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터 웸반야마의 등장으로 엄청나게 많은 주목을 받았던 2023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의 영광을 손에 넣으며 환호성을 내지른 팀은 바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였다. 리빌딩의 길을 걷고 있던 샌안토니오는 웸반야마라는 최고의 재능을 품으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샌안토니오는 1967년 창단 후 1976년부터 NBA에 가입한 팀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최고의 레전드들도 다수 배출한 팀이다. 미래의 전설이 될 자질이 충분한 웸반야마를 지명하는데 성공한 샌안토니오의 역대 레전드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본 기사는 루키 2023년 8월호에 게재됐습니다. *

1. 조지 거빈(SG/SF)
통산 기록 : 1060경기 출전 / 평균 25.1점 5.3리바운드 2.6어시스트 야투율 : 50.4%
수상 내역 : 올스타 12회, 득점왕 4회, ALL-NBA 팀 7회
샌안토니오는 1976년부터 NBA에 입성했다. 그 이전에는 ABA 리그에서 활동을 이어갔는데, ABA 시절과 NBA 입성 초창기 샌안토니오를 이끌었던 선수들 중 첫 손에 꼽히는 선수가 바로 조지 거빈이다.
거빈은 샌안토니오와 리드를 대표하는 스코어러였다. 통산 평균 25.1점이라는 평균 득점(NBA 시절만 놓고 보면 26.2점에 달한다) 수치는 그가 얼마나 뛰어난 득점 자원이었는지를 증명해주는 수치다. 그는 NBA에 입성한 2번째 시즌이던 1977-78시즌 평균 27.2점을 기록하면서 득점왕에 올랐고 이후 3년 연속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한다. 또한 1981-82시즌 평균 32.3점이라는 어마어마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또 한 번 득점왕에 올랐던 거빈이다.
이처럼 엄청난 득점력을 자랑하던 거빈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하나였다. NBA 입성 이후 시카고에서 뛴 마지막 시즌(거빈은 1985-86시즌 시카고로 트레이드됐다)을 제외하면 매년 올스타에 선정됐다. 샌안토니오의 유니폼을 입은 시즌에는 항상 올스타전에 얼굴을 내비쳤다는 의미다.
거빈의 포지션은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로 분류된다. 거빈이 뛰던 당시만 하더라도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의 역할은 명확히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나 거빈은 두 포지션을 넘나드는 전천후 득점원으로 활약했고, 그의 득점 범위는 골밑부터 외곽까지 다양하게 분포됐다. 특히 유연성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핑거롤은 거빈의 주특기였다. 현대에는 친숙한 ‘스윙맨’이라는 단어 역시 거빈으로 인해 최초로 등장한 단어였다.
사실 거빈의 성공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또한 대학 시절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욕하는 상대 선수의 트래쉬 토크에 격분에 주먹을 날리는 사건도 있었다. 이 일로 인해 거빈은 NCAA 선수 자격 박탈이라는 징계를 받았으나 결국 뛰어난 실력을 앞세워 NBA 무대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2. 데이비드 로빈슨(C)
통산 기록 : 987경기 출전 / 평균 21.1점 10.6리바운드 3.0블록슛 야투율 : 51.8%
수상 내역 : 올스타 10회, 득점왕 1회, 블록슛왕 1회, 리바운드왕 1회, ALL-NBA 팀 10회, MVP 1회, ALL-디펜시브 팀 8회
데이비드 로빈슨은 샌안토니오의 역대 최초 1순위 지명 선수다. 198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그는 샌안토니오에서만 14년의 커리어를 이어가며 최고의 전설로 이름을 남겼다.
‘제독’이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별명을 보유한 로빈슨은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선수였다. 1987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됐으나 그는 규정으로 인해 2년 동안 해군에서 군복무를 해야 했다. 따라서 그의 데뷔는 드래프트 지명 2년 후인 1989-90시즌이 되어서야 이뤄질 수 있었다.
마침내 리그에 입성한 로빈슨은 루키 시즌부터 리그를 집어삼켰다. 첫 시즌 기록이 무려 24.3점 12.0리바운드 3.9블록슛. 신인왕 역시 당연히 그의 차지였으며 첫 시즌부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로빈슨의 데뷔 직전 시즌이던 1988-89시즌 21승 61패의 처참한 성적에 그쳤던 샌안토니오는 그의 등장과 함께 56승 26패로 성적이 수직상승하며 로빈슨 효과를 제대로 누렸다. 이후 샌안토니오는 꾸준히 강팀으로 분류되며 플레이오프 단골이 됐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퍼스트 스텝을 지닌 로빈슨은 공격 코트에서 대단한 위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수비 능력은 역대 최고라는 호칭을 붙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승승장구하던 로빈슨의 커리어는 1996-97시즌 큰 부상을 당하면서 변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로빈슨이 부상으로 빠진 샌안토니오는 해당 시즌 20승 62패의 처참한 성적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이때의 아쉬운 성적으로 인해 샌안토니오는 다시 한 번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1순위 지명권으로 샌안토니오가 지명한 선수가 바로, 팀 던컨이었다.

3. 팀 던컨(PF/C)
통산 기록 : 1392경기 출전 / 평균 19.0점 10.8리바운드 2.2블록슛 야투율 : 50.6%
수상 내역 : 올스타 15회, ALL-NBA 팀 15회, ALL-디펜시브 팀 15회, MVP 2회, 파이널 MVP 3회
딱 1시즌의 부진으로 거머쥔 샌안토니오의 2번째 1순위 지명권. 이 지명권으로 샌안토니오는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선수를 손에 넣게 된다. 팀에 무려 5개의 우승트로피를 안긴 주인공, 팀 던컨이다.
드래프트 당시 던컨을 지명할 확률이 가장 높았던 구단은 보스턴이었다. 당시 보스턴은 탱킹으로 동부 최하위를 차지했고, 댈러스의 지명권을 트레이드로 얻어오며 약 35%에 달하는 1순위 확률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확률에도 불구하고 1순위 지명권은 3번째로 높은 확률을 지니고 있던 샌안토니오에게 돌아갔고, 그렇게 던컨의 전설은 시작됐다.
당시 샌안토니오에는 데이비드 로빈슨이라는 거물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로빈슨은 이제 막 리그에 입성한 애송이에게 에이스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던컨은 루키 시즌 평균 21.1점 11.9리바운드 2.5블록슛의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고, ALL-NBA 퍼스트팀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후 던컨은 샌안토니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Mr. 기본기’라는 별명답게 최상급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리그를 지배했다. 화려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실속과 꾸준함을 앞세워 샌안토니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던컨이 데뷔한 1997-98시즌부터 은퇴한 2015-16시즌까지 샌안토니오는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 티켓을 놓치지 않았다. 던컨이 얼마나 꾸준한 기량을 유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 던컨과 함께 샌안토니오는 구단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샌안토니오에서만 1392경기를 뛴 던컨이다. 이는 샌안토니오 프랜차이즈 역대 1위 기록. 꾸준함의 상징답게 그는 대부분의 기록에서 프랜차이즈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출전 시간(47,368분)과 필드골(10,285개), 리바운드(15,091개), 블록슛(3,020개), 턴오버(3,381개), 득점(26,496점) 등이 모두 던컨의 차지다.
사실 던컨은 농구가 아닌 수영선수였다는 점 역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버진 아일랜드에서 국가대표급 수영선수로 이름을 알리던 던컨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허리케인인 ‘휴고’로 인해 버진 아일랜드의 유일한 국제규격 수영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던컨은 점차 수영에 흥미를 잃었고, 매형의 권유로 농구의 길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4. 토니 파커
통산 기록 : 1254경기 출전 / 평균 15.5점 5.6어시스트 2.7리바운드 야투율 : 49.1% 3점슛 : 32.4%
수상 내역 : 올스타 6회, ALL-NBA 팀 4회, 파이널 MVP 1회
토니 파커는 데뷔 당시만 하더라도 그렇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던 선수였다. 현재는 NBA에서 유럽 선수들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파커가 드래프트에 참여했던 2001년 당시만 하더라도 유럽 선수들에 대한 리그의 수요는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파커에게 관심을 가졌던 팀이 바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이끌던 샌안토니오였다. 그 결과 파커는 2001년 드래프트에서 28순위라는 낮은 순위로 지명되며 샌안토니오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참고로 당시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선수는 콰미 브라운으로 그는 역대 최악의 1순위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이름이 등장하는 선수다. 또한 2001년 드래프트에서 파커보다 높은 순위로 지명된 선수들 중 올스타나 ALL-NBA 팀 선정이 1회라도 있는 선수는 5명(타이슨 챈들러, 파우 가솔, 조 존슨, 잭 랜돌프, 제랄드 월라스) 밖에 없다.
이처럼 데뷔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던 파커였지만 그는 샌안토니오에서 기회를 마음껏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해갔다. 루키 시즌부터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찬 그는 평균 9.2점 4.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잠재력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듬해 파커는 평균 15.5점을 기록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다만 커리어 초창기의 파커는 불안요소가 많은 선수였다. 모션오펜스로 대표되는 샌안토니오 특유의 전술에 쉽게 녹아들지 못했으며 기복 또한 심했다. 2년 차 시즌에는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경험 부족을 노출하며 많은 비난에 시달리고 했다. 포포비치 감독에게 가장 호되게 혼이 나던 선수도 바로 파커였다.
그러나 파커는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며 대기만성형 선수로 성장해갔다. 그 결과 그는 점차 리그 최정상급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7년 NBA 파이널에서는 평균 24.5점 5.0리바운드 3.3어시스트 야투율 56.8%를 기록하며 유럽인 최초로 NBA 파이널 MVP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파커의 최대 장점은 폭발적인 퍼스트스텝과 순발력, 최정상급 손끝 감각을 활용한 페인트 존 득점력이었다. 리그 최고 수준의 마무리 능력을 바탕으로 정상급 선수 반열에 오른 파커다. 여기에 팀 던컨의 뛰어난 스크린 역시 파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여기에 안정적인 중거리 점퍼 역시 장착되면서 파커의 위력은 배가되어 갔다.
앞서 소개한 로빈슨이나 던컨과는 달리 파커는 샌안토니오에서만 활약하지는 않았다. NBA 커리어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8-19시즌에는 샬럿으로의 이적을 발표하며 새로운 팀의 유니폼을 입었던 파커다. 해당 시즌 벤치 멤버로 변신한 파커는 평균 9.5점 3.7어시스트를 기록한 뒤 은퇴를 선택했다.

5. 마누 지노블리
통산 기록 : 1057경기 출전 / 평균 13.3점 3.8어시스트 3.5리바운드 야투율 : 44.7% 3점슛 : 36.9%
수상 내역 : 올스타 2회, ALL-NBA 팀 2회, 올해의 식스맨 1회
NBA에서 식스맨의 정의를 새롭게 쓴 선수. 토니 파커, 팀 던컨과 함께 BIG3를 형성하며 샌안토니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가 바로 마누 지노빌리다.
지노빌리 이전만 하더라도 NBA에서 식스맨은 단지 주전이 아닌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가장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당연히 주전으로 나갔고 식스맨은 이들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지노빌리는 리그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충분히 주전 라인업에 들고도 남을 기량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팀의 전술에 따라 식스맨으로 출전하면서 매번 팀이 승리를 이끌어냈다.
지노빌리는 2008년 평균 19.5점 4.8리바운드 4.5어시스트를 야투율 46.0% 3점슛 40.1%를 기록하면서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시즌 지노빌리는 출전한 74경기 중 단 23경기만을 선발로 나섰다. 올해의 식스맨을 차지한 것은 당연한 수순.
놀라운 점은 이 시즌 지노빌리는 ALL-NBA 써드팀에도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벤치에서 나서는 선수가 리그 최정상급 가드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참고로 올해의 식스맨과 ALL-NBA 팀을 같은 시즌에 동시에 수상한 선수는 지노빌리가 최초였다.
파커와 마찬가지로 지노빌리 역시 NBA 입성 당시에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파커는 1라운드에 뽑히기라도 했지, 지노빌리는 1999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57순위라는 사실상 거의 끝 순위로 지명을 받았다. 당시 지노빌리보다 뒤에 뽑힌 선수는 유타에 지명된 에디 루카스가 유일했다.
엄청나게 낮은 순번으로 지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샌안토니오의 선택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당시의 NBA는 유럽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노빌리는 모두의 의문을 극복하고 샌안토니오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했고 그의 활약을 바탕으로 리그의 팀들 역시 조금씩 유럽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실상 지노빌리는 유럽과 남미권 선수들의 NBA 진출의 길을 열어준 선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