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함백산. 주봉 태백산을 비롯해 금강산, 오대산, 설악산과 함께 태백산맥을 구성하는 고봉. 그중 해발 1,330m 자락에 자리 잡은 만항재 고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산용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절경이다. 또한 이곳 만항재는 대한민국에서 차량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로도 유명한데, 놀랍게도 여기 <루키더바스켓>에는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만항재에 도달한 기자가 있다고 한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아닌 밤중에 태백행

첫 번째 현장 학습이었던 부천 KEB하나은행과의 삼천포 전지훈련은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트랙훈련과 서킷 트레이닝을 통해 현재 내 체력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인지할 수 있었고,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헬스장에 등록해 꾸준히 운동도 했다. 

두 번째 현장 학습 일정은 꽤 일찍 정해졌다. “삼천포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왔으니, 두 번째는 산의 정기를 마시고 오라”는 편집장의 지시에 따라 청주 KB스타즈의 태백 전지훈련을 함께하기로 했다. 

구단에 일정을 문의하니 관계자는 “7월 5일부터 17일까지 훈련이 진행되며, 그중 백미는 훈련 마지막 날인 16일 계획된 11km 산악 마라톤”이라고 귀띔했다. 데스크에 온갖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일정을 앞당겨 잡아 보려고 했지만, ‘다른 기사는 몰라도 <현장 학습>만큼은 자극적일수록 좋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결국 훈련은 15일부터 16일까지 1박 2일로 결정됐다.

출발부터가 고비였다. 

훈련 전날 저녁 태백에 도착해 2박 3일을 머물고 오는 것이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일정이었지만, 회사는 비용과 인력을 절감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출발해 아침 8시에 태백에 도착, 곧바로 오전 훈련에 돌입하는 기가 막힌 1박 2일 일정을 고안해냈다. 

이동 수단은 역시 지난 삼천포 때와 마찬가지로 편집장의 승용차. 새벽 4시에 졸린 눈을 비비며 차에 타자 그는 “오늘은 훈련도 해야 하니 자면서 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붙이려는 찰나, “나는 너희들 기사 손보느라 밤새고 나왔다”고 덧붙인다. 밤을 새고 새벽 4시에 태백까지 운전.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결국 뜬눈으로 조수석을 지켜야만 했다. 그래도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덕분에 가는 길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동이 튼 6시쯤에는 휴게소에 들러 장터국밥을 한 그릇 시켜 배를 든든히 채웠다. 후식으로 소시지와 함께 커피 한잔까지 곁들이며 기분 좋게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 적절한 포만감, 뻥 뚫린 도로. 이번 훈련은 뭔가 예감이 좋다. 

두 번째 서킷 트레이닝

1일 차 훈련은 오전에 서킷 트레이닝과 농구를 하고 오후에는 펑셔널 트레이닝과 달리기를 하는 일정으로 짜여 있었다. 서킷 트레이닝이 준비된 체육관에 도착해 안덕수 감독과 코치진, 선수단과 인사를 나눴다. 

지난 하나은행 현장 학습 때 옆에서 훈련을 도와줬던 제1호 ‘훈련친구’ 김지영에 이어 KB의 훈련친구는 2년 차 가드 박주희로 정해졌다. 박주희와 함께 몸을 풀며 서킷 트레이닝을 준비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은행 때보다 코스가 훨씬 적다. 하나은행은 19개 종류의 코스를 총 3세트 반복했는데, KB는 그 절반 정도의 코스를 2세트만 반복하면 됐다. KB는 애초에 하나은행과 달리 서킷 트레이닝은 30분 정도로 짧게 진행하고, 그 뒤 이어지는 농구가 메인 훈련이었다. 

‘팀 훈련으로 진행되는 농구는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서킷 트레이닝 2세트가 진행되는 30분만 잘 버티면 되겠구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서킷 트레이닝의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리자마자 나는 계획이 한참 어긋났다는 것을 알았다. 종류가 얼마 없는 만큼, 코스마다 코치와 트레이너가 한 명씩 붙어있었다. 코치의 눈을 피해 잠깐이나마 요령을 피울 수 있었던 지난 삼천포 훈련과 사뭇 다른 상황. 게다가 KB의 코치진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안덕수 감독을 비롯해 진경석 코치, 이영현 코치, 정미란 코치까지 무려 네 명의 코치가 눈에 불을 켜고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트레이너는 생략한다. 한국인도 모자라 일본인 트레이너까지 있다.

밀착 마크의 힘은 무서웠다. 코치진과 트레이너들은 훈련 중 조금이라도 힘이 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면, 친절하게 직접 몸을 잡아주면서 ‘더 힘든’ 자세로 교정해줬다. 그렇게 코치와 트레이너의 과분한 관심 속에서 한 세트를 마치고 나니,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속이 매스꺼워졌다. 휴게소에서 먹은 장터국밥이 속에서 역류했다. 어쩐지 맛있게 잘 들어가더라니. 

그러나 이미 호각 소리와 함께 서킷 트레이닝은 2세트에 돌입했다. 

다른 코스들은 어떻게든 버텨냈는데, 정미란 코치가 버티고 있던 ‘스프린트 위드 레지스턴스(sprint with resistance)’ 코스가 문제였다. 선수들은 ‘스프린트’라고 줄여 부르는 이 코스는 허리춤에 줄을 묶고, 스태프가 뒤에서 줄을 잡아당기면 반대로 차고 나가는 훈련이다. 훈련친구 박주희는 “스프린트는 차고 나가는 힘과 코어 근육 발달에 도움을 준다”면서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훈련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미란 코치가 허리에 줄을 묶어 주는데, 곧바로 신호가 왔다.

“코치님 잠시만요. 저 속이 너무 안 좋습니다. 아무래도 구토가….” 

정 코치가 친절하게 웃으며 말을 끊었다.

“그냥 여기에 하셔도 됩니다.” 

... 악마를 보았다.

선수 시절에는 사람 참 좋아 보였는데…. 줄의 저항과 역류하는 장터국밥, 그리고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줄을 잡아당기는 정 코치의 인력(引力)까지. 스프린트는 정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포의 훈련이었다.

어쨌든 정 코치의 훈훈한 격려(?) 덕분에 나는 스프린트에 이어 배틀 로프 코스까지 마치며 2세트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훈련 종료를 알리는 호각 소리와 함께 곧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속을 비워내야 했지만, 이번 서킷 트레이닝 역시 낙오 없이 완주했다는 사실에 흡족했다.

치욕의 농구 훈련

나는 농구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한 번도 농구를 해본 적 없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축구와 야구는 지금도 간간이 하고 있지만, 농구는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레이업 시험을 본 것이 전부다. 

하나은행의 청라 숙소에서 진행된 WKBL 기자단 농구대회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이슬에게 “공만 보고 따라다니는 바둑이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를 들은 편집장이 “1년 안에 바둑이를 기자단 농구대회 MVP로 만들겠다”고 소리 친 것이 이 코너의 시작이었다.

아무튼 농구 경험이 없는 탓에 지난 하나은행 현장 학습 때도 서킷 트레이닝과 달리기 등 체력 훈련만 소화하고, 농구 훈련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혹시나 선수들에게 방해될까 싶어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안덕수 KB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이곳에 온 순간, 우리는 원 팀(one team)”이라며 전술 훈련이 아닌 레이업이나 점프슛, 자유투 등 기초적인 훈련은 함께 참여하라고 했다. 감독의 지시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훈련이 시작됐고, 일렬로 줄을 서서 차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데, 스프린트 훈련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식은땀이 흐른다. 

결과는 처참했다. 오른손 레이업, 왼손 레이업, 점프슛, 자유투 모조리 실패했다. 많이 던지다 보면 요행으로라도 하나쯤은 들어갈 법한데, 골은 커녕 림도 안 맞는 경우가 허다했다. 부끄러웠다. 곁에 있던 훈련친구 박주희는 물론 최고참 염윤아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이영현 코치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원 기자님, 저녁에 쉬시죠? 농구 좀 배워야겠다...” 

예정에 없던 저녁 훈련이 생겼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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