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After Those Days

2022년 11월 30일. 드디어 박지수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었던 공백을 깬 박지수는 이번 시즌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팬들의 시선과는 최대한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조심스러워 보였다.

2021-2022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팀 우승과 함께 MVP 트로피를 들어 올린 후 231일 만에 공식 경기에 등장했다. 게임에는 뛰지 못했고, 볼 한 번 잡지 않았으며, 대중의 시선과 거리를 두는 동선을 택했지만, 본격적인 복귀 카운트다운에 다시 한 번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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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이동 규제가 목적인 것 같았던 이율배반적인 WKBL FA제도가 일부 개정된 2020년 이후, 4월은 여자농구에서 경기 외적으로 가장 뜨거운 기간이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해도 연봉상한선만 제시하면 선수의 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었던 ‘빛 좋은 개살구’의 일부 변경으로 인해 FA 자격을 두 번째 이상 획득한 선수들은 자의에 의한 이적이 가능한 세상을 맞았다. 잘하면 잘할수록 다른 팀을 선택할 권리가 없어졌던 WKBL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여전히 선수 개인 연봉은 상한선이 존재해, 연봉과 관련한 극적인 차이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뜨거운 화두가 되는 선수들에 대한 제시액은 결국 상한선을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A급으로 분류되는 선수들에게 ‘다른 팀 보다 파격적인 제안‘이 주어질 수는 없다.  그래서 여자농구 FA 시장은 ‘명분’이 선택의 트렌드가 됐다.

드래프트도 그렇듯이 FA도 매년 그 해의 최대어를 대명사로 언급한다. 2017년이 ‘박지수 드래프트’, 2019년이 ‘박지현 드래프트’였던 것처럼, 선택지가 발생한 FA 시장도 이제 가장 이슈가 되는 선수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2020년 박혜진(우리은행)은 잔류했고, 2021년 강이슬은 KB스타즈로 이적을 택했다.

2022년은 ‘김단비 FA’였다. 신한은행에서 데뷔했고, ‘레알 신한은행’의 역사를 함께했던 마지막 선수이며, 신한은행을 ‘단비은행’이라고 불리게 했던 주역이기에 그의 거취는 잔류일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계약 기간, 진통이 이어졌고 그는 놀라운 결정을 했다. 15년을 함께한 신한은행을 떠나 우리은행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2010-2011시즌까지 WKBL 통합 6연패를 달성했던 신한은행의 찬란한 역사는 그 역사의 첨단을 함께 했던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가 우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우리은행에 의해 막을 내렸다.

통합 우승이 좌절된 시즌부터 몇 년 간, 새로운 패자(霸者)로 떠오른 우리은행과 첨예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신한은행. 그 팀의 대들보였던 김단비가 어쩌면 가장 오랜 시간 숙적이었던 팀으로 거취를 결정한 것이다. ‘레알 신한은행’의 주역 중 여자농구에 남아있는 이들은 현재 모두 우리은행 소속이 됐다.

김단비는 ‘한 팀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정체되는 느낌이 들어 변화가 필요했다’, ‘은퇴 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프로 생활의 시작을 함께했던 위성우 감독-전주원 코치와 마무리도 함께하고 싶었다’고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그 이유 속 또 하나의 명분이 존재했다.

‘우승에 도전하고 싶다!’

사실 김단비는 모든 팀이 탐내지 않을 수 없는 리그 최고 선수 중 한 명이다. ‘절대 1강’으로 올라서는 KB스타즈를 상대로 어려움을 겪던 우리은행과 은퇴 전까지 KB와 우리은행을 넘어서는 것이 힘에 부쳤던 김단비로서는 우승이라는 목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의견이 일치했다. 그리고 이러한 김단비의 선택은 리그에 또 다른 충격을 선사했다.

우리은행은 이미 김정은, 박혜진, 김소니아, 최이샘, 박지현 등을 보유한 강팀이다. 김단비를 영입하며 보상선수로 김소니아를 잃었지만, 베스트로 나서는 선수 전원이 전현 국가대표이며 그들 대다수가 국가대표에서 핵심급 자원으로 활약했거나 그 역할이 현재진행형이다.

포지션 별 선수 구성을 놓고 볼 때, 이미 오랫동안 ‘수퍼 팀’이었던 우리은행이 ‘메가 수퍼 팀’이 됐다. ‘절대 1강 KB의 독주를 막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대다수의 팀들은 “늘 우승을 다투던 두 팀의 싸움과 그들의 자리만 더 공고해지는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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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의 반응은 특별하지 않았다. 지난 2년간 FA 시장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였고, 가장 큰 판에 이름을 올렸던 KB에게 2022년 4월의 이적 시장은 무풍지대처럼 고요했다.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있었다. 우리은행의 전력 강화가 분명 큰 변수로 다가왔지만, 주축 대부분의 나이가 우리은행보다 젊었던 KB는 상대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구성이었기에 충분한 경쟁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지수라는 확실한 비대칭 전력이 존재했다.

KBL에는 ‘건강한 오세근(KGC인삼공사)은 막기가 힘들다’며, 소위 ‘건세근’에 대한 전설과 찬사가 존재했다. WKBL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정상적인 박지수는 막을 방법이 없다’가 현실이었다. 아니, 정상이 아니어도 박지수를 대적하기가 힘들었다.

KB의 자신감은 비시즌 훈련이 시작되며 서서히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역대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럽고 안정적인 훈련이 진행됐다. 박지수는 WNBA 시즌을 쉬어 가기로 결정했다. 휴식과 치료, 수술 등이 필요했다.

박지수는 정규리그 중 상대 선수의 머리에 얼굴을 강하게 부딪쳐 시즌을 마친 후 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은 대둔근 파열을 안고 뛰었다. 또한 9월에 열리는 여자농구 월드컵을 위해서도 WNBA 무대를 쉬어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도쿄 올림픽 당시 WNBA 시즌을 뛰다가 합류하며 최상의 컨디션으로 뛰지 못했던 경험이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데 일조했다.

미국을 가지 않은 박지수는 시즌을 마친 후 휴식과 치료를 병행했고, 팀의 비시즌 훈련에 정상적으로 합류했다. 대표팀 차출, 부상 치료, WNBA 시즌 참가 등으로 비시즌 훈련 참여가 들쭉날쭉했던 박지수에게도 프로 데뷔 후 가장 좋은 비시즌의 출발이었다. 빠르게 몸이 올라왔다. 선수도 구단도 만족했다.

KB는 박지수가 확실하게 위력을 발휘한다면, 다른 팀들이 어떤 구성을 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정상적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박지수가 리그 최고의 슈터인 강이슬과 함께 이루는 원투펀치는 WKBL 최강이었다. 이들에게 집중된 상대의 허점을 공략할 수 있는 카드인 김민정과 우승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한 허예은까지... 이들 4명의 평균 나이는 25.3세. 우승의 핵심 전력들이 여전히 젊고, 발전 가능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염윤아, 최희진 등 베테랑도 건재했고, 백업 자원 또한 심성영, 김소담, 엄서이 등 충분했다. 이 모든 구성은 박지수가 중심을 확실히 잡아줄 때 완벽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7월의 태백.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가던 그 시점에 그 일이 발생했다. 공황장애로 인한 박지수의 이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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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태백에서 처음 그랬던 게 아니었어요. 휴가 때 두 번 정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는 심각한 건지 몰랐어요. 태백에서 너무 안 좋아서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 가니까, 그때 알게 된 거죠. 병원으로 올라갈 때도 2~3일 정도, 길어야 1주일 정도 쉬고 다시 팀에 합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공황장애에 대해 잘 몰랐던 것도 있지만 준비를 잘하고 있던 비시즌 운동 흐름을 놓치기 싫었던 욕심도 있었다.

“솔직히 1주일 쉬는 것도 길다고 생각했어요. 몸 상태가 정말 좋았거든요. 그동안 내가 끌어올린 게 있는데 쉬면서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프로에 오고 나서 비시즌 훈련이 정말 잘 됐던 게 일본 전지훈련을 처음 갔던 2년차 준비할 때였거든요. 그 때 이후 처음으로 몸이 정말 좋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신감도 높았죠. 그래서 쉬면서 몸 상태가 떨어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쉬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금방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갔더니 그게 아닌 거예요.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증상이 다시 올까봐 너무 무서웠고, 실제로 그게 닥쳤을 때는 한없이 무너졌어요. 한참 심할 때 병원을 간 건데 하루에도 몇 번 씩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밖에도 못 나가고 집에만 있게 됐어요. ‘나 빨리 운동해야 하는데’, ‘빨리 복귀해야하는데’, ‘지금까지 해 놓은 게 있는데’, ‘이번 시즌에 정말 힘을 내야 하는데’, ‘다른 팀들 다 우리가 타겟일텐데’ 이런 생각이 정말 많이 들어서 조급했어요. 결과적으로는 그런 마음이 회복에는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고요.”

박지수가 팀 훈련에서 이탈하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자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2022 FIBA 여자농구 월드컵을 준비하던 대표팀에도 비상이 걸렸다. ‘박지수 없이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결론을 빠르게 내렸다.

초반에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팀에 가지 않고 시즌 준비에 집중하려고 일부러 쉬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정선민 대표팀 감독은 “지금 가장 답답한 사람이 (박)지수일 것”이라며, “이번 월드컵을 지수가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는지 잘 안다”며 이를 일축했다. 정 감독은 “본인의 의지로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나? 대회 전에 복귀는 어렵다”고 못을 박았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말하면 대부분 축구만 생각하지만, 농구 월드컵도 4년에 한 번 열리는 정말 큰 대회잖아요. 농구 선수한테는 축구랑 똑같이 가장 큰 국제 대회가 월드컵이니까요. 작년 올림픽도 그렇지만 이 월드컵도 저한테는 정말 큰 목표와 의미가 있는 대회였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올라간 본선인데요? 예선에서 중국도 한 번 이기고 브라질까지 이기면서 정말 어렵게 본선 티켓을 땄잖아요. 조 편성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8강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월드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약으로 상태를 조절하면서 훈련과 대회를 병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병원 측의 판단은 달랐다. 그렇게 버티는 것 자체가 박지수에게 상당한 부담이며 쉽지 않을 것이었음은 물론, 공황장애 자체는 결코 개선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초기에 잡아야 효과가 빠르다는 판단이었기에 “흐지부지하게 약을 복용하며 운동을 하면 나아질 수 없다”며 “이번 월드컵을 포기하라”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최소 두 달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그렇게 길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도중에라도 내가 나아지면 운동을 시작하거나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길 줄 알았던 두 달이 정말 금방 갔어요. 생각보다 너무 증상이 오래가고 빨리 낫지 않더라고요.”

박지수의 공백으로 대표팀과 KB는 모두 플랜B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박지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아마도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한 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토록 컸던 선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지수의 월드컵 출전이 불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표팀 8강을 기대했던 눈높이는 순식간에 ‘최선을 다해 대회를 치르고, 내년 아시안게임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주력 선수 한 명의 존재 여부가 팀에 주는 영향은 분명 존재하지만, 국가대표팀의 대회 목표와 전망까지 바꿔버리는 것은 흔치 않다.

KB 전지훈련 취재를 위해 태백을 방문했을 때 진단을 받기 전의 박지수는 확실한 자신감을 보였다. 김단비의 합류로 우리은행이 더욱 높은 경쟁력을 갖췄음을 인정했지만, “쉽지는 않겠지만 실패했던 한 시즌 최고 승률에 도전하고 싶다”며 시즌을 겨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박지수에게도 힘든 두 달 여의 시간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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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하기 전까지 2~3번 정도 좌절이 있었어요. 증상이 심할 때는 밖에도 못 나가고, 사람도 못 보고, 집 안에만 있었죠. 소리에도 민감했고요. 하나하나 적응해가면서 산책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산책만 해도 증상이 나타나서 쓰러지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나아졌고 며칠 동안 괜찮더라고요. ‘이제 나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심하게 또 증상이 나타났어요. 그때 정말 많이 좌절했죠.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도 안 됐고, 나은 줄 알았는데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자율신경계의 문제다보니 내가 조절하거나 차도를 확인할 수 없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못 하겠다’고, ‘농구도 놓아야 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기였다. 외부에서는 “그래도 알아서 잘 해결하고 돌아올 것”이라며, “빠르면 시즌 개막 시점을 맞출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와 기대가 공존했지만, 박지수는 훨씬 심각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박지수의 어머니인 이수경 씨는 “지수가 다시는 코트에 서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했다”며 두 달의 치열했던 시간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잘 잡아주셨어요. ‘이런 조급함이 가장 큰 문제’라며 ‘천천히 다시 하면 된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그렇게 견디면서 같은 상황을 또 반복하니까 나중에는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못하겠다’가 아니라 ‘안 되면 조금 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시즌이 다가오며 박지수의 팀 합류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뛰지는 못해도 개막 때 선수단과 함께 할 수는 있지 않겠냐는 희망적인 전망도 있었지만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소문은 많았다. 특히 KB가 개막 직후 연패에 빠지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맞이하자 박지수의 복귀가 꾸준히 화두로 떠올랐다.

KB 측은 “팀 성적과 박지수의 복귀는 별개”라고 못을 박았지만 항상 새로운 정보(?)가 등장했다. 팀에 합류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개인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도 있었고, 웨이트는 꾸준히 하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11월 중순, 드디어 박지수의 거취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조금씩 나아지면서 병원이랑 구단이랑 상황을 조율하며 팀 합류 일정을 잡았어요. 팀에 복귀하기 한 1주일 전쯤부터 밖에서 볼을 만지기 시작했고요. 팀에서는 ‘들어와도 바로 운동에 합류하지는 말라’고 했어요. 선수들이랑 같이 밥 먹고, 카페도 가고, 산책도 하면서 생활만 일단 같이 시작하자는 거였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적응만 시작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저도 선수인데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휴가 때 1~2개월만 쉬어도 볼 감각이 사라지는데, 저는 4개월 반을 쉬었잖아요. 쉬는 동안 운동을 전혀 못했잖아요. 걷는 거 외엔 아무것도 안하다가 볼을 만지니까 너무 낯설었어요.”

복귀 후 선수단 적응은 순조로웠다.

“걱정이 많았죠. 같이 생활하다가 증상이 나타나고 팀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불안하기도 했어요. 농구 외적인 다른 이야기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었고요. 관심이 다시 쏠리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스럽고 불안했고요. 아무것도 못하고 쉬는 동안에도 내가 운동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내가 처한 상황은 정말 이해가 안 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복귀하고 팀 생활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정말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늘 있던 사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아무렇지 않게 관심을 안 가졌어요. ‘들어왔으니 언제 복귀할거냐’ 같은 흔한 말도 없었고, 정말 아무렇지 않은 보통의 하루하루 같았어요. 제가 팀에 없었던 지난 4달 이상의 시간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요. 동료들이랑 팀에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 준거죠. 그래서 더 빨리 적응이 됐던 것 같아요.”

KB 선수들은 비시즌에도 박지수의 공백을 채우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박지수에게 연락하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어떤 이유로든 연락을 하면 다시 박지수에게 부담과 압박을 줄까봐 일부러 한 배려였다. 어쩌다가 연락을 해도 농구 이야기나 복귀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단, 허예은은 예외였다. 허예은은 시즌 전, “모두가 그러고 있는데 나만 평소와 똑같이 계속 연락해서 언니를 귀찮게 하고 있다. 아무도 연락 안하면 언니가 서운하거나 심심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아... 정말... (허)예은이가 잘못 짚었네요.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는데... 진짜 예은이만 계속 연락하고 ‘언제 복귀하냐’고 대놓고 묻더라고요. 만날 영상통화를 걸어서는 찡찡대고 자기 힘들다고 울고 그러는 거예요. 아니... 나도 힘든데... 얘는 정말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더라고요.(웃음) 진짜 예은이 때문에 많이 웃었어요.”

“그런데 진짜 매일 전화가 오니까 귀찮아서 안 받은 적도 있거든요? 그러면 ‘이 언니 폰 하면서 전화 또 안 받네’라고 메시지를 보내더라고요. 나를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귀찮으니까 며칠에 한 번씩만 하라’고 하다가 그것도 귀찮아서 ‘대표팀 다녀올 때까지 딱 3번만 연락해”라고 했거든요. 정말 전화가 안 오는 거예요. 너무 안 해서 이번에는 제가 연락했어요. 매일 연락하던 애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하니까 신경 쓰이잖아요? 전화를 받더니 ’3번만 하라고 해서 아끼고 있었다‘더라고요. 밀당을 남자친구랑 해야 하는데 둘이 하고 있었던 거죠. 이래서 둘 다 남자친구가 없나 봐요.“

지난 시즌 팀의 주전 가드로 성장하며 ‘박지수를 가장 잘 아는 가드’가 된 허예은은 어느새 박지수의 친동생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뭔가 세상에 없는 친동생 같은 느낌이에요. 엄마도 예은이를 막둥이라고 부르세요. 엄마 입장에서는 우리 집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작고 귀여운 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게다가 예은이는 저랑 다르게 저희 엄마한테 참 잘해요. 말도 잘 듣고, 말도 착하게 하고... 그런데, 예은이도 정작 자기 엄마한테 하는 건 저랑 다르지 않던데요?”

사진 = 이현수 기자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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