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대한민국의 숨겨진 ‘농구 여신’들을 찾아 떠나는 월간 여신.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각 구단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여신 후보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루키 더 바스켓>의 레이더에 제대로 포착된 여신은 청주 KB스타즈의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김경란 씨(호칭 이하 생략). 숨어있던 보석을 발견해 낸 우리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KB스타즈의 체력훈련이 한창인 강원도 태백으로 향했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지난 7월. 약 3시간을 달려 도착한 태백에서는 KB스타즈 선수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유유히 등장한 <루키 더 바스켓>의 차량. 선수들에게 환대를 받기는커녕 순식간에 구박덩어리 신세로 전락한다. 무더위와 한창 싸우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체력훈련에 나타난 취재 차량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을 터. 어쨌든 선수들의 구박에도 아랑곳 않고 우리는 열심히 눈을 굴려 여신의 위치를 파악했다. 

마침 우리가 태백에 도착한 다음 날은 KB스타즈의 훈련 휴식일. 오전부터 부지런히 숙소를 나선 우리는 김경란을 태운 채 근처에 있는 한 폐탄광을 향해 달렸다. 알고 봤더니 편집장이 ‘같이 예술 하나 해보자’며 순진한 여신을 꼬드겼단다. 

이윽고 도착한 폐탄광에서는 그야말로 살벌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 장면을 본 필자는 평생 예술에 무지한 사람으로 남기로 다짐했다. 귀신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아도 전혀 이상한 점이 없을 것 같았던 그곳에서도 성실히 사진 촬영에 임해준 김경란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한다. 

연극영화과, 모델 출신의 통역사
김경란이 KB스타즈의 통역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3~2014시즌. 통역이라는 직업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당연히 영어를 전공한줄 알았지만, 대학 때의 전공은 현재의 직업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연극영화과란다. 사실 학교를 다닐수록 전공을 살릴 생각은 조금씩 없어졌다고. 그런 그에게 통역사라는 직업은 우연한 기회로 다가왔다.

“사실 전공이 연극영화과인데 전공을 살릴 생각은 그다지 없었어요. 점점 자신이 떨어졌었거든요. 학기가 시작되고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예쁜 친구들, 끼 있는 친구들도 너무 많이 들어왔고 준비를 많이 해온 친구들이 많은데 저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았어요. 약간 자신감도 떨어졌고 그래서 다른 걸 계속 생각 했던 것 같아요. 창업도 해보고 망해도 봤는데 당시 제 동생이 농구를 하고 있었거든요. 사실은 동생 통해서 이 일도 제안을 받았어요. 동생이 농구선수니까 ‘얘 농구는 어느 정도 알겠지’ 해서 저한테 물어보신 것 같아요(웃음).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배울 점도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한 통역 일은 그에게 새로운 재미로 다가왔다. 특히 첫 시즌 호흡을 맞춘 외국인 선수들인 모니카 커리, 마리사 콜맨과 친구 같은 관계로 지내면서 너무 재밌었다고. 시즌을 마치고는 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날 정도로 돈독한 관계로 발전했다. 

“그때 제가 3학년이었는데 처음에는 이 일을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한 시즌을 치르면서 좋은 외국인 선수들을 만나서 친구처럼 지내다보니 시즌을 너무 재밌게 마쳤어요.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본의 아니게 휴학을 계속 하면서 학교를 꽤 오래 다녔죠. 다행히 올해 졸업은 했어요(웃음).”

사실 통역을 하기 전에도 그는 정말 많은 일을 경험했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저 진짜 이것저것 많이 했죠?”라며 반문할 정도.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랐을 것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학창 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모두 섭렵하고 다녔다고 한다. 

“안 해본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고모네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등 여러 군데 계셨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나라를 많이 가봤어요. 엄마랑 떨어져 있다 보니 독립심이 너무 빨리 생겨서 고등학교 1학년때 돌아 왔는데 엄마한테 용돈 달라는 말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편의점 알바도 해보고 서빙도 해보고 카페 일도 해보고 엄청 많이 해봤거든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오디션 보러 가는 것을 같이 갔다가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같은 회사에는 장윤주, 한혜진 같은 톱모델들도 속해있었다. 또 현재 걸그룹 ‘달샤벳’으로 활동 중인 수빈 역시 같은 회사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수빈 씨는 농구 안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이 단전을 관통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눈앞의 여신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차마 묻지 못했다. 

“수빈이가 제 동생이랑 나이가 똑같은데 엄청 생각하는 것도 깊고 성숙해요. 그때는 그 친구랑 같이 프로필 사진을 찍어서 디자이너 사무실에 돌리기도 하다가 걸그룹 준비를 하게 됐거든요. 수빈이가 먼저 시작하고 저도 나중에 조금 준비를 해봤는데 저랑은 너무 안 맞더라고요. 저는 자유분방하고 그런 게 좋은데 너무 가두고 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까 그만두고 그냥 학교 열심히 다녔어요(웃음).”

싱가포르에서 획득한 김경란 표 ‘생존 영어’ 
통역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아무래도 ‘영어’다. 김경란이 영어를 익힌 시점은 싱가포르 유학 시절. 아직 어린 시기인 초등학교 6학년 때 유학길에 나선 그는 약 3년여 동안 외국 생활을 하며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영어를 익혔다. 처음에는 손가락질이나 간단한 단어로 밖에 의사표현을 하지 못해 불편함을 겪었지만 약 한달 후부터 귀가 뜨이기 시작했다고.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야말로 살기 위해 배운 ‘생존 영어’다. 

<루키 더 바스켓>(이하 RB): 싱가포르에는 언제까지 있었던 건가요?
김경란: 중학교 3학년 때 까지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영어랑 중국어를 공부하긴 했는데 제가 외국으로 좀 애매할 때 떠난 거 같아요. 다시 돌아오니까 한국 사람들이 수학을 너무 잘하는 거예요. 외국에서는 계산기 쓰거든요. 그래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RB: 그럼 그 때 영어가 확 늘었겠네요?
김경란: 아무래도 그렇죠. 싱가포르 쪽에 아직 한인이 많지 않을 때 갔거든요.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영어를 해야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책에 뭐 있으면 손가락질해서 의사표현을 했는데 나중에는 진짜 살려고 배운 것 같아요.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나니까 이제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또 어렸을 때는 승부욕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때 동갑인 친척이 있었는데 영어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저렇게 말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하루에 단어도 100개씩 외우고 그랬어요. 

이어 김경란은 “그때는 뇌가 말랑말랑 했나 봐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럼 지금은...아.. 아닙니다.. 어쨌든 그때 익힌 영어로 통역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고.   

“사실 고등학교 때는 한국에 있었으니까 영어를 쓸 일이 진짜 없잖아요. 그래서 거의 까먹어 가고 있다고 느낄 때쯤 통역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또 선수들이 슬랭(Slang)도 많이 섞어서 하고 줄임말도 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횡설수설 하는 일도 많았죠. 그런데 같이 살 부비고 사니까 또 느는 거 같더라고요. 많이 배우면서 했었던 것 같아요.”

적응에 힘들어하는 그의 영어 선생님으로 나선 이는 다름 아닌 모니크 커리. 물론 우리가 아는 그 커리의 모습답게(?) 친절한 강의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저 욕 먹으면서 배웠어요 커리한테(웃음). 그래도 이번에 저희가 커리를 뽑았을 때 너무 좋았어요. 저희 팀에 같이 있을 때는 너무 귀찮게 한 면도 많았는데 6개월을 같이 있다가 갑자기 가버리니까 허전하더라고요. 엄청 정들었었나 봐요. 이제 다시 만나면 정말 재밌게 생활할 것 같아요!”

김경란의 커리 예찬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혹시 다가오는 시즌의 재회를 대비한 의도적 발언이 아닐까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지만 너무나도 해맑고 순수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원래 ‘여신’은 거짓말을 못한다. 

내친김에 그 동안 만났던 외국인 선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를 꼽아달라고 하자 그의 대답은 역시나 커리였다. 

“여태껏 제가 외국인 선수를 한 8명 정도 본 것 같아요. 그 중에서 저는 커리가 제일 좋았어요. 사실 같이 있었을 때는 진짜 힘들 때도 많았거든요. 저한테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화내는 사람도 처음이었고 밉기도 했었는데 마지막에는 정말 가족처럼 생각해줬어요. 다른 팀에 있을 때도 와서 막 안아주고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 잘해주려고 해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죠. 생각해보면 겉은 되게 강한데 속은 착하고 배려심도 많고 매너도 좋고 그래요. 막 혼자 끙끙 앓고 표현 안하는 선수들보다는 그렇게 표현하고 뒤끝 없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②편에서 계속... 
사진=박진호 기자 ck17@thebasket.kr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