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에세이 ‘단편’(斷片/短篇)  
| 3점슛 몰아 공격 앞으로!
| 남녀 프로 감독·코치 두루 지낸 22년의 근면왕

[루키=박진호 기자] KT의 플레이오프. 2013-14시즌 이후 5년만의 일이었다. 

창원 LG에 막히며 KT의 플레이오프는 5경기 만에 막을 내렸지만, 부산 팬들에게 선물한 봄의 축제는 이번 시즌보다 다음 시즌을 더 기대하게 했다. 특히 지난 해 단 10승에 그치는 등, 지난 2년간 108경기에서 28승밖에 올리지 못했던 KT는 1년 만에 지난 2년간 거둔 승수를 거의 회복(27승)하며 팬들의 무너졌던 자존심도 다시 찾아줬다. 

시즌을 앞두고 팀을 맡았을 때만 해도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던 서동철 감독은 시즌 시작 후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고, 외곽슛을 앞세운 KT의 행보와 더불어 온화한 웃음과 소통으로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물론 트레이드와 신인 드래프트의 결과는 앞으로 그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

넉넉함과 사람 좋은 웃음 속에 더 큰 꿈을 그리고 있는 부산 KT 소닉붐의 서동철 감독을 만나보자.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6월호 내용을 추가/각색했습니다. 

#1
“내가 술은 잘 못하니까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그와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술을 잘 못한다”는 단서다. ‘술자리의 전설(?)’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술에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농구인들 사이에서 그는 “술을 못한다”고 말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2013년, 여자농구 청주 KB스타즈의 감독으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술과는 인연이 깊지 않았다. 

“사실 내가 술을 잘 못 한건 맞아. 술이 약하거든. 내가 좋아서 마시기보다, 대내외 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마시는 경우가 더 많았어. 소주 1병 정도가 주량이었으니까. 그래도 KB감독을 하면서 술이 조금 늘기는 했어. 마시는 양은 그대로였는데 맛을 알겠더라고. ‘술을 이런 맛으로 마시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런데, 그래봤자 1병 마시면 끝이었어.”

‘술의 맛’을 조금 알았다던 2015년. 그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담도에서 종양이 발견됐고 수술대에 올랐다. 소속팀의 비시즌 훈련을 오롯이 함께하지 못했고, 시즌 초반에도 벤치를 지키지도 못했다. 

물론 술 때문은 아니었다. 남녀 통틀어 대한민국에 단 16개밖에 허락되지 않은 ‘프로농구 감독’이라는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이유였다. 일찍 발견해서 큰 어려움 없이 수술을 받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수술 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수술하고 나서 잘 치료받고 완치됐는데 그런 소문이 돌았다는 거야. 내가 췌장암 4기라는거지. 다 죽어간다고 소문이 나서 지인들 연락이 많이 왔어. 내가 아니라고 설명을 해줘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더라고!”

큰 위험 없이 잘 넘겼다 해도 작은 수술은 아니다. 게다가 ‘암 때문에 수술을 했다’라는 말은 문장 자체로 주는 위화감이 어마어마하다. 이 말 하나로 그는 죽음과의 사투를 견디고 돌아온 사람이다.

게다가 치료와 수술, 회복 등으로 당시 체중이 10kg이나 빠지는 바람에 ‘서동철 위독설’이라는 뜬소문은 더욱 힘을 얻었다. 시즌 준비 중이던 팀을 격려하기 위해 선수단을 찾았지만, 살이 너무 빠진 그의 모습에 오히려 눈물을 보인 선수들도 있었다. 그는 이제 와서 “그때 내가 거길 가지 말았어야 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감독이 팀을 오래 비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즌 2015-16시즌 개막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복귀했지만 다시 한 달 정도 팀을 비웠다.

“기사에 실린 내 사진을 보니까 살이 확 빠져서 얼굴이 진짜 좀 안됐더라고. 게다가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몸이 너무 힘든 거야.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어. 수술 후 회복이 완전히 다 안 되서 체력이 모자란 거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팀에도 민폐잖아. 그래서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조금 더 쉬었다가 복귀를 했어.”

기자들 사이에서는 ‘서동철 감독이 서둘러 복귀했지만 건강상태가 악화되었다’, 혹은 ‘병이 재발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일 없이 복귀했고, 지금까지도 아무런 문제없이 팀을 이끌고 있다.

“처음에는 안부를 물어주고 챙겨주는 게 고마웠는데, 내가 다 낫고 시간이 좀 지나서 멀쩡하게 생활을 하는데도 ‘괜찮냐’고 물으니까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하더라고. 뭐, 이제는 괜찮아. 다 내려놨거든.”

하지만 그 후 주량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는 “한 두 잔정도 밖에 술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커피 애호가이기에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에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집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그에게 빙수로 유명한 '설O'을 처음 소개한 것이 필자였다. 천안의 모처에서 빙수의 신세계를 발견했던 그는 ‘대체 이런 곳이 언제부터 있었냐’며 놀라워했었다. 물론 1인 1빙의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2
‘농구인 서동철’은 근면의 아이콘이다. 

‘운동선수’, ‘지도자’라는 직업은 사회적인 기준에서 볼 때 대부분 고액 연봉을 수령하는 직업에 속한다. 그러나 안정성은 높지 않다. 선수시절에는 불의의 부상, 혹은 팀의 방침에 따라 갑작스러운 이적이나 은퇴가 닥칠 수 있다.

지도자 역시 성적이라는 거대한 족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에 따라 거취가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런 고난 속에서 ‘농구인 서동철’은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송도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거쳐 삼성전자에서 7년간 선수 생활을 한 그는 1997년, 은퇴와 동시에 여자농구 삼성생명의 코치를 맡았고, 그 후 상무 감독을 지냈다. 남자농구팀(삼성, 고양 오리온) 코치를 거쳐 2013년에는 여자농구로 복귀해 KB의 감독이 됐다. 이후 고려대를 거쳐 현재 이끌고 있는 KT의 감독까지... 

은퇴 후 22년 동안 쉬었던 기간이 거의 없다. 심지어 두 차례의 공백 때에는 각각 여자농구 국가대표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다. 그는 남자 프로농구와 여자 프로농구의 코치와 감독을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지도자다.

#3
남자 농구와 여자 농구 모두 결국은 ‘농구’라는 공통분모 위에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농구는 같다’며 지도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남자 선수들과 여자 선수들은 분명 다르다며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지도자 서동철’에 대해서는 남자 농구보다 여자 농구가 더 잘 맞는다는 평가도 상당했다. 이는 그의 세심하고 꼼꼼한 지도 스타일 때문이다.

“남자 팀과 여자 팀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 솔직히 여자 팀이 더 어려워. 일단 내가 남자다 보니 여자 선수들을 대하는 모든 면이 조심스럽거든. 요즘은 시대가 더 그렇잖아. 말과 행동 모든 게 조심스러워. 지도하면서 감정적으로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남자와 여자는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잖아. 농구 외적인 부분, 생활 같은 부분까지 남자 팀보다 신경 쓸 부분이 더 많아.”

세심과 꼼꼼... 

일단 좋은 표현으로 쓰자면 그렇고, 요즘 세대가 쓰는 말을 갖다 붙이자면 ‘설명충’ 이라고 할 수도 있다. 

KB 감독 시절, 그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설명에 할애했다. 비시즌 훈련 중, 방금 설명한 내용대로 플레이가 이어지지 않으면 바로 선수들을 불러들여 다시 주지시켰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지도자들 역시 선수들에게 실수한 부분을 지적하지만, 굳이 긴 시간 동안 재설명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경험이 많거나, 내용을 인지하고 있던 선수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땀이 식고, 훈련 흐름이 끊어진다고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는 부분. 훈련 효율 면에서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지도 방식은 기본기와 반복 학습 면에서 남자 농구보다 시간과 정성이 더 필요한 여자 농구에 더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았다.

“남자 팀보다 여자 팀이 훈련 시간이 더 길어. 신체 능력과 기술 같은 부분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훈련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어. 나는 개인적으로 여자 팀에서 훈련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팀을 운영한다는 건, 직무유기라고 생각해. 선수들이 기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생기는 거잖아. 또 여자 선수들은 신체 능력과 개인기로 승부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보니 결국 조직력을 강조하게 되거든. 그러려면 결국 훈련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지. 남자 팀에서는 작전을 지시할 때도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네가 해버려’라고 할 때가 있는데 여자 팀에서는 ‘안 되면 네가 해’가 아니라 안될 때의 방법도 강구해서 설명을 해야 해.”

KB 감독 시절의 길었던 ‘설명 시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다시 설명했다.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여자 팀을 지도할 때는 남자 팀보다 ‘섬세함’과 ‘디테일’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현재 KT에서는 KB를 이끌 때와는 조금은 다르게 지도를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

그는 “여자 팀을 맡으며 선수들을 대할 때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점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런 것들이 지금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KT는 특히 젊은 선수들이 많다. 여자 팀에서 선수를 대할 때 신중하게 접근했던 습관이 과거와 분명 다른 시대를 거쳐 온 남자 선수들을 대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 

다만, 과거 ‘설명충’이라 박제될 법한 지도 스타일과는 분명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선수들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설명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것. 본인 스스로도 어느 정도 변화를 가져갔다는 주장이다. 진실은 KT 선수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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