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최기창 기자] 2인조 남성가수 ‘10cm’의 노래 가사처럼 꽃잎은 이미 떨어졌다. 그러나 취재가 있었던 5월은 여전히 봄이었다. 남자에게 언제나 로망을 갖게 하는 여대의 봄 캠퍼스는 여전히 꽃잎이 만발이다. 특히나 숙명여대 ‘deke’(디크)는 6개월 전 한 차례 취재가 무산된 적이 있었다.

6개월 만의 만남도 인연인데, 싱그러운 봄의 여대 캠퍼스를 떠올리니 더욱 낭만적이었다. 심지어 금요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맞이한 건 꽃잎이 아닌 그녀들의 땀방울이었다.

해당 기사는 <더 바스켓> 2017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취재를 위해 숙명여대에 접촉했던 시기는 지난해 12월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숙명여대 농구동아리에서 ‘방학 때는 모이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서로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2016~2017시즌이 끝난 5월의 어느 날, ‘농구하는 여자들’ 코너가 재개됐다. 1순위는 당연히 숙명여대였다. 그리고 ‘학기 중이니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6개월에 걸친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WKBL에서 후원한 농구공을 들고 숙명여대 다목적관을 방문했다. 수줍은 인사도 잠시. 사람보다 더 반가워했던 것은 농구공이었다. “여기에 또 농구에 목숨 거는 여학생들이 있구나”를 느꼈던 건 바로 이 순간부터다.

숙명여대와 여자농구의 연결 고리
숙명여대는 과거 엘리트 선수로 구성된 여자농구부가 있던 팀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여대부 해체의 바람 속에 숙명여대 여자농구부도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농구 열정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숙명여대 학생들은 농구를 하고자 하는 체육교육과 학생들로 구성된 농구 동아리를 만들었다. 엘리트로 구성된 팀이 아닌 순수 동호회가 만들어졌다. 이후 이름 없이 유지되다 2011년에 들어 'deke'라는 이름을 지었다.

'deke'는 ‘영어로 페인트(feint)의 의미를 지니며 교묘히 속여 넘기다’라는 뜻이다. 숙명여대 주장 전예슬(15학번) 양은 “사실 ‘디크’에서 ‘디’와 ‘크’ 모두 각자 의미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전해지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팀인 만큼 성적도 나쁘지 않다. 가장 최근이었던 지난해에는 덕성여대배 전국대학 여자 아마추어 농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명강사’ 김희선 코치의 수비 강의
이날 일일 선생님으로는 김희선 코치(전 KEB하나은행 코치)가 나섰다. 다양한 현장에서 지도한 경험이 있는 그는 그동안 여자 동아리팀을 방문했던 다른 농구인과는 분명히 달랐다. 대개 현장을 방문한 농구인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한다. 하지만 김 코치는 “조금은 어려울 수 있지만, 여기에 맞는 수준이 있다. 괜찮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숙명여대를 방문한 이 날은 동아리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기 하루 전이었다. 또 경기나 연습 전 소화하는 팀 훈련이 정해지지 않아 조언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학생들의 요청도 있었다. 김 코치는 “우선 1대1부터 시작해 5대5까지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숙명여대 학생들은 진지한 눈빛으로 김 코치에 집중했다. 연습이었지만, 거친 수비와 괴성이 연달아 터졌다. “살살해~”라는 공격자의 부탁은 “으악!!”이라는 비명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김 코치는 학생들의 수비 동작과 자세를 일일이 점검했다.

김희선 코치는 1대1에서 2대2로, 2대2에서 3대3으로 인원을 점점 늘려가며 연습을 진행했다. 김 코치가 학생들을 지적하는 횟수도 점점 줄었다. 처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워했던 학생들은 이내 곧 수비의 움직임과 기본자세에 빠르게 적응을 했다. 

마침내 5대5가 되자 학생들의 움직임이 확실히 달랐다. 처음에는 오합지졸 같았던 그들의 움직임이 이제는 제법 농구선수 냄새가 났다. 학생들이 느끼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주장인 전예슬 양은 “처음엔 1대1 수비할 때 이걸 왜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그런데 인원을 점점 늘려 5대5까지 해보니까 왜 그걸 먼저 했는지 알 것 같다. 이걸 저희만의 연습 방법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라고 했다.

이유리(16학번) 양도 김희선 코치의 지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우리끼리 자체적으로 할 때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 같아서 좋다. 자체적으로 연습하면 왜 움직여야 하는지 이해도 잘 안 되고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설명해주시니까 수비할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 열심히 연습해서 수비 실력을 더 키우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희선 코치도 즐겁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코치는 “학생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앞으로도 농구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흥미가 있다면 분명히 흡수하는 속도가 다르다. 지금은 하지 않았던 것을 하느라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움직임들이 습관이 된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후 deke는 취재 다음 날 열린 예선 조별리그 마지막 날 경기에서 1승 1패를 거두었다고 전해왔다. 4승 1패가 된 deke는 조2위로 9월에 열린 대회 본선에 진출했다.

'deke'의 중심인 16학번
deke의 가장 핵심은 16학번이다. 팀에서 주전급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2학년이다. 이들은 모두 흔히 말해 소싯적 ‘농구의 맛’을 보고 온 학생이다. deke는 허리층(?)이 단단한 동아리다

이현아(16학번) 양은 “고등학교 때 농구선수 출신 선생님을 만나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 친구들과 같이 운동하면서 대회도 나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예진(16학번) 양도 마찬가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이모가 농구공을 사주면서 같이 농구하자고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학창시절에는 혼자 시간 나면 슛도 쏘고 그랬다. 대학 오면 꼭 농구 동아리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천했을 뿐”이라며 웃었다.

이유리 양은 중학교 시절부터 농구공과 함께 생활해 왔다. 대전 출신인 그는 “중학교 시절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 스포츠클럽에서 농구를 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농구가 재밌다”고 고백했다. 

고교 시절 농구를 처음 접했다는 구희영(16학번) 양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농구를 접했다. 그때도 하는 것이 재밌었지만, 지금도 재밌다”며 농구 예찬론을 펼쳤다. 구 양은 심지어 프로 선수에게도 잘 듣지 못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농구하면서 제일 힘든 건 다른 게 아니다. 마음은 정말 잘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속상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학에 와보니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은 단지 취미로 하고 있다. 나는 팀에서 식스맨일 뿐”이라고 말하는 등 겸손한 모습도 보였다. 

농구하러 어디까지 가봤니?
가끔 순수 아마추어의 열정이 프로 선수 못지 않은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농구하는 여자들’을  취재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남동생이 엘리트 농구선수라고 밝힌 류서연(17학번) 양은 “원래부터 농구를 좋아했다. 가족들이 다 농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고3 때도 농구를 보러 따라다닐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농구의 매력을 “농구는 키가 작다고 점수를 못 넣는 게 아니다. 3점슛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류 양은 deke의 주장 전예슬 양의 사례에 비춰보면 애교 수준이다.

전 양에게 농구는 그야말로 전부다. 지난해 농구를 하려고 강릉에 간 적도 있다고. 이 코너를 진행할 때마다 농구를 좋아하는 다양한 학생을 만나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다. 그는 “지난해였어요. 아마 5월이었을 거예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농구를 좋아하는 친한 언니가 있어요. ‘회 먹고 농구하자’고 하더라고요. 별 고민 없이 언니랑 함께 강릉에 갔어요.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냥 무작정 찾아간 거예요. 다행히 갔더니 그쪽 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회는 핑계였을 뿐이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휴가를 즐기러 간 것도 아니었다. 화창한 5월에 두 명의 여성이 농구를 하기 위해 강릉에 갔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지도 검색을 해 보았다. 숙명여대에서 강릉시청까지는 228.4km다. 약 3시간 27분이 걸리는 거리다. 택시비로 환산하면 약 247,540원.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거쳐야 할 만큼 멀다.

그는 “올해에도 강릉을 다녀왔다”며 해맑게 웃었다. 따끈따끈한 1주일 전 이야기였다. 물론 이번에는 더욱 계획적이고, 전문적이었다.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올해에는 아예 팀을 만들어서 떠났어요. 역시나 재밌더라고요. 내년에도 ‘강릉 원정대’를 만들어보려고요!”(웃음)

▲ deke(디크) 농구동아리
- 숙명여자대학교 체육교육과 농구동아리
인원 선수 : 김예지, 김희원, 전예슬(이상 15학번), 오혜미, 권현지, 이유리, 김예진, 구희영, 이현아, 마안나(이상 16학번), 류서연, 이수민, 박소영, 최주원, 최영인, 김하연, 최은명, 오해람, 추수연(이상 17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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