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편에 이어... 

[루키=최기창 기자] 지난 삼성생명 훈련 체험 뒤 열흘정도 몸살을 앓았다. 밖을 나갈 때마다 허벅지가 아파 고통스러운 나날이 이어졌다. 체험은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다. 일회성에 그칠 것 같았던 일일체험은 예상과는 다르게 이번 달에도 이뤄졌고, 심지어 1박 2일 체험으로 바뀌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은 강원도 태백의 고지대에서 말이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8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고지대 로드 마라톤, 안덕수 감독의 거짓말

오전 훈련을 마친 뒤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다.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탓에 오후 훈련은 두 시간가량 미뤄졌다. 

첫 훈련은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체육관 1층에 위치한 웨이트장에서 선수들은 다양한 기구를 활용했다. 선수들은 트레이너와 함께 각자 운동을 했다. 선수들의 동작을 가만히 지켜본 뒤 하체 운동 기구에 앉았다. 단순히 다리가 아파서였다. 

그러자 안덕수 감독이 다가왔다. 그는 “오후에 마라톤을 하려면, 일단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먼저 긴장시키면, 더욱 좋은 효과가 있다”며 하체 운동을 권유했다. 결국 안 감독의 지도에 맞춰 예정에도 없던 하체 근력 운동을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이 마무리되자 선수들은 각자 짐을 챙겨 구단 버스로 향했다. 이후 마라톤 출발 장소인 태백산 화방재로 이동했다. 이날 마라톤은 화방재를 출발해 함백산로를 따라 함백산 만항재까지 이어지는 코스였다. KB 측은 "약 7km 정도“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고지대 훈련을 ‘전근대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고지대 산악 훈련은 상당한 효과가 있다. 트레이너들은 “일단 농구에 필요한 심폐 기능과 스피드 등을 기를 수 있다. 또 지구력이 향상돼 인체의 에너지 회복 시스템이 좋아진다. 체력 훈련의 관건은 몸의 회복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고지대 훈련은 몸의 전체적인 기능 향상을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차량으로 이동하며 거리와 코스를 확인했다. 대부분 오르막길이었다. 이 도로를 이용하는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먼저 출발한 일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드문드문 보였다. 

화방재에서 다시 간단하게 몸을 푼 뒤 본격적인 마라톤이 시작됐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선수단 뒤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한때 인코스를 파고들며 선수단 선두에 서는 여유도 부렸다. 

그러나 저질 체력은 이번에도 버텨주지 못했다. 숨이 점점 차올랐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결국 가장 마지막에 쳐지고 말았다. 결국 뛰기를 포기했다. 마라톤은 걷기로 바뀌었다. 어느 순간 선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지에서는 뛰고, 오르막에서는 걷겠다’고 다짐했지만, 뛸 수 없었다. 평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산을 타는 것 같은 경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걷는 모습을 본 본지 편집장은 포기를 권유했다. 유혹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하지만 지난달 최희진(삼성생명)이 “남자가 말이야! 포기가 너무 빨라!”라고 핀잔을 줬던 것이 떠올랐다. 서울에 돌아가지 못해 태백의 망부석이 되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계속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두 번 권유는 없었다. 모두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정말 혼자 남게 됐다. 산 속 도로에 오는 차도 가는 차도 없고, 오가는 사람은 더더욱 없고 나만 남았다.

마라톤(이라 쓰고 빠르게 걷기라고 읽는다) 내내 혼자와의 싸움이 이어졌다. 사실 도중 총소리가 들렸다. 총알의 파편이 여기까지 튀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야생동물이 움직이는 소리도 여러 차례 들었다. 하지만 무서움보다는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사실 어떻게 그렇게 긴 거리를 소화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자 택시 한 대가 옆으로 지나갔다. ‘저걸 타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순간 정말 큰 남자 목소리 들렸다. 이윽고 어떤 여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남자 목소리는 안덕수 감독의 것이었고, 여자 목소리는 정미란이 빨리 오라고 부르는 소리였다. 

막판 스퍼트를 냈다. 남은 체력을 모두 쏟아 부었다. 조금 더 다가가자 환호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결국 박수를 받으며 최종 목적지였던 만항재에 드디어 도착했다. 길바닥에 자연스레 쓰러졌다. 내가 이 산악 달리키 코스를 완주했다!

그러자 코칭스태프에서 “그렇게 쉬면 안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또 땀을 많이 흘렸으니 주스를 한 잔 들이켜야 한다는 매니저의 얘기도 들렸다. 이후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선수들은 “그새 살이 빠진 것 같다” 혹은 “얼굴이 너무 빨개졌다”고 말했다. 이후 선수들은 완주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며 장풍을 날려줬다. 

나중에 들어보니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선수보다 약 15분 정도 늦었다고 했다. 지난달 온갖 핀잔을 들었던 삼성생명 체험 훈련이 생각났다. 이제 당당하게 농구장을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KB 구단 관계자는 “삼성생명에서 몸을 만들었던 게 효과가 있나 보다”며 농담을 던졌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 하나. 약 7km라고 안내받은 이 코스는 실제로 무려 8.3km였다. 안덕수 감독에게 이를 알렸다. 그러자 안 감독은 “선수들에게도 7km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선수들은 8km 이상을 뛴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일일 체험이 1박 2일로 바뀐 사연

체험 종료 후 안덕수 감독은 “일반인이 하기에 쉽지 않은 훈련인데 결국 완주했다”며 “정말 축하한다”고 했다. 잠시 가벼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윽고 안 감독이 조용히 불렀다.

그는 “다음날 선수들과 5대5 농구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안덕수 감독은 “선수들이 고된 훈련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다. 우리 선수들에게도 조금 즐거운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일체험이 1박 2일 훈련 체험으로 바뀐 순간이다. 결국 이날 전지훈련을 촬영하러 온 KB스타즈 이벤트 팀 직원들과 함께 태백에서 하루 더 머무르게 됐다. 선수들에게는 비밀에 부쳤다.

다음날. 다행히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았던 서킷 트레이닝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 안덕수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이후 안 감독이 훈련을 걸고 일반인과의 5대5 농구를 제안했다. 선수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사실 5대5 농구가 마라톤보다 더 힘들었다. 선수들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기 때문. 경기는 실제 경기처럼 흘렀다. 강한 몸싸움이 난무했다. ‘팁 오프’ 때부터 김진영에게 가격 당했다. 김민정의 팔꿈치도 느껴졌다. 너무 아팠다. 선수들의 뻔뻔함이 느껴졌다.

고난은 계속됐다. 김수연과의 몸싸움 도중 튕겨 나간 일도 있었다. 막내인 임주리와의 몸싸움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심판이었던 안 감독의 호루라기는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오전 훈련이 끝났다. 결국 체력 훈련부터 마라톤, 연습 경기까지 전지훈련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본 셈이 됐다.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팔에는 긁힌 자국이 선명했고, 잦은 몸싸움 덕분에 등과 가슴에도 통증이 왔다. 어제 무리한 다리 근육 역시 ‘쥐가 날 것’이라는 신호를 틈틈이 보냈다. 결국 서울에 도착한 뒤 다시 몸져누웠다.

그런데 다음 달 다시 또 태백에 갈 수도 있다고 한다. 로드 마라톤을 완주했으니 ‘다른 팀 전지훈련도 할 수 있는 체력이 길러진 것 아니냐’는 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훈련하는 동영상을 접한 한 선수가 최근 SNS를 통해 자신의 팀 전지훈련에 직접 초대한 일도 있었다. 사람은 참 잔인한 것 같다.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렇게나 즐거운가보다. 

이번 훈련은 KB 선수들의 땀방울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KB가 고지대에서 힘들게 훈련한 만큼 새 시즌에는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고지대 훈련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1박 2일 동안 정말 선수처럼 대해준 KB 선수단과 구단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진 =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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