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별 생각 없었어요. 솔직히 김정은이 나왔다는데 안 잡을 수는 없잖아요? 못해도 시도는 해야지! 그래서 일단 영입을 시도한 거예요. 오면 좋긴 한데 ‘얘를 어떻게 쓰겠다’라던가, ‘대체 선수로 누구를 줘야 하냐’같은 생각은 안했어요. 안 올 줄 알았거든요. 여기에 월척이 있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낚시를 했는데 정말 그게 걸려버린 거죠. 나도 놀랐어요.”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의 말이다. 김정은이라는 대어가 FA시장에 나와 당연히 영입 전쟁에 뛰어는 들었지만 그가 우리은행을 선택하리라는 생각은 안했다고. 그런데 덥석 김정은을 잡게 됐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김정은을 움직인 것은 위성우 감독의 한 마디였다. 이적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던 김정은에게 위 감독은 “내가 (임)영희를 33살에 처음 만났다. 그런데 지금도 저렇게 잘 하고 있다. 너는 이제 31살이다. 처음 1년 내내 재활만 해도 좋다. 너만 할 수 있다면 내가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주변의 조언도 구했다. 이미 오랫동안 리그 최고액 연봉자 중 한 명이었던 김정은에게 금액적인 조건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은퇴한 선배들이 우리은행을 추천했다. 특히 ‘위성우 감독이라면 너를 끝까지 책임져 줄 것’이라는 조언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하나은행과 결렬서를 썼던 그 곳에서 4개 구단 관계자를 모두 만난 김정은은 자신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우리은행을 선택했다.

'디팬딩 챔피언 우리은행'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
이제 ‘우리은행 선수’가 된 김정은은 재활을 병행하며 새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다. “몰입도가 다르다”는 김정은은 왜 우리은행이 지난 5년간 리그를 제패했는지 알겠다며 새로운 팀에 적응을 마쳤음을 알렸다. 

우리은행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대표 차출과 부상 재활로 경기에 나설 수 없어 7월 초 일본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단 6명의 선수들로 경기를 치렀다. 삼성생명에서 이적한 박태은을 제외하면 대부분 1군 무대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이었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우리은행은 매 경기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솔직히 미안한 말이지만 퓨처스리그를 뛰는 다른 팀 어린 선수들은 잘 몰라요. 마주칠 일이 없고 경기도 잘 못 보니까... 그리고 나이차도 많이 나잖아요. 그러다보니 우리은행으로 오면서 처음 본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선수들이 일본이랑 연습 경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하는 거예요. 비록 지금은 1군 경기에 많이 못 나가지만 얘들이 다른 팀 또래 선수들이랑 경기를 하면 절대로 안 밀릴걸요. 오히려 지금 1군을 뛰면서 이름이 알려진 선수들 보다 더 낫다고 봐요. 정말 우리은행이 다르긴 달라요.”

‘악명 높은’ 위성우 감독의 훈련에 대해서는 “각오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보다 그냥 하루하루를 이겨가는 게 먼저에요. 난 당장 오늘 할 거, 그리고 내일 해야 할 거를 견디는 게 더 급하지 더 멀리를 못 봐. 당장 여수 전지훈련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해요. 그렇게 각오를 했는데도 막상 해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김정은은 지난 7월, ‘우리은행 훈련 난이도의 정점’이라 불리는 여수 체력 훈련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원래 뛰는 쪽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던 김정은은 전설처럼 건너 듣던 여수 훈련이 자신에게 닥치자 엄살을 넘어서 진정한 공포를 앞둔 표정이었다.

“훈련도 사람이 하는 거니까 어쨌든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해보니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잖아요. 그런데 그걸 늘 하던 애들도 ‘여수’얘기만 나오면 사색이 되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 뛰다가 쓰러지면 어떡하지?”

김정은의 진실 된(?) 불안함과 질문에 옆에 있던 후배 엄다영은 “병원 가서 수액 맞고 오면 다음날 멀쩡하게 뛸 수 있다”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우리은행은 7월 초, 여수에서 체력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연기했다. 부상자가 많았기 때문. 위성우 감독은 “뛸 사람도 없는 데 쓸데없이 여수까지 갈 이유가 있겠냐”며 부상 선수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몇 주의 시간을 미뤘다.

그러나 막상 두 주가 지나도 부상에서 복귀해 뛸 수 있는 명단에 추가된 것은 김정은 한 명이었다. 김정은은 “감독님이 결국 나 때문에 이 훈련을 벼르신 것 같다”며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공포의 여수 훈련’을 무사히 넘겼다. 여수로 떠나기 전 “살아서 다시 봅시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던 그는 ‘2017 우리은행 박신자컵 서머리그’가 진행됐던 강원도 속초에 편안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얼굴은 부쩍 좋아져 있었다.

선수들은 여수 훈련에서 김정은이 아무런 문제없이 멀쩡하게 훈련을 소화했다고 증언(?)했다. 선수들은 “그 훈련이 처음인데 심지어 잘 뛰더라. 역시 김정은은 김정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지옥의 끝을 경험하고 온 탓인지 김정은의 표정도 한결 밝았다. 그는 “쓰러지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도 않더라”며 오랜만에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정은은 우리은행에 합류한 후 매일의 고단함에 선배인 임영희에게 “어떻게 5년을 버텼냐”고 묻기도 했단다. 그러자 임영희는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다보니 5년이 지났고, 지금 여기에 와 있다”고 했다고. 그래서 디팬딩 챔피언에 가세한 ‘빅네임’의 선수로서 성적에 대한 부담도 있겠지만 지금은 멀리보다 당장에 집중하고 있다. 

“예전에는 전 경기 출전을 목표라고 말하는 선수들을 이해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내 얘기에요. 안 아프게 몸 관리 잘하고, 또 전 경기를 다 출전해서 열심히 하고, 그래서 팀에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몇 년을 더 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어요. 일단 계약은 3년 했지만 난 이번 1년, 아니 당장 내일 훈련에만 집중해도 빡빡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이겨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온 몸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던 하나은행의 흔적을 모조리 지울 만큼 바닥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진 김정은. 재활과 강한 훈련을 병행한 그는 “1년을 다 쉬어도 좋다”고 했던 위성우 감독의 당초 약속과는 달리 당장 이번 시즌부터 리그에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양지희의 은퇴로 높이가 부쩍 낮아진 우리은행은 지난해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통한 시즌 준비를 진행 중이고 김정은 역시 여기에 일조해야 한다.

정점을 찍었지만 갑자기 닥친 시련 속에 힘든 시기를 보냈고, 이적과 함께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하는 김정은이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새 시즌의 디팬딩 챔피언을 주목해보자.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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