔어요.”
어릴 때부터 농구를 취미로 했다는 정다미(16학번) 양은 “농구는 편하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서 좋다. 또 경기 진행도 빠르고, 점수도 빨리 올라가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고백했다.
주장 강민진(14학번) 양은 “농구는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일단 유니폼도 멋있다. 그리고 팀 스포츠여서 팀이 무언가 함께 해야 한다는 점도 있다. 물론 끝나고 맥주 한잔 하러 가는 것도 참 좋다”라며 웃었다.
진리애 양은 “농구는 혼자 할 수 없다. 서로를 믿어야 한다. 팀으로 뭔가 이룬다는 느낌이 참 좋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 관계도 끈끈해지는 점도 좋다”라고 설명했다.
여자농구를 더욱 좋아한다는 이선영 양은 “농구를 보러 청주에 간 적이 있다. 원정 응원석에 앉았는데, 청주시민들의 기에 눌리는 느낌이었다.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다. 그래서 KB도 응원하고 있다. 그런 팀이 잘 돼야 WKBL이 잘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새 시즌 우승은 삼성생명이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팬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농구는 더 이상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엘리트 선수를 제외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스포츠라는 콘텐츠를 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르다. 사회체육이 활성화되면서 직접 운동을 접하고 즐기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으로 이어진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다.
진리애 양은 “농구를 직접 하면서 경기를 보게 되면 분명히 다르다. 학교 농구부 경기를 보게 되면 느끼는 점이 많다. 경기를 보면서 내가 부족한 점을 깨닫고 연습 때 그 점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이런 걸 못해봤구나’,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욱 챙겨보게 된다”고 했다.
정다미 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농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뒤로 조금씩 선수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수비를 배웠다. 앞으로는 선수들의 수비에 대해서도 조금씩 더 분석하면서 재미있게 농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 Miss B 농구동아리
- 연세대학교 농구동아리 / Miss Basketball
선수 : 이선영(12학번), 정재연(13학번), 강민진, 이예은, 정지영, 최지원(이상 14학번), 권유경, 김주영, 진리애, 최의인(이상 15학번), 이진영, 정다미, 조은재,(이상 16학번), 최수주(17학번), 민다홍(대학원생)
사진 = 루키 사진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