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원주에서 열린 원주 DB 프로미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
원주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슈퍼스타가 마침내 코트로 돌아왔다. 두경민이었다.
두경민은 지난 3월 7일 캐롯(현 소노)전에서 7분 13초를 뛴 뒤로 정규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9개월이 넘게 발생한 공백. 그 사이 소속 팀 DB는 2023-2024시즌을 개막 7연승으로 시작하며 선두를 질주하고 있었다.
두경민 입장에서는 부담이 작을 수 없었던 복귀전. 하지만 두경민은 두경민이었다.
2쿼터 막판 교체 투입, 원주 팬들의 함성을 받은 두경민은 이어진 공격 포제션에서 SK의 스위치 수비 미스를 놓치지 않고 좌측 코너에서 3점슛을 작렬, 시즌 첫 야투를 성공했다.
3쿼터 막판에는 볼 운반에 이은 디드릭 로슨의 드래그 스크린(drag screen)을 활용, 미스매치를 만든 후 로슨으로 향하는 SK의 더블 팀을 간결한 캐치앤슛 3점으로 마무리하며 두 번째 3점을 터트렸다.
이날 두경민은 단 11분 7초 동안 8점 2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 복귀전부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오늘 경기 전에 애국가가 나올 때 그동안의 시간이 필름처럼 쭉 지나가더라고요."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두경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기다려주신 감독님, 코치님들, 구단께 너무 감사드려요. 기다려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워요.. 오늘 (강)상재가 코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꼭 이기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김)종규와 (김)영현이는 긴장하지 말라고 긴장을 풀어주더라고요. 기분이 좋네요."
"사실 쉬는 동안에 생각이 많아지고 그랬었어요. 오늘 경기 전에 미팅을 하면서 감독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팀에 보탬이 되어달라고요.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뭘 해야 할지 더 명확히 알게 됐어요. 팀이 원하는 부분을 잘 이행하면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저절로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게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봐요."
실제로 이날 두경민이 보여준 존재감은 단순 '8점' 이상이었다.
두경민은 코트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중력을 사용하듯 자신을 막는 수비수를 끌고 다녔다. 흔히 말하는 '그래비티 효과'였다. 볼을 굳이 잡지 않아도, 두경민의 존재로 인해 상대 수비가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는 곧 동료들에 대한 헬프 수비가 약해지는 효과로 이어졌다.



실제 경기 장면을 통해 확인해보자. DB의 3쿼터 마지막 공격 포제션의 장면이다.
알바노가 인바운드 패스를 잡으며 사이드 아웃 공격이 시작된다.
알바노를 위해 볼 스크린을 걸어줄 로슨을 위해 두경민이 먼저 다운 스크린을 걸어준다. 이처럼 볼 스크리너를 위해 제3의 스크리너가 걸어주는 다운 스크린을 램 스크린(ram screen)이라고 부른다.
램 스크린은 제3의 볼 스크리너의 수비수에게 미리 벽을 한번 세움으로써, 볼 스크리너 수비수의 헷지, 드랍, 스위치 등 이후 2대2 게임 수비 동작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LG, 현대모비스 같은 국내의 많은 팀들이 램 스크린을 2대2 게임의 사전 작업으로 많이 활용한다. 단조로운 2대2 게임보다는 램 스크린이 포함된 2대2 게임이 상대 수비에 더 많은 실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램 스크린에 대해서는 추후의 칼럼을 통해 다루기로 한다.(하이 픽앤롤에서는 램 스크린, 사이드 픽앤롤에서는 웨지 스크린이라고 부른다. 사용 위치가 다른 만큼 파생 효과도 다르다. 이 역시 추후 칼럼을 통해 다뤄보도록 하자.)

SK의 오재현이 알바노를 하프라인 앞까지 밀어내면서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보인다. 이 같은 오재현의 수비를 공략하기 위해 로슨이 알바노가 있는 높은 곳까지 올라와 스텝업 스크린을 세팅한다.
이때 두경민은 램 스크린 세팅 이후 왼쪽 윙 3점슛 라인까지 빠져나와 코트를 넓게 벌린다. 강상재와 최승욱은 각각 오른쪽 숏 코너, 오른쪽 코너에 위치, 베이스 라인에 바짝 붙어서 역시 코트를 넓게 벌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알바노가 로슨의 볼 스크린을 받은 후 8자를 그리는 '스네이크 드리블' 을 통해 넓어진 미드레인지 공간으로 진입, 순식간에 워니와 1대1 상황을 만든다. SK 역시 로슨의 팝아웃을 대비해 아예 스위치로 오재현이 로슨에게 붙어버렸다.
알바노는 허훈, 이정현과 더불어 KBL 가드 중 스네이크 드리블을 가장 잘 활용하는 가드다. 스네이크 드리블은 핸들러가 자신의 기존 수비수는 등 뒤에 두고, 스크리너 수비수는 림과 핸들러 사이에 둠으로써 스크리너 수비수로 하여금 이지선다(핸들러 수비 or 스크리너가 림으로 롤할 경우 스크리너 쪽 체크)를 강요하거나 핸들러와의 미스매치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때 두경민 쪽을 주목하자. 일반적인 경우라면 두경민이 있는 싱글 사이드(single side. 볼이 없는 공격수가 한 명만 있는 사이드. 두 명이 있을 경우 더블 사이드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싱글 사이드냐, 더블 사이드냐에 따라 수비 팀의 헬프와 로테이션 여부가 달라진다. 실제로 많은 KBL 팀들이 싱글 사이드, 더블 사이드 여부에 따라 수비 약속을 다르게 가져간다.) 수비수인 최원혁이 알바노가 페인트존 가까이 진입하는 순간 강하게 튀어나오며 헬프를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미스매치 상황에 놓여 있는 워니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페인트존에서 쉬운 득점을 주지 않는 것이 많은 팀들의 수비 1순위 미션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알바노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원혁은 알바노 쪽으로 깊게 헬프를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이 싱글 사이드에서 막고 있는 공격수가 두경민이기 때문이다.
두경민을 버려두고 알바노 쪽으로 깊게 들어간다면? 영리한 알바노가 두경민에게 킥아웃 패스를 연결할 것이다.

이때 두경민의 움직임도 매우 훌륭하다.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윙과 코너 사이에서 사이드 스텝으로 오프 볼 움직임을 가져가며 최원혁의 시선을 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움직임 하나가 상대 수비를 더 효과적으로 무너뜨린다. 지도자들이 볼이 없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런 장면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두경민처럼 뛰어난 슈터라면 볼이 있는 스트롱사이드든 볼이 없는 위크사이드든 이런 움직임을 통해 수비수의 시선과 발을 묶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팀 전체 오펜스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두경민의 오프 볼 움직임과 그래비티 효과를 통해 넓은 미드레인지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 알바노는 멋진 피벗 플레이로 워니를 요리하며 득점을 올린다.
이 득점을 통해 DB는 점수 차를 더 벌리며 4쿼터를 맞이했고, 4쿼터 SK의 반격을 이겨내고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위 포제션에서 두경민은 단 한 번도 볼을 만지지 않았다. 하지만 램 스크린을 걸고 스트롱사이드 윙으로 빠진 후 자신의 뛰어난 슈팅력을 미끼로 수비수를 끌고 다니면서 알바노-로슨의 2대2 게임을 더 위력적으로 만들었다.
두경민처럼 뛰어난 슈팅력과 활발한 오프 볼 무브를 가진 선수는 코트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팀 오펜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장면이었다.
경기 후 김주성 감독은 "두경민이 팀을 얼마나 위하는지 오늘 플레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경민이 가진 그래비티 효과로 인해 두경민이 있는 DB와 없는 DB가 가지는 폭발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두경민의 존재로 인해 알바노-로슨은 코트를 더 넓게 쓸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DB의 화력 증가로 이어진다. 상대가 알바노-로슨을 집중 견제한다면? 두경민은 이를 놓치지 않고 소나기 득점을 퍼부울 것이다.
DB는 그래서 돌아온 두경민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사진 = KBL 제공, SPOTV 중계 화면 캡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