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지난 달 24일부터 31일까지, 강원도 속초에서는 2019 KB국민은행 박신자컵 서머리그(이하 ‘박신자컵’)가 펼쳐졌다. 

당초 박신자컵은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인 박신자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유망주의 성장과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 ‘제2의 박신자’를 배출하고자하는 목적으로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박신자컵은 대회를 거듭하면서 정체성과 관련하여 이견이 존재하기도 했다. 

우선,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대회’라는 취지 자체가 시즌 중에 열리는 퓨처스리그와 변별력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선수 기용폭이 퓨처스리그보다는 넓어서 정규리그가 1군, 퓨처스리그가 2군이라면 박신자컵은 1.5군이 뛴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나이 제한과 1.5군이라는 분류를 통해 출전 선수의 차이를 두는 것이 큰 의미를 갖기는 힘들었다. 

따라서 각 구단마다 박신자컵을 대하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밝혀진 목적대로 어린 선수들에게 출전 시간을 할애하는 구단도 있었고, 주요 식스맨급 자원들을 실험하는 구단도 있었으며, 정규리그를 앞두고 주요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가 우선인 구단도 있었다. 선수들의 부상과 대표 차출로 인해 가용 인원만 어쩔 수 없이 가동하는 구단도 있었다. 

또한 대한민국 여자농구에서 박신자 선생이 갖는 상징성과 관련한 지적도 이어졌다.

'박신자'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여자농구 역사에서 언급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이름이다.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이끌었고, 동양인 최초로 세계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박신자 선생의 이름 아래서 열리는 대회의 목적이 오롯이 신인 발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면, 그 대회의 권위가 너무 약해진다는 주장이다. 정규리그가 당연히 중심이 되야 하지만, 이름이 갖는 상징성에 맞는 대회 권위의 강화도 꾸준히 요구됐다.

규모와 내용에서 성장한 대회
WKBL에서는 다섯 번째를 맞이한 이번 대회를 통해 커다란 변화를 시도했다. 예년과 달리 WKBL 6개 구단을 비롯해 일본 2팀, 대만 1팀, 인도네시아 국가대표를 초청해 총 10개 팀이 승부를 펼치는 국제대회로의 변화를 모색한 것이다.

하지만 대회 개막 전 큰 암초를 만났다. 당초 WKBL은 일본의 덴소와 미쓰비시를 초청하기로 하고 일정을 확정했지만 한일관계의 악화로 인해 이 계획을 취소했고, 일본팀이 참여하지 않게 되자 대만팀도 참가에 난색을 표했다.

WKBL은 이들을 대신해 대학선발, 그리고 국내 실업 최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천시청을 초청했고, 프로 6개팀과 인도네시아 국가대표까지 총 9개 팀이 2개조로 나뉘어 리그 앤드 토너먼트 형식으로 대회를 치렀다.

결론적으로 김천시청과 대학선발의 박신자컵 참여는 상당한 전기를 마련했고,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의미를 더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선발의 경우, 게임을 뛰는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2019-2020 WKBL 신입선수선발회에 지원할 선수들이다. 각 구단과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얻었다.

대학 선수들의 경우 WKBL 입성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교 졸업 후 우수한 자원들은 대부분 WKBL로 직행하고, 여기에 미치지 못한 선수들이 대학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생활을 통해 성장을 해서 다시 WKBL의 문을 두드린 선수들도 있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대학 지도자들은 꾸준히 “우리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지만, 프로의 선택은 냉정했다.

이는 대학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였던 선수들이 WKBL의 부름을 받은 뒤에도 고교 졸업생들보다 앞서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공사례는 차치하고, 팀 내에서 적응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보였다.

오히려 '나이는 많고 기량은 미치지 못하는 후배'가 들어오면서 팀 분위기가 흔들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각 구단은 대학 출신 선수를 뽑는 것에 대한 주저함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의 반복은 대학 선수들에 대해 프로 관계자들이 ‘기량 미달’과 ‘훈련량 부족’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근거가 됐다. 대학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고, 몇몇 구단은 대학 선수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프로의 시선이 조금은 바뀌었다.

대학선발은 이번 대회에서 4경기를 모두 패했다. 객관적인 전력도 가장 열세였고, 경험도 부족했다. 게다가 MBC배 대학농구대회를 치르자마자 급조되어 구성된 팀이었다. 하지만 선수들 스스로도 이번 대회가 자신들을 프로 관계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잘 알고 있었고, 간절함과 절실함을 보여줬다.

이들이 프로와 직접 맞서는 모습을 보며 이들의 경쟁력이 프로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여부를 프로 관계자들이 유추가 아닌 실증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WKBL의 몇몇 감독과 코치들은 “기대 이상의 수확이 있었다”며, 특정 선수 몇 명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대학 선수들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대학리그에 대한 관심도는 물론, 드래프트 순위 변동의 가능성도 던져 주었다.

실업팀인 김천시청의 참가도 의미가 있다. 

김천시청은 이번 대회 A조 예선에서 프로팀 삼성생명을 꺾었다. 순위결정전에서는 대학선발에게도 이겼고, 신한은행을 제압하고 올라온 인도네시아 국가대표에게도 승리를 거두며 대회를 5위로 마쳤다.

현재 국내 실업팀의 선수 구성을 보면 국가대표를 지낸 은퇴한 프로 선수들이나, 프로를 짧게 거쳐 간 은퇴 선수들 또는 임의탈퇴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김천시청에는 WKBL 현역시절 3점슛 관련 개인상을 3번이나 수상했던 김경희(전 금호생명)를 비롯해 187cm의 장신 센터 이정현(전 KDB생명), 정아름(전 삼성생명), 홍보람(전 우리은행), 김수진(전 KB) 등 프로 출신들이 주축으로 뛰고 있다. ‘WKBL GREAT12’에도 선정됐던 ‘총알낭자’ 김영옥(전 KB)도 김천시청 소속이지만 발목 부상으로 이번 대회에는 참가를 못했다.

김천시청 외에도 사천시청에는 이은혜, 박태은(이상 전 우리은행), 곽주영(전 신한은행) 등이 있고, 대구시청에는 진미정(전 신한은행), 허윤자(전 삼성생명), 진신혜(전 하나은행), 김은경(전 우리은행), 조은주(전 KDB생명)가 뛰고 있다.

농구 팬들에게는 이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흥미가 유발 될 수 있다. 특히 이미 결혼 해 아이도 키우고 있는 40대 이상의 은퇴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건재하게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농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현업 프로 선수들에게도 상당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경험이 부족했던 어린 선수들도 프로에서 성공을 하지 못하고 팀을 나왔더라도, 그 전에는 못 보던 긍정적인 모습들을 보여 주면서 다시 프로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선발과 실업팀의 참여는 외부의 관심도를 높이는 효과와 WKBL 구단들이 전력 강화를 모색할 수 있는 목적을 모두 도모할 수 있다.

2013년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대학팀과 실업팀이 대거 참가해 프로팀과 승부를 겨뤘던 챌린지컵 당시에는 무게중심이 너무 프로에 집중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과 실업에서도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이들이 함께한 대회에 대해 프로 지도자들의 평가도 높은 만큼 내년에는 실업리그 상위 팀의 참가를 늘리는 방안과 더불어 신입 선수 선발회에 지원할 예정인 고3 선수들도 대학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참가의 기회를 주는 것을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고 가정하면 대회 기간을 늘려야 하고, 게임 스케줄, 조별 구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올 해는 9개 팀이 2개조로 나뉘어 조별 리그를 치렀는데, 스케줄이 상당히 빡빡했다. 3경기 또는 4경기를 쉬지 않고 치른 팀도 있었다. 어떤 팀은 대회 도중 3일 동안 경기가 없기도 했다. 빡빡한 경기 일정은 체력 부담으로 이어지고 이는 선수들의 부상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경기가 열리는 것도 좋지만, 일정을 계획하는 데에 조금 더 심혈을 기울여 이러한 부분까지 다음 대회에서는 조금 더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유니폼의 변화
이번 박신자컵에서 WKBL 6개 구단 선수들은 기존과는 달리 똑같은 콘셉트의 유니폼을 착용했다.

상의는 타이트해지고, 하의는 짧아졌다. 같은 디자인에 각 구단 고유의 색상과 앰블럼이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이는 WKBL 박정은 경기운영부장의 디자인으로 이번 컵 대회 이벤트로 연맹에서 각 구단에 배포해 주었다. 

그간 선수들은 다소 헐렁한 유니폼의 하의가 땀이 나면 엉기면서 상당히 불편해 했다. 경기 중 타이즈 안으로 바지를 말아 넣기도 했고, 상의 또한 어깨 부분을 이너웨어 안으로 말아 얇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러한 것들이 시각적으로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이번 박신자컵에서의 유니폼은 선수들의 활동을 편하게 해 주었을 뿐더러 선수들을 더 크고, 날렵해 보이게 해 주는 효과도 있었다. 

세계적인 추세를 볼 때도 박신자컵에서 선보인 유니폼은 선수들이나 팬들에게 분명 더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는 요소였다.

유니폼에 관한 부분은 WKBL과 박정은 부장이 이번 비시즌 3X3 트리플잼에서부터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인데, 선수들이 기량 향상과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처럼, 행정과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팬들에게 더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이 충분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최지와 시설에 대한 아쉬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대회가 열렸던 속초시 실내체육관의 시설이었다. 

박신자컵은 7일간 경기가 치러졌고, 이 중 5일은 3경기, 2일은 4경기가 열렸다. 경기장에 상주하는 진행요원들과 기자들, 그리고 농구팬의 경우 한번 경기장을 찾으면 최소 6시간 정도를 머문다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치 않은 냉방 시설은 문제였다. 관중석에는 특별한 냉방장치가 되어있지 않아 덥다는 불평이 상당했다. 경기장에 모기가 너무 많아 경기 요원들은 경기가 중단될 때나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모기약을 뿌려야 했다.

전광판 역시 대회를 치르는 데에 적합하지 않았다. 체육관 전체에서 전광판을 볼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경기를 보다가 점수를 확인하기 위해 위치를 옮기는 이들이 많았고, 경기를 중계할 때도 점수 확인을 위해서는 등을 돌려 전광판을 봐야했다. 

경기력과 직결되는 코트의 상태도 좋은 상태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선수들의 발이 밀리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나왔고, 실제로 선수들도 코트가 미끄럽다는 말을 했다.

속초시는 지리적인 위치 상 기존의 여자농구 팬들이 찾기에 쉬운 곳은 아니다. 게다가 속초에서만 3번 개최된 박신자컵이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이번 대회 기간은 휴식일 포함 8일간이었고, 유소녀캠프까지 포함하면 거의 두주간 WKBL은 속초로 중심을 이동해 있었다. 하지만 속초 시내에서는 대회와 관련한 홍보 현수막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대회 기간 중 시 관계자가 경기장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내년에는 개최지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속초에서 다시 대회를 열게 된다면 적어도 체육관 시설 보수와 대회 홍보에 대한 속초시의 노력 부분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 것으로 보인다.

변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며 5회째 대회를 마친 박신자컵이 내년에는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서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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