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역대 최고의 신인’, ‘소녀 가장’, ‘하나은행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 모든 말들은 김정은을 설명하는 수식어였다. 

지난해 박지수(KB스타즈)의 등장 이전까지 한동안 신인들의 기량 저하가 두드러졌고, WKBL은 신인상을 받는 선수들의 범위도 데뷔 후 다음 시즌까지로 범위를 확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같은 위력을 보여준 신인은 찾기 힘들다. 

이제 삼십대의 베테랑이 된 김정은을 이야기 하며 뜬금없이 ‘신인 시절’을 거론하는 이유는 ‘최고의 루키’에서 ‘팀의 에이스’로 빠르게 자리 잡아 꾸준히 그 기량을 유지해 온 선수가 흔치 않기 때문이며, 또 그 중에서도 김정은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김정은은 자신을 설명했던 화려한 수식어들을 모두 지운 채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탄탄대로를 걸은 역대 최고의 신인
리그를 박살낼 것 같은 역대급 신인을 한명 꼽으라면 2015-16시즌의 첼시 리가 가장 독보적이다.

‘한국계’라는 명함을 달고 당황스럽게 등장해 15.2점 10.4리바운드를 기록했던 그는 국가대표 선발을 위한 귀화를 앞두고 사문서 위조 혐의 등이 드러나며 등장보다 더 당황스럽게 자취를 감췄다. 소속팀은 물론 본인의 기록도 말소됐다. 2015-16시즌은 그의 이름 하나로 모든 게 망가졌다. 

신인이라 규정하기 모호하지만 어쨌든 ‘신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평균 더블-더블을 기록했던 첼시 리의 기록이 WKBL에 다시 나오기는 힘들어 보였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한국 농구의 미래’로 불리던 박지수(10.4점 10.3어시스트)가 1년 만에 그 어려운 걸 달성하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기대주’ 박지수도 김정은이 세웠던 신인 시즌 최다 득점(11.8점)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온양여고를 졸업하고 당시 신세계에 입단한 김정은은 루키시즌부터 꾸준히 평균 두 자리 수 이상의 득점을 기록하며 팀은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2010-11시즌부터는 5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고 시즌 베스트5에도 4번이나 이름을 올렸다. 현역선수 중 통산 득점 1위, 통산 리바운드와 블록 2위, 통산 3점슛과 어시스트는 4위에 올라있다. 비록 우승과는 거리가 있어 챔피언 반지를 얻지 못해 리그 MVP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최고 연봉자로 4번이나 기록됐다는 것에서 그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흔들림 없이 계속될 것 같았던 김정은의 전성기는 서른을 바라보던 2015-16시즌부터 갑자기 굴곡을 만나기 시작했다. 연이은 부상에 발목을 잡혔다.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도 늘었고 출전 시간도 줄었다. 

데뷔 후 2014-15시즌까지 11시즌동안 17.2점을 득점했던 김정은은 이후 두 시즌, 정규리그의 딱 절반(35경기)밖에 나서지 못했고 득점은 평균 5.9점으로 줄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자유계약선수가 된 2017년, 처음으로 팀을 옮겼다. ‘신인’도 아니고 ‘소녀 가장’도 아니며 스스로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수식어까지 벗어던진 김정은은 그렇게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너무나도 각별한 이름, 신세계 그리고 하나은행
새로운 팀으로 이적했지만 여전히 KEB하나은행은 김정은에게 특별하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농구공을 잡은 김정은이 가장 오랫동안 유니폼을 입었던 팀이다. 12년 동안 13시즌을 보낸 팀이기도 하다. 팀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왕조를 이룬 시간을 오롯이 함께한 김정은은 13번의 시즌 중 플레이오프에 단 4번 밖에 오르지 못했다. 

리그 최고의 득점력,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워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파워, 그리고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 기술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정은은 리바운드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2013-14시즌에는 경기당 4개에 가까운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해낸 김정은에게 없는 한 가지는 우승 반지였다. 신세계 시절부터 오랫동안 들었던 김정은의 별명 중 하나인 ‘소녀 가장’은 데뷔와 함께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지만 마땅한 해결사가 없어 팀 운명을 혼자 짊어져야 했던 김정은의 처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김정은은 신세계를 거쳐 하나은행에 이르기까지 ‘원맨팀’이라는 평가를 가장 싫어했다. 그만큼 팀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나 거기 세 번 가봤어. 일부러 간 건 아니고 근처에 갔는데 그냥 가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공사중이죠? 문 밖에서 들여다봤는데 내가 갔을 때도 건물은 다 철거했더라고요. 언니들, 동생들이랑 같이 했던 시간들이 거기 다 있는데... 좋았던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거기에 두고 온 게 가장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은행은 지난 시즌 개막 무렵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체육관을 숙소로 사용했다. 신세계 시절부터 사용하던 이 숙소는 지난 해 매각됐고, 농구단은 용인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연수원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김정은에게 청운동 체육관은 10년 넘게 살았던 곳이고 프로 선수로서의 기억 대부분이 남아있던 곳이다. 

집보다 더 집 같았던 이 체육관과 건물 등은 매각된 후 철거됐다. 김정은은 FA로 팀을 옮긴 후 이 곳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장소에 대한 아련함. 이는 곧 떠났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친정팀에 대한 마음이기도 하다.

각별할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프로 데뷔, 신인왕의 영광, 국가대표로의 인정, 에이스로의 등극, 고액 연봉 선수로서의 입지 구축. 이 모든 기쁨과 성공을 이 팀의 선수로 이루어왔고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누리고 싶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자리에 우뚝 섰다. 

이러한 김정은의 소속팀은 2012년 큰 위기를 맞았다. 돌연 신세계 농구단이 해체를 선언한 것이다. 새로운 인수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팀은 공중분해 되고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았다. 

사실 팀은 위기였지만 김정은 개인에게는 큰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었다. 신세계가 없어진다 해도 김정은을 원하는 팀은 많았기 때문. 

2011-12시즌 당시 김정은은 40경기 전 경기에 나서 평균 35분 45초를 뛰며 17.7점 5.4리바운드 2.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의심할 여지없는 리그 최고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본인이 원하면 다른 팀으로의 이동은 가능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몰라요. 휴가 끝나고 들어 왔는데, 난 감독 선임 얘기 하는 줄 알았어. 거기서 처음 해체란 얘기를 들었는데, 진짜 그때 심정은... 지금도 말로 표현이 안돼요. 애들 다 울고... 지금도 팔에 소름 돋잖아요. ” 

당시에는 중국리그에서 아시아 쿼터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팀이 죽는다 해도 김정은의 선택지는 넓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떠나지 않았다. 팀이 해체를 선언했음에도 체육관에서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하며 남았다.

“주전급으로 뛰던 선수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면 팀이 더 인수되기 힘들잖아요. 같이 있어야 팀이 계속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다고 생각했어요. (김)지윤 언니(은퇴), (허)윤자 언니(삼성생명)랑 제가 구심점이었는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특히 지윤 언니는 그때 중국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제의가 들어 왔는데도 포기했어요. 당장 내일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니 정말 막막했죠. 대학도 포기하고 온 애들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하나은행이 창단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다들 너무 좋아했죠. 해체 얘기를 들었을 때, 하나은행 창단 얘기 들었을 때... 진짜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아직도 기억나... 다 기억나...”

하나은행은 인수가 아닌 창단의 형태로 신세계 선수단을 받아 들였다. 김정은은 당시의 기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과 선수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는 하나은행에 감사하는 마음도 컸다.

그런데 ‘하나외환’이라는 이름으로 리그를 시작하고 나서 성적이 따르지 않자 부담이 커졌다. 창단 첫해 14승 21패로 5위에 그쳤고 이듬해는 8승 27패,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선수가 팀과 팬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성적이 전부다. 그래서 김정은은 하나은행에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든 갚고자 동분서주했지만 팀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플레이오프 진출 자격은 4팀에서 3팀으로 줄어들었고, 하나은행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희망보다는 안타까움을 더 많이 안고 가게 됐다.

우승을 노리는 우리은행이 매직넘버를 따질 때 하나은행은 트래직넘버를 계산해야 했고,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후 사실상 의미 없는 경기가 된 가비지게임을 치르는 경우가 늘어갔다. 2015년, 김정은은 이렇게 말했다.

“경기를 하러 체육관에 와서 준비를 하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나요. 가비지 게임이라는 게 그래요. 경기는 뛰고 있는데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하는 생각... 플레이오프를 뛴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요... 그런데 그거 알죠? 우리 팀 가능성은 있잖아? 그죠? 기자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죠? 시간만 좀 있으면 올라갈 수 있겠죠? 적어도 이제 우리팀이 ‘원맨팀’은 아니잖아요. 나 말고도 좋은 선수들이 많고, 우리 애들도 잘 하잖아요.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으니까 나쁜 말보다는 팀에 좋은 기사 좀 많이 써주세요.”

사진 = 박진호 기자, 이현수 기자, WKBL 제공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