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우리은행 우리WON 2023-2024 여자프로농구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는 우리은행 이명관이다. 우리은행 이적 후 팀에 완벽하게 녹아들며 핵심으로 자리 잡은 이명관. 이적생 신화를 쓰고 있는 이명관을 만나봤다.

*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3월호에 게재됐습니다. *

 

단국대 르브론, 막차 타고 프로로 향하다

이명관은 전라남도 영광 출신으로 어린 시절 키 크는 운동을 찾다가 농구와 연을 맺게 됐다. 당시에는 선수 수급이 쉽지 않아 5반칙 퇴장이 나오면 4명만 경기를 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키가 엄청 작았어요.(웃음) 키가 큰다는 말을 듣고 운동도 좋아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죠. 처음에는 너무 재밌었는데 나중에는 그만뒀다가 다시 하기를 반복했고 고등학교 때 다시 제대로 시작하게 됐어요.”

“영광에서 선수 스카우트가 쉽지 않았어요. 법성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고 7시만 되면 불도 꺼지고 굴비집만 많아서 아마 문화 충격이었을 거예요.(웃음) 사람이 없으니까 파울 아웃 나오면 4명이 뛰고 그런 일이 많았죠. 지는 게 1~2번이 아니라 계속 지니까 나중에는 조금 무덤덤해졌어요.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면서 남인영 선생님께서 농구에 대한 욕심을 키워주셨죠.”

대학 무대로 향한 이명관은 탄탄한 힘과 뛰어난 득점력을 바탕으로 에이스 역할을 하며 ‘여대부 르브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프로 지명 가능성도 적지 않게 거론됐던 상황. 하지만 중요했던 4학년 시즌에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신입선수 선발회에 참가한 이명관은 3라운드 중반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순간. 삼성생명 임근배 감독이 3라운드 6순위로 이명관을 지명했다. 프로행 막차를 탄 이명관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당시 많은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박신자컵 때 대학 선발에 뽑혔고 MBC배와 플레이오프가 남은 시점에 다쳤어요. 그래서 되게 속상했는데 그러다가 트라이아웃이 새로 생겨서 착잡했어요. 다른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무대가 더 생겼는데 저는 그럴 수가 없었거든요.” 

“3라운드 5순위까지 안 뽑히니까 어느 정도 발을 빼고 기대를 접었어요.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임근배 감독님 입에서 단국대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바로 눈물이 나왔어요. 그렇게 눈물이 팍 튀어나올 수 있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 알았어요.(웃음) 거기서 안 뽑혔다면 제가 여기 없었겠죠? 감독님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차근차근 재활에 임한 이명관은 2020년 박신자컵을 통해 프로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공식 경기에 출전했다.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인 이명관은 정규리그에서도 신인치고 적지 않은 기회를 받았고, 2020-2021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깜짝 활약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출발은 늦었지만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시즌이었다.

“첫 비시즌 들어갈 때 다른 친구들은 그전에 퓨처스리그도 뛰고 했는데 저는 재활 중이라 아무것도 못하니까 시간이 약이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마음은 급했는데 급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몸을 잘 만들어서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기회가 왔어요. 그 기회를 살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우승 시즌에 플레이오프 때는 제가 활약이 좋지 않았어요. 긴장을 많이 하니까 상대한테 슛 주면 안 되는데 주고 막 그랬죠.(웃음) 근데 이제 챔프전은 진짜 끝이고 (김)보미 언니가 은퇴하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 다들 똘똘 뭉쳐서 했던 게 요인이지 않나 싶어요.”

 

우리은행 이명관, 제대로 꽃 피웠다

그렇게 삼성생명에서 주요 로테이션 자원으로 활약했던 이명관이지만 지난해 비시즌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센터 방보람과의 1대1 트레이드를 통해 우리은행으로 이적하게 된 것. 양 팀 간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트레이드였다.

환경이 바뀐 이명관은 부상 때문에 비시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마지막 시즌인 줄 알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조함도 커졌다. 훈련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상황에서 팀의 가용 인원이 부족해 개막전부터 예상보다 많은 출전 시간을 뛰게 됐다. 

“트레이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운 마음도 있었죠. 솔직히 우리은행이 훈련도 많고 감독님도 무섭다고 소문이 났으니 제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운 감정도 생겼어요. 그래도 빨리 마음을 잡고 이왕 트레이드된 김에 진짜 잘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와서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메디컬테스트 때 발바닥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수술하고 재활했는데 그것도 더뎌지니까 박신자컵도 뛰지 못하고 질질 끌려서 개막전 직전까지 왔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몸이 좋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번 시즌이 마지막인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요.”

기대가 크지 않았지만 이명관은 반전 드라마를 쓰며 펄펄 날았다. 1라운드 KB전에선 기억에 남을 끝내기 버저비터를 터트렸고, 3라운드 MIP를 수상하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위성우 감독은 인터뷰에서 연일 이명관의 활약을 칭찬했다. 

“몸이 안 좋았으니까 첫 게임부터 그렇게 뛸 줄 몰랐어요. 잘 뛴 비결이랄 게 없고 감독님과 코치님, 선수들이 잘 맞춰져서 잘한 것이죠. 아예 기대가 없으셨을 거예요.(웃음) 저조차도 기대가 없었고 갑자기 부상 선수가 많이 나와서 폐만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뛰었는데 생각보다 잘하니까 감독님께서도 신기한 마음에 칭찬하시지 않았을까요. 저한테도 ‘정체가 뭐냐?’고 농담도 하셨어요.”

“제가 농구 바보거든요.(웃음) 언니들처럼 농구를 잘 알고 하는 게 아니라 감에 의존해서 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옆에서 잡아주고 못 알아듣는 부분에서는 부가 설명도 잘해주셔서 특별히 어렵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우리은행이 다른 팀보다 운동이 힘들다고 소문이 났잖아요. 안 힘들진 않은데 더 세세하게 손동작, 발동작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는 것 같아요. 그게 강한 비결이지 않을까요?”

“(위성우) 감독님은 운동할 때는 확실히 무서우신데 계속 무서우신 것만은 아니에요. 생각보다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적재적소에 당근과 채찍을 주시는 분이에요.”

“여기 와서 (김)단비 언니도 있고 (박)혜진 언니, (고)아라 언니, (노)현지 언니, (최)이샘 언니도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뛰다가도 이 언니들이랑 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신기합니다. 물론 (박)지현이도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여자농구의 미래이고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친구죠.”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생애 최초로 올스타에 선발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팬들과의 스킨십이 많은 선수 중 한 명인 이명관은 처음 나가는 올스타전이라 끼를 다 발산하지 못했다며 다음에 나간다면 더 재밌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올스타 후보에 올라갔다고 했을 때부터 믿기지 않았어요. 안 되더라도 후보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어요. 막상 뽑혔을 때는 되게 얼떨떨했어요. ‘내가 올스타에 뽑힐 실력이 되나?’라는 생각도 했고 되게 신기한 순간이었어요.”

“아무도 모르지만 제가 주목공포증이 있어요. 작년에 무대에서 한 명씩 춤추는 걸 보면서 저걸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이제 제가 하게 된 거예요. 그래도 ‘팬들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해야지‘하고 열심히 췄는데 춤을 추다가 하트를 날렸는데 감독님들이랑 눈이 마주친 거예요.(웃음) 그래서 살짝 멘붕이 와서 춤을 까먹긴 했는데 그래도 신선하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올스타가 처음이라 끼를 다 발산하지 못한 것 같아요. 어느 타이밍에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걸 해도 되나 싶었는데 한 번 해봤으니까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온다면 이번보다는 낫겠죠. MVP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더 잘 즐기다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삼성생명 시절에도 열렬히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은데 우리은행 와서 팬들이 더 생겼어요. 제가 잘할 때도 마찬가지고 못할 때는 자존감을 많이 올려주세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할 테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Behind Story 
제 롤모델은요

인터뷰 중에 롤모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명관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학 시절 롤모델로 뛰었던 김단비, 박혜진과 현재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이명관. 할 말이 많다면서 이적 후 박혜진과 나눴던 대화를 전했다.

“롤모델 얘기는 할 말이 많아요.(웃음) 아마추어 때는 무조건 인터뷰하면 롤모델 질문이 나와서 2학년 때까지는 포워드를 보니까 (김)단비 언니를 닮고 싶다고 답했어요. 근데 3학년 때 가드로 전향하니까 롤모델도 바뀔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은행 와서 (박)혜진 언니 만나서 ‘저 언니가 롤모델이었어요!’하니까 언니가 왜 과거형이냐고 장난도 치고 놀렸던 기억이 나요.”

“대학 때는 프로에 가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매 순간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단비 언니와 혜진 언니를 롤모델로 꼽았지만 프로에 와서 그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언니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냥 매 순간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라고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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