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최기창 기자] 2016 연세대와의 정기전을 앞둔 가을의 어느 날 고려대를 찾았다. 교내의 한 체육관에 들어서니 출입구에서부터 퉁탕거리는 소리가 났다.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건 이종현과 강상재 등 고려대 농구부 선수가 아닌 10여 명의 여학생이었다. 취미로 농구를 하는 고려대학교 여자농구 동아리, KUSKET(Korea University+Basketball)을 만났다.

당당한 여자들, “까짓것 직접 해보자”
여성의 매력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페미니즘이 화두인 최근에는 당당한 여성상이 인기다. KUSKET이 창설된 것은 불과 2년. 하지만 ‘당당한 여성’이라는 시대상을 충분히 반영한 결과였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입학 실기 과목 중 하나는 ‘레이업’이다. 덕분에 고려대 체대 입시 준비를 하던 여학생들은 입학 전부터 자연스럽게 농구공을 잡게 됐다. 그들은 입학 후에도 농구공을 놓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농구동아리 ‘ZOO(쭈)’에 가입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사실 농구를 가르쳐준다고 해서 가입했어요. 그래서 ZOO 매니저(그들은 ‘쭈니저’라고 불렀다)를 하게 됐고요. 그런데 매일 응원만 시키더라고요. 농구는 하나도 못 배웠고요.(웃음) 덕분에 그 전까지 학교 되게 심심하게 다녔어요.”

동아리 창설에 큰 역할을 한 김영신 양(2학년)은 그때 마침 ‘선배 언니들이 급하게 팀을 꾸려 여자 농구동아리 대회에서 상을 탔다’는 예전 얘기를 듣게 된다. 그 후 그는 여자농구 동아리를 만들자는 결심을 하게 됐고, 선배 언니를 졸라 KUSKET을 창설하게 됐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체육교육과의 특성상 여자가 적기 때문이다. 거기에 체육교육과 여학생 모두가 농구를 좋아하기도 쉽지 않은 일.

“막상 창설하고 동아리를 운영하려고 보니까 체육교육과 내 여학생 인원이 적어서 동아리가 잘 안 꾸려지더라고요. 근데 때마침 타 과생들한테 연락이 왔어요. ‘자기들도 농구를 하고 싶다. 같이 해도 괜찮겠냐’고요. 그래서 현재는 체육교육과를 중심으로 다른 과 학생들하고도 함께 농구를 하는 동아리가 됐어요.”

다만 체육교육과 학생이 아니면 간단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흔히 말하는 '입단테스트'다. 우선 게스트로 초대해 함께 운동하며, 성격과 스타일을 파악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동아리 운영진 회의를 통해 입단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엘리트 팀을 방불케 한 훈련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스트레칭과 러닝부터 4쿼터 실전 게임까지 훈련 내용도 다양했다. 고교나 대학팀 취재 때 봤던 엘리트 선수들이 하는 훈련 내용과도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속공 연습에서 많은 실수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엘리트 선수들 역시 속공 연습을 한다. 2명 내지는 3명이 짝을 이뤄 ‘패스’만으로 상대 코트까지 뛰어간 후, 레이업으로 마무리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의 백미는 빠른 스피드와 패스워크다. 패스만으로 상대 코트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자칫 트래블링을 범할 가능성이 있다. 또 정확하고 빠른 패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옆에서 후배들을 지켜보던 WKBL 김일구 홍보팀장(고려대 체육교육과 96학번)이 직접 지도에 나섰다.

“제가 여자프로농구만 10년 넘게 봤잖아요. 그래서 제가 눈이 좀 높긴 해요.(웃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훈련하면 안 돼요. 저것 보세요. 자꾸 패스 미스가 나네요. 앗, 저건 트래블링인데!”라는 말을 남긴 직후였다.

대학 재학시절 ZOO에서 활약했다는 그는 여자 후배들이 농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WKBL 선수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경기 공인구와 양말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훈련 종료 후, 잦은 실수를 한 까닭을 들을 수 있었다. 동아리의 에이스인 정소현 양(4학년)은 “저희가 실력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오늘 유독 실수가 잦았던 이유가 있다”고 항변했다.

“저희가 이 훈련을 꾸준히 해왔어요. 하지만 제대로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물론 저희가 농구동아리이긴 하지만 농구공이 없었어요. 기껏해야 ZOO나 과에서 겨우 몇 개 빌려서 하는 게 다 거든요. 그런데 오늘 선물로 주신 농구공이 개수도 많고, 공인구라 그런지 정말 가볍더라고요.(웃음) 저희가 지금 너무 신나서 의욕이 과하다 보니까 실수가 많이 난 거예요. (후배들을 쳐다보며) 얘들아, 우선 매직으로 공에 동아리 이름부터 쓰자!”

김 팀장은 “이곳에 오기 전 후배들한테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재차 물으니 농구공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가져오게 됐다”라며 “후배들이 농구를 재밌게 하는 모습을 보니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선수와 남자 매니저
KUSKET은 대학 동아리팀으로는 드물게 외국인 선수(?)도 보유하고 있다. 일본 국적의 오자키 미사키 양(국제학부, 2학년)이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농구였다는 그녀는 일본에서 이미 농구를 배웠다고 했다.

“일본은 학교마다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어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했던 운동이 농구여서 중고등학교 때 고민 없이 농구를 배웠죠. 그런데 한국에 왔더니 여자들이 운동을 잘 하지 않더라고요.”

미사키 양은 농구와의 인연을 끊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남자 농구동아리에 가입 신청을 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에 체육교육과에 여자농구 동아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전 체교과도 아니잖아요. 근데 여자농구 동아리가 생겼고, 당시 주장 언니가 농구하고 싶으면 같이 해도 된다고 허락해줬어요.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어요.”

그는 11월을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공식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동아리 농구대회에서는 주로 참가 대상을 한국인으로만 한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11월에 열리는 교내 동아리 농구대회에는 고대생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그가 만약 코트에 나선다면, 공식으로 첫 대회에 나서는 것이다.

“여자로만 5명이 뛸지, 아니면 남자 한 명까지는 허락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제가 처음으로 나갈 수 있는 대회가 11월이에요. 비록 남자 동아리 경기에 참여하는 여자팀이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하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KUSKET에는 남자 매니저도 있다. 대부분의 남자 스포츠 동아리에 여자 매니저가 있는 것과 비슷한 구조였다. 남자 매니저는 KUSKET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다 같이 훈련하는 것은 물론, 드리블부터 슛까지 여학생에게 농구를 지도하는 것, 연습경기에서 심판을 보는 것 역시 남자 매니저의 몫이었다.

“여학생들이 ‘쭈니저’를 할 때 고생을 정말 많이 해요. 그래서 여자 농구 동아리가 생겼을 때, 남자 몇 명이 여자 동아리에 들어가서 도와주자고 결론이 났죠. 운동하는 걸 도와주고 기록지를 적거나 경기 때 감독 역할 등을 하고 있어요. 따지고 보면 품앗이에요.”

남자 매니저 중 한 명인 김현기 군(2학년)은 KUSKET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체육 선생님이 꿈인 그는 평소에 다양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관심이 많았다고. “평소에 농구 전술 같은 것도 가르쳐 보고 싶었다”고 말한 그는 “여학생들의 실력이 쑥쑥 느는 것을 보고 가르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농구의 늪에 빠져버린 여대생들
KUSKET 학생들은 ‘보는 농구’에서 ‘뛰는 농구’로 바뀌면서 농구의 재미에 흠뻑 젖어버렸다. 농구를 처음 접한 계기는 다양했지만 모두 애정이 넘쳐흘렀다. 그들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농구’라는 늪에 빠져버렸다”고 말할 정도.

그들은 가장 먼저 “이렇게 농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다 같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또 다른 장점을 다양하게 쏟아냈다.

“예전에는 농구를 보다 보면 답답한 부분이 있었어요. 잘 몰랐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왜 저렇게 되는지, 왜 저렇게 해야 하는지 주변에 물어봐야만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아무래도 같이 연습하고 손발을 맞추다 보니 선수들의 플레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잖아요. 직접 농구를 하고 나니까 농구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우선 선수들의 얼굴, 키, 물 마실 때의 목젖 등을 가장 먼저 봤어요.(웃음) 보기에 멋있게 득점하는 것이 좋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농구 안에도 다양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전체적인 움직임이나 패턴, 볼 없을 때의 움직임 등을 더 자세히 보게 되더라고요. 결국 농구의 재미를 더 느끼게 된 거죠.”

“물론 하면 할수록 더 어렵죠. 무언가를 알고 나면 바로 다음에 또 잘 안 되는 어려운 부분이 생겨요. 근데 그게 벽처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농구에 더 빠져들어 가는 것 같아요. 지금도 더 (농구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요.”

선후배의 끈끈함은 치맥과 함께
연습을 마치고 학교 선배인 김일구 팀장과 후배들 사이에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김 팀장이 직장을 WKBL이라고 소개하자 학생들의 눈에 물음표가 보였다. WKBL이 무슨 단체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명문대생답게 그들은 한목소리로 “W는 여성이네요.(웃음) K는 한국인 것 같다. 그럼 B는 바스켓볼, L은 리그인 것 같다”고 웃었다.

김 팀장도 웃으면서 WKBL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 후 여자농구를 보러 경기장에 온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이날 아쉽게도 WKBL을 직접 접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학생들은 오히려 “농구 자체에 관심 있는 여학생이 의외로 많지만, 여자농구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비시즌 때 선수들에게 지도 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학생들도 여자프로농구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당당하게 건의했다. 김 팀장 역시 “좋은 아이디어다. 추진해 보겠다”고 화답했다.

이후 김일구 팀장은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나마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농구를 하는 것 같다. 다른 학교 여학생들은 농구를 직접 하고 싶어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학생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체적인 농구 인기의 향상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여자 동아리 농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후배들에게 ‘치맥’을 권했다. “나는 사실 술을 마시러 온 거다.(웃음) 시간이 되는 사람은 같이 가자”는 말에 대여섯 명의 후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스터디가 있는데 끝나자마자 달려가겠다”는 열정 가득한 후배도 있었다. 그는 후배들과 30년이 넘은 학교 앞 치킨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세대는 다르지만 ‘학교’와 ‘농구’라는 공감대로 이들의 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끊이질 않았다. 

▲ KUSKET 농구동아리
- 2015년 창단, 고려대학교 농구동아리 / KUSKET(Korea University + Basketball)
- 인원
 선수 : 정소현, 송지연, 이유진, 박지은, 이정우(이상 13학번), 강혜미, 문예진(이상 14학번), 김영신, 이채은, 오자키 미사키(이상 15학번), 전유정, 이라영, 정혜민, 박혜원, 김서현(이상 16학번), 정민지(대학원생)
 매니저 : 강현성(13학번), 김종현, 김현기(이상 15학번), 김동규(16학번)

해당 기사는 <더 바스켓> 2016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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