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민재 기자 = 누군가에게 멘토(mentor)가 있다는 것은 큰 의미다. 멘토는 어려움을 같이 헤쳐 갈 동반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NBA 선수들도 마찬가지. 선수들은 각자 어떤 멘토를 두고 있을까.

저말 크로포드 X 아이재아 토마스
저말 크로포드는 워싱턴주 시애틀 지역의 농구 아이콘과 같은 선수다. 워싱턴주 타코마 출신의 에이브리 브래들리는 “크로포드는 워싱턴주에서 농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브래들리와 같은 지역 출신인 아이재아 토마스 역시 크로포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크로포드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토마스는 크로포드를 보며 농구선수에 대한 꿈을 키웠다. 부지런히 훈련하며 기술을 갈고 닦은 결과 그는 고등학생 때 이미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에 크로포드는 고향 후배인 토마스에게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고, 서로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당시 토마스는 “크로포드는 여름만 되면 시애틀로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매일 그의 집에 찾아갔다. 우린 형제 같은 사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6년, 토마스는 고향에 있는 커티스 고등학교에서 코네티컷주의 사우스 켄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더 좋은 대학을 진학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는 친구가 많지 않아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줄곧 서부에서 살던 그가 외딴 동부 지역에서 혼자 생활하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뉴욕 닉스에서 활약한 크로포드는 토마스에게 많은 조언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토마스의 아버지인 제임스 역시 “당시 크로포드의 조언이 아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냥 멘토로서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러면서 토마스가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외로움을 느낀 토마스는 주말마다 크로포드가 살던 뉴욕으로 기차를 타고 갔다. 크로포드가 경기를 치르면 구장을 찾아 그의 플레이를 구경했다. 이에 크로포드 역시 시간이 빌 때마다 토마스를 응원하기 위해 사우스 켄트를 찾았다고 한다.

크로포드 역시 NBA 선수로서의 삶이 바쁘고 힘들었을 터. 그럼에도 토마스에 대한 격려를 계속 이어갔다고 한다. 실제로 프로-암 대회에 토마스를 초청해 여러 NBA 선수들과 함께 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프로 입문 전 NBA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본 것이 토마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토마스가 NBA에 입성한 이후에도 크로포드의 조언은 계속되었다. 토마스는 지난 2014-15시즌 피닉스 선즈에서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에 크로포드는 토마스에게 “보스턴은 너를 필요로 해서 데려온 것이다. 앞으로 너의 할 일만 하면 된다. 너는 위너다"라고 말했다. 이적으로 마음이 심란했을 그에게 격려의 말을 건넨 것이었다.

실제로 토마스는 해당 시즌 적응기를 거쳐 2015-16시즌 평균 22.2점 3.0리바운드 6.2어시스트 1.1스틸 FG 42.8% 3P 35.9%로 득점, 리바운드 등 여러 부문에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크로포드의 말처럼 토마스가 트레이드의 ‘위너’가 된 것이다.

시작은 고향 선후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둘도 없는 친한 형과 동생이 되었다. 이를 통해 토마스는 크로포드 결혼식의 신랑 들러리로 참여할 정도로 깊은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이들이 써갈 우정 스토리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래리 브라운 X 그렉 포포비치
그렉 포포비치는 현 리그 최고의 명장으로 추앙받는다. 그런 그를 지도자의 길로 입문시킨 인물이 바로 ‘레전드 감독’ 래리 브라운이다.

브라운은 포포비치가 공군사관학교에서 선수로 활약할 당시 플레이를 지켜봤다고 한다. 브라운은 “포포비치는 좋은 선수다. 훈련 때 누구보다도 열심히 운동했다. 무엇인가를 계속하려고 한다”며 그의 성실함을 칭찬했다.

이후 브라운은 포포비치에게 코치 제안을 했다. “여기 있지 말고 캔자스로 와라.” 성실함을 높게 평가한 브라운이 포포비치에게 전한 말이었다. 실제로 포포비치는 이에 응했다. 브라운은 1983년부터 캔자스 대학의 감독을 맡았는데, 포포비치는 당시 무급 코치로 활약하며 코치의 꿈을 키웠다.

캔자스 대학 생활을 청산한 브라운은 1988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감독이 되었다. 그때 당시 어시스턴트 코치가 필요했던 브라운은 포포비치에게 또 다시 코치 제안을 했다. 브라운은 “그보다 더 나은 ‘사람’도 없고, 더 나은 ‘코치’도 없다”며 그를 영입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러한 인연은 국제무대까지 이어졌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은 브라운은 포포비치를 어시스턴트 코치로 데려갔다. 대표팀은 동메달을 따내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사제지간이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손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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