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아니었고, 지독한 부상 여파로 조기에 은퇴했다. 하지만 농구를 사랑했던 최승태 코치는 꿈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얻은 뒤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정관장의 코치로서 지난 시즌 통합 우승에 공헌하고 이번 시즌도 순항을 이끌고 있는 그를 만나보자.
*본 기사는 루키 2023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후회는 남기지 않았던 선수 생활, 그리고 미국행
연세대 시절 가능성을 인정받은 뒤 2004년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로 프로에 입단한 최승태 코치.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기대만큼 프로에서 선수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1차 은퇴 후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 돌아와 모든 걸 불태웠던 만큼 그는 선수 생활에 후회가 남지는 않는다고 돌아봤다.
“프로에 와서 완전히 농구에 대한 정이 떨어졌죠.(웃음) 신인 때는 챔프전도 가보고 조금은 뛰었는데 2년 차에 다시 아프기 시작했고, 크게 다치면서 농구에 대한 애정이 떨어졌어요. 대학 때부터 부상을 달고 다녔던 선수였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는지 그 순간에 확 추락하더라고요. 26~7살로 기억하는데 농구가 정말 싫어졌던 시기였어요.”
“다치고 나서 은퇴하고 1년 반 정도를 정말 바보같이 지냈어요. 저러면 인생 실패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삶을 비관하면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으로 살았던 것이죠. 그때 (방)성윤이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이 아쉽지 않느냐며 마지막을 불살라보자고 잡아줬어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돌아와서 1년 반을 정말 불태웠습니다. 몸은 안 돼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걸 쏟으면서 미련을 다 떨쳐냈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은 끝났어도 최 코치의 농구를 향한 사랑은 식지 않았다.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최 코치는 농구를 배우겠다는 열망 하나로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동생의 도움을 받아 NCAA 디비전 1의 앨라배마 대학 버밍엄 농구부와 연을 맺었고, 매니저로 시작해 나중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코치까지 맡게 됐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스토리 전개다.
“선수로서의 마지막을 불태우니까 ‘농구를 더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농구도 너무 좋아하니까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마지막에 미국 생각이 들었어요. 농구의 본고장에 가서 선진 농구를 배우고 싶어졌고 마침 동생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대학에 어학원도 있었고, 디비전 1에 속한 학교라 ’오케이, 이거다‘라고 마음먹고 미국에 가기로 했죠.”
“진짜 무작정 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영어도 아예 못해서 어학원에서 애플, 바나나 이런 단어부터 배웠어요.(웃음) 그래도 고마운 게 동생이 대학에서 스포츠 재활 공부를 했는데 같이 농구부에 찾아가 보자고 미국에 도착한 날에 바로 데려갔어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훈련하는 걸 구경이라도 할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더니 감독님께서 우리가 일손이 필요한데 매니저처럼 일하면서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셔서 바로 시작했어요.”
“정말 고생도 많이 했지만 뜻깊고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애들 몸싸움하다가 쓰러지면 가서 마핑보이하는 것처럼 땀 닦고 물도 다 준비하고 먹는 것도 못 챙겨 먹을 때도 있었죠.(웃음) 그래도 다행히 잘 보여서 코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직접 농구의 본고장에서 몸으로 느끼면서 배운 바는 확실히 많았다. NBA의 인기도 추월하는 NCAA 3월의 광란도 팀의 진출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생활에서 최 코치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서로 간의 활발한 소통이었다. 이는 그가 한국에서 지도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 2~3년은 3월의 광란을 TV로만 보고 마지막 해에 학교가 진출해서 직접 느꼈어요. 사실 TV로만 봐도 기가 막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대단해요. 한국에 있을 때 정기전도 치러봤지만 그런 분위기에 3~4배 큰 체육관에서 경기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처음 가서 느낀 건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선수와 선수, 선수와 코치, 감독과 코치의 소통까지. 우리나라는 과거에 수직적인 관계가 강했는데 거기도 그런 게 분명히 있지만 얘기를 들어주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아닌 걸 걸러내면서 서로 눈치 안 보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어쩌면 그런 게 지금 김상식 감독님이 하고 계신 방식과 비슷하기도 하죠.”
“’나도 그냥 갔다 오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도전도 좋지만 그만큼의 열정과 목표 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구단 지원도 없었고, 선수로 모은 1,500만 원 들고 가서 시작했거든요. 그래도 목적의식이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힘들어도 이겨내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완벽한 목적의식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또 한 번의 성장, 그리고 김상식 감독과의 만남
미국에서 돌아온 최 코치는 2015-2016시즌 KCC 코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KBL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전력 분석 업무까지 겸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챔피언결정전도 경험하는 등 지도자로서 발전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고 돌아봤다. 이후 미국에 한 차례 더 다녀온 그는 LG에서 조성원 감독을 보좌하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경험치가 쌓이니까 좋은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34살 막내 코치였는데 많은 걸 알지는 못하던 시기였죠.(웃음) 코치에 전력 분석까지 경험하면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하나에 확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그게 자양분이 됐어요. 뭣도 모르고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만 했는데 그래도 축적이 되면서 큰 자산이 된 것 같아요.”
“KCC 코치로 3~4년을 하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심적으로 지쳤어요.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동생이 아직 미국에 있어서 2~3개월만 아무 생각 없이 쉬다 오려고 했어요. 근데 미국에 간 김에 농구팀을 찾아갔더니 제가 있을 때는 코치였다가 감독으로 승격하신 분이 도와달라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러면 쉬면서도 농구의 끈을 안 놓고 계속할 수 있는 거니까 도와주기로 했는데 3개월을 쉬러 간 게 1년 반이 됐죠.”
2021-2022시즌을 끝으로 LG를 떠난 최 코치는 김상식 감독의 제안을 받아 정관장 코치로 합류하게 됐다. 그와 함께 합을 맞출 파트너로는 LG에서 선수와 코치로 한솥밥을 먹었던 조성민 코치가 낙점됐다. 최 코치는 김상식 감독과 깊은 인연은 없었지만, 소중한 기회를 받았기 때문에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회상했다.
조성민 코치와 함께 김상식 감독을 훌륭히 보좌한 최승태 코치는 지난 시즌 정관장이 통합 우승과 더불어 EASL(동아시아 슈퍼리그)까지 제패하는 데 공헌했다. 김상식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핵심 선수의 이적 등으로 우승 후보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한 번도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던 정관장이다.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말씀은 드렸지만 김상식 감독님과 직접적인 연은 없었고 현장에서 얼굴을 뵈면 인사만 드리는 정도였죠. 사실 그래서 제안을 받고 너무 놀랐고, 처음 드린 말씀은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였습니다. 당시 팀의 사정이나 그런 걸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자율적이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선수들에게도 허물없이 다가가려고 하셨고, 모션 오펜스도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선수들이 감독님의 색깔과 철학을 이해하면서 적절하게 조화를 이뤘어요. 연습했던 게 개막전부터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그러면서 선수들이 ‘이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을 얻었죠.”
“플레이오프는 정말 힘들었죠.(웃음) 특히 6차전이 정말 힘든 경기였어요. 그 경기를 이기고 나선 모멘텀이 넘어왔다고 느껴서 솔직히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팀이랑 7번 경기를 한다는 게 준비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분명히 선수뿐만 아니라 저 또한 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상식 감독은 기존 KBL 지도자들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다른 부드러운 소통의 리더십으로 주목을 받았다. 최 코치는 미국 유학길에서 얻었던 교훈과 김상식 감독이 선수단을 이끄는 방식에 교집합이 있다며 진정한 어른과 같은 리더십의 김 감독을 치켜세웠다. 더불어 처음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조성민 코치를 향해서도 박수를 보냈다.
“감독님은 제가 감히 평가하고 말할 수 없는 분이에요. ‘정말 대단하고 좋은 어른‘.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겠네요. 감독님께 하나부터 열까지 배울 게 정말 많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배웠던 부분이랑 감독님께서 보여주시는 리더십이 일맥상통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 감독님 도움으로 클리퍼스 구단에 가서 훈련을 참관하고 경기를 관람한 것도 어느 누가 이런 기회를 주시겠어요. 저는 정말 큰 복을 받은 셈이죠.”
“제가 생각하고 있던 부분에 확신을 주신 분이에요. 감독님이랑 두 시즌째 함께하면서 제가 생각했던 부분이 잘못되지 않았고 맞다는 걸 확신하게 됐어요.”
“성민이도 굉장히 성실한 친구에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자만 같은 것도 아예 없고, 오히려 항상 낮은 자세로 배우려고 해주고 있어서 정말 고맙죠. 먼저 다가와서 배우려고 하고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정말 잘 이뤄지고 있어요.”
현재도 지도자로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최 코치의 최종 목표는 역시 감독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본인이 팀의 수장인 감독을 맡기엔 부족함이 많다며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도자로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맡은 바에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은 직업에 상관없이 중요한 일이라 느끼고, 선수들이나 회사, 감독님과의 관계 사이에서의 상호 존중도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어느 사람을 무시하는 순간, 그 사람도 저를 무시할 것이고 서로에 대한 끈끈함도 만들어지지 않겠죠. 하지만 존중하기 시작하면 그건 돌아오기 때문에 좋은 영향력이 전파된다고 믿어요. 특히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후의 꿈은 어쨌든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겠죠.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가기에는 제가 아직 어리고 배울 점이 많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최대한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웃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꿈은 정말 다양한 것 같아요. 외국에서도 해보고 싶고,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은 꿈도 있죠. 일단 최종 목표는 감독이 될 것 같아요.“
끝으로 그는 정관장 팬들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전했다. 정관장은 이번 시즌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뒤집고 시즌 초반 상위권에 오르며 탄탄한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선수들이 이기는 법을 아는 쪽으로 분위기가 입혀진 것 같아요. 근데 새로운 선수들에게 그런 걸 입히기가 어려운데 감독님께서 확고한 본인만의 색깔을 가져가시고, 작년 초반에 하신 것처럼 새로운 선수들을 가지고 경험을 쌓아가니까 또 금방 선수들이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팀에 잘 녹아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성도 많이 바뀌었어도 선수들은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누구보다 땀 많이 흘리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많이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시면 힘이 될 거라고 믿고, 분명히 선수들이 보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팬 여러분들이 주시는 성원에 꼭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