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편집부/박지영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①편에 이어...

/오빠 경은
박지영(이하 ‘지영’): 감독님은 어떤 선수셨나요?
문경은(이하 ‘경은’): 저는 뭐. 감독님들이 다들 좋아하셨죠. 하하하! 감독님들이 깜짝깜짝 놀랐죠. 아웃 넘버 상황일 때, 골밑 슛이나 레이업을 쏴야 되는데, 갑자기 느닷없이 3점슛을 막 던져대니까요. 어디로 튈지 몰랐어요. 그래도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에(웃음) 많이 좋아해 주셨어요. 유재학 감독님도 저를 많이 좋아해주셨죠. 그래서 삼성을 떠난 이유도 있어요.

지영: 그래서 떠나셨다고요?
경은: 아마추어 때 삼성에 스카우트되면서 지도자까지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삼성은 정말 내 집 같은 팀이었어요. 사실 안 옮기는 게 맞죠. 당시엔 대부분 35살 정도에 은퇴를 했기 때문에 ‘딱 5년 정도만 내 스타일에 맞는 팀에 가서 뛰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어요. 마침 그때 우승도 했었고요... 김동광 감독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는데 사정을 했어요. 유재학 감독님도 정말 저를 원하셨거든요. 그런 것들이 안 맞았으면 못 갔을 것 같아요. 

지영: 아! 감독님이 현역시절에 덩크도 하셨다면서요?
경은: 덩크 콘테스트에서 1등한 적도 있어요. 그것도 몰랐어요? 심지어 고대랑 경기 때 리버스 덩크를 했는데? 아니! 좀 찾아보고 오셔야지!!! 준비가 너무 부족하시네! 유튜브만 찾아봐도 많이 나올텐데!!! 
지영: 죄송합니다... 저는 당연히 3점 슈터였으니까...

그리고 찾아본 당시 영상. 문경은 감독은 포지션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가볍게,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리버스 덩크를 성공시켰다. 내가 당시 농구 팬이었다면 주저 없이 문경은 플랜카드를 만들었으리라.

경은: 원맨 속공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노기석 선수가 수비한다고 파울 하려고 뒤따라서 전력질주 하고 있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때 뒤로 덩크하려고 딱 뒤로 돌아서니까 따라오는 수비수랑 눈이 마주치잖아요. (노)기석이가 ‘이게 뭐야’하는 표정으로 깜짝 놀라더라고요.(웃음) 와서 잘라야 되는데 갑자기 제가 휙 돌아서 자기를 보니까 놀랐나봐요.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지영: 영상을 보니까 정말 확 와 닿네요! 
경은: 2학년 올라가면서 인기가 더 좋아졌어요. 체육관에서 거의 문경은 플랜카드 밖에 안보였죠. 그런데 1학년에 이상민이라는 선수가 들어오더라고요. 내 팬이 100명이라고 가정하면 50명을 스윽 가져가더라고요. 이상민이 나쁜거죠. 아니, 자기 팬을 생성해야지, 왜 내 팬을 뺏어가??

지영: 아~ 상민 오빠의 탄생이군요!
경은: 그렇죠. 3학년에 올라가니까 이번에는 우지원이랑 김훈이 들어와서 50밖에 안 남은 제 팬을 또 가져가는 거에요! 한 25정도! 그 와중에 이상민이는 자기 팬을 그대로 지키더라고요. 4학년이 되니까 서장훈이 들어왔는데, 다행히 얘는 팬을 뺏어가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가판에 깔리는 스포츠 신문 1면에서 ‘람보슈터’가 사라지고 ‘괴물센터’가 다 올라오더라고요. 나중에는 독수리 5형제 쪽으로 제가 기대야 되는 판국까지 되어 버렸어요. 

지영: 이성에게는 누가 제일 인기가 많았나요?
경은: 글쎄... 다들 생각이 다르겠죠. 그런데... (한숨) 기본적으로 농구에서 오빠 부대, 뭐 이런 팬이라는 문화를 처음 만든 게...

지영: 푸하하하!  
경은: 아니... 최희암 감독님도 인정한 부분이에요! 오빠부대의 큰오빠 아닙니까. 제가!

지영: 감독님이 생각하는 본인의 인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경은: 제가 90학번인데 당시만 해도 운동선수들의 이미지는 시커멓고 강렬하게 생겼었거든요. 그런데 농구 선수라는 놈이 하얗지, 당시엔 얼굴도 작았어요. 쌍커풀 있지. 그래서 인기가 많았던 것 아닐까요?

지영: 아, 비결은 외모였군요? 당시 연세대와 고려대의 인기는...
경은: 에이. 고대가 거기 왜 들어와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뭐, 이마 네모난 애들은 그런 쪽이 아니죠!

지영: (웃음)아니... 이마가 네모나다니요... 
경은: 뭐... 다들 실력도 있었잖아요!(웃음) 저는 중학교 2학년 올라갈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것 같아요! 당시 키가 178-180cm 정도 였는데, 그만한 애들이 다들 센터 볼 때, 저는 3번 포지션을 봤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3점슛 라인이라는 게 생겼거든요. 처음에 이게 뭔가 해서 물어봤더니 코치 선생님이 이제 룰이 바뀌었는데 너무 머니까 신경 쓰지 말고 들어와서 던지라고 했었죠.(웃음) 그때 한번 던져 봤는데 잘 들어가는 거예요! 

지영: 잘생긴 람보슈터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었네요!
경은: 하하하. 당시 제가 키도 크고 다들 빡빡 머리할 때 머리도 길게 길렀었거든요. 저희 학교는 교복도 안 입어서 사복을 입었고요. 용산고 다니던 김승기(KGC인삼공사 감독)나, 김재훈(전 모비스 코치)은 중학교 때부터 어깨도 장난 아니고 겨드랑이에 털도 다 나서 완전히 아저씨 같았거든요. 

지영: 팬들에게는 어떤 오빠였나요?
경은: 재밌고 유쾌한 오빠였어요. 팬들과의 소통도 많이 하고요. 저 없을 때 팬들이 집에 오면 저희 아버지도 팬들한테 잘해주셨고요.

지영: 이상민 감독님과 정반대였네요? 
경은: (이)상민이는 베일에 가려진 남자였죠. 

지영: 인기가 너무 많아서 연애도 힘들었겠어요.
경은: 집사람은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농구에는 관심이 없어서 저란 사람을 몰랐대요. 졸업하고 스키장 갔다가 만났어요.

지영: 설마... 놀러가서 헌팅하신 겁니까?
경은: 설마는 무슨... 맞아요!(웃음) 상무 때였어요. 25살인가 26살? 당시 휴가를 나올 수 가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운이 좋게 2월1일인가 처음으로 프로농구가 출범한다고 농구대잔치가 일찍 끝나버린 거죠! 준우승을 하고 일주일 휴가를 받았어요. 평생 겨울 휴가를 받을 일이 없었는데, 얼마나 신나요! 상무 동기들이랑 스키타러 갔죠. 옷 하나도 없이 빌려주는 줄만 알고 갔다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목장갑 끼고 리프트를 탔는데 스키를 탈줄 모르니 슬로프 위에 앉아서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고민도 했고요. 우여곡절 끝에 스키를 타고 저녁에 콘도 로비에서 서성이다가 집사람 무리를 만났죠.(웃음)

지영: 팬들이 격노했겠어요!
경은: 집사람이 레슨으로 차를 뽑아서 기념으로 같이 여행을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는데, 차에 타기 직전에 수학여행 버스에서 여고생들이 내리는 거예요. 누구 한명이 “문경은이다!”라고 하니까 우르르 몰려오더라고요. 잽싸게 차에 탔는데 학생들이 차에 둘러싸서 문 두드리고 난리가 났어요. 나중에 보니까 새 차가 이리저리 다 찌그러져 있더라고요.

/전설의 람보슈터
지영: 3점슛은 1669개로 프로통산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기록을 깰 수 있을까요? 
경은: 사실 방성윤 선수가 가장 가능해 보였어요. 그런데 현재는... 음. 불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지영: 현재 람보슈터의 계보를 이을 만한 슈터가 있을까요?
경은: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사실, 그것도 방성윤이면 가능할 것 같았는데 좀 아쉽죠. 슈터들의 기량이 예전에 못미치는 것도 사실인데, 지금은 외국선수에 대한 비중이 워낙 높아서 슈터가 부각되기 더 어려운 조건이기도 해요. 

지영: 감독님은 노력파보단 타고나신 것 같아요.
경은: 그럴리가요! 저의 노력이 폄하된 것 같네요!(웃음) 사실 타고난 감각이 중요하긴 해요. 저도 분명 그런 게 있고요. 그런데 저는 농구가 너무 재밌어서 학창시절에 꺼진 불 빛에서도 슛을 쐈어요. 당시는 힘든 걸 몰랐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무빙슛을 하루에 1000개씩 던지곤 했습니다. 대학 때 했던 그 수많은 연습이 나중엔 진정으로 내 것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수많은 슈팅 연습과 천재성이 조금(?) 포함되지 않았을까 해요.(웃음)

지영: 타고난 슈터였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요?
경은: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니까요. 슈터는 분명 타고난 슛 감각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타고난 천재성을 발현시켜주는 건 연습입니다. 어느 포지션, 어느 종목,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엄청난 노력없이는 아무것도 안돼요.

지영: 그래도 독보적으로 뛰어나면 스스로 훈련에 집중하기에 어려운 점도 있지 않나요? 아무래도 경쟁자도 필요하고...
경은: 제가 대학교 때도 정말 훈련을 많이 해서, ‘정말 슛 하나만큼은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 했거든요. 그런데 삼성에 딱 들어가니까 (김)현준(전 삼성 코치)이 형이 있는 거야... 와... 정말 그 형 슛은 말이 안 되는 슛이었어요. 연습 때 남들은 슛 몇 개가 들어갔는지를 세는데, 이 형은 안들어간 걸 세요. 안 들어가는 슛도 림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슛이고. 옆에서 볼 때 ‘아, 이건 빗나갔다‘싶은 슛에 하나도 없어요. 던질 때 보면 그냥 다 들어갈 것 같죠. 그런데 제가 열심히 안 할 수 있겠어요? ‘김현준 만큼 던진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연습했죠.

지영: 람보슈터가 말하는 슈터의 조건은 뭔가요?
경은: 앞에 말한 타고난 재능과 수많은 연습은 기본이고, 체력도 갖춰야 해요. 일단 수비를 떨어뜨려야하니까요. 힘들게 뛰어와서 슛을 하기 직전에 호흡이 안 되면 슛이 흔들려요. 그게 바로 체력입니다. 그냥 뛰는 건 아무나 다하죠. 또 슈터는 가드들이 주는 공도 한계가 있고 집중 견제를 받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를 이용해 2대2플레이를 할 줄 아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감독인생
지영: 이제 감독으로써 9번째 시즌인데 감회가 어떠신가요?
경은: 저는 감독대행 시절부터 항상 선수들에게 ‘즐겁게 일하자’가 가장 먼저라고 강조했어요. 일요일 쉬고 월요일이 됐을 때 ‘아 운동 또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죠. 서로 운동이 즐겁고, 보고 싶어야 능률도 오르고, 농구도 잘 되는 거니까요!

지영: 농구철학이 확실해 보이세요!
경은: 네. 첫 번째는 즐겁게 일하는 거고, 두 번째는 ‘잦은 트레이드는 하지 말자’예요. 지금도 주축 선수들을 다 데리고 있기 때문에 선수들 모두 제 스타일을 알아가고 배워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유재학 감독님처럼 되려고 노력했었고 지금도 그래요. 유 감독님과 양동근이 갖고 있는 유대감을 저 역시 저희 선수들과 함께 나누고 싶고요.

지영: 김선형 선수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겠죠?
경은: (김)선형이는 항상 배울 준비가 되어있는 선수예요. 스타성도 있고요. 최고 연봉자고, 항상 열심히 하는 선수죠. 게으르지 않은 선수랄까. 연차가 올라가고, 인지도가 올라갔다고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없어요. 힘든 훈련도 맨날 1등이에요. 제 농구인생에 아깝지 않은 선수죠!

지영: 감독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신가요?
경은: 정식 감독이 되었을 때의 꿈은 소박하게 재계약이었죠.(웃음) 사실 모든 감독들의 가장 당면한 목표 아닐까요? 하하하. 특히 제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SK나이츠의 7대 감독인데, 그전까지 재계약을 한 감독이 단 한명도 없었거든요. 

지영: 꿈을 이루셨네요?
경은: 최초의 재계약한 감독이 되었으니, 이제 10년을 지도한 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을 목표를 뒀습니다. 꿈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제 때 제 때 바꿔줘야 하거든요! 구단이 지난번에 재계약을 해주셔서 임기 중에 잘리지만 않으면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네요.(웃음) 더 큰 꿈은 유재학 감독님처럼 되고 싶어요. 600승이라는 기록은 정말 어마어마한 거거든요. 제가 계산도 해봤어요. 한 시즌에 30승을 하면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는데, 그렇게 꾸준히 20년을 해야 하는 기록이잖아요. 그냥 오래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죠. 정말 존경스러운 기록입니다!

지영: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어떤 감독이 되고 싶으세요? 
경은: 우리가 뽑은 선수를 최대한 다 끌고 가면서 팀을 만들어 왔는데, 그래도 SK는 신인을 뽑아서 잘 키운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또 10년을 이끌고 싶다는 건, 그만큼 감독으로서도 인정을 받고 싶다는 거죠. 감독이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팀에 입혀서 그 팀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세운다는 거니까요.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말할 때 가장 상징적인 지도자가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잖아요. 저도 SK 나이츠 팬들이 팀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적인 감독이 될 수 있도록 항상 열심히 하겠습니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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