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KBL은 신인들이 입단 직후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기가 어려운 리그다. 박지수나 박지현처럼 데뷔 당시부터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하는 신인이 아닌 이상 데뷔 시즌에는 곧바로 두각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 시즌 1순위로 신한은행의 유니폼을 입은 홍유순은 다르다. 홍유순은 데뷔 시즌부터 곧바로 팀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오랜만에 대형 루키의 탄생을 알렸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한은행의 홍유순을 <루키>가 만나봤다.
*본 기사는 루키 2025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일본에서 온 대형 루키
국적은 한국 국적을 소유하고 있지만 홍유순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선수다. 그런 홍유순은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농구공을 처음으로 잡았다. 프로 무대에 입성한 여타 다른 선수들보다는 출발이 다소 늦었다고 볼 수 있다.
“부모님과 친오빠가 농구를 하셨었어요. 어머니와 친오빠가 있던 팀은 승리만을 바라보는 강팀이 아니라 마치 동아리처럼 농구를 즐기면서 신나고 재밌게 플레이를 하는 팀이었거든요. 그걸 보고 지내면서 농구가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하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농구를 시작했는데 당시가 중학교 1학년이 됐을 때였어요. 실제로 해보니 농구가 정말 재밌었어요.”
일본에서 3x3 선수로 활동을 하기도 한 홍유순이지만 농구를 시작할 때는 5x5 농구로 먼저 시작했다. 3x3 농구와 5x5 농구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터. 두 종목을 모두 겪은 홍유순은 어느 종목에 더 자신이 있을지도 궁금했다.
“처음에는 5x5 농구를 먼저 시작했어요. 3x3은 이후에 초대를 받고 팀을 만들어서 한 것이 처음이었어요. 5x5 농구는 좀 더 팀 농구라고 느껴져요. 3x3의 경우에는 개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더 잘하는 것 같고요. 1대1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3x3을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5x5 농구에 더 자신이 있어요.”(웃음)
그렇게 농구선수의 생활을 시작한 홍유순은 2017년 당시 WKBL의 드래프트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홍유순이 보는 앞에서 WKBL에 지명된 재일교포 선수가 바로 현재 신한은행에서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황미우 매니저다.
황미우 매니저는 당시 전체 5순위로 삼성생명의 지명을 받으면서 WKBL 1호 재일교포 선수가 됐다. 황미우 매니저의 프로 지명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홍유순은 고등학생이 된 후 본격적으로 WKBL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WKBL에 도전을 하고 싶다는 목표를 뚜렷하게 세웠던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제가 있던 팀은 높은 목표와 함께 경기를 이기고자 했던 팀이거든요. 그런데 대학에서 있었던 팀은 약간은 동아리처럼 농구를 하는 팀이었어요. 그때 프로라는 높은 목표를 진지하게 세울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 이전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는데 그 시기에 그런 목표가 생긴 것 같아요.”
“(황)미우 언니가 프로에 지명될 때 저도 나중에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웃음) 지금 미우 언니가 있는 팀에 오게 된 것이 너무 기뻐요. 미우 언니가 있는 팀에 오게 되면서 안심이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의미가 커요.”
그렇게 한국행에 대한 목표를 세운 홍유순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낯선 곳에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현재는 한국 생활에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홍유순이다.
“부모님의 곁에서 떨어지는 것이 처음이었거든요. 제가 여기에서 생활을 하면서 불안함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있을 때 해소를 잘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죠. 부모님께서는 가서 열심히 하라고만 말씀하셨어요.(웃음) 요즘 새로운 기록을 세우거나 하면 연락을 주세요. 잘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계속 쭉 하다보면 더 잘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해주세요.”

4G 연속 더블-더블, 박지수를 넘다
홍유순은 드래프트에서 지명되기 이전 이미 신한은행에서 함께 훈련을 진행하면서 팀 분위기를 파악한 바 있다. 이러한 부분은 홍유순이 신한은행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당시 훈련할 때 역시 프로 선수들은 피지컬이 엄청 강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농구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낯선 곳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제가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그때 신한은행의 숙소 시설이 너무 좋다고 느끼긴 했었어요.”
홍유순은 드래프트를 앞두고 열린 컴바인에서 맥스 버티컬 점프 높이, 맥스 버티컬 점프 리치, 레인 어질리티, 프로 어질리티, 3/4 코트 스프린트 등 5개 부분에서 1위에 올랐다. 운동능력과 스피드를 모두 보인 홍유순에게 신한은행은 예상대로 자신들의 1순위 지명권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1순위로 뽑히게 되어서 기뻤죠.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 출발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드래프트 이전에 이미 함께 훈련을 해봤던 경험이 있어서 언니들과 아는 사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걱정했던 고독함이나 외로움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언니들이 항상 말도 잘 걸어주고 하시거든요. 그런 면에서 신한은행의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 너무 좋았어요.”
많은 기대 속에 신한은행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아무래도 신인 선수가 시즌 초반부터 주축으로 뛰기는 쉽지 않았다. 홍유순 역시 시즌 초반에는 경기별로 출전 시간이 들쭉날쭉했다.
그러나 홍유순은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나서면서 중용 받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에 많은 부상자가 발생한 것도 홍유순에게는 기회가 됐다. 신인들이 당장 큰 역할을 맡기 쉽지 않은 WKBL의 특성상 홍유순과 같은 사례는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저도 첫 시즌에 이렇게 많이 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웃음) 그저 경기를 1분 1초라도 더 많이 뛸수록 열심히 하자는 목표가 있었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기회를 받기 시작한 홍유순은 WKBL의 새역사를 썼다. 12월 5일 열린 하나은행과의 경기부터 12월 16일 우리은행과의 경기까지 4경기를 치르는 동안 모두 더블-더블을 달성한 홍유순이다.
이로써 홍유순은 루키 시즌 4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달성한 리그 최초의 신인이 됐다. 3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하면서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박지수를 넘어선 홍유순이다. 이 시기의 퍼포먼스로 홍유순은 단숨에 리그에서 가장 크게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됐다.
“기록이 이어지는 것을 즐기려고 했던 것 같아요. 4번째 경기는 우리은행과의 경기였는데 당시 (김)단비 언니가 경기에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건 기록을 써봐야겠다고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그날 더블-더블을 하면 기록이 써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요.”
홍유순에 앞서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박지수에 대해 묻자 홍유순은 “WKBL 포스트의 지배자로 알고 있어요”라면서 수줍게 웃었다. 그런 박지수를 넘어선 홍유순의 기록은 아쉽게도 더 이어지지 않았다. 11월 2일 열린 하나은행과의 경기에서 홍유순은 8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더블-더블 행진을 중단했다.
“그 경기에서도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기록이 계속 이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신인왕
이처럼 홍유순은 뛰어난 리바운드 능력을 바탕으로 역대 최초의 기록을 썼다. 그러나 홍유순이 처음부터 리바운드에 강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현재 신한은행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이시준 감독대행은 홍유순에 대해 “원래는 리바운드의 낙하 지점을 전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비시즌에 그런 부분이 오히려 약점이라고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홍유순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신한은행의 코칭스태프는 비시즌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홍유순이 스펀지처럼 흡수하면서 단숨에 리바운드 능력은 그의 최대 강점 중 하나가 됐다.
“원래는 리바운드 상황이 발생할 때 밖으로 나와서 보고만 있던 경우가 많았어요. 코치님들이 다른 선수들이 슛을 쏜다고 생각이 들면 바로 들어가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대로 안으로 뛰어들어가다 보니 리바운드를 많이 잡게 된 것 같아요.”
홍유순의 또 다른 강점은 지치지 않는 강철 체력이다. 40분 풀타임에 가까운 시간을 뛰면서도 꾸준히 같은 수준의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고 있는 홍유순이다. 그렇다면 홍유순이 생각하는 자신의 체력 비결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 마라톤 대회를 나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엄마랑 같이 매일 뛰었어요. 그러면서 기본적인 체력이 길러졌던 것 같아요.”
이처럼 자신만의 강점을 바탕으로 이번 시즌 루키들 중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고 있는 홍유순이다. 남은 시즌 부상 등의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신인왕 경쟁에서도 이미 한참 앞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홍유순이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없을까?
“신인왕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해야 할 역할을 잘하고 있으면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해요. 견제되는 선수요? 제 역할에 집중하려다 보니까 딱히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는 있지만 송윤하 선수가 잘하더라고요.”(웃음)
확실하게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그렇기에 홍유순 역시 앞으로의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는 아무래도 피지컬이 약하다보니 수비할 때 상대 에이스를 맡다 보면 체력이 떨어져요. 또 스위치를 해서 다른 수비를 해야할 때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피지컬이나 체력을 더 키워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홍유순에게 남은 시즌의 목표와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지금 잘하고 있는 부분을 계속해서 잘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플레이의 폭을 넓히고 싶어요. 1대1 능력을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또 팬들께는 항상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더 많은 승리를 가져다드릴 수 있게 열심히 할테니 응원을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사진 = 강정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