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드래프트 2순위에 뽑히며 프로 입단 당시 많은 기대를 받았던 한희원.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군 전역 후 팀 내 입지를 넓혀간 끝에 이번 시즌은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KT의 올 시즌 반등에서 안 될 존재 한희원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기록은 모두 2023년 12월 21일 기준) 

*본 인터뷰는 2023년 12월 14일에 진행됐으며, 루키 2024년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

경희대 시절 팀의 득점을 책임지는 에이스로 활약했던 한희원은 201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라는 높은 순번에 프로에 입성했다. 하지만 두 번의 트레이드를 겪는 사이 그는 좀처럼 지명 당시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고, 2019-2020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했다. 

한희원은 상무 입대가 그의 선수 생활을 바꿔놓은 터닝 포인트라고 돌아봤다. 슈터 포지션임에도 코트에서 마음 놓고 슛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했던 그는 상무에서 차분하게 본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전역 후 팀에서 점점 입지를 넓혀가며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수비부터 하자’는 생각이 그의 적극성을 키웠다. 

“두 번째 트레이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대로 가면 신인들도 계속 들어오니까 군대에 다녀와서 은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여기서도 안 되면 내 농구 인생은 진짜 끝이라고 생각했죠. KT에 와서 막상 엄청난 발전을 했다기보다는 그래도 이전보다는 출전 시간을 가져갈 수 있었고, 농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팀에서 저를 믿고 데려와 주신 거니까 꼭 보답하고 싶었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당시에 제가 연습을 많이 하고 나가도 코트에서는 자신이 안 생겼어요. 슈터인데 슛을 못 쏠 정도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죠. 생각이 많았던 것도 있고 제가 출전 시간이 확실하게 보장된 선수가 아니니까 ‘여기서 못하면 교체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군대에 가서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군대에서 마인드를 다시 잡았던 게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수비에서 먼저 도움을 주면 공격할 때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수비부터 했는데 그게 좋게 이어져서 출전 시간도 늘어나고 자신감을 찾았죠.“

지난 시즌을 통해 주가를 높인 한희원은 2023년 FA 시장에서 2년 2억 7,500만 원에 KT와 재계약을 맺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선수 중 한 명이었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도 있었지만 그는 잔류를 선택했다.

”지난 시즌은 FA도 앞두고 있었고 은퇴 생각도 나면서 여기서도 못하면 진짜 이도 저도 아닌 선수로 끝난다는 생각을 혼자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간절해진 것 같아요.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던 게 나름대로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허)훈이도 돌아오는 시즌이어서 팀이 강한 전력이라고 생각했죠. 또 계약 조건만 봤을 때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이 있었어요. 그래도 KT가 트레이드로 저를 데려왔고, 이렇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팀이에요. 감독님과는 FA 때 딱 한 번 만난 것 같은데 저에게 가장 큰 믿음을 주셨어요. 어떤 방향으로 활용하실지 말씀을 해주셨는데 감독님을 오래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딱 하신 말씀은 지키시는 분이에요. 그 믿음 하나로 남았죠.“

재계약을 맺은 한희원은 날개를 단 듯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22경기를 뛴 시점에서 평균 9.1점 4.2리바운드에 경기당 1.7개의 3점슛을 성공하며 대부분 지표에서 커리어-하이를 기록 중이다. 자신감 상승이 성적 향상의 원천이다. 

“이번 시즌에는 팀에서 가치도 인정해주셨고 감독님도 새로 부임하셨으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공격적인 부분을 많이 연습했던 것 같아요. 수비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슛이나 이런 부분에 집중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코트에서는 항상 긴장하지만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믿음을 많이 주세요. 출전 시간도 어느 정도 가져가니까 실수해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더 자신감을 가지고 하는 것 같아요.”

“보완할 점이요? 앞으로도 너무 많아요. 수비에서도 모자란 게 있고, 슛 성공률도 원래 신경을 쓰지는 않고 자신감 있게 던지자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번 시즌에는 에어볼이 나도 다음 공격에 진짜 자신은 있는 것 같아요. 보완점은 너무 많지만 예전 같지 않게 뭔가 자신감 하나는 그래도 확실히 좋아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KT, 한희원이 바라본 변화 

지난 시즌 KT는 허훈이 입대했지만 탄탄한 뎁스 속에 우승 후보라는 기대를 받으며 시즌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난 시즌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KT가 6위 아래로 정규리그를 마친 것은 2017-2018시즌 이후 5년 만이었다.

송영진 감독 체제로 새롭게 닻을 올린 이번 시즌은 다르다. 허훈이 합류하기 전인 1라운드를 연승 행진 속에 무사히 버텨냈고, 문성곤과 하윤기의 부상 악재가 있었음에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엔 외국 선수 문제도 있었고 국내 선수들도 팀적으로 많이 뭉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성곤이가 와서 주장을 맡고 있는데 개인적인 것보다 팀이 이길 수 있는 방향을 많이 잡아주고 훈이가 한마디라도 더 해서 에너지 레벨을 많이 올려준 덕분에 팀원들이 모두 신이 나서 농구를 하고 있어요.”

“일단 성곤이가 팀을 많이 잡아주고 93년생 친구들, 특히 (최)창진이가 비시즌에 몸을 열심히 만들면서 훈이 없이도 1라운드를 버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정)성우처럼 다들 워낙 수비에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훈이가 오면서 팀이 더 강해졌지만 이전에도 다른 선수들이 잘해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축 선수들이 팀을 더 끈끈하게 바꿔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크게 느껴집니다.” 

이적생이자 주장인 문성곤의 합류는 코트 안팎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한희원-문성곤-정성우-하윤기 등 수비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많은 KT는 이번 시즌 비약적인 수비력 향상을 보이고 있다. 평균 실점 부문에서 LG에 이어 최소 2위. 선수들의 기본 능력도 상당하지만 하겠다는 의지가 커진 것도 중요하다. 

“프로 커리어를 쭉 봤을 때 성곤이는 어찌 됐든 좋은 커리어를 갖고 왔고 저는 조금 주춤했다가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어릴 때부터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던 친구에요. 수비에서 믿을 수 있고, 팀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졌어요. 친구로서 성곤이를 봐오면 그런 리더십을 확실히 보유한 것 같아요.”

“솔직히 저도 성곤이가 KT에 왔다는 기사를 보고 진짜 극단적으로까지 생각하면 비슷한 게 많은데 수비에서 성곤이가 월등히 좋다고 보기 때문에 저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걱정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웃음) 하지만 감독님과 미팅했을 때 ”전혀 그런 것 없고 같이 하면 좋은 조합이지 아닐까?”라고 해주셔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진짜 그런 생각을 했고, 실제로 성곤, 윤기, 성우까지 같이 뛰면 그런 게 확실히 강점인 것 같아요.“

“이전엔 KT라는 팀이 수비에 의지를 가진 선수가 많지 않았어요. 공격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비적인 부분에서 되게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아졌어요. 성곤이 하나로 팀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성곤이가 에너지를 넣어주고, 팀원들이 더 하려는 시너지 효과가 조합이 잘 이뤄지는 것 같아요. 선수들끼리 하자고 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장점을 쏟아내야 시합에 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팀원끼리 말을 많이 하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더 집중해서 하자고 해요.”

보는 사람도 웃게 만드는 쾌활한 성격의 허훈 또한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상무에서 전역하고 바로 리그로 돌아왔지만 기량 또한 여전히 KBL 최고 수준이다.

“훈이는 군대에서 더 발전해서 온 것 같아요. 연습 때도 막기가 너무 힘들고 제가 평가할 정도의 선수가 아니에요.”(웃음) 

”근데 개인 기량보다도 팀 분위기를 밝게 해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게 커요. 본인이 기분이 안 좋아도 더 밝게 해서 팀을 더 흥이 나게 해주는 선수죠. 에이스가 먼저 나서서 풀코트 프레스로 텐션 더 높이고 하는데 우리가 설렁설렁할 수 없잖아요. 밖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KT는 짧지 않은 역사를 보유한 구단이지만 아직 챔피언결정전 우승이 없는 구단이다. 그런 점에서 젊고 강한 이번 시즌의 그들은 우승 적기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한희원 또한 멤버 구성에 자신감을 드러내며 꼭 주축 선수로 우승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자신감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KT 팬들을 향한 감사 인사도 덧붙였다.  

“애들한테도 이야기 하는데 우리 팀은 정말 좋은 멤버를 갖고 있어요. KCC, LG, DB, SK 같은 팀들도 있지만 전혀 밀릴 게 없다고 보고 또 젊은 팀이잖아요. 최고참인 (이)현석이 형이 32살이고, (하)윤기도 있고 훈이가 다쳤지만 건강하게 돌아온다면 우승을 위한 가장 좋은 기회지 않을까 생각해요. 팀원끼리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저는 프로 처음 와서는 되게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열심히 하는 선수라는 말도 좋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올라가서 실패하지 않았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는 말처럼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더 좋은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고 KT가 아직 챔프전 우승이 없는 팀인데 주축으로 한 번쯤은 꼭 우승을 해보고 싶습니다.”

“KT 팬분들, 많이 응원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지금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성적까지는 아니지만 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선수들끼리 잘 맞춰서 더 좋은 성적으로 팬 여러분들께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릴게요!” 

EXTRA STORY
코칭스태프를 향한 깊은 신뢰 

이번 시즌 한희원이 커리어-하이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데는 송영진 감독과 박지현 코치의 영향도 컸다. 특히 한희원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롤모델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박 코치의 이름을 언급했다. KT 관계자는 송영진 감독이 아버지, 큰형과 같은 느낌이라면 박지현 코치는 어머니처럼 선수들을 챙긴다는 후문을 전하기도 했다. 

“감독님은 정말 뒤끝 없고 쿨하신 분이에요. 제가 비시즌에 가장 많이 혼난 선수인데 확실히 저는 감독님을 보면서 믿음이 가는 지도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말은 꼭 지키시고, 형님 리더십의 카리스마가 있으신데 평소에는 장난도 많이 쳐주세요. 선수들이 코트에서만 진심으로 하면 문제가 없죠.”

“롤모델은 사실 너무 많아서 꼽기 어려운데 제가 자신 있게 코트 안에서 슛을 던질 수 있고, 밝고 활발하게 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박지현 코치님의 존재에요. 되게 힘을 많이 주시고 그분으로 인해서 코트에서 정말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인드나 가지신 생각을 봤을 때는 가장 멋있는 롤모델이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진 = 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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