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승기 기자 = 2016 NBA 자유계약시장이 열리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 계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다음을 보자.

티모페이 모즈고프 X LA 레이커스
4년간 6,400만 달러

이안 마힌미 X 워싱턴 위저즈
4년간 6,400만 달러

존 루어 X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4년간 4,200만 달러


1990년대에 잠들었다가 지금 막 깨어난 냉동인간이라면, 위 선수들이야말로 분명 현 리그를 주름잡는 슈퍼스타들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현실은 다르다. 사실 이들은 리그에서 존재감이 매우 미미한 선수들이다. 심지어 모즈고프와 루어는 벤치 멤버 중에서도 중용받지 못한다. 하지만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거액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주전급 선수들은 물론, 많은 벤치 멤버들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게 됐다. NBA는 지금 경악을 금치 못할 극심한 연봉 인플레이션 현상을 겪고 있다.


★ 샐러리캡 폭등이 불러온 인플레이션

이 모든 것은 샐러리캡의 폭발적 증가가 불러온 나비효과다. 덕분에 수많은 억만장자가 탄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샐러리캡이 갑자기 폭등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NBA가 지난 2014년 새로운 TV 중계권 계약을 따낸 덕분이다. NBA는 ESPN, TNT와 무려 9년 간 240억 달러(약 28조 원)에 달하는 새로운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2015-16시즌을 끝으로 만료된 현행 중계권료는 연간 약 9억 3천만 달러. 그런데 2016-17시즌부터는 해마다 약 26억 6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중계권 수입을 얻게 된다. 즉, NBA가 기존의 세 배 가까운 중계 수익을 창출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현재 NBA 사무국은 BRI(Basketball Related Income, 농구관련수입) 총액의 약 51%에 해당하는 규모를 샐러리캡으로 책정하고 있다. 즉, 새로 따낸 천문학적 액수의 중계권 계약 덕분에 2016-17시즌부터 샐러리캡이 크게 상승하게 된 것이다.


 

 

★ 샐러리캡, 얼마나 늘었나

이제 곧 샐러리캡 1,000억 원 시대가 열린다. NBA 사무국은 3일(한국시간) "2016-17시즌 샐러리캡은 약 9,414만 달러"라고 공식 발표했다. 우리돈(1,080억 7,616만 원)으로 1,000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구단별 최소 샐러리 규정은 샐러리캡의 90%에 해당하는 약 8,473만 달러. 사치세 라인은 약 1억 1,328만 달러로, 한화 1,300억 5,347만 원에 달한다.

숫자만 봐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그렇다면 과연 NBA의 샐러리캡은 얼마나 증가했을까. 다음을 보자.

 

최근 10시즌의 샐러리캡 현황 = ⓒ basketball-reference.com

 

그간 우리가 익숙했던 샐러리캡은 보통 5,300 ~ 5,800만 달러 선이었다. 그런데 2014-15시즌 처음으로 6,000만 달러를 돌파했고, 2015-16시즌에는 7,000만 달러까지 상승해버렸다.

여기서 1차적으로 혼동이 왔다. 지난 2년 사이 NBA 구단들이 갑자기 FA에게 거액을 베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2015년 여름, 레지 잭슨이 5년간 8,000만 달러에 디트로이트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존 월이 "새로운 CBA 규정 덕분에 올스타가 아닌 선수들도 8,500만 달러 이상 받을 수 있게 됐다. 나와 레지 잭슨의 연봉이 같다"며 불만을 표했다. 월은 지난 2013년 5년간 8,000만 달러에 워싱턴 위저즈와 재계약한 바 있다.

월도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샐러리캡의 폭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연봉 증가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원래 갑작스러운 변화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차기 시즌 샐러리캡은 무려 9,414만 달러에 이른다. 여기서 2차 쇼크.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관점으로 샐러리캡과 연봉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 액수 말고 비율을 보자

6,000만 달러도 안 됐던 샐러리캡. 이제 9,400만 달러가 넘는다. 산술적으로 봐도 지난 몇 시즌에 비해 1.5배 이상 증가했다. 이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과거 디안드레 조던과 자베일 맥기가 연 평균 1,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냈을 때를 기억하는가. 2011년 겨울, 조던이 LA 클리퍼스와 4년간 4,300만 달러에 재계약하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15년 여름에는 트리스탄 탐슨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연 평균 1,65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이때도 모두가 캐벌리어스의 선택을 비판했다.

2011-12시즌의 샐러리캡은 약 5,800만 달러, 2016-17시즌은 9,414만 달러다. 샐러리캡이 1.5배 이상 늘어난 만큼, 조던에 비해 탐슨의 연봉도 1.5배 정도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과거였다면 모즈고프와 마힌미의 연봉 또한 1,000만 달러 선에서 맞춰졌을 거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루어의 연봉은 6~700만 달러 정도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의 계약들이 아예 말이 안 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과한 감은 있다. 하지만 시장 전체의 폭발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음을 감안해야 한다.

즉, 앞으로는 연봉 자체의 절대적 액수보다는 샐러리캡 내에서의 비중을 따지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1,000만 달러라고 해도, 과거에는 샐러리캡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이제는 9분의 1도 안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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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악성계약을 하게 되는가

자, 이제 선수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큰 연봉을 받게 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구단들은 왜 악성계약을 떠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주도권 때문이다. 과거에는 구단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면, 이제는 선수와 에이전트에게 칼자루가 넘어간 모양새다. 선수의 영향력, 이른바 '스타 파워'가 커지면서 생긴 변화다.

르브론 제임스와 케빈 듀란트 등 최전성기를 구가 중인 슈퍼스타 FA들의 가치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다. 이들의 이적에 따라 리그 판도가 바뀐다. 이들이 이적하면 다른 FA 영입도 쉬워진다. 즉, 메가스타 한 명이 곧 구단이나 마찬가지다.

많은 팀들은 대형 FA 영입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준비한다. 그래서 슈퍼스타들이 FA 시장에 나오는 시점에 맞춰 샐러리를 싹 비운다.

하지만 대형 FA는 몇 명으로 정해져있고, 이들이 갈 수 있는 팀도 정해져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팀들은 어떻게 될까?

쉬운 예를 들어보자. A라는 슈퍼스타를 영입하기 위해 B, C, D라는 팀들이 샐러리캡을 싹 비웠다. A가 B팀과 계약했다. 슈퍼스타를 영입하지 못한 C와 D는 샐리리캡이 남아돌게 된다.

리그에는 최소 샐러리 규정이라는 것이 있다. 각 구단들은 해당시즌 샐러리캡의 90%를 무조건, 반드시 소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무국에 막대한 벌금을 내야 한다. 그렇게 허무하게 돈을 쓰느니 어떻게든 선수를 영입하는 게 낫다.

미안하지만 레이커스의 예를 잠깐 들겠다. 자유계약시장이 열리기 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레이커스의 다음 시즌 확정 샐러리는 고작 2,300만 달러 선이었다. 샐러리캡까지는 무려 7,100만 달러(!)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지난 시즌 전체 샐러리캡(7,000만 달러)보다도 더 큰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다음 시즌 최소 샐러리(8,460만) 규정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거액의 베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 모즈고프에게 연 평균 1,600만 달러를 안겼다. 조던 클락슨에게 연 평균 1,250만 달러를 안겼다. 루올 뎅에게 연 평균 1,800만 달러를 안겼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계약들을 연달아 했는데도 아직도 2,500만 달러가량의 여유가 남았다. 심지어 최소 샐러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앞으로 반드시 1,500만 달러 정도를 더 써야 한다.

툭 터놓고 이야기해보자. 리그 최하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레이커스에 누가 가겠는가. 르브론? 듀란트? 화이트사이드? 아무도 안 온다. 필자가 FA라고 해도 안 간다. 독자 여러분도 안 간다. 그러니 당연히 돈이 남아돈다. 샐러리캡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거액을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현재 레이커스가 FA를 잡기 위해서는 악성계약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시장가치를 웃도는 오버페이와 장기계약, 이 두 가지 미끼를 던지지 않으면 그 어떤 FA도 레이커스를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게 현실이다. 다른 하위권 팀들 역시 마찬가지다. 괜히 필자까지 슬퍼진다.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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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아디다스

 

★ 사족 - 잘하니까 잘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NBA의 연봉 인플레이션 현상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대단히 생소하고 놀라운 광경이다.

그런데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 심지어 2017-18시즌 샐러리캡은 1억 700만 달러 선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한 번 더 늘어난다는 얘기. 이후에는 샐러리캡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전 세계에서 NBA만큼 돈 잘 버는 스포츠가 있을까.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프로농구와는 달리 미국프로농구는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고 있다. 덕분에 평균 10점짜리 선수들이 1,000만 달러씩 받을 수 있게 됐다. 대충 잡아 평균 1점당 100만 달러인 셈.

NBA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이유는 팬들을 기반으로한 소통형 마케팅을 펼치기 때문이다. 일단 경기력 자체가 담보되니 팬들이 재미있다며 좋아한다. 또, 최대한 팬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을 펼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로 팬들을 즐겁게 한다. 팬들의 지갑이 자연스레 열린다. 리그의 인기가 올라가니 TV 중계도 알아서 붙는다.

KBL도 돈 벌고 싶다면 NBA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팬들의 목소리를 듣고 수시로 소통해야 한다. 팬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리그는 존재가치가 없다. 귀 닫고 문 닫은 채, 회의실에서만 결정해서는 안 된다. 선수들은 평균 1점당 1억씩 벌지만, 리그는 주린 배를 움켜쥐는 상황을 반복하기 싫다면 말이다.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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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아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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