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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편에 이어...

지는 법을 몰랐던 학창시절
지영:
농구는 좋아서 시작하신 건가요?
주원: 저는 농구를 잘 몰랐는데, 아빠 손에 이끌려 시작했죠. 운동을 좋아하셨는데, 본인이 대리만족을 느끼셨어요. 아빠 회사 동기 딸이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했어요.

지영: 농구가 질렸던 적은 없었나요?
주원: 늘 힘들었지만 제 모교인 선일은 우승을 참 많이 했어요. 초등학교- 중3-고3 대회에서 한 번도 안 질 정도로 잘했던 학교였죠. 그래서 학생 때가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현대에 입단했는데 아무리 해도 우승을 못하니까 지치더라고요. 그러다가 오기가 생겼죠. 우승은 하고 그만둬야지!

지영: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해요.
주원: 운동하는 평범한 학생!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정말 정적인 아이였죠. 집에서 책 많이 보고, 집 밖에도 잘 안 나가고요. 의사가 꿈이었거든요. 해부하는 것도 좋아해서 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죠. 생물시간에 개구리, 붕어 해부할 때, 조별로 다 돌아다니면서 도와줄 정도였어요.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영: 이과 체질이었네요! 부모님께서 아까워했겠어요!
주원: 학교 선생님이 아쉬워하셨어요. ‘얘를 왜 운동 시키냐’고요. 당시만 해도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지 못했거든요. 공부에 소질이 없으면 운동을 하기도 했고요. 공부도 좀 하고 정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더 그러셨던 것 같아요.

지영: 어머니가 반대하셨을만한데요?
주원: 어머니는 제가 워낙 조용한 아이라서 ‘운동 해봤자 얼마나 가겠어. 저러다 말겠지’ 하셨대요. 아버지도 어머니 몰래 저를 농구 시키러 테스트에 데리고 가셨어요. 당시에 저는 키도 작고 농구도 잘하지 못하는 평범한 아이였는데, 제 고등학교 은사이신 황신철 선생님께서 성격을 보고 뽑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시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귤을 나눠줬는데 제가 “감사합니다!” 하면서 귤을 까서 먹더래요. 그 모습을 보고 저런 성격이면 운동도 잘하겠다 싶었다고 하셨는데, 전 기억도 안나요. 그냥 전 배고픔을 못 참는 아이였을 뿐인데...(웃음) 아마 배고파서 먹었을 거예요.

지영: 그때는 키가 작았다고요?
주원: 운동 시작 할 때, 12명 중에 제일 작았어요. 두 명이 제일 작았는데, 한 친구는 좀 말랐었고, 저는 통통해서 걔가 4번, 제가 5번을 맡았죠.

지영: 통통하셨다고요?
주원: 네. 운동하면서 빠졌어요. 키는 중학교 때, 1년에 12~13cm씩 쭉쭉 컸어요. 고1때까지 키가 크더라고요.

지영: 당시 농구의 가장 큰 매력이 뭐였었나요?
주원: 선일이 농구를 잘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시합 나가서 이기는 맛에 농구했었죠. 언니들도 나가면 이기고, 우리도 나가면 이기니까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쫓아 다녔던 것 같아요. 제가 곰같은 스타일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싫증이 나더라도 끝까지, 하지 말라고 할 때까지 해요. 나서서 뭘 하진 않지만 주어지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끈기가 있는 편이죠.

 

 

엄마로서의 전주원은 40점!
지영:
고2 딸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어떤 엄마인가요?
주원: 딸이 지금 한국에 없어요.(웃음) 본인이 가고 싶어 해서 미국으로 갔고, 홈스테이 하면서 혼자 알아서 잘 크고 있어요. 제가 방목형이에요.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거니까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얘기해요.

지영: 주변에 운동선수 2세들이 많잖아요. 특히 농구는 신체조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유전적인 요소도 비중이 크고요. 보통 자녀들이 운동에 먼저 관심을 갖던데, 농구를 시켜달라고 한 적은 없나요?
주원: 확실히 운동신경이 있긴 해요. 크게 관심이 없진 않아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제가 세뇌를 시켰어요. 선수는 하지 말라고. 취미활동은 언제든지 해도 되지만, 선수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었죠. 이 아이는 전주원의 딸로 사는 것 보다 본인의 이름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운동을 시작하면 잘하면 잘하는 대로 엄마의 후광이 있다고 얘기를 들을 것이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엄마와 비교를 당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담감을 주기 싫더라고요. 그냥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영: 너무 좋은 어머니세요! 선수, 코치, 감독, 엄마, 아내, 딸의 역할 중 가장 잘하는 것, 혹은 힘든 것은 뭐였나요?
주원: 글쎄요... 선수를 제일 잘했나? 선수랑 코치 역할은 비슷한 것 같고, 엄마와 아내 역할은 잘 못한 것 같아요. 딸로서 60점이라면, 아내와 엄마로서는 40점? 제가 애교가 없고, 살갑지도 않아요.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다른 것보다 엄마랑 여행을 많이 못 갔던 게 아쉽고요. 어릴 땐 부모님이 저를 데리고 가주신거고, 제가 크고 나서 부모님을 모시고 간 적이 없어서 그게 후회스러워요.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거든요.

지영: 반면 선수, 코치로서는 괜찮은 점수를 줬는데, 돌이켜보면 전주원은 어떤 선수였고 어떤 코치인가요?
주원: 우승도 많이 했고, 우리은행이라는 한 팀에 오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해요. 선수 때도 국가대표로 활약해보고, 우승도 해보고. 여러 가지를 다 경험해봤기 때문에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가정은 아직 ing!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직 점수를 매기긴 이르니까요.(웃음) 남편을 비롯해서 우리 가족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코치로 돌아온 새로운 시즌
지영:
남편 자랑 좀 해주세요!
주원: 남편이 훨씬 애교가 많고 자상해요. 이해심도 깊고 옆에서 서포트도 잘 해줬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영: 우리은행은 국가대표가 많아요. 올림픽에 3명이 갔고, 김소니아 선수는 루마니아 3X3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본인 포함 총 5명이 올림픽에 다녀왔네요. 다른 팀보다 많은 인원들이 대표팀에 차출 된 만큼, 복귀하고 적응하고 시즌을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
주원: 선수들이야 늘 하던 것이라 문제없어요. 저 역시 국가대표 코치 4년 하면서 늘 하던 일이었고요. 이제 여기 오니까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요. 올림픽 기간에 경기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도 많았지만 코로나 문제도 있고, 부상 등으로 선수들이 다칠까봐 걱정이 많았거든요. 저는 지금이 훨씬 편해요.

지영: 앞으로 전주원 코치님의 지도자로서의 행보도 궁금합니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고, 농구 인생의 어떤 미래를 꿈꾸고 계신가요?
주원: 어떤 미래가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지금도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거든요. 저는 일 하는 걸 좋아하니까 일은 계속 했으면 좋겠고... 제가 지금까지 배우고, 한 것이 농구이기 때문에 여자 농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든 열심히 하고 싶어요. 전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선수든, 팀이든, 우리 감독님이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요.

지영: 실제로 느꼈던 여자농구의 미래, 어떤 부분이 더 필요할까요?
주원: 그동안 우리 여자 농구는 올림픽 티켓을 따지 못했던 12년간의 ‘정체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 선수들이 첫 발을 내딛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선수들이 앞으로 좋은 경험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다음에 있을 올림픽,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 국민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해요. 지금 대표팀 감독이 된 정선민 감독도 잘 해낼거고요. 그걸 바탕으로 국내리그도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꿈이 큰가요?(웃음)

지영: 아니요! 대표팀 감독님이었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농구 선배 입장으로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주원: 프로 선수라면 운동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열심히, 또 잘해야겠지만, 본인의 상품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기력도 포함 되겠지만, 그만큼 인성과 행동도 중요합니다. 다른 종목에서도 이런 부분을 놓쳐서 운동생명에 지장이 있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일 수 있는 행동과 기술을 모두 갖춘 우리 여자농구 선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영: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리그의 활성화를 위해, 선수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주원: 우리나라가 여자농구 풀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도 기적이라고 얘기해요. 그만큼 선수들이 열심히 하고, 열정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여기서 안주하면 안돼요.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잘할 수 있으니 본인들의 능력을 믿고, 깨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이번 올림픽처럼 말이죠.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던 선수들도 국내리그에서, 어린 선수들은 박신자컵이나 퓨처스 리그에서, 목표치를 점점 높여 잡는다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역량도 그만큼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영: 다음 파리 올림픽은 이제 3년 남았습니다. 그때는 뭔가 더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도 보고 오셨을 것 같아요.
주원: 네! 우리선수들이 계속 경험을 쌓는다면 다음 대회에서는 더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주변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요. 선수들도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 올라갔으면 해요.

 

 

지영: 전주원에게 농구란 무엇인가요?
주원: 제 인생의 반이죠. 12살 때 시작해서 지금 50살이 되도록 농구를 하고 있으니... 아... 반 이상이네요? 인생 그 자체가 되어버렸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운동은 짧게 하고, 하고 싶은 걸 하자”고 생각했거든요. 대회에 나가서 성적을 내고, 나름 인정받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네요.(웃음)

지영: 국가대표 지휘봉까지... 어떻게 보면 꿈을 다 이루신 것 같아요?
주원: 다시 말하지만 전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더 열심히 운을 모으려고요. 하하.

지영: 앞으로의 목표는요?
주원: 저의 개인적인 목표보다, 그냥 여자농구가 다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예전처럼 인기도 많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지고, 국제대회에서도 선수들이 기를 펼 수 있게 관심도 높아졌으면 해요.

지영: 여자농구가 많은 사랑을 받을 때 코트를 누볐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더 씁쓸함이 있으실 것 같아요.
주원: 네. 선수들이 그런 관심과 사랑, 함성을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선수라면 그런 좋은 환경에서 경기를 해보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지금 있는 팬들도 경기장에 오시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서 너무 아쉬워요. 저 어릴 때는 경기 후에 버스 못 탈 정도로 팬들이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행복했거든요. 지금 선수들도 그런 걸 느껴봤으면 해요.

지영: 여자 농구인을 대표해서 팬들에게 당부의 한 말씀 해주세요.
주원: 저희가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이 있다 보니 예전만큼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부족하지만, 노력은 정말 많이 하고 있거든요. 특히 선수들에게는 팬들의 격려와 박수가 힘이 많이 됩니다. 이번 올림픽 때 모아주신 성원과 격려, 정말 감사했고, 대표팀에게 너무 큰 힘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선수들이나 저희 모두 열심히 노력할 테니 여자농구가 더 잘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사랑과 응원 꼭 부탁드립니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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