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포인트가드에서 완벽한 지도자로...

13년 만에 출전한 올림픽 무대. 대한민국 여자 농구대표팀은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결과 그 이상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그 중심에는 선수들과 함께 호흡했던 전주원 전 감독이 있었다. 한국 하계올림픽 사상 구기 종목 최초의 여성 사령탑. 부담감도 있었지만 전주원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었다.

실력만큼 신뢰를 중요시하고, 성적보다 인성을 강조하는 진정한 지도자. 하지만 아직 본인은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하는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 그녀에게는 인생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농구를 주제로 이야기 하자니 말끝마다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미래보다는 오늘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본인을 ‘여우가 아닌 곰’이라 말하는 그녀. 대표팀 일정을 마치고 원래 자리인 우리은행의 코치로 다시 돌아온 ‘전설 전주원’과의 한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올림픽을 마치고
박지영(이하 ‘지영’): 다시 우리은행으로 복귀하셨네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전주원(이하 ‘주원’): 올림픽 때는 제가 감독으로 부담이 컸는데, 돌아오니까 (위성우)감독님이 계셔서 마음이 훨씬 편해요. 마음이 편하니 몸도 편한 것 같고요. 사실 대표팀에서는 몸보다는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도 힘들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영: 다녀오고 나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주원: 1승도 없이 3전 전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용을 보시고 응원을 해주시고 박수를 보내주신 것 자체가 정말 감사했어요. 예전에는 올림픽에 출전하면 메달을 꼭 따야하고, 메달도 색깔이 중요하다고 했었는데, 이번 올림픽은 메달을 넘어서 정말 열심히 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였어요. 팬들의 수준과 매너가 훨씬 더 성숙된 것 같고 결과 이전에 의미와 과정, 그리고 노력을 봐주시는 것 같아서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지영: 우리나라에서 여자 최초로 구기 종목 감독이 되었다는 것으로도 이슈가 많이 되었어요. 부담감은 없었나요?
주원: 그런 수식어가 앞에 붙지 않아도 국가대표 감독이란 자리는 책임감도 많고 부담감이 큰 자리예요. 그런데 대표팀 감독이 되고 그런 이야기도 들었을 때는 정말 부담감이 백배는 된 것 같아요. 출국하고 올림픽에 가서는 생각을 안 하려고 했죠. 그걸 생각하면 스스로 무거워지고, 경기에 집중을 못할 것 같아서 더 털어버리고 경기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지영: 돌이켜 보면 아쉬웠던 부분도 있을까요?
주원: 도쿄에 가기 전에는 모든 것이 물음표(?)였어요. 하지만 도착해서 두 번째 경기부터는 선수들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갖는 것이 느껴졌죠. 기술적인 것 보다 자신감을 갖고 마인드가 한 단계 성숙했다는 것! 상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보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모습이 플레이 속에 녹아나왔거든요. 팬들도 그걸 느껴서 박수를 쳐주셨던 것 같아요.

지영: 국제 무대경험을 먼저 해본 선배로서 선수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주원: 우선 올림픽 자체가 잘하는 팀만 나갈 수 있는 곳이잖아요. 아무나 나갈 수 없는 대회이기에, 메달과 관계없이 출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고, 다른 대회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그만큼 다른 팀들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집중력을 요구했어요. 어떤 특정한 연습을 시킬 때에는 선수들에게 ‘이유는 묻지 말고 따라와 달라’고 부탁했죠. 저나 이미선 코치는 올림픽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 대표팀에 뽑힌 우리 12명의 선수들 중에는 11명이 첫 올림픽이었어요. 경험이 있는 김정은 선수도 대표팀 막내로 올림픽을 경험했었고... 때문에 막연한 생각을 갖고 플레이를 하면, 머릿속이 하얘지기 마련이죠. 본인들의 역량만큼도 못 보여줄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주의하라고 강조했죠.

지영: 11명의 선수가 올림픽 경험이 전무했다고 하셨는데, 그만큼 감독으로서 어려움도 컸을 것 같아요.
주원: 그래서 일본에 가기 전까지 연습할 때는 “내가 이걸 왜 시키는지 가보면 알아”라며, 선수들이 잘하고 있어도 더 강하게 채찍질을 했죠. 어떤 변수가 나올 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오히려 가서는 편하게 풀어줬고요. 선수들이 저를 보고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요.(웃음)

지영: 확실한 메뉴얼을 주셨군요! 중간에서 이미선 코치가 많은 힘이 되었겠어요.
주원: 맞아요. 이미선 코치도 가교역할을 잘 해줬어요.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감독 전주원, 코치 전주원
지영:
코치와 감독은 어떤 게 다르던가요?
주원: 감독은 모든 걸 다 해야 해요.(웃음) 직접 몸으로 뛰면서 ‘일을 다 한다’는 표현보다는 정신적인 관리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선수관리부터 시작해서 경기 운영도 당연히 포함되겠죠. 코치는 한발 물러나서 훈수를 두는 사람이지만, 감독은 정말 ‘고수들만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감독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고수는커녕 초보였고, 첫 감독직을 맡고 나간 대회가 무려 올림픽이기 때문에 정말 부담이 컸죠.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코치와 감독의 경계선을 정의하자면, 감독은 진짜 말을 두는 사람, 코치는 훈수를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지영: 코치 생활을 오래하셨기 때문에 나름의 노하우도 있었을 것 같아요.
주원: 확실히 위성우 감독님의 영향이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비슷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감독님께서 “자신 있게 하라”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다 도와 주겠다”고 하셨어요. 가끔 궁금한 걸 여쭤보면 “네가 생각한 대로 하면 된다”고 하셨죠. 용기를 주신 거죠.

지영: 지도자 생활도 벌써 10년째인데, 선수를 지도할 때의 노하우는 뭔가요?
주원: 노하우라기보다, 저는 항상 선수들과 인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뢰가 없으면 선수들이 절 따라올 수도 없고, 제가 끌고 가려해도 잘 안 될 거예요. 신뢰가 뒷받침이 되어야 선수들과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지영: 이전에 다른 팀의 감독직도 거절하셨다고 들었는데, 언제쯤 같은 제안이 왔을 때, 겸허히 지휘봉을 드실 건가요?
주원: 저는 아직도 배울게 많고,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지영: 10년을 하셨는데요?
주원: 그럼요! 농구는 할 때도 어려웠지만, 가르치는 것도 정말 어려워요. 일단, 감독이든 코치든, 그 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열심히 제가 느끼고 배웠던 것을 선수들에게 전해주고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게 즐겁고요. 그리고 일단… 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10년치의 압박감을 다 느끼고 온 것 같아서…(웃음)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지영: ‘10년 차 코치 전주원’에 대해 중간평가를 해 보자면요?
주원: 저는 저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은 아니에요. 저는 선수 때나 지금이나 제가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하지만 열심히 하는 건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이번에도 제 나름대로 감독으로서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더 이상의 여력은 없을 정도로 말이죠. 이것밖에 안되고, 부족했다고 보인다면, 결국 제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경기 중에 나타난 부분이 많이 부족하고 그게 10~20%밖에 안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지도자
지영: ‘본인이 꿈꾸던 지도자’와 ‘지금의 나’ 사이에 간극이 있을까요?
주원: 그 판단은 제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100% 잘했다고 생각해도, 그걸 보고 받아들이는 쪽에서 생각이 다르다면 오히려 그쪽의 판단이 맞을 거예요. 결과적으로 저에게 배운 선수들이 생각하는 점수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지영: 흔히 한 분야의 레전드가 지도자가 되면 선수들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죠? 전주원 감독님도 ‘천재 포인트 가드’출신으로 그런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텐데요?
주원: 사람들이 저를 여우로 보는데, 전 곰이에요. 머리가 빨리빨리 도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곰처럼 플레이를 하는 스타일이었죠. 보통 스타플레이어에게는 주변의 기대치가 크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만족이나 충족도는 상대적으로 덜해요. 똑같은 결과를 내도, 스타 출신에게는 평가가 박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지도자가 되면서 “너는 왜 그러니? 왜 못하니?”라는 말은 최대한 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또 선수들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선수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이해를 해주자는 마인드를 끊임없이 되새기죠. 선수들의 눈높이를 항상 맞추려 노력해요.

지영: 그래서일까요? 선수 시절보다 지도자가 된 후, 더 많은 우승을 거뒀습니다.
주원: 좋은 감독님과 선수들을 만나서 그렇죠. 감독님이 99%의 역할을 하셨다면, 저는 1% 정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선수나 지도자나,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진다는 것 자체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고,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우승을 한다는 건 어떤 자리에 있는 것과 관계없이 굉장히 뜻 깊고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지영: 선수시절부터 지금까지, 반지가 총 몇 개죠?
주원: 15개..?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저에게는 아직도 다섯 개의 발가락이 남아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해요.(웃음) 예전에 10개를 채웠을 때는 주변에서 “손가락 다 채웠는데 이제 또 우승하면 반지 어디다 낄래?”라고 물어봤었는데, 그때도 “발가락 다 남아있다”고 했었어요. 이제 다섯개 남았네요.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영: 그래도 우승에 대한 욕심은 매년 있으시죠?
주원: 감독님도 저도 매년 얘기하지만, 우승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즌을 들어가진 않아요. 하루살이처럼 오늘에 충실한거지, ‘이번 시즌 우승’이라고 마음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 존쿠엘 존스 왔을 때... 한 10게임정도 하고 나서 ‘우리가 우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때 딱 한 번이었어요.

지영: 올 시즌은요?
주원: 우선은 4강 정도는 최선을 다해보려고 생각해요. 다른 팀들도 전력이 강해졌기 때문에 또 하루살이처럼 열심히 해야죠.

②편에 계속...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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