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는 박경상이 처음 둥지를 튼 프로 팀이었다.

인터뷰 도중 박경상은 KCC를 “첫사랑 같은 팀”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KCC를 향한 박경상의 마음은 지금도 애틋하다. 그는 “KCC에서 우승하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다”는 말까지 꺼냈다.

프로 데뷔 후 10년. 박경상이 마침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팀으로 돌아왔다. 첫사랑 같았던 팀에서, 지금 박경상은 자존심 회복을 꿈꾸고 있다.

 

연세대 아이버슨

아마추어 선수 시절부터 별명을 얻는 선수는 드물다. 박경상이 한창 농구를 하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고교 시절부터 그는 ‘마산고 아이버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득점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연세대에서도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결국 그는 장재석(현대모비스), 임동섭(삼성) 등이 함께 참가한 2012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KCC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 생활이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KCC의 시간은, 길면서도 짧았다. 고교, 대학 시절의 이름값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할 만큼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경기력이 괜찮았다. 상무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경상은 현대모비스로 트레이드된다. 그의 농구인생이 요동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후 현대모비스에서 박경상은 생애 첫 통합 우승을 맛봤다. LG, DB에서도 한 시즌씩을 보냈다. 하지만 박경상의 마음은 언제나 KCC로 향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돌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용인 마북동 KCC 체육관에서 만난 박경상이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꺼낸 말이었다.

“KCC는 제가 처음 입단한 프로 팀이었고, 제가 정말 애정하는 팀이기도 했어요.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는 거지만, 처음 KCC에서 트레이드될 때는 KCC를 떠나기 싫어서 어린 마음에 막 울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감독님도 바뀌고 선수도 바뀌고 저랑 룸 메이트셨던 신명호 선배님은 코치가 되시고요. 그래도 평소에 친하던 선수들이 KCC에 많아서 큰 걱정 없이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KCC 처음 떠난 게 벌써 5년 전이네요. 솔직히 체육관 코트 같은 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죠. 감독님도 다르고, 선수들도 다르고, 청소 아주머니 분들도 다 바뀌셨어요. 그런 부분은 시간이 흐른 게 체감이 돼요. 예전에는 체육관으로 오는 도로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엄청 좋아진 것도 있네요. 그래도 크게 적응에 어려운 부분은 없습니다.”

도대체 왜 KCC일까.

박경상은 “저도 사실 잘 모르겠는데...”라며 잠시 고민하더니 “KCC는 저한테 첫사랑 같은 느낌이에요”라며 웃어보였다.

“KCC는 저한테 첫사랑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지금 KCC로 다시 와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고, (웃음) 제가 뛰어본 팀 중에서 그래도 KCC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냥 제가 제일 좋아하는 팀이기도 하고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KCC라는 팀의 느낌이 좋아요. 사실 연습체육관에 들어오면 선수들도 어떤 기운 같은 걸 느끼거든요. 운동이 하기 싫은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는데 KCC 체육관은 굉장히 평온하고 좋은 느낌이 들어요. 전주실내체육관도 마찬가지고요.”

“KCC로 돌아오는 게 결정됐을 땐 이젠 여기서 뛰다가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로 했어요. 다른 팀에 가지 않고 진짜 KCC에서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여기서 은퇴하고 우승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저는 KCC에서 우승하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의미가 진짜 남다를 것 같아요.”

 

독기를 품는다는 것

박경상은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보며 “농구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선수”라고 설명했다. 박경상다운 솔직함이었다.

KCC, 현대모비스를 거친 후 지난 2년 동안 박경상은 농구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부침을 겪었다. 부상 때문이었다.

박경상은 “그렇게 2년이 흐르니 내 위치가 어느새 바닥이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20대 때는 그냥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 같아요. 누가 와도 나는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예전에는 몸 관리도 솔직히 소홀했던 부분도 있었어요. 결혼도 해서 책임감도 강해져야 하는 시점에 계속 이적을 하다 보니 힘들기도 했고요. 솔직히 예전에는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안 했던 것 같아요. 운동하는 걸 싫어했다고 보는 게 맞죠. 운동선수임에도 훈련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어릴 때 잘했던 것들만 믿고 노력을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는 얘기만 하니까 자신감만 그냥 차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 몸 관리에는 소홀했고, 그런 상태로 농구를 했던 게 부상으로 이어지고 부진으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처음 KCC에 왔을 때부터 좀 더 노력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해요. 선배들이 나중에 농구 그만두면 더 열심히 못한 걸 후회한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어렸을 때는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잘 몰랐는데, 나이 들어보니 그 말이 맞다 싶어요.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열심히 하고 몸을 더 잘 만들고 잘할 걸 싶더라고요.”

이날 인터뷰를 앞두고 만난 전창진 감독은 박경상 이야기가 나오자 “요즘 경상이가 정말 독해졌다”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전창진 감독도 그렇게 느낄 만큼 요즘 박경상은 독기를 뿜어내는 중이다.

식단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고, 운동량도 엄청나다. 지난 2년 동안 ‘몸이 안 좋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달은 덕분이다. 후회, 미련이 곧 독기로 이어졌고, 그렇게 마음을 더욱 강하게 다잡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고 나니까 점점 몸도 아프고 다른 선수들한테 밀리기 시작하니까 불안해지더라고요.” 박경상이 입을 열었다.

“그때서야 스스로를 돌아보니까 훈련량도 적고 몸도 잘 안 만들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농구는 하는데 몸은 안 만들어져 있고, 나이는 계속 더 먹으니 부상이 자꾸 찾아오고 그랬죠. 그래서 KCC에서는 몸부터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독해진 것 같아요.”

요즘 KCC 선수단은 유례없는 강도의 비시즌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KCC 관계자 역시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전창진 감독의 주도 하에 이뤄지고 있는 강도 높은 훈련 속에서, 박경상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칼을 갈고 있다.

“일단 지금 KCC는 훈련이 정말 힘들어요. 그 전에 뛰었던 팀들이 훈련량이 적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도 여기가 제일 힘들긴 해요. 운동의 강도 자체가 진짜 센 것 같아요. 제가 현대모비스에서도 3년 뛰어봤잖아요. 현대모비스와는 좀 다른 의미로 훈련이 힘들어요. 훈련이 제일 힘든 걸 10이라고 봤을 때, 지금 KCC는 8 정도 되지 않나 싶네요.(웃음)”

“트랙 훈련을 할 때는 처지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려고 하는데 사실 많이 힘들어요. 월, 화, 수에 운동을 하고 나면 목요일, 금요일부터는 다리가 안 움직이는 느낌이에요. 그 정도로 힘들어요. 과거의 KCC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훈련이 힘든 것 같아요. 그때는 워낙 화려한 팀이기도 했고 허재 감독님은 스스로 알아서 몸 관리를 하라는 주의셨거든요. 지금의 KCC는 좀 달라요. 이제는 힘든 훈련에 적응을 하면서 이렇게 몸을 잘 만들다 보면 다른 선수들한테 안 밀릴 수 있고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몸이 좋아지는 것도 확 느껴지고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저도 운동을 아예 못 따라갔는데 훈련하면서 점점 살이 빠지고 몸이 좋아지다 보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더라고요. 앞으로도 안 아프고 계속 훈련을 따라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6월 7일부터 식단 관리를 했거든요. 물론 계속 닭가슴살만 먹은 건 아니고 주말에는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주중 5일에는 닭가슴살 위주로 먹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탄수화물을 많이 안 먹었는데 그러니까 운동하고 나서 어지럽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탄수화물도 먹고 닭가슴살 먹으면서 식단 조절을 하고 있어요. 처음 들어왔을 때 79kg에서 80kg 정도였으니까 살이 많이 쪄 있었는데, 지금 많이 빠졌어요. 몸이 좋아진 게 확 느껴져요. 운동선수다 보니 근육도 만들면서 체중을 빼야 해서 쉽지도 않고 ‘현타’가 올 때도 있었지만 먹방 같은 거 보면서 참고 그러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꽃사슴

박경상에겐 4살 연상의 아내가 있다. 현대건설 소속의 프로배구 선수 황연주다.

예전부터 황연주는 프로배구를 대표하는 인기 스타였다. 국가대표로 올림픽에도 출전했고, 뛰어난 외모와 실력을 겸비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박경상과 황연주는 5년 연애 끝에 지난 2020년 결혼했다. 운동선수 부부인 만큼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해준다는 것이 박경상의 설명이다.

“그래도 둘 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서로의 생활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이해하고, 와이프도 이해줘요. 그래서 운동선수 부부인 게 좋은 것 같아요. 만약 한 명이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면 집에 와서 잠만 자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다행히 지금 저희는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운동뿐만 아니라 생활하는 것 자체도 서로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이 참 많아요. 와이프가 이해심이 큰 사람이기도 하고 서로 운동하는 입장에서 이해해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몸에 좋은 음식이나 비타민 같은 영양제 있으면 같이 챙겨 먹고, 와이프가 키가 커서 티셔츠도 돌아가며 입을 때도 있어요.”

2년 동안 부침을 겪을 때, 누구보다 박경상에게 위로가 됐던 것은 부인의 존재였다. 같은 운동선수인 만큼, 부상과 부진에 괴로워하는 박경상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솔직히 스스로 자책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그럴 때마다 와이프가 많이 힘이 됐어요.” 박경상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은 말도 옆에서 많이 해주고 비시즌 때는 밖에 같이 운동하러 많이 나가줬죠. 가족이랑 같이 있으니까 마음의 상처도 좀 아물고 안 좋았던 기억도 잊혀가는 느낌이었어요.”

KCC로 돌아오면서 박경상은 부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다시 늘어났다. 현대건설 배구단의 훈련체육관과 KCC 농구단 훈련 체육관이 바로 옆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KCC 훈련 체육관에 있다 보면 옆에서 현대건설 배구단 선수들이 훈련하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

창원, 원주에서 다시 용인으로 돌아온 박경상은 이제 부인의 응원을 더 자주 받으며 농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저희 와이프는 10년 정도 용인에서만 살았어요. 저도 용인에서 계속 살았었고요. 그래서 저 혼자 나가야 할 때는 오피스텔을 잠시 얻고 그랬어서 이번에도 특별히 집을 새로 얻고 그러진 않았어요.”

“와이프는 계속 멀리 살다가 집에서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KCC로 돌아간다는 얘길 듣고 많이 좋아하더라요. 저 같은 경우는 지난 시즌이나 지지난 시즌에 힘든 상황도 많이 겪고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KCC에 왔어요. 일단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 부상 없이 시즌이 개막하는 10월이 된다면 팀에 충분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살아 있네

새 시즌 박경상의 목표는 확실하다. ‘박경상 살아 있네’라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안 아프려고 정말 노력 많이 했는데, 이유를 모르게 몸이 많이 아팠어요. 잔부상도 자주 생기고 근육이 계속 찢어지고 그래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 의욕까지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농구하면서 이렇게 안 됐던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프로에 와서 10년 가까이 뛰었지만 그런 적은 처음이었어요.”

“제가 아주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2년 전에는 한 팀의 식스맨 정도로는 확실히 뛸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2년 동안 아프고 아무 것도 한 게 없으니까 어느 순간 제 위치가 바닥이 돼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래도 감독님들이나 코치님들이 선수 가치를 매길 때 저는 중간 정도는 됐던 것 같은데, 제 위치가 바닥까지 떨어지니까 자존심이 너무 많이 상했어요.”

자존심에 생긴 스크래치에는 독기가 스며들었다. 지금 박경상에게 KCC는 사랑하는 고향인 동시에 기회의 땅이다.

“일단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요. 솔직히 제가 A급 선수들만큼 30분씩 뛴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아요. 그저 10분, 15분이라도 제가 가드진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팀에 보탬이 되고, 감독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포인트가드가 부족한 팀 상황이 저한테는 기회인 것은 맞습니다.”

“KCC가 아니었다면 은퇴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진짜로 심각하게 고민했으니까요. 이번 시즌에는 ‘박경상 살아있네’라는 느낌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엄청난 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농구를 어느 정도 하는 선수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게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인터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자신을 반겨준 KCC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제가 KCC로 다시 오는 게 알려졌을 때 팬분들이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축하한다, 다시 돌아와서 기쁘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저도 너무 기뻤어요. 팬분들이 기다려주시고 반겨주셨던 만큼 저도 많이 노력해서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요. 감독님의 농구에 잘 맞추고 동료들과 호흡을 잘 맞춰서 이번 시즌에는 꼭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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