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슛이 들어가면 SK나 KGC도 못 이겨요."

BNK와 샹송의 경기를 함께 지켜보던 한국 취재진 중 한 명이 혀를 내둘렀다.

"하필 오늘이 제대로 긁히는 날이네요."

"3점슛에서 차이가 너무 나니까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다른 한국 취재진 역시 '역부족'을 실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7일 열린 BNK와 샹송의 존스컵 맞대결. 사실상의 우승 결정전으로 꼽혔던 이 경기에서 BNK는 25점 차 패배를 당했다.

73-98. 현장에서 지켜봤을 때 실제 경기력이 이 정도 차이였나면 그렇지는 않았다.

이날 BNK는 3쿼터 초중반까지 샹송과 5점 차 승부를 펼치는 등 선전을 펼쳤다. 하지만 이후 거짓말처럼 공수가 무너지면서 스코어가 급격히 벌어졌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슈팅력의 격차였다. 이날 샹송은 3점슛을 어떻게 던져도 공이 끊임없이 림을 갈랐다. 날을 제대로 잡은 느낌이었다.

투지 있게 추격전을 펼치던 BNK도 샹송의 3점 폭격에 어느 순간부터는 의욕을 잃었고 결국 20점 넘게 격차가 벌어졌다. 완패였다.

이날 두 팀의 3점슛 성공률은 극과 극을 달렸다. 전반에 이미 70%가 넘는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한 샹송은 결국 60%(12/20)라는 엄청난 숫자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BNK는 반대였다. 22개의 3점슛 중 림을 가른 것은 6개에 불과했다. 27.3%.

앞선 2경기에서 좋은 슛감을 보였던 포워드 한엄지가 침묵했고, 에이스 이소희는 6일 대만 대표팀 B와의 경기에 이어 또 다시 야투 부진에 빠졌다.(3/15) 화력전에 상대에 완전히 압도당한 경기였다.

 

특히 이소희의 경우 이렇게까지 안 들어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슛 감각이 좋지 않았다.

2대2 게임에 이은 멋진 스플릿 더 디펜스(split the defense, 볼 핸들러 수비수와 스크리너 수비수 사이의 공간을 찢고 들어가는 움직임), 스크리너인 진안을 살려주는 패스 등 좋은 장면도 많이 나왔지만 오픈 3점 기회를 수시로 놓치는 등 슈팅 영점이 전혀 잡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결국 이날 이소희는 15개의 슛을 던져 3개만 성공하는 데 그쳤다. 3점슛은 8개 시도 중 1개 성공. 1쿼터 초반에 자신이 실패한 3점슛을 다시 잡아 코너에서 곧바로 성공한 장면 이후에는 6개를 내리 실패했다.

BNK 벤치 가까이에 마련된 취재석에서 지켜보니 슈팅 부진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이소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소희는 내내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치렀다.

슈팅력도 문제였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부진을 자책하며 스스로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박정은 감독은 4쿼터 도중 작전타임을 불러 이소희에게 크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작전 타임 때 이소희 선수를 많이 혼내셨잖아요.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경기 후 마련된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박정은 감독에게 물었다.

질문을 들은 박정은 감독은 미소를 잠시 머금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어제 경기(대만 대표팀 B와의 경기) 끝나고도 소희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본인이 슛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그 부분에 스스로 영향을 받아서 코트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그게 다른 선수들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요."

"슛 밸런스가 좋지 않은 경기는 시즌 중에도 있었어요. 문제는 오늘 경기를 보면 소희가 의욕은 나름 있는데 (집중력을 잃어서인지) 영양가 없는 움직임을 자꾸 보여주더라고요. 그래서 따끔하게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사실 샹송전이 열린 8월 7일은 이소희의 23번째 생일이었다. 7일 저녁 취재진과 만난 이소희는 "생일에 존스컵 같은 공식 경기를 치러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2000년생으로 이제 만 23살. 어떻게 보면 어린 선수에게 너무 가혹한 생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박정은 감독의 호통은 그만큼 이소희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나온 것일 테다.

실제로 근래 이소희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2020-2021시즌부터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스코어러가 됐고, 박정은 감독이 BNK의 지휘봉을 잡은 2021-2022시즌부터는 리그를 대표하는 가드로 성장했다.

지난 시즌에는 평균 16.9점에 3점슛 성공률 37.6%를 기록, 평균 득점 3위, 3점슛 성공 1위(77개), 자유투 성공 1위(85개)에 이름을 올렸다. 얼마 전 열린 아시아컵에서도 국가대표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관건은 다음 스텝이다.

많은 국내 지도자들은 "에이스라면 평균치를 꾸준히 가져가야 한다. 그래야 팀 전체가 그 선수를 믿고 시즌을 치를 수 있다. 평균치가 나오지 않으면 팀 전체가 흔들린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박정은 감독 역시 이소희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존스컵 첫 경기와 이후 2경기에서 보인 극과 극의 모습이 언젠가 이소희가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했다.

"이소희는 우리 팀의 스코어러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평균치를 꾸준히 가져가는 것이 중요해요. 첫 경기 이후 2경기 연속으로 침묵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따끔하게 말을 해줬어요."

 

그렇다면 이소희는 어디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이소희처럼 점프슛 시도가 많은 가드에겐 언제나 슈팅 부진이 찾아올 수 있다. 심지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슈터로 꼽히는 스테픈 커리도 어떤 경기나 기간에는 믿기 힘들 정도의 슈팅 슬럼프를 보일 때가 있다.

관건은 슛 감각이 좋지 않은 기간에 어떤 돌파구를 만들어가느냐다. 여기서 좋은 스코어러와 위대한 스코어러의 차이가 발생한다.

3점슛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돌파를 통해 페인트존을 어택하는 방법도 있다. 미드레인지 게임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혹은 상대 수비수의 역동작과 팀 파울 상황을 이용해 파울을 얻어내고 자유투로 득점을 쌓는 것도 방법이다.

농구 역사의 위대한 스코어러들은 수시로 찾아오는 슈팅 슬럼프를 모두 이런 방법으로 극복했다.

이소희는 슈팅력도 좋지만 탁월한 스피드와 민첩성을 활용한 개인기를 갖추고 있다. 슈팅 슬럼프 이슈를 극복할 재능이 충분한 선수인 셈이다.

"오늘 사실 슛이 좀 안들어갔잖아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좀 어떠셨어요."

7일 저녁 국내 취재진과 만난 이소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답이 없었어요." 이소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슛이 안 들어가도 다른 부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됐어요. 사실 지난 시즌도 그렇고 지지난 시즌도 그렇고 저는 제 공격이 안 되면 스스로 무너지는 경향이 너무 큰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문제를 요즘에 잠깐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국내에서 연습경기 치르고 그러면서 좀 여유가 생겼었는데, 이렇게 해외에 나와서 다른 팀들과 강하게 부딪혀보니까 정신이 바짝 드네요. 하하."

"저는 첫 슛이 참 중요한 선수인 것 같아요. 첫 슛이 안 들어가면 혼이 아예 나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후에는 심리적으로 그게 만회가 잘 안 되더라고요. 감독님, 코치님은 그런 제 모습에 대해서 '부들댄다'고 말씀하세요. 그게 어떤 거냐면 저는 제가 던진 슛이 안 들어가면 스스로 너무 화가 나서 몸이 떨려요.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그런 거고 주변에서 많이 조언도 해주시고 노하우도 알려주시는데 아직까지는 사실 쉽지 않네요. 오늘도 솔직히 경기 중에 스스로 막 뺨도 때리고 그랬거든요.(웃음) 아직까지는 슛이 안 좋은 날 그걸 극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같아요."

다행스러운 것은 이소희는 이제 만 23살이 된 어린 선수라는 점. 존스컵에서 겪은 슬럼프가 오히려 그에겐 정말 소중한 성장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샹송에 패한 BNK는 이제 두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 상대는 필리핀과 대만 대표팀 A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9일 저녁에 열릴 대만 대표팀 A와의 경기다. 대만은 이번 존스컵에 최정예 전력으로 구성된 A, 젊고 유망한 상비군 전력으로 구성된 B로 총 2개 팀이 참가하고 있다.

특히 대만 대표팀 A는 지난 7월 말부터 시작된 BNK의 대만 전지훈련 기간 연습경기 상대이기도 했다 

BNK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대만 대표팀 A와의 연습경기 도중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한때 경기가 잠시 중단될 정도로 선수들이 서로 강한 신경전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이소희는 “대만 여기가 진짜 장난 아닌 것 같아요”라며 대만 선수들에게 맞아 멍이 든 손목을 직접 취재진에 보여주기도 했다.

대만 여자농구는 최근 큰 고비를 맞았다. 지난 6월 말 열린 아시아컵에서 8위에 그친 것이다. 조별예선에서 필리핀에 일격을 당하며 탈락했고, 7-8위 결정전에서도 레바논에 패했다.

아시아컵의 부진은 결국 뼈아픈 상황으로 이어졌다. 대만 여자농구는 아시아 지역 디비전 B로 강등되는 엄청난 굴욕을 맛봐야 했다.

반등을 노리는 대만 여자농구 입장에선 이번 존스컵이 그래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대회다.

박정은 감독은 둘째날 대만 대표팀 B와의 경기가 끝난 후 대만 현지 취재진으로부터 대만 농구와 한국 농구를 비교해달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박 감독은 “우리나라도 그렇고 대만도 그렇고 여자농구가 국제 무대에서 위기를 맞은 것 같다”며 동병상련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대만 대표팀 A는 대회 첫날 필리핀에 승리하며 아시아컵의 패배를 설욕한 상태다. 둘째날 이어진 샹송과의 맞대결에서 패배했으나 이후 이란을 가볍게 완파, 2승 1패로 BNK와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때문에 9일 열릴 대만 대표팀 A와의 경기는 대회 2위 자리를 놓고 펼치는 중요한 승부가 될 전망이다. 앞서 열린 연습경기에서 엿보였던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갈 또 다른 빅매치이기도 하다.

일단 그 전에 8일 열리는 필리핀전을 깔끔하게 승리하며 샹송전 패배로 꺾인 기세를 되살리는 게 중요할 것이다. BNK는 현지 시간으로 8일 오후 3시에 필리핀, 9일 저녁 7시에 대만 대표팀 A를 상대한다.

사진 = 이동환 기자, 존스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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