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많은 KBL 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감동 캐롯 스토리. 중심에 2년 차 유망주 이정현이 있었다. 2번째 시즌 만에 완벽하게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은 이정현은 이제 새롭게 인수된 팀에서 또다른 시즌을 맞이한다.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던 10월 중순, 고양에서 이정현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본 기사는 루키 2023년 11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10월 17일에 진행했습니다.

군산고 출신의 이정현은 황금세대와 같이 뛰던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주목받는 대형 유망주였다. 기대대로 성장을 이어온 이정현은 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한국 농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표주자로 여정을 펼쳐가고 있다. 그의 농구인생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군산월명체육관에서 시작됐다.

“할아버지 집이 월명체육관 옆이었어요. 농구 경기를 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데려가셔서 같이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재밌고 선수들이 멋있어서 그 매력에 빠져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농구를 처음 접한 곳이라서 제게는 정말 의미가 큰 곳이죠. 그래서 이번 컵대회 때도 많이 뛰고 싶었고, 평소보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청소년 대표 때 콜린 섹스턴(現 NBA 유타 재즈)과 붙었다는 표현을 쓰기엔 사실 좀 민망해요.(웃음) 동료들이랑 되게 농구를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호흡도 되게 잘 맞았고 멤버도 정말 좋아서 해외에 유명한 선수가 상대로 나와도 겁 없이 농구를 재밌게 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정현은 연세대에 입학,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대학 무대를 신촌 독수리 천하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팀이 위기에 몰렸을 땐 항상 그가 있었고, 대학생 국가대표 타이틀도 얻었다. 기량이 워낙 뛰어났기에 얼리 드래프트 참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는 대학 4년을 모두 다닌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얼리 드래프트에 대한 후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나왔다면 많은 것이 바뀌었겠죠? 다른 팀에 갔을 확률도 높고 그러면 팀원들도 지금이랑 바뀌었을 거예요. 프로에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어떤 지도자분이나 선수들과 같이 하느냐에 따라 능력치가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가 제 성장이나 경험에 있어서 매우 의미가 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학 때는 프로에서 정말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어요. 약점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요소를 지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특히 3점슛이나 경기 운영은 지금도 많이 배우고 있지만 그때부터 스타트를 끊었고 수비나 2대2 게임에 대한 점도 대학 때 많이 경험했던 것 같아요.”

대학 생활 막바지,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던진 이정현은 당연히 최대어로 불리며 유력한 1순위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그에게 최종적으로 1순위의 영광까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원석, 하윤기에 이어 3번째로 이름이 불린 이정현은 고양 오리온에 입단하게 됐다. 

데뷔 첫 시즌의 이정현은 당시 팀의 에이스인 이대성과 공존하며 성공적으로 프로에 안착했다. 이정현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 이대성은 현재 일본에 진출, B.리그 시호스 미카와에서 활약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1순위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도 없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대학 4년 동안 프로에서 통할 수 있게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쨌거나 제게 물음표가 많이 붙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순위가 밀렸다고 보지만 그런 게 지금 감독님이나 코치님, 선수들을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고도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처음 들어와서 적응도 빨리 해야 했고 팀 스타일에 녹아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그때 (이)대성이 형이 저랑 원정 룸메이트였는데 같이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팀뿐만 아니라 선수로서 가져야 할 정신이나 필요한 에너지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직접 느껴본 일본 B.리그의 수준이 정말 높아졌어요. 대표팀이나 이런 곳에서 경기를 해봤지만 수준도 높고 인프라도 좋아져서 부러운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고 어쨌거나 도전한다는 일 자체가 쉬운 결정이 아닌데 대성이 형의 그런 부분이 멋있고 존경스러운 것 같아요.”

2년 차를 맞이한 이정현은 커리어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팀을 이끌던 이대성과 이승현이 이적하면서 비중이 크게 늘어났고, 오리온의 매각으로 데이원이 구단의 새로운 주인으로 나섰다. 여기에 KGC인삼공사(現 정관장)에서 3번의 챔프전 진출과 2번의 우승을 차지한 김승기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김승기 감독은 첫 시즌부터 작정하고 ‘이정현 키우기’에 나섰다. 김 감독은 “이정현은 대충 둬도 FA 때 2~3억을 받을 수 있는 선수지만 전성현이나 변준형 같이 더 큰 선수가 되도록 생각하고 있다고 이해를 시켰다”며 때로는 혹독하게 이정현 지도에 나섰다. 이정현은 당시 인터뷰에서 농구를 처음 시작하듯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저는 되게 좋았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좋은 기회가 왔고 플레잉 타임을 가지고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실에 행복하게 뛰었던 것 같아요. 부담은 많이 없었어요. 좋으면서도 힘들었어요. 출전 시간이 많이 늘어났고 그 안에서 해야 될 역할이나 플레이가 많아져서 감사하면서도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딱 말하자면 지금은 감독님이 편해졌어요. 지난 시즌에 정말 많이 혼나고 여러 일도 겪었거든요. 그러면서 업다운도 많았고 경기력도 오락가락했는데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제가 해야 할 방향에 있어서 정확하게 인지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전에는 외국 선수를 달고 뜨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실 ‘난 그거 좋아하는데’ 하면서 막 시도하곤 했어요. 감독님은 상대를 속이는 플레이를 좋아하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다가 블록슛도 찍히고 안 들어가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오히려 가질 수 있는 옵션이 더 많아졌고 감독님께서도 제가 노력하는 걸 보니까 변화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원하는 걸 많이 받아주시고 감독님의 방향으로 하다가 한 번씩 제 방향대로 하니까 상대가 예측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옵션을 더 많이 만들었고 플레이오프 들어서는 감독님께서 어떤 부분에서는 인정을 해주시는 느낌도 좀 받았어요. 이번 비시즌을 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시즌에 했던 걸 얘기해주시면서 조언을 많이 해주시고 계세요.”

지난 시즌 이정현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포지션 변경이었다. 대학 시절과 프로 데뷔 시즌에는 주로 2번 포지션에서 활약했던 이정현이지만, 김승기 감독은 그를 포인트가드로 성장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이정현 본인 또한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해 바라고 있었던 포지션 전환이었다.

“걱정 반, 기대 반이었죠. 어쨌든 포인트가드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대학 때도 1번으로 뛰기도 했지만 주로 2번으로 뛰었어요. 감독님께서 완전히 1번으로 풀시즌을 뛴다고 하셨고 어쨌든 제가 프로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1번이어야 한다는 욕심도 있었거든요. 근데 이제 감독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면서 기대되고 설렜던 것 같아요.”

팀의 핵심으로 거듭난 이정현은 지난 시즌 그야말로 원 없이 코트를 누볐다. 52경기에 출전, 리그에서 가장 많은 평균 34분 2초를 뛰며 15.0점 4.2어시스트 1.7스틸을 기록했다. 시즌 도중에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오히려 스텝업의 계기가 되며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5라운드 후반쯤부터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올스타전 끝나고부터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뛰는 시간은 많은데 역할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힘들었는데 이겨내려고 일찍 나와서 운동하기도 하고 남아서 하기도 하고 아예 쉰 적도 있어요. 여러 방법을 다 써봤는데 딱히 효과를 보지는 못했어요.(웃음) 생각을 많이 하니까 시간이 흘렀고 자연스럽게 경기력이 좋아졌어요.”

“솔직히 길이 보인다는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긴 어려워요. 5라운드 가스공사 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팀이 많이 지고 있어도 감독님께서 저를 안 빼시더라고요. 제가 돌파, 3점 다 안 될 때인데 많이 지고 있으니까 큰 생각 없이 했는데 돌파도 되고 하니까 ‘아!’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다시 붙으니까 안 보였던 패스 길이나 돌파가 정확하게 말하긴 어려운데 딱 느껴졌던 것 같아요.”

팀 내 에이스급 선수에게는 수비에서 부담을 줄여주면서 많은 역할을 주지 않기도 하지만, 이정현은 달랐다. 공수겸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정현은 지난 시즌 에이스 수비를 맡는 경우도 많았으며 스틸 1위를 차지하며 뺏는 수비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초반에는 수비 못한다고 엄청 많이 혼났어요.(웃음) 혼나면서도 계속 상대 에이스를 막으라고 계속 기회를 주셨어요. 수비는 항상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공격에서 아무리 롤이 많아져도 수비는 쉴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공수에서 모두 능력치 좋은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욕심을 내는 것 같아요. 사실 수비 5걸 욕심도 냈었어요.(웃음)”

“제가 감독님 만나기 전에도 스틸이나 속공을 좋아했기 때문에 스틸 나가는 방향이나 스텝 같은 걸 지난 시즌에 많이 연습하고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까 스틸도 많이 나오고 속공도 나오고 재밌게 뛰었던 것 같아요.”

김승기 감독이 유망주를 키울 때 처음에 가장 집중하는 것 중 하나가 잘못된 습관을 바로 잡고 턴오버를 줄이는 것이다. 이는 이정현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김 감독의 지난 시즌 인터뷰에서 가장 나온 말이 바로 ‘나쁜 습관 없애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 나쁜 습관이 뭔지 알아요.(웃음) 너무 얘길 많이 들어서 그걸 하면 뜨끔하거든요. 가드가 턴오버를 최대한 줄여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시고 턴오버가 나올만한 동작을 많이 짚어주세요. 턴오버가 나올 수 있는 동작을 줄여가면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원하셨던 것 같아요.”

시즌을 치르면서 점점 성장해간 이정현은 플레이오프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불운하게도 전성현이 정상 컨디션으로 뛰지 못하게 되면서 디드릭 로슨과 원투펀치를 나선 이정현은 예상을 깨고 캐롯을 4강에 올려놨다. 데이원의 재정난 속에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황이었기에 감동 스토리에 주목한 팬들이 많았다. 

“시작할 땐 팀에 변화도 많았고 기대가 많이 됐던 시즌이었어요. 하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구단이 힘든 부분도 있었고 어쨌든 선수들이 잘 이겨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똘똘 뭉쳐서 좋은 결과를 만들려고 많이 노력했거든요.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정말 다행이고 그랬기 때문에 또 이렇게 좋은 기업에서 인수를 해주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구단에 너무 감사하죠.”

“강심장의 비결? 딱히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그냥 이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저돌적으로 하는데 그런 마음을 가질 때마다 좋은 활약이 나올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딱히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못하고 있을 때는 부담도 되고 긴장도 있지만 잘하고 있으면 긴장도 없고 오히려 흥분해서 내가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특히 월급이 밀리는 최악의 상황 속에도 묵묵히 뛰어준 외국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 이정현이다. 로슨의 경우 영리한 BQ와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이정현과 시즌 내내 좋은 호흡을 보였고, 영건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이정현은 이제는 적으로 만나는 로슨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뭉클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선 반드시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뛰어준 점에 대해 로슨에게 정말 고맙죠. 쉽지 않은 상황을 함께했고 내가 미흡했던 점을 많이 보완해주고 메워줬기 때문에 정말 고마운 동료였어요. 이제는 상대 팀이 됐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항상 고마운 마음이 크게 있고 정말 농구를 잘하는 선수였어요.” 

“경기 외적으로 만나면 마음이 뭉클한 게 있어요. 근데 상대로 만나면 항상 경기 전에만 인사를 나눌 뿐 어쨌든 코트 안에서는 이기기 위해 서로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로슨을 만나더라도 이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경기에 임할 거예요.“

4강에서 만난 KGC의 가드 변준형과는 ‘김승기 더비’로 캐롯과 KGC의 매치가 시즌 내내 부각되며 흥미로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앞으로도 변준형은 이정현이 오랜 시간 경쟁을 펼쳐야 할 정상급 가드 중 한 명. 이정현은 변준형을 막기 까다로운 가드로 칭하며 존중을 표했다.

“일단 (변)준형이 형은 너무 잘해요.(웃음) 피지컬도 좋고 공수 모두 능력이 좋아서 상대하기 버거울 때도 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준형이 형처럼 해야 한다, 때로는 더 잘해야 한다면서 이번엔 이겨보라고 나름대로 동기부여도 많이 주셨던 것 같아요. 준형이 형은 상무로 갔지만 또다른 훌륭한 가드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이기는 걸 목표로 해서 가겠습니다.”

감동 스토리로 여운을 오래 남겼지만 달콤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시즌 종료 후 데이원은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며 KBL에서 제명됐고,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몰렸다. 선수들끼리 대책 회의에 나서기도 했지만 답답함이 이어진 시간이었다.

“정말 답답하고 막막했어요. 한 시즌 동안 열심히 치른 게 바로 끝난 느낌이라 아쉬우면서도 속상했고 미래의 막막함도 컸어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같이 함께한 선수단, 코칭스태프분들과 흩어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걱정되고 답답했던 면이 있었죠.”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상황에서 KBL의 구원 투수로 소노가 등장했다. 농구단 인수에 나선 소노 그룹은 데이원을 인수하며 프로농구에 뛰어들었고, 과감한 투자와 함께 창단에 나섰다. 소노가 연고지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이정현은 고양에서 함께 정을 나눈 동료들과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좋은 기업이 인수를 해주셨고, 고양에 남으면서 코칭스태프까지 같이 가는 게 가장 기뻤어요. 지난 시즌 힘든 상황에도 팬들이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시고 많이 찾아와주셔서 응원해주셨기 때문에 정말 감사했거든요. 그리고 제가 처음 프로에 뽑혀서 온 곳이 고양이었기 때문에 마음 속에 애정이 많아요. 여기 모두가 그대로 남는다는 게 제게는 의미가 컸습니다.”

“3년 연속 유니폼이 바뀐 거요? 흔치는 않은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지금 상황으로는 구단에서 해주시는 대우가 정말 좋기 때문에 변하지 않고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구단 재정이나 지원에 대한 걱정은 없어졌지만 FA 시장에 정상적으로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노의 전력은 시즌 전 약체로 평가받았던 지난 시즌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승기 감독 또한 개막을 앞두고 가진 미디어데이에서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 대신 팀의 전력이 약하다며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그래도 당찬 이정현은 기죽지 않는다. 지난 시즌보다 더 성장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한편, 팀 성적까지 챙기며 약체 평가를 또 한 번 뒤집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여전히 부담은 크게 없어요. 근데 욕심이 있죠. 저번 시즌 나름대로 괜찮은 활약을 펼쳤다고 보기에 그거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여전히 팀이 하위권 평가를 받고 있는데 항상 뛰어넘고 싶은 욕심이 승부욕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번 시즌에도 감독님께서 그러셨잖아요.(웃음) 이제 감독님에 대한 느낌을 알게 됐어요. 진짜 약하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 말씀 못하실 것 같은데 그렇지만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셔서 일단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고 모든 선수들도 이겨내려고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KBL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왔던 소노의 양궁 농구는 이번 시즌도 이어질 전망이다. 

“양궁 농구 적응은 이미 완료했죠. 저번 시즌 치르면서 이런 스타일이 정말 좋은 농구라고 느꼈어요. 지금은 저나 (전)성현이 형, (재로드) 존스가 공격 비중을 많이 차지하지만 어쨌거나 스틸과 속공, 스페이싱을 가져가면서 3점슛을 노리는 농구가 되게 좋은 방향이라 생각하고 작년보다 더 많이 쏠 수 있는 상황이에요.”

“감독님은 그냥 넘어오면 쏘라고 하세요. 딥쓰리도 장려하세요. 리바운드해서 첫 볼 나왔는데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노마크면 던져도 된다고 작년부터 말씀하셨어요. 작년에도 딥쓰리가 많았고 올해도 많이 나올 거 같아요. 공간이 나오면 언제든 쏘라고 하세요. 극단적인 3점 농구라고들 많이 하셨지만 더 많이 쏠 거 같고 빈공간이 생기면 저는 돌파나 포스트업도 좋아해서 그런 부분을 더 공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지난 시즌 평균 출전 시간 1위를 기록한 뒤 플레이오프까지 소화한 이정현. 하지만 그에게 휴식은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비시즌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를 위해 청두에 다녀왔고, 이후에는 성인 국가대표팀에 차출돼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비록 남자농구 대표팀은 역대 최악의 성적에 머물렀지만 젊은 이정현에게는 국제 대회 참가가 성장에 있어서 큰 자극이 됐다. 그는 앞으로 국가대표팀에서도 팀의 메인 가드를 맡을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는 의욕을 드러냈다.

“비시즌을 바쁘게 보냈는데 힘들진 않아요. 근데 부상을 당하진 않았어도 아픈 곳들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웃음) 그렇지만 플레잉 타임 1위는 엄청 의미 있는 일이고 항상 코트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생각합니다.”

“그전에 국가대표에 뽑혔을 때는 윈도우라고 월드컵 예선을 나갔는데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에 12명 엔트리에 최종 선발돼 뛸 수 있다는 게 큰 영광이죠. 어릴 때부터 국가대표라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걸 이뤄서 뜻깊은 것 같아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대표팀 메인 가드까지 가고 싶다는 욕심이 더 생기게 됐어요. 그리고 메인으로 나가면 상대 국가를 이겨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다가오는 시즌, 김승기 감독은 이정현이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루며 MVP 후보로 나서길 바란다는 기대를 전했다. 이미 많은 부분을 채웠지만 여전히 더 아름답게 색칠할 수 있는 여백이 존재하는 이정현의 도화지다. 그는 MVP 후보에 오르는 것도 자신이 있다며 다가오는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MVP 후보, 가능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하지만 수상 욕심은 전혀 없어요. 지난 시즌 치르면서 발전했다고 생각하고 이번 시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저조차도 많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좋은 결과를 내면서 희열을 느끼는 스타일이라 이번에도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네요.”

“지난 시즌 경기 운영이나 경기력에서 기복이 있었고, 안 풀릴 때 성현이 형이나 로슨에게 맡기고 숨는 경우도 간간히 있었는데 앞에 나서고 싶어요. 중요한 순간이 많이 올 텐데 득점이나 어시스트를 해서 승리할 수 있도록 주도적으로 싸우고 싶고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딱 이정현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시그니처 무브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돌파나 미드레인지 게임, 3점슛을 다 시도할 수 있고 그런 부분이 생각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라 선택지를 많이 가져갈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아직 저만의 무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서 승리할 수 있는 플레이를 꼭 가져가고 싶어요.”

“일단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또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싸우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작년보다 더 나은 경기력과 성적으로 치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시즌을 함께하게 됐는데 체육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많이 찾아와주셔서 같이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많은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Behind Story
이정현이 뛰어넘고 싶은 상대

이미 리그에서 수준급 가드로 입지를 다진 이정현. 그에게 혹시 꼭 뛰어넘고 싶은 상대가 존재할까? 또한 이정현은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KBL에서 경쟁을 이어갈 하윤기, 이우석, 서명진 등의 99년생 동갑내기들도 치켜세우며 쉽게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뛰어넘고 싶은 상대나 롤모델이요? 지금은 (허)훈이 형인 것 같아요. 이번 대표팀에서 같이 했는데 정말 잘해요. 연습할 때도 1대1 많이 하고 맞붙는 상황이 많았는데 슬렁슬렁 하는 것 같다가도 또 임팩트가 굉장히 강력하게 나오거든요. 상대로 만나게 되면 꼭 이기고 뛰어넘고 싶고 그런 목표가 있습니다.” 

“경쟁은 항상 선수를 발전시키고 승부욕을 끌어오는 데 좋은 요소에요. 99년생 동갑 친구들과 붙으면 다른 선수보다 더 이기고 싶고 자극이 되고 그런 점이 플레이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각자 다 팀에서 주축을 맡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경쟁 상대로 생각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밀리지 않고 항상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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