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①편에 이어...

공포의 서킷트레이닝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선수들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 메뉴는 제법 괜찮았지만, 입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숙소로 돌아오면서 훈련친구 김지영에게 들은 “오후 서킷트레이닝은 더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이 귀에 맴돌아 식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밥을 대충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훈련 소집은 오후 두 시. 휴식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숙소에 오자마자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허겁지겁 알람을 맞춘 뒤 매트 위에 누웠다. 평소 잠이 없는 편인데 이때는 정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곧바로 눈이 감겼다. 삼천포에 와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꿀맛 같은 단잠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나선 곳은 체육관이었다. 실외에서 진행됐던 오전 트랙훈련과 달리 오후에는 실내에서 서킷트레이닝과 농구 기술 훈련이 진행됐다. 서킷트레이닝. 세트 사이 휴식을 거의 두지 않고, 한 세트를 마치면 곧바로 준비된 다음 세트로 넘어가 끊임없이 운동을 반복하는 훈련. 컨디셔닝과 근지구력 향상에 효과적인 훈련법이며, 하나은행의 서킷트레이닝은 총 19개 세트를 3회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세트는 데드리프트 같은 덤벨 운동도 있고, 양손 드리블이나 레이업 등 농구와 관련된 것들도 있었다.

 

“트랙훈련과 서킷트레이닝 중 어떤 게 더 힘든가요?” 스트레칭을 하면서 훈련친구 김지영에게 물었다. 김지영은 “트랙을 더 힘들어하는 선수도 있고, 서킷트레이닝을 더 힘들어하는 선수도 있다”며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답해 줬다. 모호한 대답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전 트랙훈련만큼이나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 체육관 곳곳에 놓여 있는 덤벨과 로프, 농구공은 군대의 각개전투 훈련장을 연상케 했다.

역시 우렁찬 호각 소리와 함께 시작된 서킷트레이닝. 트랙훈련과 가장 달랐던 점은 벽면이 거울로 되어 있고, 앞뒤에서 선수들이 각자 세트를 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요령을 피우면 눈치가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틀린 자세가 나오거나 조금이라도 쉬려는 기색이 보이면 체육관 중앙에서 모든 훈련 장면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김완수 코치가 어김없이 호각을 분다. 특히 양 손에 로프를 잡고 파동을 만드는 배틀로프 세트에서는 아예 작정한 듯 1:1로 붙어 고강도 특훈에 들어갔다. 
“원 기자, 똑바로 안 할 거야?” 
코치님, 제 기준은 이것보다 똑바를 수가 없는데요... 그렇게 정신없이 19개 세트를 한 번씩 돌아 1세트를 마치고 잠시 주어진 휴식 시간. 어째 발바닥이 조금씩 아려온다. 혹시 이시준 코치가 걱정했던 족저근막염은 아닐까? 곧바로 코치진에 보고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다. 
“족저근막염이면 그렇게 걷지도 못해요. 그냥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2세트 준비하시죠.”
이런 정도 없고 융통성도 없는 구단. 

 

두 번째 세트까지 우여곡절 끝에 마쳤는데 이번에는 발바닥이 아니라 몸이 이상하다. 고된 훈련으로 체내 수분이 모두 땀으로 빠져나갔는지, 입술이 바짝 마르고 침이 고이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탈수증 증세인가? 그러나 오전 훈련부터 이미 쥐, 족저근막염 등 갖가지 병명을 대며 탈출 기회를 노렸던 양치기 소년의 외침은 이번에도 역시 통하지 않았다. “탈수증인 것 같다”는 말에 돌아온 것은 한 통의 생수병. ‘이러다 진짜 큰일 나면 어쩌려고 안 믿어주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물을 마시는데 한 모금 마시자마자 곧바로 다시 생기가 돋는다. ‘거 봐, 별거 아니라고 했지?’라고 말하는 듯한 코치진의 가소로운 눈빛. 물 한 모금에 되살아난 내 몸이 미워진다. 

이렇게 된 이상,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억울해서라도 이 서킷트레이닝은 꼭 3세트를 모두 완주하고 싶어졌다. 걸을 힘조차 없어 기어가듯 이동하고 덤벨의 높이도 1세트보다 한참 낮아졌지만, 불굴의 의지로 마지막 3세트를 기어이 마쳤다. ‘코치님. 제가 포기하지 않고 해냈습니다.’ 훈련이 끝난 뒤 정리하는 자리에서 김완수 코치에게 뿌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김 코치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원 기자 오늘 완전 놀았어. 하루 더 하고 가야 하는데...” 
김완수 코치는 혼잣말을 다 들리게 한다.

 

서울로

서킷트레이닝을 끝으로 하나은행 전지훈련 일일 체험은 끝났다. 그렇게 힘들게 훈련하고도 선수들은 체력이 남아있는지 저녁을 먹고 웨이트 훈련을 위해 웨이트장으로 향했다. 물론 일과를 모두 마친 나는 웨이트장이 아닌 숙소 옆에 위치한 온천을 찾았다. 계산을 하려는데 카운터에서 묻는다. “혹시 하나은행 농구단에서 오셨어요? 그러면 장부에 적고 그냥 들어가시면 돼요.” 순간 피도 눈물도 없던 코치진과 트레이너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스쳐 지나간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소심한 복수에 성공했다.

함께 훈련하긴 했지만, 트랙훈련 때는 한참 뒤처져 계속해서 반 바퀴 이상 차이가 났고 오후 서킷트레이닝 때는 엉거주춤 선수들의 동작을 흉내 내기에 급급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선수들보다 강도가 한참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후유증은 서울에 올라오고 3일 동안 지속됐다. 그만큼 힘든 훈련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선수들은 이 강훈련을 무려 열흘 동안 한다는 것.

덕분에 나는 겸손해졌다. 이들이 여름내 흘린 구슬땀의 목격자로서 하나은행 선수단이 시즌 중 3점슛을 놓치면 한숨 아닌 박수를, 레이업을 놓치면 비난 아닌 격려를 보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날 하루 동안 체험 훈련은 내 몸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깨닫게 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헬스장을 찾아가 6개월 일시불로 등록했다. 다음 달 전지훈련 장소는 태백. 목표는 완주다.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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