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편에 이어...
[루키=박진호 기자] 2016-17 WKBL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가장 마지막에 호명됐지만 수많은 선수들이 교체됐던 지난 시즌 WKBL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던 나탈리 어천와.

외국인 선수 중 정통 센터 자원이 많지 않은 까닭에 희소 가치가 높은 그는 비록 원소속팀인 하나은행과 재계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음 시즌 WKBL 드래프트에 지원한다면 지난 시즌보다 이른 순번에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

(편집자 주 : 영어 인터뷰의 묘미를 살리고, 현장의 분위기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인터뷰는 반말과 대화체로 구성합니다.)  

# 남자친구 마리오, 한국에 오다
TB: 한국에서 자유시간 때는 주로 뭘 해?
어천와: 아직 잘 모르니까... 첫 외박 때는 방을 떠나지 않았어.(웃음) 그냥 잠만 잤어. 특별히 할 게 없더라고...

TB: 지금은 남자친구가 한국에 와서 할 게 많겠네?
어천와: 하고 싶은 게 많은거지. 남자친구 의견도 중요하지만 사실 나도 한국에서 많은 걸 보고 경험할 시간은 없었거든.

TB: 뭘 해보고 싶은데?
어천와: 돌아다니고 구경하고 싶은 게 많아. 그래서 여행 가이드도 알아보고 있어. 난 전통적인 것에 관심이 있어서 민속촌에 가보고 싶고, 남자친구는 박물관에 관심이 많아. 문화나 음식은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건축물 같은 건 볼 기회가 많지 않았어.  

TB: 남자친구가 와서 좋아?
어천와: 어. 좋아. 헤헤헤...

TB: 그런데 남자친구가 오고 나서 개인 성적이 확 나빠진 건 알아?
어천와: 어. 알아. 알아...

TB: 팀을 위해 남자친구는 다시 미국으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어천와: 다음 경기에는 그런 얘기를 뒤집어 주지! 남자친구 오고 나서 첫 경기는 졌지만 그래도 다음 경기는 이겼잖아. 내 성적은 별로였지만 팀이 이긴 게 더 중요해. 다른 동료가 25점을 넣고 내가 5점밖에 못 넣어도 팀이 이기면 지는 것 보다 더 좋은 거니까!

TB: 그래서 남자친구가 여기 있어야 한다는 거야?
어천와: 어!

TB: 그런데 1달 넘게 있는다며? 군인이라고 하던데 미군은 한가한가봐! 
어천와: 아냐. 지금이 그다지 바쁘지 않은 시기일 뿐이야.

TB: 마리오라 그랬지? 이름만 귀엽네. 아무튼 쟤는 어떻게 만났어?
어천와: 마리오 여동생이 나랑 같이 농구를 했었는데 소개를 받아서 만나게 됐어. 마리오는 잘 챙겨주고 열정적이야.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아.

TB: 그건 남자친구가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인 거 같은데? 나도 군대에 있을 때는 그랬어!
어천와: 어. 그래...

이래서 세상의 여동생들은 죄다 문제다. 그냥 농구나 열심히 하지 왜 친구랑 오빠를 소개해주고 그러는지... 1미터쯤 떨어져 앉아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던 마리오가 자기 얘기가 나오니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특히 어천와가 자기 칭찬을 하자 대놓고 씨익 웃는다. 아... 눈 꼴 시려라.

TB: 어이 마리오씨. 당신은 어천와를 왜 좋아해?
마리오: 어천와 역시 내가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편하게 해주고 기분도 전환시켜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TB: 넌 휴가 내내 한국에 와 있는 거야?
마리오: 어.

TB: 집에서 뭐라고 안 해? 우리 어머니 같았으면 “나가 죽어”라고 했을 거야!
마리오: 가족들이 어천와를 좋아해서 괜찮아. 우리 어머니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뭐라도 좀 찔러 볼라고 시비를 걸었는데 짜증지수만 높아졌다. 서양 커플들은 말 잘하는 학원이라도 다니나보다. 남자친구 얘기는 덮어두자. 문득 한국의 기자가 얼마나 교양 있는 사람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누구도 기대 안했던 우리 팀, 이제 PO를 노린다
TB: 혹시 촛불집회가 뭔지 알아?
어천와: 들은 적 있어.

TB: 오. 우리한테도 흔치 않은 일인데...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들었을 때 어땠어?
어천와: 사실 그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런 일에 대해 내 입장을 밝힐만큼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데 일단 그 규모에 놀랐어. 하나의 목적을 갖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낸다는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TB: 한국은 운동선수가 스포츠를 제외한 정치나 다른 분야에 대해 언급하는 걸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많아. 서양 문화권은 우리와 다른 분위기던데 너는 어때?
어천와: 적정한 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선수들도 결국 같은 사람이잖아. 자기 의견을 말하고 함께 대화할 자격은 똑같다고 봐. 나 같은 경우 여자 운동선수고 많은 나라들을 다녀봤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할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어떤 이슈와 관련해서 발언할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할 거야.

TB: 캐나다 총리가 상당히 잘 생기고 인기가 많잖아. 어때? 개인적으로 지지해?
어천와: 맞아. 트뤼도(Justin Trudeau)는 젊고 매력적(Cute)이야. 총리로서 해야 할 일도 잘 하는 것 같고 사람들과 소통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나는 그를 지지해.

TB: 캐나다 어느 지역 출신이야?
어천와: 토론토에서 태어났고 온타리오주의 해밀턴에서 학교를 다녔어. 지금 어머니가 사는 지역은 또 다른 데지. 좀 크긴 하지만 굳이 어느 지역 출신이라고 하기 보다 그냥 캐나다 출신이라고 하면 돼.

TB: 농구는 왜 한 거야?
어천와: 우연히 하게 된거야. 처음에는 축구를 했는데 10살 때 키가 확 컸거든. 축구 코치가 그걸 보고 농구를 추천했어. 

TB: 대학에서는 경영을 전공했다며? 은퇴한 후에는 대학 전공을 살릴 생각이야?
어천와: 학교에서 배운 건 CEO의 회사경영이나 컨설턴트 쪽이었는데 난 지금 농구 선수잖아. 선수를 그만둬도 목표는 농구 코치야.

TB: 자 이제 인터뷰를 슬슬 정리해보자. 한국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
어천와: 팀 선수들이 나를 믿을 수 있는 선수로, 그리고 같이 생활한 게 즐겁고 좋았던 선수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팬들도 마찬가지야. 농담할 때 항상 “반은 한국인”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처럼 한국 문화에 속하려고 노력했고, 한국인들과 같은 그룹의 일원이었다고 기억해줬으면 해.

TB: 한국생활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오래 뛰고 싶은 마음도 있어?
어천와: 물론이지. 가능하면 오랫동안 한국에서 뛰고 싶어.

TB: 자, 그럼 마지막으로 올 시즌 목표가 있다면?
어천와: 우선은 플레이오프에 가는 게 목표야. 처음엔 아무도 우리한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 그렇게 되고 있잖아. 이 여세를 몰아서 플레이오프까지 쭉 갔으면 좋겠어!

플레이오프를 소망했던 어천와의 꿈은 아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나은행은 2라운드 이후의 돌풍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개막 전에 받았던 평가를 뛰어 넘는 성과를 올렸고, 어천와는 그런 하나은행의 분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

개막 직전 “1라운드 외국인 선수를 대체한 하나은행이 2라운드에 뽑은 선수도 손가락이 골절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올해 하나은행은 정말 안 풀리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선수는 개막전부터 경기에 나섰다.

카일라 쏜튼과 함께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어천와는 팀이 연패 중이던 1라운드, 팀이 또다시 패하자 경기가 끝난 후 벤치에서 고개를 숙인 채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뜻밖이었다. 최근 국내에서 활약 중인 외국인 선수들은 승부욕이 아무리 강하더라고 ‘경기는 경기일 뿐’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많다.

어천와는 경기 중에도, 작전 타임 때에도 오히려 동료들을 강하게 독려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흔치 않은 캐릭터다. 하나은행의 이환우 감독은 당시 팀의 선전에 대해 선수들에 대한 신뢰를 전했지만 가장 첫 머리에 “외국인 선수들이 정말 잘해준다”는 말을 꺼냈다.

초반부터 외국인 선수 문제에 골머리를 앓았던 팀들에 비하면 하나은행과 외국인 선수들의 궁합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남자친구가 온 후 두 경기에서 부진했던 어천와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이어진 두 경기에서 보란 듯이 맹활약을 펼쳤다. 자신은 “슈퍼스타였던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그는 하나은행 돌풍의 중심에 있으며 오랫동안 WKBL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입지를 충분히 마련하고 있다.

열정적인 어천와의 플레이를 WKBL에서 오랫동안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해당 기사는 <더 바스켓>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박진호 기자 ck17@thebasket.kr 이현수 기자 hsl_area@thebasket.kr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