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승기 기자 =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명대사다.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9일(한국시간)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딱 그랬다. 홈구장 페덱스 포럼에서 열린 덴버 너게츠와의 정규리그 경기에서 접전 끝에 108-107로 신승했다.

4쿼터 막판 1분은 그야말로 영화가 따로 없었다. 멤피스와 덴버는 이보다 더 짜릿할 수 없는 라스트씬을 연출해냈다.

# Scene 1 - 상부상조

4쿼터 종료 1분여 전, 멤피스의 106-105 리드. 공격권 덴버.

엠마누엘 무디에이가 돌파 후 코너에 있던 개리 해리스에게 패스를 건넸다. 해리스는 곧바로 3점슛을 시도하려 했으나, 제임스 에니스의 발빠른 수비 때문에 슛을 던지지 못했다.

해리스는 곧바로 슈팅 페이크 후 돌파를 시도했다. 에니스는 적극적인 몸싸움을 통해 해리스를 베이스라인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해리스가 이를 빠져나오는 찰나, 골밑에서는 자마이칼 그린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리스는 그대로 그린과 충돌, 공격자 반칙을 저지르고 말았다.

에니스의 빠른 리커버리, 그린의 판단력 등 멤피스 선수들의 노련한 협력수비가 빛을 발한 장면이었다.

 

# Scene 2 - 결자해지

4쿼터 종료 30초 전, 멤피스의 106-105 리드. 공격권 덴버.

마이크 콘리의 슛이 불발로 끝난 후, 무디에이가 골밑에서 리바운드를 잡았다. 무디에이는 직접 공을 몰고 넘어와 '코스트-투-코스트' 속공을 시도했다.

이를 눈치 챈 콘리. 재빨리 무디에이의 곁으로 따라붙은 뒤 그의 진행경로를 방해했다. 무디에이는 관성 때문에 속도를 늦출 수 없었고, 그대로 콘리와 충돌했다. 공격자 반칙을 알리는 휘슬이 불렸다.

공격자 반칙을 얻어냄으로서, 본인의 슛 실패를 만회한 콘리. 결자해지.

# Scene 3 - 보상판정?

4쿼터 종료 13초 전, 멤피스의 106-105 리드. 공격권 멤피스.

이상한 판정이 나왔다.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혹시 보상판정은 아니었는지 의심된다.

먼저 멤피스가 공격을 할 때였다. 해리스가 콘리를 막고 있었다. 마크 가솔이 콘리에게 다가와 스크린을 섰다. 해리스가 스크린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심판의 휘슬 소리가 들렸다.

해리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마찬가지. 약간의 신체접촉은 있었지만, 해리스의 반칙을 불 만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이 반칙으로 인해 덴버의 패색이 짙어졌다는 것. 원래는 샷 클락과 게임 클락이 6초 가량 차이났다. 멤피스의 공격이 끝나도, 덴버에게 6초가 떨어진다는 뜻.

그러나 경기 종료 13초 전, 이 반칙 휘슬이 불리면서 멤피스의 공격제한시간이 리셋됐다. 멤피스가 공을 들고만 있어도 그대로 경기가 끝나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멤피스는 인바운드 패스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때 또 문제의 장면이 나왔다. 무디에이가 콘리를 뒤에서 덥쳤지만 반칙이 불리지 않았고, 해리스가 콘리의 팔을 쳐 공을 빼앗았는데도 경기가 그대로 진행됐다.

해리스의 스틸에 이어 무디에이가 속공 덩크를 터뜨리며 덴버가 107-106 역전에 성공했다. 남은 시간 7.9초. 2만여 홈 관중들과 멤피스 선수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나왔음은 물론이다.

 

# Scene 4 - 실책잔치

4쿼터 종료 7.9초 전, 덴버의 107-106 리드. 공격권 멤피스.

멤피스가 인바운드 패스를 시도했으나 공을 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덴버의 수비가 거의 완벽했다. 멤피스는 5초 바이얼레이션에 걸리기 직전, 간신히 인바운드 패스에 성공했다.

공을 받은 에니스는 돌파를 시도했으나 무디에이의 수비에 가로막혔다. 에니스는 급하게 빈스 카터를 찾았고, 그에게 공을 건네주려다 균형을 잃었다. 공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그런데 덴버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인바운드 패스 과정에서 실책을 범했고, 콘리가 이를 가로챘다.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콘리는 원맨속공을 시도했다. 그러나 긴장한 나머지, 골밑에서 공을 놓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공은 밖으로 나갔고, 심판은 리플레이 판정을 선언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무디에이가 공을 살짝 건드린 것이 확인됐다. 단순히 콘리의 실책인 줄 알았던 멤피스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순간이었다.

 

# Scene 5 - 버저비터

4쿼터 종료 0.7초 전, 덴버의 107-106 리드. 공격권 멤피스.

이제 남은 시간은 0.7초. 멤피스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됐다. 빈스 카터가 인바운드 패스를 준비하고, 약간의 선수교체가 이루어지는 등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멤피스의 데이비드 피즈데일 감독은 대단히 효율적인 전술을 짰다. 챈들러 파슨스와 콘리를 바깥에 위치시켜, 상대 수비 두 명을 바깥으로 끌어냈다.

페인트존 안쪽에서는 자마이칼 그린이 미끼가 됐다. 그린은 가솔의 스크린을 타고 바깥으로 이동하는 척 하다가, 다시 안쪽으로 들어와 가솔에게 스크린을 걸어줬다.

그린의 완벽한 스크린을 받은 가솔은 순간적으로 오픈이 됐다. 처음부터 이를 보고 있던 카터는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높이, 완벽한 세기로 가솔에게 앨리웁 패스를 넣었다.

이를 알아챈 무디에이가 저지를 시도했으나, 소용없었다.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해 공중에서 볼을 낚아챈 가솔은 그대로 골밑 앨리웁 슛을 시도했다. 공은 정확히 림을 갈랐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108-107, 멤피스의 극적인 재역전승.

홈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멤피스 동료들은 극적인 버저비터를 성공시킨 가솔에게 달려와 그를 깔고 뭉갰다. 믿을 수 없는 라스트씬이었다.

# 에필로그

그리즐리스 선수들은 막판 1분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때로는 여우처럼 교활하게 플레이하다가도, 때로는 곰처럼 실책을 범했다. 결과는 해피엔딩. 최후의 승자는 여우 같이 승리를 일궈낸 곰돌이들이었다.

 

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