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①편에 이어.. 

너무나 어려웠던 농구 용어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김경란에게는 농구선수 출신인 동생이 있다. 과거 신한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한 김희란이다. 동생과는 다르게 운동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던 그가 이쪽 세계에 발을 딛게 된 것도 동생의 도움이 컸다. 다만 동생과 다른 팀에서 일을 시작했기에 우려의 시선도 분명 존재했다. 

“처음에 면접보고 그날 바로 천안으로 갔어요. 거기서 서동철 감독님을 만나 뵙는데 감독님께서 ‘동생이 신한에 있는데 괜찮겠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희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합니다. 일은 일이고 자매는 자매죠’ 라고 대답했더니 ‘알겠다. 그럼 두고 보자’고 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동생이랑 사이 안 좋아요’라고 거짓말도 했어요(웃음).”

①편에서 여신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했던 말은 취소다... 

그렇게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타파한 그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장에서 쓰이는 전문적인 농구 용어들. 부모님과 함께 동생의 경기를 보러가는 것 말고는 농구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그였기에 이러한 용어들에 적응하는 것은 새로운 숙제였다. 

김경란: 초반에는 그야말로 멘붕이었어요. 그냥 용어랑 농구 용어가 다른데 전문용어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저한테 ‘계속 걔한테 골밑에서 쫘주라고 해!’ 이러시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정)미란 언니한테 물어봤더니 포스트에서 바디 컨택 하면서 자리싸움하라는 의미더라고요.
루키 더 바스켓(이하 'RB'): 그럼 그런 것들은 어떻게 배웠어요?
김경란: 첫 해에는 박재헌(현 LG 코치) 코치님이 같이 계셨으니까 옆에서 주워들은 것이 많았어요. 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셨죠. 그 다음에 제가 학교 때문에 1년을 쉬다가 돌아왔을 때는 코치님은 안계셨지만 필기를 해놓은 노트가 있었거든요. 그걸 토대로 많이 익히기도 하고 선수들도 저한테 많이 알려주려고 했었어요. 
RB: 지금은 거의 전문가시겠네요.
김경란: 예전보다는 많이 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하죠. 감독님들도 성향이 다른 것처럼 쓰시는 용어가 조금씩 다르시거든요. 또 선수들도 다 다르게 용어를 써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빨리 파악해야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문제가 없어요. 

물론 그에게는 용어를 익히는 것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것이 경기 도중의 작전타임 상황. 제한된 시간 내에 감독들의 말을 모두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그는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처음에는... 와... 진짜 이거는 한국말로 듣고 한국말로 바로 말하라고 해도 못하겠더라고요. 제이(박재헌) 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래도 제가 해야 될 역할이 있었잖아요. 저는 어떤 면에서는 배우던 입장이었는데 그래도 감독님들이 이해를 많이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을 못 알아듣는 실수도 했거든요. 그럴 때는 다시 여쭤봐야 하는데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했어요. 경기장을 가면 너무 긴장이 되서 가끔은 울 것 같았거든요. 감독님들도 가끔은 화를 많이 내기도 하시니까... 저는 그렇게 큰소리 나는 게 너무 무섭거든요. 그래도 요즘은 다시 여쭤 봐요. 제가 감독님의 귀랑 입인데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안 되잖아요.”

이처럼 실수투성이였던 그였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 

“정말 농구를 집중해서 보게 되더라고요. 왜냐면 감독님은 그걸 다 기억하고 계셨다가 작전판에 아까 선수들이 한 행위를 그대로 그리세요. 그때 제가 딴 생각을 1초라도 하면 그런 상황을 기억을 못해요. 그러니까 게임 때도 집중해서 보고 노하우도 생겨서 선수들이 실수를 하면 ‘아 저건 이따가 지적 하시겠다’고 생각이 드는데 감독님도 꼭 그걸 말씀을 하세요.”

이어 그는 수훈선수 인터뷰를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 역시 공개했다. 

“선수들이 미디어와 문화에 맞게 조절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냥 제가 알아서 통역하라고 편하게 할 말 안 할 말을 다 해버리는 경우도 있잖아요. 요즘은 기자님들이 다들 영어를 너무 잘하세요. 그래서 제가 중간에 커트를 해봤자 이미 늦은 거죠.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선수들이 샤워하고 나와서 기자회견실로 가는 길 동안에 민감한 부분은 미리 이야기를 해놔요. 그리고 들어가면 서로 눈을 계속 보면서 얘기해요(웃음). 또 선수들이 가끔 너무 피곤하고 하니까 단답을 많이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제가 기사화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으면 옆에서 툭툭 치면서 ‘그거 있잖아’ 하면 그제 서야 또 이야기하고 그러죠.”  

통역이라는 직업의 매력과 고충
사실 스포츠 구단의 통역이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훨씬 극한 직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팬들이 경기장에서 보는 것만이 그들의 주요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김경란 역시 여러 고충을 느끼고 있을 터.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그가 느낀 통역의 매력부터 알아보자. 

“매력은 엄청 많은데 일단 여러 가지를 지금까지 해보면서 제가 느낀 게, 저는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계속하는 걸 못하는 것 같아요. 근데 통역이라는 일을 하면 매일매일 새로운 일이 끊임없이 계속 생기거든요. 마치 게임에서 이걸 통과해야 다음 레벨로 갈 수 있는 퀘스트처럼 계속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니까 그걸 타파하는 재미로 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쉴 새가 없으니까 덜 늙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제 정신상태가 처음 통역 시작했을 때인 24살 같거든요. 그리고 매번 오는 외국인 친구들도 저를 꼭 필요로 하잖아요. 뭔가 팀에 제가 꼭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서 그게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자 이제 밑밥(?)도 깔았겠다, 본격적으로 그가 느끼는 고충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역시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입에서는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다 말씀드리려면 밤새야 되요(웃음). 사실 자기 일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 힘들죠. 일단은 개인시간이 별로 없는 거, 가족들이나 친구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제일 커요. 또 남자친구도 잘 못 만나고... 저희 사이버 연예 중이거든요. 그리고 제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정말 이상한 기사가 나갈 수도 있고,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제가 큰 역할을 하다 보니까 부담감이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습이나 경기 도중 감독들의 다소 거친(?) 표현을 전달하는 것 역시 큰 고충이라고. 정이 잔뜩 든 외국인 선수들을 매번 떠나보내는 것도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선수가 컨디션이 안 따라와서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감독님들이 화를 내셔도 최대한 순화시켜서 전달하거든요. 그런데 이 선수가 진짜 나태하거나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어서 실수를 하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심한 말을 하죠. 상황에 맞춰서 하는 편인데 그걸 그대로 전달하기를 바라는 분도 계시긴 해요. 그런데 저는 심한 말을 잘 못하겠어요(이 대목에서 그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다). 또 선수들이랑 계속 살 붙이고 살다 보니까 정을 주기 싫어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나면 그때 딱 가는 것 같아요. 가고나면 진짜 허전하고 ‘얘 없이 내가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 들 때도 있거든요. 공항에서 엄청 울고... 그런데 가고나면 또 잘 지내요.(웃음)” 

정말 세상 단순하다.. 이렇게 해맑고 순수한 그는 마지막으로 KB스타즈의 팬들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제가 이 코너에 나오면 안 되는 건데.. 실망하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고요. 지금 팀에서도 몰라요. 제가 그냥 인터뷰 하는 줄 알지 ‘월간 여신’ 코너인 줄은... 저 오늘 농구화도 신었는데 그냥 월간 ‘여자 신발’로 하면 안될까요?(웃음) 아무튼 농구팬 분들, 저희 KB스타즈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저희가 꼭 우승할거거든요. 청주 체육관에도 많이 와주세요~~!”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박진호 기자 ck17@thebasket.kr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