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최기창 기자] 낭만적인 화창한 가을 캠퍼스는 동시에 고통의 계절이기도 하다. 중간고사의 압박이 마음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 기간에도 도서관이 아닌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며 시간을 보내는 '엄친딸'들이 있다. "이렇게 두 시간 정도 운동한다고 성적에 큰 영향은 없어요. 오히려 공부도 더 잘돼요”라는 교과서적인 말과 함께 말이다. 공부도 운동도 최선을 다하는 서울대 여자농구 동아리 LABA(LAdies' BAsketball)를 찾았다.

다소 황당했던 창단과 국민대배 우승
2014년에 창단한 LABA는 사실 대회 참가를 위한 일시적인 팀으로 출발했다. 창단에 큰 영향을 미친 초대 주장 배한결(11학번, 대학원생) 양은 창단과정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서울대 진학 후에 농구가 정말 하고 싶어서 농구 동아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여자 농구부가 없더라고요. 결국 너무 하고 싶어서 HOBAS라는 학교 남자 농구동아리 문을 두드렸어요. 연습이라도 같이하고 싶으니 끼어달라고요.”

남학생의 전유물이었던 농구 동아리의 홍일점이 된 그. ‘여자애가 남자동아리에서 농구를 한다’는 소문은 학교 내에서 빠르게 퍼졌다. 그때였다. 배 양에게 접근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졸업한 오새임이라는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죠. 그 친구한테 ‘이화여대배 여자농구대회가 있는데 함께 나가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그런데 되게 황당했어요.(웃음) 전혀 모르는 사람이 대회에 나가자고 권유한 것도 웃기는데, 정작 본인이 농구를 못한다는 거예요.”

사정은 이랬다. 평상시 농구를 좋아하던 오 양은 우연히 이화여대배 농구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농구를 좋아했던 만큼 농구 대회에 출전해보고 싶었던 것 역시 당연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당시 오 양은 농구를 전혀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출전하고 싶다는 의지는 너무나도 강했다. 결국 대회 출전을 위해 배 양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처음엔 당연히 싫다고 했죠. 농구 하나도 할 줄 모르면서 (대회에) 나가는 건 지려고 나가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가 같이 팀원을 모아보자고 엄청나게 설득을 했어요. 결국 그 설득에 넘어가게 된 거죠.(웃음) 그 뒤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오 양이 간절히 원했던 이화여대배 농구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목표는 다음 대회였던 국민대배 출전으로 바뀌었다.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들은 대회 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지기 위해 대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전 6시에 만나 연습하거나, 야외 코트에서 농구공을 잡기도 했다.

마침내 공부벌레들이 사고를 쳤다. 2014 국민대배 농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출전한 첫 대회에서 우승하게 됐어요. 그게 정말 많은 동기부여가 됐어요. 사실 대회를 위해서 모인 것이었는데, 우승하니까 저희가 ‘한 팀’이라는 정체성이 생기게 된 거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체계를 갖추게 됐어요.”

지극히 교육적인 수준별 연습
스포츠 동아리를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회원마다 실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 농구동아리는 특성상 그 차이가 더욱 크다. LABA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존 회원과 새로 들어온 회원, 농구를 직접 해본 학생과 해보지 않은 학생 간의 차이가 컸다.

공부벌레들이 모여 있는 서울대 농구팀답게 해결 방법 역시 지극히 교육적이었다. 바로 수준별 학습이었다.

LABA에서는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눠 연습을 진행했다. 지난 2000년부터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학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실제로 최근 교육현장에서는 같은 반에서조차도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그룹으로 나눠 수업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LABA에서 실력이 다소 부족한 회원을 가르치는 역할은 주장인 박소현(3학년) 양이 맡았다. 그는 자신이 연습하는 중간에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곤 했다.

“학생마다 실력 차가 상당히 커요. 동아리 운영할 때 그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친구들은 기존 친구들과 달리 따로 기본기부터 연습해요. 저도 부족해서 주로 유튜브를 보고 참고하고 있어요.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때였다. 이날 서울대에 함께 동행했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금메달리스트 강영숙(전 우리은행)이 나섰다. 멀리서 훈련을 지켜보던 그는 농구공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에게 패스를 가르쳤다. 학생들의 눈에서 빛이 났다. 순간 몰입도도 최고였다.

학생들은 공을 잡는 법, 발 모양, 패스하는 방법 등 그의 동작을 따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지도가 끝난 후, 오혜민(1학년) 양은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연습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제대로 하는 건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지도를 받으니 정말 좋다. 배운 것을 꾸준히 연습할 것”이라며 웃었다.

연습에 재미를 더하는 ‘벌칙 시스템’
LABA는 그들만의 또 다른 특이한 제도가 존재했다. 모든 연습마다 벌칙이 함께였다. 예를 들어, 자유투를 하나도 못 넣거나 레이업에 실패하면 벌칙을 받는 식이었다. 벌칙은 코트를 여러 번 왕복하는 것이었다.

“팀이 만들어지면서 처음부터 애초에 존재하던 거예요. 사실 제가 예전에 학교 밖에 있는 여자 농구동호회에 몸을 담은 적이 있어요. 그때 언니들이 자유투를 두 개 다 놓치면 벌칙을 받더라고요. 그걸 LABA에 가져온 거죠. 처음은 저희도 자유투 때만 벌칙을 받았는데, 어쩌다 보니 이게 모든 연습으로 확대가 됐어요.”

배한결 양이 벌칙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는 하나였다. 할 때 제대로 집중해서 하자는 의미였다. “수업시간과 교과서에 집중했어요”라는 수능 만점자 인터뷰가 생각났다. 그 순간 벌칙을 받는 한 여대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벌칙을 받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서로 벌 받으라고 막 떠밀고 그래요.(웃음) 벌칙이 어쩌면 농구에 대한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오매불망 기다리던 강영숙의 스킬 트레이닝
이날 함께 방문한 강영숙은 지난 8월 21일부터 9월 8일까지 WKBL이 중고교 엘리트 선수를 대상으로 속초에서 진행한 ‘2016 W-Camp’에 강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아리 수준의 일반인을 지도한 경험은 드물었다. 여학생들의 연습장면을 지켜보던 그는 처음에 “체계적이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뭘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오!”라는 감탄사부터 “잘했어!”, “좋아!” 등의 칭찬을 거쳐 “오른쪽으로!”, “반대로!” 같은 지시까지 이어졌다.

급기야는 적극적으로 훈련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연습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동작 하나하나를 짚어주기도 했다. 그만큼 학생들의 눈에도 불이 켜졌다. 프로선수에게 지도받는 걸 오매불망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강영숙 선수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함께 오신다는 말을 듣고 무척 좋아했어요.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강영숙 선수는 국가대표 출신의 금메달리스트잖아요. 저희가 가끔 WKBL 영상을 봐요. 어느 날 강영숙 선수의 플레이를 모아놓은 걸 보게 된 적이 있어요. 제가 팀에서 센터를 맡고 있는데, 그때 엄청 감탄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분이 제 눈앞에서 계시네요. 또 그분에게 지금 농구를 배우고 있어요. 세상에!”

다른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너무 좋다. 신기하다”고 말을 잇지 못하거나 “그때그때 잘못된 점을 짚어주시니까 너무 좋다. 자주 오셨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모든 일정이 종료되고 미니 사인회가 열렸다. 그가 “이제 현역 선수가 아니라서 사인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농구공이나 본인이 입고 있던 옷에 사인을 받았다.

강영숙은 이날 “농구를 즐기면서 하니까 학생들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밝다. 심지어 실수해도 (학생들이) 해맑다. 재밌게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내가 더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농구부터 인생을 바꿔버린 농구까지
시험 기간에도 도서관이 아닌 체육관으로 향한 여학생들. 농구를 시작한 계기는 모두 다르지만, 현재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는 이유는 모두 같았다. 농구가 재밌기 때문이다. 조소과 김예은 양(1학년)은 최근 열린 신한은행 3on3 대회에 참가했을 정도로 농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농구가 정말 좋아요. 제가 수영을 했었어요. 수영과 비교하면 농구는 그때그때 상황이 다 다른 게 매력이에요. 팀원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요.”

주장인 박소현 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교 시절 승마를 했었다는 그는 농구가 훨씬 재밌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승마를 했어요. NBA 경기를 봐도 흥미는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교양 수업을 듣게 되면서 농구의 재미에 푹 빠져버렸어요.(웃음) 솔직히 승마보다 농구가 더 재밌습니다.”

원래 운동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농구의 재미에 빠졌다는 학생도 있었다. 전기정보공학부 김진아(4학년) 양이다.

“딱히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요. 사실 다른 동아리 활동하다가 4학년이 돼서 운동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입했거든요. 막상 해보니까 어렵지만 정말 재밌어요.”

심지어 농구가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경우도 있었다. 학부 시절 독어독문을 전공했던 배한결 양은 현재 체육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재미로 시작했던 농구가 이제는 전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LABA를 만들면서 도움을 받았던 체육교육과 교수님과 인연이 닿기도 했고요, 팀을 만든 경험이 ‘나도 뭔가를 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을 심어줬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나라 스포츠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LABA 농구동아리
- 2014년 창단, 서울대학교 농구부(농구동아리) / LABA(LAdies' BAsketball)
- 인원
 선수 : 배한결, 배윤(이상 11학번), 이연진(이상 12학번), 김지현, 김진아, 박소현, 박지은, 부승아, 최미재(이상 13학번), 권은영, 김승연, 김용주, 이주현(이상 14학번), 김희정, 박수지, 이경륜(이상 15학번), 김승민, 김예은, 양가은, 오혜민(이상 16학번), 권도경(대학원생), 루이스(교환학생)

해당 기사는 <더 바스켓> 2016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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