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편집부/박지영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문경은. 이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찬란했던 시절의 주인공이었던 ’선수 문경은’, 그리고 SK의 우승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감독 문경은’. 어떤 그림이 먼저 그려질까? 

구름 같은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꽃미남 ‘람보 슈터’. 툭하면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로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기에 그 시절의 명성을 ’감독’ 문경은이 따라갈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었던 팬들도 있었을 것이다. 

기우였다. 그는 KBL의 대표적인 장수 감독 중 한 명이 되었다. 어느덧 9년차. 선수들이 믿고 따르는 ‘형님 리더십’으로 SK와 하나가 된 문경은 감독. 

가끔 타임아웃을 부르고 전광판이 아닌 손목시계를 볼 정도로 허당미 넘치지만, 자신만의 지도 철학은 누구보다 뚜렷한 프로 중의 프로였다. 

주특기는 3점슛 이지만, 리버스 덩크도 못지 않게 쉬웠다던 연대 오빠. 아직도 회식을 가면 팀 선수들보다 사인과 사진 세례를 훨씬 많이 받는 감독. 문경은 감독과 나눈 그 어느 때 보다 유쾌했던, 그리고 진심이 담겨있었던 이야기를 공개한다. 

그리고 이 한마디를 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이래서 다들 문경은, 문경은 하는구나!”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FA
박지영(이하 ‘지영’): 비시즌 바쁘셨죠?
문경은(이하 ‘경은’): 네. 바빴어요. 외국인 선수 선발 때문에 미국에 다녀왔어요. 뭐 FA 계약도 했고요.

지영: FA 시장에서 전태풍 선수를 영입하면서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어요!
경은: 상무에 입대한 이현석, 최원혁 선수 자리를 메워야 했어요. 공격보다는 수비가 좋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고민했는데, FA나온 선수 중에 수비형 선수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비슷한 2번 포지션을 채우는 것 보다 차라리 확실한 공격형 선수를 뽑고 싶었죠.

지영: 그래서 전태풍 선수를 눈여겨 보신건가요?
경은: 사실 태풍이는 리스트에 없었거든요. FA 마지막 날에 느닷없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저 태풍인데요! SK 가고 싶어요” 라고 하더라고요. 아주 뜬금없이! (웃음) 생전 사적인 대화도 한번 나눠 본적이 없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웃고 끊었어요. 그 후에 집 앞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자세를 보려고 했어요. 그냥 “하고 싶어요”라고 했으면 계약 안했을 거예요. 간절함이 느껴지더라고요. 하루 더 생각해보고, 계약하자고 했죠.

지영: 감동 받으셨나봐요!
경은: 네. 장난 삼아서 꺼낸 “더 할래요!”가 아니었어요. “돈을 떠나 이대로 은퇴하기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팬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고, 농구가 너무 하고 싶대요. 딱 하나만 약속하자고 했어요. “간절함이 보이지 않으면 바로 끝“이라고 했더니 절대 그럴 일 없대요. 좀 직선적으로 얘기했어요. 

지영: 감독님이 몇 년 전, ‘키 큰 애’라고 언급했던 김승원 선수와도 함께 하게 되었어요. 
경은: 어휴. 연대 후밴데 제가 실수를 해가지고...(웃음)

지영: 이제는 확실히 이름을 기억하시죠? 
경은: 아니... 그때도 몰랐던 게 아니예요. 사실, 저희 어머니가 많이 그러세요. 제가 경은이고 제 형제들이 경환이 유경인데, 다 경은이라고 불러요! “경은아!” 불러서 대답하면 “아, 너말고!”라고 하시죠. 제가 그런 걸 좀 닮았나 봐요. 예전에 상대팀 김종범 선수한테도 이종범이라고 하질 않나... 그런데 그래도 다 알아 들어요. 그날따라 이상하게 타임아웃을 부르고 전광판 시계가 아닌 제 손목시계를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게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죠. (김)승원이 이름이 그날도 갑자기 기억이 안 났어요. ‘한국의 키 큰 애’라고 해 버린 거죠. 미안했어요.

/연세대 자부심
지영: 예전에 이상민 삼성 감독도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는데, 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당시의 인기를 감독님도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경은: 그 당시 젊은 층한테 가장 인기가 있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죠. ‘별이 빛나는 밤에’나 최화정의 라디오,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같은 TV 프로그램... 뭐, 주말 프라임 시간대를 점령하고 있는 인기 예능프로그램은 다 출연했었어요. 숙소 앞에 매번 팬들이 밤을 새고 있었고요. 연대 숙소 동문에는 농구단이 있었고, 서문 근처에 가수 서태지 집이 있었는데, 항상 어디가 서태지 집인지 모를 정도로 팬들이 많았었죠. 시합이 끝나면 버스 타는 게 너무 힘들어서 경찰이 길을 만들어 줄 정도였죠. 

지영: 사실 저도 농구대잔치 이후 세대라서 확실하게 실감이 나지 않거든요. 인기가 정말 엄청났나봐요?
경은: 1학년 때는 최희암 감독님께 혼나느라고 잘 몰랐어요!(웃음) 중고등학교 때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저만 아는 농구를 하다가 대학에 와서 성인 농구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호되게 배웠거든요. 인기고 나발이고, 그냥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뛰고 싶고, 대표선수가 되자는 생각밖에 없었죠. 그 과정에서 잘하다 보니 신문 1면에 나기도 하고, 언론에도 언급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나서 농구대잔치를 하러 대구에 내려갔는데, 웜업하러 들어갔다가 정말 깜짝 놀랐어요. 플랜카드가 죄다 ‘문경은’이더라고요. 어리둥절했어요. 그때 만난 초등학생 팬이 지금은 자기 아이의 손잡고 농구장에 오곤 해요.

지영: 팬레터도 많이 받으셨죠?
경은: 이름이 써져있는 자루를 받았어요. 그 안에 편지들이 가득 들어있었죠. 발렌타인데이 같은 날은 자루가 거짓말 안보태서 10개 정도 왔던 것 같아요!

지영: 연고대 라이벌 신경전도 대단했어요. 보통 대중들이 생각하기엔 연세대가 고려대보다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달랐다면서요?
경은: 우리는 정기전 앞두고 거의 100일 가까이 합숙을 했어요. 토요일 저녁 야간운동까지 하고, 일요일에 점심 먹고 다시 들어왔죠. 집에는 그냥 얼굴 비추는 정도? 반면 고대는 등하교 했거든요. 연고대를 제외한 다른 학교들은 정기전이 없어서 휴가도 받고 MT도 가는데, 우리는 여름 내내 고생하고, 과 친구들이랑 막걸리 한 잔 먹어본 기억이 없어요. 그래도 그렇게 고생한 게 자부심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더불어 고대는 우리에게 게임도 안 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죠.(웃음)

지영: 농구팬들과 연세대 선후배 사이에 소위 ‘돌아이 계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해요. 후보는 최준용, 전준범, 안영준, 허훈입니다.
경은: (최)준용이가 처음에 영미. 아 (안)영준이요. 애들이 영미라고 부르더라고요.(웃음)

지영: 착착 붙네요. 영미!
경은: 영미가 팀에 들어왔을 때 준용이가 “쟤가 정말 돌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2년 동안 그런 모습을 하나도 못 봤어요. 아닌 것 같아요! 전준범이나 허훈은 다른 팀 선수니까 제가 뭐라고 파악하기는 좀 힘들고요.

지영: 영미에 대한 최준용 선수의 모함이었네요. 그렇다면 최준용 선수는요?
경은: 뭐... 정상은 아니죠. 그래도 준용이는 컨트롤이 가능은 돌아이니까 괜찮아요. 무한한 관심과 걱정, 사랑, 잔소리. 이 네 가지를 항상 많~이 해줘야 해요!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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