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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영그는 NBA 진출의 꿈 한국인 NCAA 리거 이현중 ②

 

[루키=박상혁 기자] ①편에 이어..

호주 생활? 첫 3개월은 투명인간이었죠

U-17 청소년대표팀에서 활약한 이현중은 이후 NBA에서 각 대륙 유망주들을 모아서 하는 대회인 NBA 아시아 퍼시픽 캠프에 초청됐다. 중국에서 열린 이 캠프에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유망주들이 초청됐다. 

이때 한국팀 인솔자가 김효범이었고 선수로는 이현중을 비롯해 여준석, 박민채, 서문세찬, 차민석 등 청소년 대표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여기서 그는 남다른 슈팅 감각을 선보이며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캠프에서 슛이 너무 잘 들어갔어요. 던지면 웬만하면 다 들어간 것 같아요. 성공률이 한 70% 정도? 마지막날 올스타전 멤버로도 뽑혔는데 3점슛을 6개 연속 넣었더니 관계자들이 놀라더라고요. 원래 호주의 NBA 아카데미 측에서는 (여)준석이를 보러 왔다가 제 경기를 보고 저도 같이 스카우트했다고 하더라고요.”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호주의 NBA 아카데미 측으로부터 오퍼를 받고 이현중의 부모는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1주일짜리 캠프도 아니고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린 아들을 외국에 혼자 보내는 것은 어떤 부모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현중 본인은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어 했다. 해외 유학을 원하던 찰나에 좋은 기회가 왔으니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당연했을 터. 중국에서 귀국하자마자 그는 부모님을 설득하고 곧바로 호주행 준비를 시작했다. 

농구를 하느라 잠시 내려놨던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의 경쟁에 대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체계적으로 시작했다. 약 5개월 정도 준비를 한 뒤 떠난 호주행. 그의 어머니와 누나가 처음 1주일은 같이 가서 이것저것 적응을 도왔으나 그 1주일이 지나면서부터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됐다. 

생활적인 면은 문제가 없었다. 아카데미 차원에서 1인 1실의 숙소와 식사도 제공됐다. 말 그대로 농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생활적인 면을 배려한 것. 그렇다고 해도 어린 나이에 말이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다. 

“처음 3개월은 정말 투명인간처럼 지냈어요. 오기 전에 영어를 아무리 공부했다고 해도 막상 농구를 하면서 이곳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잘 통하지 않더라고요. 3개월 정도 고생하다가 아카데미 친구들이 먼저 저한테 말 걸어주고 저도 웃기게 대답하니까 그러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비자나 다른 생활적인 면은 아카데미에서 다 해줘서 어려움은 없었어요. 하지만 음식은 좀 고생을 했어요. 여기서만 밝히지만 아카데미 식당의 셰프가 음식을 생각보다 못했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많이 먹었죠. 이렇게 3~4개월 정도 지나면서 현지 적응이 된 것 같아요.” 

NBA 아카데미에서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농구를 배우고 인근의 호주 학교에서는 영어를 비롯한 일반 과목을 배웠다. 일반 과목도 그냥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이상의 학점을 따야 했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 농구와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도 하는 그다. 

“처음 호주에 갔을 때는 NCAA나 NBA 진출 같은 목표는 없었어요. 일단 한국과 다른 나라의 그중에서도 기왕이면 선진국의 농구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처음에 힘든 건 당연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됐죠.”

농구와는 별개로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면서도 어이없는 일화가 있다. 수업과 농구 훈련을 마치고 2층에 있는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새벽에 누가 베란다를 툭툭 치더란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겠거니 하고 무시하고 잤는데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래서 눈을 비비고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캥거루 한 마리가 베란다 창문을 머리와 앞다리로 치고 있었다고. 화장실 창문 같은 작은 사이즈라 캥거루가 방 안으로 들어올 일은 없었고 창문이 열리자 캥거루도 제 풀에 놀라 반대편으로 뛰면서 돌아갔다고. 창문이 튼튼해서 캥거루의 공격에 깨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현중이 호주에 있을 때 같은 NBA 아카데미에 여준석도 건너와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여준석이 11월에 호주를 와서 이현중이 NCAA 대학을 결정할 때까지 5개월 정도 같이 지냈다.

“다른 것보다 (여)준석이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는 습관이 없어서 그런지 호주에서 농구 외에 공부를 하는 것을 좀 힘들어했어요. 제가 같이 있을 때는 그래도 옆에서 좀 챙겨줬는데 제가 미국에 오고 나서는 준석이도 곧바로 한국을 갔죠. 준석이는 농구를 더 배우러 호주에 온 건데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기량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저는 오히려 잘 선택했다고 봐요. 사람에 따라서 가려는 길이 다르니까 각자의 방식대로 가는 게 순리겠죠.”

호주 NBA 아카데미에서 1년여를 보내면서 이제는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NCAA 진출이냐 아니면 국내로의 복귀냐,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농구와 공부를 병행하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빅리그 진출을 원하면 NCAA 진출을 해야 했고, 농구에만 올인한다면 국내 복귀가 답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이현중은 국내 복귀보다는 NCAA 진출을 결정했다. 

“사실 국내 복귀를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선 부모님이 반대하셨죠. U-18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는 걸 보시더니 제가 정말 좋아졌다고 느끼셨다고 국내에 복귀하기보다는 미국이나 다른 해외에서 경험을 쌓는 걸 권하셨어요.”

“국내 대학팀들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것도 사실이에요. 호주에 가기 전인 고교 2학년때부터 고려대나 연세대에서 연락도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셨는데 일단 기분은 좋더라고요. 특히 연세대는 아카데미 재학 중에도 전화를 주셔서 놀라기도 했죠.”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쇼 케이스도 다녀오고 하다 보니 미국 대학에서 연락이 왔어요. 입학 제의라기보다는 저에 대해 알아보는 정도였지만 이렇게 연락이 오는 걸 보면 NCAA에 진출할 수 있겠구나란 새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영어 공부에 더 매진했어요.”

호주에서 1년여를 보내면서 SAT 점수를 900점으로 끌어올린 이현중이었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에 들어와 한달간 쉴 때도 영어 학원을 끊어가며 공부를 한 그다. 

“아카데미 코치님들이 SAT 점수를 1000점대로 높이면 갈 수 있는 대학의 선택 폭이 넓어진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데이비슨 대학 코치님도 연락이 와서 제 점수를 듣더니 ‘1000점대까지 올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죠. 토플 공부도 했는데, 저는 제가 가져갈 수 있는 옵션을 최대한 늘려서 학교를 선택할 때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SAT와 토플 점수를 올리는 데 열을 올렸죠.”

데이비슨 대 입학, “커리보다는 맥킬롭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

농구도 농구인데다 SAT 점수까지 오른 이현중은 NCAA 디비전 1 대학팀들의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여러 대학이 있었는데 클레이 탐슨의 모교인 워싱턴 주립대와 스테픈 커리의 모교인 데이비슨대가 동시에 이현중에게 입학 제의를 해 탐슨과 커리의 모교에서 동시에 스카우트 됐다는 일이 국내 NBA 팬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가운데 이현중은 자신이 진학할 학교를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학교의 네임 밸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출전시간을 보장받는 데 중요했다. 감독과의 궁합도 고려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 선택한 학교가 바로 데이비슨대다.  

“일단 밥 맥킬롭 감독님이 데이비슨대에만 30년 계셨어요. 그것만으로도 일단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그리고 최근에는 5년 재계약을 하셨어요. 앞으로 제가 경기에 기용될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1학년 때는 주로 식스맨으로 뛰었는데 1주일 전에 감독님께서 전화로 다음 시즌에는 더 많이 뛸 테니 준비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공격도 많이 시킬 거라고 하셨어요.”

“워싱턴 주립대는 제가 갈 즈음이 감독님이 막 바뀌신 터라 불안하기도 하고 믿음이 덜 갔어요. 또 대학은 네임 밸류만 보고 가기보다는 내가 많이 뛸 수 있느냐 없느냐를 보고 가야하는 거라서. 아무래도 선수 입장에서 감독과의 궁합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또 우리 팀은 팀플레이가 좋아요. 저희는 워낙 세계에서 온 선수들이 많아서 이기적이지 않고 패스 농구를 즐겨하죠. 또 가족 같아서 인종 차별도 하나도 없어요. 모두 젠틀하고 성격도 좋고 유쾌하죠. 너무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착해요. 저는 마이크 존스와 가깝게 지냈는데 그 외에도 누구와 특히 가까웠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 잘 지냈어요.” 

밥 맥킬롭 감독은 각 나라에서 유망주를 잘 뽑고, 잘 길러내는 인물로도 여겨진다. 화도 많고 경기 중에 소리도 많이 지르지만 선수들의 자신감을 심어주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또 선수들의 의사도 많이 존중해 언제나 선수들이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면 그 의사를 존중해주는 감독이다. 

이현중은 데이비슨대 입학 이후 치른 루키 시즌 28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20.9분씩을 뛰었고, 8.4득점(3점슛 37.7%) 3.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커리어하이 기록은 20득점으로 VCU전에서 남겼고 12월 로욜라 시카고 대학 전에서는 3점슛 5개를 성공(6개 시도)시켰다. 그의 동료들은 슛이 정확한 그를 ‘스나이퍼(sniper)’라고 불렀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지난 3월 11일에는 제이미슨 배틀(조지 워싱턴 대학), 트레이 미첼(UMASS), 유리 콜린스(세인트 루이스), 나션 하이랜드(VCU)와 함께 2019-2020시즌 A10 올 루키 팀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 선수가 NCAA 디비전 1 무대에서 이 정도 성적이면 첫 해의 성적치고는 제법 만족할만한 수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만족 못해요. 원래 제 목표가 올해의 신인상과 베스트 5 수상이었거든요. 그걸 이루지 못해서 아쉽죠. 또 3점슛 성공률도 42%가 목표였는데 중반까지 41% 언저리에서 머물다가 몇 경기 안 들어가니 성공률이 뚝 떨어졌어요. 많이 아쉬운 부분이죠.” 

“NCAA의 다른 대학 선수들과 직접 붙어보니 처음에는 당황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들도 똑같은 사람이니까 약점이 있고 나도 강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상대 약점을 공략하고 제 강점을 살리는 농구를 생각했어요. 머리를 쓰는 농구를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첫 경기 때는 확실히 긴장도 많이 하고 키 크고 덩치 좋은 흑인 선수들 보고 놀라기도 했는데 지금은 크게 문제 없어요.”

NCAA 디비전 1에서 활약하는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한국 교민과 팬들도 생겼다.

“시카고에 갔을 때부터 한국분들이 오시기 시작했어요. 하프타임에 코트에서 라커룸으로 들어가는데 태극기가 보이면서 ‘이현중 파이팅!’을 외쳐주시더라고요. 그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열심히 응원해주신 덕분에 마음 편하고 재미있게 경기를 했어요. 데이비슨 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 친구들이 20여명 있어서 함께 식사하러 다니고 그래요. 아무래도 데이비슨 대학 농구부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제가 처음이다 보니 자주 경기도 보러와 주고 응원도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0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③편에서 계속... 

사진 = 이현수 기자, 본인 제공

박상혁 기자  jumper@rook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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