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에세이 ‘단편’(斷片/短篇)
| WKBL 레전드 센터 6인의 박지수를 위한 변명
| The Dissection Of A Giant Pikachu
[루키=박진호 기자]
# 전설 속에 존재하는 유니콘이었을까? 그러기에는 실체가 너무 분명하다. 그러나 기대와 다른 반응이 더 많다. 일단 실존여부가 확실하니 유니콘이라는 명칭은 치우자. 미국에서 온 그의 동료가 그를 피카츄라고 부른다니 이제부터는 피카츄라고 대신해보자. KB의 외국인 선수 카일라 쏜튼은 박지수의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다며 ‘피카츄’라고 부른다고 한다.
#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라고 칭찬과 찬사를 한 몸에 받던 주인공이 있었다. 데뷔와 동시에 WKBL의 모든 역사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는 어느 새 프로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시즌 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인색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부진했을 때는 원성의 중심이고, 잘했을 때도 비판은 여전하다.
키만 클 뿐, 농구 센스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자기보다 작은 선수들에게도 당하기 일쑤. 궂은일은 열심히 하지 않는데다가 성장의 증거 또한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리그 막내 급임에도 경기 중에 짜증내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려서부터 하도 떠받들어줬더니 안하무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심판이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판정을 불어주고 있음에도 여전히 결과는 별로다. 이번 시즌 트리플더블을 기록했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꾸준히 밀어줘서 만들어진 기록일 뿐이다.
이런 의견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 “박지수요! 일단 박지수를 어떻게 상대할지를 놓고 한참 고민해요. 그것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올 정도로 머리가 아프죠. (카일라) 쏜튼도 좋은 선수인데, 사실 (박)지수 때문에 시너지효과가 난다고 보죠.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쏜튼 묶는 거 못하겠습니까? 대신 지수 쪽이 열리겠죠. 같은 10점을 주더라도 쏜튼한테 주는 거랑 지수한테 주는 거는 완전히 달라요. 항상 지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가 가장 큰 고민이고,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
“몰라서 묻는 거 아니죠? 당연히 지수지. 키 큰 전봇대일 뿐이다? 그런 전봇대 있으면 우리한테 줬으면 좋겠네. 가운데에 떡하니 세워놓고 잘 쓸 수 있을 텐데...”
# 방향이 흔들렸다. 처음부터 삐딱선이다. 커다란 피카츄에 대해 낱낱이 털어보려 했는데, 비판보다 칭찬이 잇따른다. 그의 소속팀인 KB스타즈와 경기를 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른 팀 감독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초대형 피카츄를 언급했다. 경계대상 1호에도 당연히 그의 이름이 나왔다. 심지어 현재 WKBL 국내 선수들을 놓고 드래프트를 한다면 전체 1순위로 뽑겠다는 선수 역시 이구동성으로 그였다. 진짜 피카츄처럼 10만볼트나 번개를 쓰는 것도 아닌데 이건 대체 무슨 일일까?
경기에서 소속팀이 이기건 지건, 온라인에서는 항상 너덜너덜해지는 커다란 피카츄에 대해 리그 정상을 다투는 감독들은 칭찬으로 화답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그들과 함께 승부를 겨루는 당사자들만의 의견이 아니다. 농구팬들의 기대를 냉정하게 저버린 피카츄에게 온정주의로 감싸기 바쁜 농구인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어딘가에서 본 정보에 따르면 피카츄의 키는 0.4미터라고 한다. 피카츄보다 5배 정도는 큰 이 ‘가짜 피카츄’ 박지수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2월호 커버스토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피카츄로 정해진 운명
2019년 1월 8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 회의실에서는 여자농구 신입선수 선발회가 열렸다. ‘초고교급 유망주’, ‘타고난 재능을 갖춘 역대급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숭의여고 박지현이 나온 드래프트. 즉시 전력감으로 팀 성적의 확실한 치트키가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드래프트 추첨자는 이향 KBSN 아나운서. 그런데 이향 아나운서가 돌린 추첨통에서는 21개 중 단 1개만 들어가 있던 분홍색 구슬이 떨어졌다. 4.8%의 희박한 확률을 뚫고 우리은행이 전체 1순위를 거머쥔 것이다. ‘박지현 드래프트’는 이른바 ‘108 이향의 난’으로 정리됐다. ‘슈퍼 유망주’를 6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하고 있는 팀에게 선물했다. 물론 우리은행에서는 ‘108 이향 의거’라고 부를 만하다.
사실 이런 장면이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2016년 10월 17일. 당시에도 여자농구 신입선수 선발회는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올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라는 말을 수년간 들어왔던 이무기와 같은 존재, 박지수의 프로팀이 드디어 결정되는 순간. 예전만큼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 등장한 박지수는 각 구단들에게 ‘10년의 약속’이라고 불렸다.
이때의 추첨자는 이향 아나운서의 KBSN 선배인 오효주 아나운서. 많은 구단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오효주 아나운서가 돌린 추첨통에서는 검정색 구슬이 나왔다. 전년 시즌 3위를 차지해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KB스타즈가 14.5%를 극복하고 전체 1순위를 잡았다. 이른바 ‘1017 오효주 사태’. 전년 시즌 플레이오프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오매불망 박지수만 바라보며 희망을 갖던 팀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결과였다. 그랬기에 선배보다 3배는 더 희박한 확률을 넘어 박지현을 우리은행에 안긴 이향 아나운서는 2019 신입선수 선발회가 끝난 후 “그래도 오효주 선배만큼 큰 사건은 아니지 않냐”며 정신 승리를 시전했다.
당시 박지수의 KB행은 그만큼 큰 ‘사건’이었다. 사실, ‘적은 확률의 극복’이 더 드라마틱한 과정을 만들었을 뿐, 박지수가 어느 팀을 가든 그 자체는 무조건 큰 뉴스인 상황이었다. 박지수는 WKBL 역사상 가장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신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프로를 가나보다’했는데, 3학년이 되니까 많이 떨리더라고요. 프로에 가는 꿈도 많이 꿨는데, 진짜 모든 팀에 다 지명이 되어봤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KB에 가는 꿈만 안 꿨더라고요. 정말로요! 못 가는 팀은 꿈에서 가보고, 실제로는 KB로 오는 운명이었나 봐요!”
‘거대 피카츄’ 박지수는 미성년 시절부터 운명론에 심취(?)했던 것 같다.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 반복했다. ‘운명론을 믿던 18세’의 박지수는 ‘꿈에서도 가 본 적 없던’ KB에서 유니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서 온 것을 보고는 “KB로 오는 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며 좋아했다. 사실 ‘학생다움’을 한껏 뽐내며 단정한 교복차림으로 드래프트에 참가하면서도 머리카락은 노란색(밝은 금발)으로 하고 나타났던 그의 운명은 염색하는 순간부터 KB로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노란색 머리로 노란 유니폼을 입는 순간, 노란털의 피카츄로 불릴 운명이었을지도...
“안덕수 감독님은 그때까지는 감독님보다 삼촌으로 익숙했죠. 저희 아버지가 선수 시절에 같은 팀이었고, 심지어 같은 방을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셔서 일본에 가면 가끔 뵙기도 했어요. 그때까지는 ‘삼촌’이라고 불렀는데, 감독님이 계신 팀으로 온 것도 운명인 것 같아요.”
1순위의 의미.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전교 1등도 아니고 전국 1등. 살면서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 없는 입장이라 그 기분을 잘 모르겠다. ‘누가 봐도 1순위’임에도 불구하고 1순위에 선발된 선수들은 하나같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뽑히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는 소감을 마치 붕어빵 기계로 찍어낸 듯 반복한다. 마치 같은 학원에 가서 과외를 받은 것처럼! ‘누가 봐도 1순위’라는 말도 모자라 ‘박지수 드래프트’라고 불렸던 해임에도 불구하고 박지수 역시 “프로에 가는 게 중요하지, 순번은 중요하지 않다. 첫 번째로 뽑아주셔서 영광이고 감사하다”는 ‘조금도 와 닿지 않는’ 소감을 전했다.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많이 떨렸거든요. 그래서 얼떨떨했고 기억도 잘 안나요. 우리 팀이 1순위 지명권이 됐을 때 까만 구슬이 나왔잖아요? 까만색 공이 나오는 걸 보고 ‘저건 대체 뭐지’라고 생각 했어요. 팀 색깔인 까만색인 데는 없잖아요. 드래프트 행사가 진행되는 걸 다 봤는데도, 그 공이 어느 팀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정신 멀쩡한 2019년에 새해맞이 기념으로 물었다. 정말 1순위에 뽑히지 않았어도 아무렇지 않았겠냐고...
“음... 그래도 기분 나빴겠죠.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잖아요. 제 동기들도 좋은 선수가 많지만, 그래도 1순위가 될 거라는 평가를 들었는데 안 됐다면 속상했을 거예요.”
박지수를 가장 들뜨게 했던 것은 KB가 유독 많은 홈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팀이라는 점이었다. ‘팬들이 많을 때, 더 신나고 경기가 잘 된다’는 박지수는 여자농구에서 대표적으로 팬이 많은 팀인 KB에 뽑히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열정적인 청주 팬들이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는 관중 없는 체육관에서 경기를 했으니까요. 특히 저희 경기만 되면 얼마 없던 관중들도 다 나가셨어요. 관중석에는 가족들이나 그냥 아는 분들 정도만 계신 경우가 많아서 속상했어요. 그런데 팬이 가장 많은 팀으로 가게 되니까 정말 좋았죠. 지금도 그건 너무 좋아요.”
최연소 WNBA 플레이어, 그리고 198cm?
지난 해 4월,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박지수가 여자농구 세계 최고의 무대인 WNBA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5순위, 전체 17순위로 지명된 것. 디팬딩 챔피언 미네소타 링스의 선택을 받은 박지수는 드래프트 직후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로 트레이드 됐다. 라스베이거스의 유니폼은 검은 색. 2003년부터 ‘샌안토니오 스타스’로 운영되다가 2018년 새롭게 연고지를 옮긴 팀이다. 검은 색 구슬로 인해 KB스타즈에서 뛰는 박지수가 ‘스타스’라는 이름을 달았던 검은 색 유니폼의 팀으로 간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 것이다.
당초 ‘트레이닝캠프를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박지수는 최종 엔트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루키시즌 11경기 선발 출전을 비롯해 총 32경기에 평균 13분을 뛰며 2.8점 3.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런데 WNBA에 진출하며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박지수의 ‘신장 미스테리’다.
WKBL에 등록된 박지수의 키는 공식적으로 193cm다. 지난 시즌 팀 동료였던 다미리스 단타스(OK저축은행)와 같다. 박지수와 단타스는 <루키 더 바스켓> 2018년 2월호 표지를 함께 장식한 바 있다. 촬영 당시 박지수가 단타스보다 조금 크다는 게 느껴졌다. 박지수는 “다미(리스 단타스)가 농구화를 벗으면 189cm일 것”이라며 자신의 키는 193cm가 맞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박지수의 미국 진출 후, WNBA 공식 홈페이지에는 박지수의 키가 6피트 5인치, 196cm라고 명시됐다. 며칠 뒤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 구단을 통해서는 198cm라고 발표됐다. 농구화를 신고 재면 2미터를 넘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5cm가 훌쩍 자란 걸까?
자신의 키가 틀림없이 193cm라고 주장하던 박지수는 WNBA 진출 이후 “한국에서는 193cm인 것으로 하자”며 갑작스러운 협상을 제시했다. 키를 자기 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요망한 피카츄에게 ‘기계를 가져와서, 실측하기 전에 정확한 키를 말하라’고 으름장을 놓아봤다.
“음... 195cm에요. 196cm는 신발을 신고 재서 그렇게 나온 거예요.”
그렇다면 198cm는 무엇이었을까? 박지수는 “라스베이거스 구단에서 키를 잴 때 정확한 신장 측정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줄자로 쟀다”며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198cm는 정말 아니라는 것. 깔창이 일반화 된 세상에 이토록 자기 키를 낮추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배경에는 어린 시절의 슬픈 추억이 존재한다는 게 박지수의 항변.
“초등학교 때 버스를 타고 500원을 내면 거스름돈 50원을 받아야 하는 데, 기사님이 안 주시는 거예요. 키가 크니까 중학생인 줄 알고 돈을 더 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화서초등학교 6학년 2반 박지수’라고 말하고 그랬어요. 키 때문에 그러니까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키를 조금씩 줄여서 말했던 것 같아요.”
... 정말 대단히 슬픈 이야기다...
그렇다면 박지수가 국제농구연맹(FIBA)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FIBA 여자농구 월드컵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박지수의 키는 192cm로 나온다... 당황스러운 것은 FIBA는 2017년 여자농구 아시아컵 당시에는 박지수를 195cm로 명시했다는 점이다. 아...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못 믿겠다.
눈물 많은 애늙은이
지난 3년간 눈에 보이는 곳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농구 선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박지수라고 대답할 수 있다. 박지수는 2016년 12월 17일, WKBL 데뷔전을 가졌다. 상대는 리그 최강 우리은행. 박지수의 매치업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국가대표 주전 센터 양지희를 비롯해, 역대 WKBL 최고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존쿠엘 존스, 그리고 베테랑 모니크 커리까지. 박지수는 25분 41초를 뛰며 4점 10리바운드 2블록슛을 기록했다. 그리고는 울었다. “내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프로 데뷔전과 너무 달랐다”고 자책하며 눈물을 보였다.
데뷔시즌 박지수는 22경기를 뛰었고, 평균 10.4점 10.3리바운드 2.2블록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자신이 뛴 22경기에서 팀 성적은 9승 13패.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하면 15번을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농구공을 처음 잡고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당했던 모든 패배보다 루키 시즌에 당한 패배가 더 많았다.
지난 시즌 팀이 창단 후 최다연승(11연승)도 기록하며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지만, 끝내 우리은행을 넘지 못하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사실 이 외에도 박지수가 울었던 경기는 더 있다. 상대한테 맞아서, 넘어져서, 피나서, 아플 때도 울었다. 이럴 때는 딱 스무 살 같았다. 올 시즌에는 두 번째 경기 후 수훈선수로 기자회견에 들어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주변의 기대에 내가 많이 미치지 못하고 있어 죄송하다”고 했다.
당황스럽다. 박지수보다 두 배의 인생을 살았음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를 무너뜨리기 일쑤인 입장에서, 이 어리고 커다란 피카츄의 눈물이 당황스러웠다. 그는 자신에게 무척 혹독했고,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부담의 무게가 상당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늘 안고 있는 부담의 크기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노련한 스무 살이었다.
“기사를 잘 안 봐요. 보더라도 그 밑에 달린 글들을 잘 안 읽고요. 그런데 주변에서 그걸 보고 저한테 말씀 해주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죠. 제 SNS에 직접 오셔서 그런 말을 하고 가시는 분들도 계세요. 안 좋은 말을 듣는데 기분이 좋을 수 없죠. 그래도... 그냥 무관심보다는 나은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결국 제가 못하니까 그런 얘기 하시는 거잖아요. 잘하면 그런 얘기 안하시겠죠. 제가 잘해야죠.”
... 애늙은이다.
그는 훌륭한 ARMY였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이 대형 피카츄는 WKBL의 대표적인 방탄소년단 오타쿠... 아니, 팬... 그러니까... '아미(ARMY)'다.
이전까지 연예인을 좋아해본 적 없다는 그는 방탄소년단 이야기만 나오면 애늙은이의 가면을 벗고 마냥 해맑은 소녀로 돌아간다. 매일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영상을 끌어안고 산다. 힐링이란다. 지출도 한다. 나름 원칙도 있다. 공식 굿즈와 실제 착용한 것 중 마음에 드는 거 외에는 잘 안산다고 한다. ‘본인피셜’이니 신빙성은 보는 사람 마음이다. 일단 국내에서는 최장신 여성 아미일 것이다. 본인도 그럴 것 같다고 인정했다.
어릴 때는 “남자친구의 키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가 어느 순간 “185cm는 넘었으면 좋겠다고 바꿨고, 이제는 ”190cm는 되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박지수에게 방탄소년단의 키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지민과 정국이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하자 거부했다. ”둘이 동시에 프러포즈를 한다면“이라는 진부한 가정을 하자, 누구도 선택하지 않겠단다. ”팬과 아이돌은 딱 그 관계일 때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절대 일어나지 않은 일 갖고 고민하지 않겠다“며 툴툴댔다.
사실 박지수와 방탄소년단의 인연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방탄소년단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을 하던 날, 그는 원정경기 일정으로 하필 라스베이거스에 있지 못했다. 영화 ‘Leaving Las Vegas’(1995년 작)의 주연이었던 벤 센더슨(니콜라스 케이지)보다 우울했을 것이다. 박지수는 자기가 라스베이거스에 있었다면 “공연은 못 봤더라도 적어도 호텔에서 마주칠 수는 있었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 해 8월, 서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때도 귀국을 했었지만,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바로 인도네시아로 날아가야 했다. 선수로서 국가대표 합류는 어쩔 수 없고, 또 당연한 것. 박지수는 ‘덕계못’이라는 신조어를 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솔직히 ‘덕계못’이 무슨 소린지 몰라서 포털 사이트를 찾아보니 ‘덕후는 계를 못탄다의 줄임말. 이익을 못본다는 뜻. 연예인 덕질을 하는 덕후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기 힘들다는 슬픈 현상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란다.
아무튼 ‘덕계못 피카츄’는 이제 4월 태국을 바라보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공연이 태국에서 있단다. 시즌이 끝난 후인만큼 그거라도 티켓을 구해서 가겠단다. 왠지 티켓을 못 구할 것 같다. 구해도 다른 일정으로 못 가게 될 것 같기도 하고...
박지수는 지금 혼자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팀 내에 방탄소년단을 강제 전파하고 다닌다. 처음에는 방탄소년단에 푹 빠진 그를 이상하게, 혹은 신기하게 보던 팀 동료들과 지원스태프들도 이제는 방탄소년단의 팬이 됐다. 물론 예외는 있다.
팀의 최고참 중 한 명인 김수연은 방탄소년단에 열광하기에는 너무나도 열성적인 ‘클럽 H.O.T' 출신이다. ’아이돌 오빠부대‘ 원조의 자존심을 꺾기는 힘들다. 원정경기 룸메이트인 염윤아도 난공불락. 팀의 유일한 기혼자인 염윤아는 “아줌마인 내가 굳이 신경 쓸 거 있겠냐”며 쿨한 반응. 오히려 박지수가 자랑하는 방탄소년단의 영상을 보다가 “전부 다 잘생긴 건 아니네”라는 역습을 펼쳤다.
더 큰 난관도 있다. 박지수가 추구하는 ’팀 전체의 아미화‘에 가장 큰 적은 주장인 강아정. 강아정은 종종 이상한 정보를 듣고 와서 박지수에게 방탄소년단과 관련된 루머를 굳이 귀에 대고 읊어준다고 한다. “찌라시에 있는 내용을 입수했다”며 “이건 정말 진짜”라며 박지수를 괴롭힌다고. 그래... 어디에나 이런 악마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강아정은 주장답게 박지수를 강하게 키우고 있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