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생. 23살에 불과한 나이이지만 우리은행 박지현은 벌써 노련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다섯 번의 시즌, 그리고 맞이한 다시 맞이한 여섯 번째 가을. 통산 출전 경기 수가 이미 130경기를 넘어선 박지현은 이제 경험이 쌓이는 것을 넘어 농구에 눈을 뜨기 시작한 느낌이다. 디펜딩 챔피언 우리은행의 리핏 도전을 이끌 주역, 박지현을 만나보았다.
*본 인터뷰는 11월 8일에 진행됐으며, 루키 2023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도전자
우리은행은 최고의 2022-2023시즌을 보냈다.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까지 통합 우승. 하지만 이번 2023-2024시즌을 앞둔 우리은행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여전히 우승후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난 시즌 같은 압도적인 질주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이유가 있다. 일단 베테랑 김정은이 FA 시장을 통해 하나원큐로 떠났다. 보상선수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유승희는 시즌 첫 경기에서 전방십자인대가 파열, 시즌-아웃됐다.
우리은행의 정신적 지주 박혜진은 개막 4번째 경기가 돼서야 돌아왔다. 여전히 몸 상태는 100%가 아니다.
개막 세 번째 경기인 KB전을 앞두고 위성우 감독은 “경기하는 게 무서운 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남겼다. 가용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 ‘위대인’조차도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이번 시즌은 어쩌면 우리은행에서 박지현이 더 중심적인 역햘을 수행해야 할 시즌일지도 모른다.
“사실 (유)승희 언니가 다쳤다고 했을 때 결과 듣고 저희도 저희 팀 모두 약간 좀 많이 다운되기도 했었고 좀 많이 안타깝기도 했었다. 아마 언니 본인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저희도 이렇게 침체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도 승희 언니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저희가 한 발 더 뛰고 더 열심히 해야 되는 이유가 생긴 것 같다라고 얘기를 하셨다. 승희 언니가 빠지게 되면서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책임감도 더 커졌고 한 발 더 뛰면서 농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작년에도 그렇고 지금도 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매 시즌마다 저희 팀한테는 이런 부상이라는 게 항상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위기가 왔을 때마다 항상 침체되기보다는 선수들끼리 마음을 모아서 이겨내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부분은 우리 스스로가 제일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가 그걸 이겨내는 방법도 알고 있고 저는 언니들을 보면서 그런 부분을 배웠었던 것도 있다. 이제는 그동안 배운 것들을 언니들과 후배들 사이의 중간 위치에서 잘 해줘야 할 것 같다.” 박지현의 설명이다.
박지현 역시 우리은행을 “도전자”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저희가 우승을 했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생각은 지금 사실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진짜 도전자가 됐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이 리셋된 상황에서 지난 시즌의 결과는 다 지나간 일에 불과하다. 이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시즌이니, 우리는 정말 도전자의 입장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팀들의 전력도 많이 바뀌었고 특히 KB 같은 팀이 워낙 전력이 좋다. 사실 모든 구단이 다 전력이 보강된 상황에서 우리 입장에서는 어느 팀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자극하고 있고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도전자라는 마음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데뷔 6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박지현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나이로 치면 여전히 쌩쌩할 시기다. 지난 몇 년 동안 농구를 읽는 눈이 좋아지면서 흐름을 읽고 플레이하는 능력도 생겼다. 위성우 감독도 박지현에 대해서 이제는 “농구가 늘었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 얘기를 꺼내자 박지현은 “감독님은 저한테 그런 얘기를 절대 안 하신다”며 웃어보였다.
“사실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은 하셨겠지만 저한테는 직접 그런 말씀은 잘 안 하신다. 저도 다른 인터뷰를 통해 전해들을 뿐이다. 저한테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다. 오히려 너는 농구가 언제 늘 거냐고 말하신다.(웃음) 사실 저는 감독님이 그런 스타일이신 걸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데뷔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제가 정말 늘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 문제가 있는 거다. 감독님한테 많이 배우면서 농구를 했고 우리은행이라는 좋은 팀에서 훈련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는데 제가 늘지 않고 성장을 하지 못했으면 그건 제가 정말 문제인 거라고 생각한다.”

리더
2000년생인 박지현은 아직도 23살이다. 사회로 치면 아직도 초년생 나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난 5년 간의 프로 생활을 통해 박지현은 어느새 팀에서도 중간 위치가 됐다. 이젠 마냥 어린 신예급이 아닌 셈이다.
“오늘 훈련을 하려고 라커룸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 많아졌는데, 이전에는 신인들을 봐도 저보다 특별히 어리다는 생각이 안 들고 그냥 동료 같았는데 이제는 정말 아기 같고 귀엽고 그렇더라.(웃음) 감독님도 저보고 이제는 앳된 느낌이 하나도 없다고 왜 이렇게 나이를 먹었냐고 하시더라. 기분이 이상했다.(웃음)”
“아무래도 후배들이 생긴다는 거에 대해서는 더 책임감이 생기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저희 팀에 언니들이 좀 많은 편이긴 한데 제가 아직도 어린 편인데도 다른 팀의 제 동기들과 비교하면 이미 거의 고참 위치까지 가 있더라. 제 동기들도 다들 열심히 배우고 책임감을 가지고 농구를 하고 있겠지만, 저도 저대로 천천히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차근차근 열심히, 감사한 마음으로 배우면서 가려고 한다.”
이제는 배우는 단계를 넘어 더 어린 후배들을 위한 리더로 발돋움하려고 하는 박지현이다.
“제가 신인일 때 언니들이 제게 알려줬던 부분, 제가 어렸을 때 많이 느꼈던 부분들을 후배들한테 알려줄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 중간 위치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고, 앞으로 더 시간이 흘러서 고참이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지금도 언니들을 보면서 너무 많이 배우고 있다. 좋은 언니들 덕분에 밑에서 지켜보면서 잘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팀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은행에서 뛰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나이 많은 최고참 언니들까지도 훈련을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언니들이 가장 먼저 체육관에 나와서 본보기가 되어주는 모습이 정말 대단했다. 운동선수라는 직업이 책임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언니들은 다들 한 명도 빠짐없이 책임감이 정말 강하다고 생각한다. 저도 더 시간이 흘러서 고참이 되면 언니로서, 선배로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우리 팀 언니들은 좋은 선수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운동 외적으로도 언니들과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다들 후배들을 너무 잘 대해주신다. 그래서 제가 더 언니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세월이 흐른 만큼 시즌에 임하는 마음도 달라졌다. 박지현은 “이젠 경험이 확실히 쌓인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그동안에는 그냥 정말 한 시즌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몸을 단련하고 그런 식으로 시즌을 딱 시작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있을 좋은 날, 힘든 날, 지치는 날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하면서 그걸 잘 견디겠다는 마음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런 부분이 제가 경험이 쌓인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현의 말이다.

스텝 업
23살. 한창 욕심이 많을 나이다. 나이를 생각하면 박지현에게 최고는 당연히 오지 않았다고 말할 법 하다. 전성기에 접어들 시기는 절대 아니다. 즉 박지현에게 더 올라갈 곳은 얼마든지 있다.
일단 박지현에게 아직 필요한 것은 완급조절이다. 지난 봄 챔프전에서도 신바람이 나 온 힘을 썼다가 위성우 감독에게 되려 꾸중을 들었던 박지현이다.
박지현은 여자농구에서도 손꼽히는 피지컬과 운동능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부상 없이, 농구를 잘하면서 장수하려면 완급조절이 필수다.
박지현은 BNK를 상대로 치른 시즌 개막전부터 완급조절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첫 경기에서 스스로 보완을 하고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체력적인 부분이었다. 감독님도 저한테 얘기하셨지만 저도 많이 느꼈다. 제가 초반에 너무 페이스 조절을 못해서 후반 가서 진짜 제가 해줘야 될 때 너무 힘들다 보니까 잘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그로 인해 중요할 때 너무 (김)단비 언니한테만 의존해서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단비 언니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다음부터는 그런 부분을 더 신경을 많이 쓰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박지현에게 다가오는 시즌 가장 탐나는 기록은 무엇일까?
질문을 받은 박지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리바운드요!”라고 답했다.
“개인적으로는 리바운드를 잘하고 싶다. 득점이나 어시스트 같은 경우에는 기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리바운드 같은 경우에는 제 마음가짐에 따라 진짜 항상 평균을 어느 정도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은행에서 농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득점보다는 리바운드라고 배워왔고,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득점이나 제가 해야 하는 다른 부분이 잘 안 풀릴 때는 저 스스로도 수비나 리바운드로 풀어가자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한다. 제일 기본적인 것부터 하자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하는 편인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역시 수비와 리바운드가 아닌가. 그래서 저는 리바운드를 꼽고 싶다.”
박지현은 자신의 발전과 팀의 우승 도전이 2023-2024시즌의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제 농구가 발전이 좀 있었으면 좋다. 그리고 팀으로서는 한 번 더 우승에 도전하고 싶다. 우선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사진 = 이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