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계묘년, 토끼띠의 해다. 2023년을 특별하게 느낄 토끼띠의 주인공들이 KBL에도 많다. 그 중에서도 24살이 된 1999년 기묘년 생들에게 2023년은 성장과 발전을 통해 전성기로 올라서기 위한 중요한 시점이다.

외국 선수 포함, 이번 시즌 KBL에서 활약 중인 1999년생은 총 21명. 그런데 이 중 8명이 현대모비스에 있다. 김동준, 윤성준, 정종현, 서명진, 이우석, 신민석 등 국내 선수 6명에 외국 선수 게이지 프림과 필리핀 아시아쿼터 론제이 아바리엔토스도 99년생이다.

‘99년생 찾기’보다 ‘99년생이 아닌 선수 찾기’가 더 쉬워진 현대모비스. 소위 ‘99즈’가 팀의 중심으로 급부상하며 리빌딩에 나선 이번 시즌, 그들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상위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화려함보다 진중함이 어울리는 팀이다. 묵직하고 노련하다는 느낌이 현대모비스가 가져간 팀 컬러라고 볼 수 있다.

2004년부터 팀을 이끌었던 유재학 전 감독이 거의 20년을 집권하며 ‘강력한 수비와 조직력’이라는 현대모비스의 기본 틀을 만들었고, 젊은 시절부터 일찌감치 베테랑 같은 면모를 보였던 양동근과 함지훈이 오랫동안 팀의 중심을 잡았다.

그 어느 팀보다 침착하고 흔들림이 없으며, 가장 보수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세대교체가 화두가 되고 전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와도 꾸준히 플레이오프 본능을 보여주며 완성된 시스템의 강점을 보여줬다. 그래서 화려함, 신선함 등은 현대모비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단어 같았다.

99즈의 중심, 서명진-이우석
그런 현대모비스에 젊은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선두 주자는 서명진이었다.

서명진은 부산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뛰어들어 2018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현대모비스에 입단했다. 어느덧 프로 5년차가 되어, 또래인 99즈 중에서는 ‘KBL 경력자’다.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양동근이 은퇴한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할 선수로 일찌감치 낙점을 받았다.

경기 운영 능력에서 아쉬움이 지적됐지만, 20대 초반에 온전히 양동근을 대체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서명진은 프로 3년차였던 2020-21시즌, 53경기에 출전해 평균 26분 이상을 소화했다. 8.3점 2.4리바운드 4.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서서히 팀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우석은 서명진과 함께 양동근의 후계자 대열에 들어선 또 다른 주인공이다.

루키 시즌, 발목 재활로 동기들보다 프로 데뷔가 늦었던 이우석은 지난 시즌 서명진과 함께 본격적으로 주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큰 키(196cm)에 볼 핸들러 역할을 하고 내외곽 야투와 2대2 플레이에도 장점을 보인다. 리바운드 참여도 많고, 과감하고 적극적인 플레이로 현대모비스가 시도한 빠른 트랜지션의 중심에 섰다.

긴 시간을 뛰지 않았지만 신민석(46경기)과 김동준(31경기)도 2021-2022시즌 많은 경기에 나서며 경험을 쌓았다.

1년 먼저 프로행을 선택한 이우석과 고려대 동기인 신민석은 큰 키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의 정확한 슛을 던지며 대형 포워드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99즈가 대부분 포지션 대비 좋은 신장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단신 가드인 김동준은 빠른 스피드와 확률 높은 3점슛을 무기로 출전 기회를 잡아갔다. 이들의 등장은 현대모비스에게 본격적인 리빌딩이었고, 젊은 팀으로 변모하는 출발점이었다.

이런 가운데 현대모비스는 지난 시즌을 마친 후 유재학 전 감독을 총감독으로 올리고, 조동현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감독도 젊어졌다.

99즈 중 이미 눈도장을 찍은 서명진, 이우석, 신민석, 김동준 등 4명은 꾸준히 팀 내 존재감을 키워가며 팀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시즌, ‘99즈가 현대모비스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지금은 그 미래를 현재로 앞당기기 위해 시간을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99즈 중 아직 1군 무대가 낯선 윤성준과 정종현은 D-리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윤성준은 지난 시즌 2경기 평균 3분 12초, 정종현은 이번 시즌 3경기 평균 1분 10초를 뛴 것이 1군 무대에서의 기록이다.

하지만 D-리그에서는 핵심 멤버로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고 있다. 어쩌면 2022-2023시즌은 현대모비스가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하나의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외국 선수도 99년생, 더 젊어진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는 외국 선수와 아시아쿼터도 젊은 선수로 구성했다. KBL에 첫 선을 보인 프림과 아바리엔토스 역시 공교롭게도 1999년생이다.

99즈에 이어 2001년생인 김태완까지 1군 경기에 등장하며, 현대모비스는 더욱 평균 연령을 낮췄다. 2월 중순 기준으로, 이번 시즌 현대모비스에서 20경기 이상을 뛴 선수는 총 12명, 이들의 평균 연령은 26.5세였다.

함지훈, 김현민, 최진수 등 베테랑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이제 현대모비스는 ‘노련하고 경험 많은 팀’보다는 ‘젊고 미래지향적인 팀’이라는 설명이 어울린다.

1991년생으로 올해 32세인 장재석은 “나도 이제 젊은 선수가 아닌 것은 맞지만 99년생들이 많다보니, 내가 되게 고참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고 웃는다.

팀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꾸준히 현재보다 미래를 강조한 조동현 감독.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시즌 내내 상위권에 자리를 잡으며 순위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현대모비스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그리고 있는 조동현 감독의 시선에 99즈의 모습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에너지가 넘치고 분위기가 좋아요. 경기를 져도 분위기가 쳐지지 않고, 금방 극복하는 패기도 있어요.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경험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젊기 때문에 바로 이겨내는 모습도 있습니다. 사실 일부러 99년생들을 몰아서 뽑은 건 아니거든요. 이 친구들이 나이는 동갑이지만, 입단 년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게이지(프림)랑 (론제이)아바리엔토스를 뽑을 때도 나이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비디오와 평가전을 보고 꼭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을 했는데, 데리고 와서 보니 99년생이더라고요. 그러다보니 99년생 선수가 팀에 8명이나 있게 됐네요.”

그 어느 때보다 젊어진 팀. 조동현 감독에게도 이토록 젊은 현대모비스는 낯설다. 리빌딩 시도가 처음은 아니지만 현대모비스가 이렇게 젊었던 적은 없었다.

“우리는 양동근-함지훈이 10년 이상 중심을 잡아준 팀이잖아요? 이들이 주축으로 존재하면서 문태영이나 외국선수 등 다른 구성을 만들 수 있었죠. 그런데 양동근 코치도 은퇴를 했고, 함지훈도 나이를 생각해야하는 시기입니다. 변화를 가져갈 수밖에 없죠. ‘변화와 리빌딩을 통해 성공할 거다’가 ‘아니라 ’과도기가 오더라도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가 더 맞는 것 같아요. 될 거라는 믿음 이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부분인 거죠.”

단점은 완성도다. 현대모비스는 젊어졌고, 빨라졌고, 에너지 레벨이 높아졌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견고함의 무게’는 예전에 미치지 못한다. ‘농구를 알고 하는 베테랑’들의 비중이 조금씩 줄어든 탓이다. 조동현 감독은 99즈에 대해 “아직 열매가 아닌 씨앗”이라며 기본기와 시간을 강조했다.

그는 비시즌부터 기본기와 관련한 부분을 양동근 코치가 전담해서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고교때 이미 했어야 하는 부분인데, 요즘에는 소위 ‘볼을 갖고 노는 것’부터 배우다보니 기본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완성이 된 선수들이 아니예요. 여전히 성장 중입니다. 아직까지는 씨앗입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경험을 쌓으며 잘 성장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죠.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은 흐름 싸움에서 아쉬움이 있어요. 원래 현대모비스는 경기 내의 노련함과 운영 능력이 전통적인 강점이었지만, 지금은 분위기를 가져가야 할 때 오히려 흐름을 내주기도 하죠. 결국은 경험이에요. 솔직히 답답할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너무 잘해주고 있잖아요. 가끔 그런 생각도 해요. ‘나도 저 아이들 나이 때 저만큼 농구를 했었나’ 하고요. 많이 성장하고 있고, 좋아지고 있어요. 때로는 제가 심하게 다그칠 때도 있는데, 그런 질책 속에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합니다.”

성공 가능성? 반드시 거쳐야 할 과도기
이들의 성장을 위해 ‘시간적인 투자가 필수’라는 조동현 감독은 당장의 아쉬움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장과 변화는 과도기와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리고 리빌딩을 주도하고 있는 99즈에 대한 믿음도 확고하다.

“(서)명진이는 적극성만 가지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어요. 슛과 패스 등 갖고 있는 텔런트가 엄청납니다. 입단 초에는 양동근 코치랑 뛰었고, 작년에는 이현민이 있었죠. 올해도 아바리엔토스나 이우석이랑 함께 뛰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남을 찾아주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더 적극성을 가졌으면 해요. 그래서 명진이에게 패턴을 더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그는 선수들이 부딪치고 경험하며 성장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우석의 기복과 상황판단, 신민석의 밸런스와 수비 문제 등 각각의 개선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기본기를 다지고 게임을 뛰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준은 다른 99즈와 달리 신장의 강점은 없죠. 현대 농구는 전통적인 1-2번 없이 모두 공격 농구를 펼치는 데 김동준은 패스 위주거든요. 하지만 트랜지션 농구에 적합하고 슈터를 살려주는 능력이 있어요. 김동준이 들어가면 볼 흐름이 빨라지거든요. 슛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이우석, 서명진과는 다르게 팀의 다양성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1군에서 중용되지 못하고 있는 윤성준과 정종현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는 1군에 있는 동기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분명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뽑은 선수들이고 각자의 장점이 뚜렷하다. 열심히 하고 있으며, 박구영 코치가 D-리그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꾸준히 대화를 하고 있다. 지금 1군 선수들이 잘하고 있어서 당장 기회를 보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이들의 가능성과 성장은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99즈가 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현재, 현대모비스는 2001년생인 김태완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태완은 조동현 감독이 서명진에게 당부했던 ‘적극성과 과감함’을 보여주며 당찬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김태완의 이런 플레이도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99년생들이 팀의 중심을 잡으며 젊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영향의 일환이다. 조 감독은 이런 흐름이 선수들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한다.

“확실히 우리 때랑 달라요. 나는 선수 때 2-3년 차이나는 선배들이 정말 어려웠는데, 요즘 선수들은 그런 게 없더라고요. (김)태완이가 (김)현민이랑 13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스스럼없이 장난도 잘 쳐요. 그런 분위기가 좋은 영향을 주는 게 분명 있어요. 팀이 좋은 방향으로 나갈 때는 어느 하나의 역할만으로 되는 건 아니거든요. 함지훈과 장재석이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고, 현민이도 팀 내에서 자기 역할을 해줘요. 99즈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세대인 건 맞지만, 막상 어린 선수들만 데리고 리빌딩에 나섰으면 힘든 게 더 많았을 거예요. 서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프림이랑 아바리엔토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 99즈랑 차이가 없어요. 환경과 문화의 차이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로운 선수들인데, 우리 팀의 조직적인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팀의 중심으로 올라서며 선수들을 대하는 조동현 감독의 지도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99즈는 감독과 코치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우리 때랑 다르다니까요. 나이는 경험에서의 차이를 만들지만 자신감과 근성은 그것과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연습과 열정에서 비롯되는 거죠. 선수들에게 팀이 우선이라는 것을 인지시키고 농구를 할 때는 경기는 훈련이든 열정을 갖고 임하게 합니다. 세대를 떠나, 일을 할 때는 함께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서는 저도 이 선수들을 존중합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많은 세대니까요.”

시간은 그 자체로도 사람을 성장시킨다. 그래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하지만 조동현 감독은 성장 자체보다 ‘어떻게 성장하느냐’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여러 부분에도 올바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감독의 주문을 잘 이행하다가도 고쳐가던 나쁜 습관이 불시에 나오는 부분은 물론, 승부욕이 지나쳐 불필요한 행위로 물의를 일으키는 부분도 포함이다. 어쩌면 조동현 감독에게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의 물음표보다는 확신의 느낌표에 더 가깝다. 리빌딩과 미래를 보고 있는 현대모비스는 조동현 감독도 인정했듯, 이번 시즌 성적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전통으로 이어진 현대모비스의 팀 컬러와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전력이 예년만 못해도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최소한 6위 안에는 들고 보는 플레이오프 본능의 역사를 이어온 현대모비스의 저력과 DNA는 젊은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조동현 감독도 경기장에 걸린 7개의 우승 현수막을 가리키며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책임감을 강조한다. 이는 조 감독은 물론 선수들에게 부담이기도 하지만 자부심이며 동기부여다.

그는 향후 3~4년의 기대를 전했다.

“씨앗이 잘 자라서 열매로 맺는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잘하는 것들을 계속 끌어올리고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야죠. 프림이랑 아바리엔토스도 더 적응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3~4년 정도 올라서면 그때는 정말 결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99즈의 성장을 통해 조동현 감독이 말하는 결실. 그것은 당연히 정상 탈환이고, 찬란했던 현대모비스 왕조의 재건이다. 국내 선수는 물론 외국 선수와 아시아쿼터 선수까지 일시적인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적인 청사진을 함께하는 것으로 비전을 잡은 현대모비스의 왕조 재건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 된다.

사진 = 이현수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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