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업일치‘.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많은 이들의 꿈이기도 하다. 이번에 만나볼 DB 프런트 3인방은 덕업일치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같은 구단에서 오랜 시간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좁게는 구단, 넓게는 프로농구의 발전을 위해 그들이 해왔던 생각들에 대해 들어본다.
*본 기사는 루키 2023년 10월호에 게재됐습니다.
Profile(괄호안은 DB 농구단에서 근무한 년수)
신충섭 선임(13년) : 국제업무/이벤트/마케팅 담당
정희성 선임(12년) : 선수단 운영/티켓 담당
모규화 선임(9년) : 디자인/구단 제작물 담당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큰 행복이다. 어린 시절 스포츠를 정말 좋아했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던 DB의 신충섭, 정희성, 모규화 선임은 농구단에서 만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벌써 구단에서 근무한 세월이 햇수로만 각각 13년, 12년, 9년에 이른다.
신충섭 선임(이하 신) :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스포츠가 너무 재밌어서 중계만 보다가 ‘스포츠로 먹고살 수 있는 게 뭘까?’하고 고민했는데 한창 스포츠 매니지먼트 콘셉트가 유행했어요. ‘이거면 내가 업으로 삼으면서 좋아하는 스포츠 현장에 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거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처음부터 스포츠 산업에서 계속 종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왔고, 지금도 이쪽만 바라보고 있는 마음은 같습니다.
정희성 선임(이하 정) : 진로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전공을 살리면서 가장 멋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던 때에 구단 프런트 취업이 가장 긍정적으로 보였어요. 당연히 스포츠는 좋아했고 구단을 알아보다가 운 좋게 농구단에 취업이 돼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농구단 일이 매년 새로운 점이 많아요. 해를 거듭할 때마다 힘든 면도 있지만 그래도 이직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고 매년 새로운 마음으로 하니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모규화 선임(이하 모) : 저는 중학교 때부터 워낙에 동아리 농구를 좋아했고 체육대학에 진학했어요. 이걸 접목할 수 있는 업무가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프로농구단 취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계기는 너무 좋아하는 농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인 것 같아요. 겨울 스포츠다 보니까 해가 넘어가는 중간에 시즌이 걸려 있어요. 그러니까 매년 시간 가는 게 너무 빨라요,(웃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까 연차가 벌써 이렇게 쌓였네요.

대표적인 농구 도시로 꼽히는 원주는 KBL에서 연고지 정착이 가장 잘 이뤄진 사례로 꼽힌다. 구단과 지역의 유대감 형성을 위해서 프로농구단과 지자체가 모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DB 선수단 숙소 증축 또한 원주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신 : 농구는 연고 이전이 많은 편인데 그래도 저희는 팀명이 바뀐 적은 있어도 강원도에 흔치 않은 프로 구단으로 계속 원주에서 팀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유대감은 타 구단에 비해 확실히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점은 원주가 큰 도시들에 비해 엔터테인먼트나 스포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 팬들도 확실히 더 애정을 가져주시고 농구단이라고 소개하면 많이 반겨주세요. 연고지에 가더라도 문전박대당하는 일도 있는데 원주는 기본적으로 농구단하면 많이 관심을 주셔서 일하기도 수월하고 감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정 : 원주시에서 10년 전에 종합체육관 지으면서 그쪽으로 들어가게 됐고, 올해는 원래 숙소가 3층이었는데 4층으로 증축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원주시에서 다 지원해주셨어요. 다른 팀의 경우 체육관 사용료와 숙소 임차료도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주시에서 3년간 면제해주셨어요. 원주 시민분들의 관심도 당연히 감사하고 타 구단에서 우리 구단의 사례를 먼저 물어볼 정도로 시에서도 지원을 정말 잘해주고 계셔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고지와 프로 팀의 밀착 관계가 좋다 보니 구단 또한 원주시와 연계해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계속해서 고심하고 있다. 유니폼 상단에 KBL 최초로 연고지를 삽입한 DB는 2021-2022시즌부터 팬과 함께하는 시티에디션 유니폼 제작에 나섰고, 구단 광고 없이 원주시의 상징 요소가 디자인에 들어간다. 이밖에 사회공헌 프로그램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신 : 연고지의 지원이 너무 좋으니까 우리도 같이 갈 수 있는 걸 기획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다른 스포츠 쪽에서 스토리 있는 유니폼을 자주 만드는데 KBL은 그런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니까 그런 유니폼을 만든다면 당연히 원주시랑 같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시민들도 참여하면 좋겠다 싶어서 팬들의 공모를 받았고, 조금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서 시티에디션 유니폼이 탄생했습니다. 2년째 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구단의 대표적인 시민 참여 이벤트로 가져갈 생각이에요.
모 :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는 DB손해보험에서 진행하고 있는 러브하우스라고 가정환경 개선이 필요하신 분들을 사무국, 선수단, 모기업 직원들이 찾아가서 집 고쳐주는 프로젝트를 10년 넘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랜 시간 도와주신 지역 스폰서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분들과도 협력해서 지역민들에게 혜택이 많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역 마트와 힘을 합쳐서 홈 경기 승리마다 쌀을 적립해서 기부하는 식으로 진행했고 사랑의 농구대 사업으로 학교에 농구대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DB 구단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구단만의 정체성을 키우고 고유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홈구장 디자인이나 응원 분위기 조성 또한 이러한 생각이 반영됐다. DB는 KBL 최초로 구단 자체적으로 응원가를 제작하기 시작한 팀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에는 KBL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인 농구영신 경기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신 : 농구 쪽이 유난히 그런 면이 약한 게 있는데 사실 홈 경기장에 가면 구단만의 느낌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시의 도움도 받고 홈구장의 인테리어를 다 녹색으로 꾸미니까 다른 구단 관계자분들이 오셔도 ‘여긴 DB 홈구장이구나’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고민했던 게 선도할 수 있는 구단이 있어야 리그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구단만의 고유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답이 나왔어요. 우리 구단만의 컬러나 정체성을 키워서 장기적으로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창 야구에서 응원가 저작권 문제로 논란이 있던 시기라 차라리 우리가 직접 선수 고유의 응원가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계속 듣다 보니까 싫어하시는 분들도 점점 중독이 되고 선수들까지 자기 응원가 나오면 흥얼거리더라고요. 열광응원존이라고 스탠딩으로 응원만 열광적으로 할 수 있는 좌석도 따로 만들었어요.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만 가도 구단만의 응원 색깔이 있는데 KBL은 다 똑같은 응원의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그걸 바꾸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거였습니다.
문화를 만드는 연장선상에 또 대표적인 게 라이벌전이 있잖아요. ‘이 매치는 꼭 봐야지’ 생각이 드는 빅매치가 꼭 있어야 하는데 우리와 역사적으로 많이 얽힌 구단에 대해 생각해보니까 챔프전에서 많이 만났던 KCC였어요. 농구영신 행사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이걸 계기로 라이벌전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분위기를 띄우려면 무조건 안 했던 걸 해야겠다 싶어서 최초로 드론도 띄워보고 전용 포스터도 만들고 KCC에서 협조를 잘해주셔서 농구영신 티셔츠와 전용 로고도 제작하고 했습니다.

구단만의 고유문화를 만들기 위한 DB의 노력은 계속된다. 최근에는 야구 명문 롯데 자이언츠, 축구 명문 전북 현대와 함께 스포츠산업대상 최종 후보 세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돌아오는 시즌에는 홈구장 시설 개선, 웹툰, ESG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
정 : 프로스포츠 협회에서 지난 5월에 경기장 시설 개선 사업 공모전을 진행했는데 뽑혀서 2억 6,000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게 됐어요. 그래서 홈 경기장 시설 개선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고 신규 좌석을 설치해 1층 전 좌석을 교체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올 시즌에는 다른 어떤 경기장보다 편안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경기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신 : 스포츠의 빅클럽일수록 오프라인으로 소장할 수 있는 파생 상품이 많잖아요. 근데 농구 쪽은 그런 게 정말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구단의 역사를 담을 수 있는 단행본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팬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걸 찾다보니까 웹툰을 생각하게 됐고 이제 회차가 누적이 잘 되면 출판사와도 이야기해서 책으로도 출간할 생각이에요.
신 : 그리고 요즘 ESG 관련 이야기가 많은데 시즌 끝나면 폐기품이 정말 많이 나와요. 그걸 업사이클링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동전 지갑이나 에코백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KBL에서는 최초로 하는 시도고 이걸 MD로 만들어서 돌아오는 시즌부터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려고 사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에 원정 유니폼도 흰색이 아니라 아이보리색으로 약간의 변화를 줘서 차별화를 가져가려고 시도했습니다.
정 : 저희가 또 KBL에서는 흔치 않게 시즌권을 판매하는 몇 안 되는 구단이에요. 열성 팬들도 많이 계시고 아무래도 팬 연령층이 굉장히 다양하다 보니까 온라인 예매 환경이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분들은 매번 인터넷에 접속하기가 힘드니까 시즌권을 많이 구매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을 위하는 마음도 있어서 시즌권을 계속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일이고 매년 힘든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는 세 사람. 각자의 생각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농구단에 계속 몸담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신 : 매력적이면서도 힘든 부분인데 저희가 만드는 상품들이 다른 상품들이랑 다르게 결과 예측이 안 되는 상품들이잖아요. 예를 들어 김주성 선수 은퇴식 때 정말 레전드가 은퇴하니까 색다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때만 해도 은퇴식은 시작 전이나 하프타임에 많이 했어요. 근데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경기 끝나고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추진했는데 팬들도 경기가 끝났음에도 아무도 안 나가시고 계획했던 대로 행사가 잘 진행돼서 그런 사례처럼 원하는 바가 딱딱 맞춰지고 선수도 고마움을 느낄 때가 가장 보람찬 것 같아요.
정 : 저는 업무 특성상 수치로 나타나는 일이 많은데 그런 거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면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경기에서 이기면 외적으로 보람을 느끼는 건 당연한 부분이고 제 업무 분야에서 성과를 냈을 때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모 : 저는 업무 쪽보다는 경기 중에 관중분들이 선수들의 멋있는 플레이나 접전 상황에서의 득점에 대해 터지는 순간이 있으신데 진짜 이게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함성을 보내주실 때 정말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덕업일치 같은 느낌? 이라고 설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신 : 이게 업무니까 힘들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돌이켜보면 다른 산업에서 일했을 때 이만큼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다른 산업에서 느끼기 힘든 순간이 많고 제가 월급을 받는 회사이지만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의 현장에 계속 있을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정 : 입사한 지 12년 정도 됐는데 이제는 처음과 달리 팀에 저보다 나이 많은 선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많은 이별을 겪으니 농구단은 제게 청춘의 시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또한 10개 구단 중에 DB가 최고라 생각하는데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했을 때 팬들이 알아주시는 걸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분야의 전문가분들이 저희보고 잘하는 구단이라고 치켜세워줄 때도 감사함을 많이 느꼈어요. 우리가 이렇게 고민하는 게 좋은 반응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감사한 일이죠.
모 : 진부한 표현으로 제게 농구단은 원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서마다 목표가 다른 일보다는 농구단 업무 자체가 한 팀으로 묶여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요. 선수단과 프런트, 모든 직원들이 각자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하니까 원팀의 느낌이 들고 하나처럼 끈끈하다는 든든함이 있습니다.
사진 = 강정호 기자, KBL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