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민재 기자 = 당대 최고의 공격수 알렌 아이버슨과 공수 양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케빈 가넷이 함께 뛰었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게임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날 뻔했다.

필라델피아 76ers의 빌리 킹 단장은 지난 8월 『The Vertical』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팬들의 시선을 끌 만한 아이버슨의 트레이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아이버슨은 1996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혔다. 지명 순위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잠재력은 뛰어났다. 183cm, 75kg으로 NBA 선수치고는 작은 신체조건을 지녔지만 코트 곳곳을 누비며 득점력을 뽐냈다.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명언을 남길 정도로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그는 래리 브라운 감독과 함께 NBA 파이널에 진출하는 등 역사적인 순간도 재현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버슨의 활약에도 필라델피아의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쳤다. 아이버슨은 2005-06시즌 커리어-하이 득점인 33.0점 7.4어시스트 1.9스틸 FG 44.7% 3P 32.3%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필라델피아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며 팀 운영에 문제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아이버슨의 수비, 경기 리딩, 자존심 문제 등 여러 이슈들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급기야 2006년 여름에는 아이버슨의 트레이드 루머가 터졌다. 아이버슨은 "76ers에 남을 것이다"며 의지를 보였으나 시즌이 시작하자 그는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킹 단장은 "당시 아이버슨이 가고 싶은 팀을 몇 개로 추렸다. 덴버 너게츠를 포함, LA 클리퍼스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있었다"고 밝혔다. 아이버슨이 먼저 미네소타를 언급한 것을 보면 가넷과 함께 뛰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모양.

당시 미네소타 사정은 좋지 않았다. 2004 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을 밟지 못했다. 아이버슨 입장에서는 가넷과 함께 미네소타를 플레이오프로 이끌고 싶었을 터. 그러나 아이버슨의 행선지를 덴버로 정해졌다. 당시 팀버울브스의 글렌 테일러 구단주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전적인 이유로 아이버슨을 트레이드하지 못한다"고 거절했다. 결국 아이버슨은 안드레 밀러, 조 스미스, 2007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2장의 대가로 덴버로 이적하게 되었다.

만약 두 선수가 만났다면 최고의 궁합을 보였을 것이다. 이미 가넷은 스테픈 마버리라는 공격적인 가드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었다. 따라서 아이버슨과의 궁합도 잘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특히 가넷은 공을 오래 들고 있지 않아도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어 볼 소유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을 터.

우려스러운 부분은 바로 '자존심'이다. 두 선수 모두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한 선수들. 경기에 대한 열정도 누구보다 뛰어난 이들이다. 따라서 팀 케미스트리 측면에서 서로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있긴 하다.

한편, 아이버슨은 덴버로 이적한 뒤 카멜로 앤써니와 화려한 득점력을 뽐내며 활약했다. 하지만 이도 얼마 가지 못했다. 2008-09시즌 트레이드를 통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디트로이트는 조직적인 농구를 주요 색깔로 가져가는 팀. 개인기가 뛰어난 아이버슨은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

시즌이 끝난 뒤 아이버슨은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계약을 맺고 다시 한번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구단과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친정팀 필라델피아로 안착했다. 마지막 시즌 그는 평균 13.8점 4.0어시스트 FG 43.0% 3P 36.0%를 남기고 NBA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아이버슨은 2010-11시즌 터키 리그로 날아가 1년간 활약했다. 터키 생활을 청산하고 NBA로 돌아올 것이란 추측이 이어졌으나 결국 그는 농구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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