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편집부 = 프로 선수들은 구단과 팬들의 큰 기대를 받으며 데뷔한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대에 못 미친 선수들이 훨씬 더 많다.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 뜻밖의 사고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이들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기대에 비해 N%가 부족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 그 세 번째 주인공은 짐 잭슨이다.

♣ 짐 잭슨 PROFILE

출생 : 1970년 10월 14일 (미국 오하이오州 톨레도)

신체조건 : 198cm, 100kg

출신대학 : 오하이오주립 대학교

데뷔 : 1992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댈러스)

소속팀 : 댈러스 -> 뉴저지 -> 필라델피아 -> 골든스테이트 -> 포틀랜드 -> 애틀랜타 -> 클리블랜드 -> 마이애미 -> 새크라멘토 -> 휴스턴 -> 피닉스 -> LA 레이커스 

수상실적 : NBA 역대 최다팀 소속 (12개 팀)

통산기록 : 14시즌(총 885경기) 12,690득점 4,152리바운드 2,851어시스트 726스틸 / 경기당 평균 14.3득점 4.7리바운드 3.2어시스트 0.8스틸 3점슛 성공률 36.5%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짐 잭슨.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 Gettyimages/이매진스

 

★ 다사다난 그 자체였던 댈러스의 탕아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잭슨은 어린 시절부터 지역에서 유명한 아마추어 농구 스타였다. 그는 고향 오하이오주에서 대학(오하이오주립대)까지 거치며 NBA입성을 준비했다. 1990-91시즌과 1991-92시즌에 연이어 올-아메리칸 퍼스트 팀에 이름을 올린 잭슨은 명실상부한 대학 최고의 슈팅가드로 군림했다. 1992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는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 크리스천 레이트너에 이어 4순위로 댈러스 매버릭스에 지명됐다. 드래프트 상위로 약체팀에 지명된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듯, 잭슨은 팀의 리빌딩을 책임질 기대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의 데뷔는 순탄치 못했다. 구단과 계약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며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댈러스는 드래프트 상위 지명자치고 너무 저렴한 금액으로 잭슨과 계약하려 했고, 잭슨은 이에 실망했다. 그의 에이전트는 이에 강경히 대응했고, 드래프트 동기들이 시합에 나설 때 잭슨은 대학교로 돌아가서 수업을 듣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결국 당시 리그 커미셔너였던 데이비드 스턴까지 나선 끝에 일이 매듭지어졌다. 잭슨은 시즌이 시작된 지 한참 뒤인 3월에야 계약을 맺고 첫 경기에 나섰다.

정규시즌 막판 28경기만을 뛴 잭슨은 경기당 평균 16.3점 4.4리바운드 4.7어시스트로 데뷔 시즌을 마쳤다. 기록 면으로는 올-루키 퍼스트 팀에 이름을 올려도 무방했지만 출전 경기수가 부족한 탓에 그는 올-루키 팀에 뽑힐 수 없었다. 이때 올-루키 퍼스트 팀은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 크리스천 레이트너, 톰 구글리오타, 라폰소 엘리스까지 전원 빅맨들로 채워졌다. 

이후 1993-94시즌 댈러스는 잭슨의 파트너로 자말 매쉬번을 영입하며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 잭슨과 매쉬번은 이 시즌에 나란히 경기당 평균 19.2득점을 올리며 팬들에게 큰 기대감을 심어줬다. 당장 성적은 또 부진했지만(13승 69패) 이들은 드래프트를 통해 또 다른 유망주를 영입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 산산조각 난 ‘3J’의 꿈

댈러스는 1994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제이슨 키드를 지명했다. 댈러스는 3년 연속으로 5순위 이내 픽을 행사, 좋은 선수를 지명하며 새롭게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짐 잭슨(1992년 드래프트 4순위), 자말 매쉬번(1993년 드래프트 4순위), 제이슨 키드(1994년 드래프트 2순위)까지 드래프트에서 댈러스가 지명했던 선수들은 모두 성공작이었다. 이들은 ‘3J 트리오(Jim, Jamal, Jason)’라고 불렸다. 

3J 트리오가 이끌던 첫 시즌인 1994-95시즌 댈러스는 36승 46패를 기록했다. 이전 시즌의 13승 69패와 비교하면 비약적인 성장이었다. 잭슨이 부상으로 인해 5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매우 만족스러운 시즌이었다. 잭슨은 이 시즌에 생애 최고인 경기당 평균 25.7점을 올리며 강력한 득점력을 과시했다. 3J 트리오가 완전히 가동되는 날이 오면 댈러스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1995-96시즌 생애 최고의 활약(경기당 평균 23.4득점 5.4리바운드)을 펼치던 매쉬번이 18경기 만에 시즌-아웃됐다. 3J 트리오는 또 다시 부상의 악령에 울어야 했다. 

그리고 이 무렵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가수 토니 브랙스턴이 잭슨, 그리고 키드와 삼각관계에 빠졌다는 루머가 돌았다(브랙스턴은 이 당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고,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여성 R&B 보컬상을 수상하는 등 당대 최고의 디바였다). 댈러스 선수단이 원정길에 머문 한 호텔에서 우연히 브랙스턴과 마주친 이후 생긴 이 루머는 일파만파 커져갔다. 

키드는 이것이 전혀 근거 없는 헛소문이며, 삼각관계 따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잭슨 역시 부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헌데 이 사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로 인해서 키드와 잭슨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분명했다. (이들은 은퇴 후에도 오랫동안 이 사건과 관련된 질문에 시달렸다. 잭슨은 지난 2016년에도 미국의 한 TV쇼에 출연해 그것은 근거 없는 루머였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결국 이 사건이 떠오르던 댈러스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잭슨은 1996-97시즌 중반 뉴저지 네츠(現 브루클린 네츠)로 트레이드 됐다. 비슷한 시기에 매쉬번은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 됐고, 키드는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 되며 3J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체질 개선을 위해 팀의 핵심인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중심선수 3명을 연달아 내보내며 로스터를 갈아엎는 것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홈팬들을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댈러스는 잭슨과 샘 카셀, 에릭 몬트로스, 조지 맥클라우드, 크리스 개틀링을 뉴저지로 보내고 숀 브래들리, 에드 오배넌, 칼리드 리브스, 로버트 팩을 영입했다. 이 트레이드는 그 당시 가장 많은 선수(혹은 드래프트픽)가 연루된 트레이드로 기록됐다.

 

짐 잭슨은 선수생활 동안 총 12개의 유니폼을 수집, 이 부문 역대 1위 타이에 올라 있다. ⓒ NBA 미디어 센트럴

 

★ 늘어가는 유니폼,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의 대가

하지만 뉴저지는 잭슨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1996-97시즌의 하반기를 뉴저지에서 마친 잭슨은 짐을 꾸려서 필라델피아 76ers로 떠나야 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떠오르는 별’ 알렌 아이버슨의 팀이었다. 잭슨의 출전시간(경기당 평균 37.3분)은 충분했지만 공격 기회는 당연히 댈러스나 뉴저지에서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불만이 가득했던 잭슨은 결국 또 한 번 트레이드됐다. 필라델피아와의 짧은 인연을 뒤로 한 채 잭슨은 1997-98시즌 중반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자리를 옮겼다. 팀 전력이 빈약한 골든스테이트에서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잭슨은 리그 최하위권(19승 63패)인 팀에서 뛰는 것을 싫어했다.

결국 그는 1998-99시즌을 앞두고 포틀랜드 트레이블레이저스와 계약을 맺었다. 허나 그곳에서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당시 포틀랜드는 아이재아 라이더가 주전 슈팅가드를 맡았다. 벤치멤버가 된 잭슨은 데뷔 이후 최초로 한 자릿수 평균득점(8.4점)에 그쳤다. 당시 포틀랜드는 많은 선수들이 코트 안팎에서 문제를 일으킨 탓에 팀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잭슨과 라이더는 1999-00시즌 도중 애틀랜타 호크스로 트레이드 됐다.

하지만 잭슨은 애틀랜타에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또 다시 트레이드 되어 그가 향한 곳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였다. 자신의 고향 오하이오주로 온 잭슨은 만족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었다. 이미 30줄에 접어든 잭슨은 3J 시절에 받던 기대와는 멀어진 선수가 됐다. 시즌 종료 후 클리블랜드는 이러한 잭슨과 계약하길 거부했다.

소속팀이 없이 2001-02시즌을 맞이한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마이애미 히트였다. 마이애미에서 한 시즌을 보낸 잭슨은 2002-03시즌을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보낸 후 2003-04시즌을 휴스턴 로케츠에서 맞았다. 잭슨은 이 시즌 80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하며 오랜만에 부상과 트레이드 없이 온전하게 한 시즌을 한 팀에서 보냈다. 성적도 경기당 평균 12.9점 6.1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40.0%로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2004-05시즌 도중 뉴올리언스 호네츠(現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트레이드 됐다. 휴스턴 생활에 만족하던 잭슨은 새로운 팀에 합류하기를 거부했다. 뉴올리언스는 어쩔 수 없이 잭슨을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 했다. 피닉스에서 2004-05시즌을 보낸 잭슨은 점점 기회를 잃으며 2005-06시즌 도중 방출됐고, LA 레이커스와 계약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에게는 NBA에서 뛸 수 있는 기량이 남아있지 않았다. 레이커스와의 짧은 인연을 끝으로 그는 길고 험난했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 무엇이 아쉬웠나? 

잭슨은 NBA에서 가장 많은 팀을 거쳐 갔던 선수이다. 14시즌 동안 12팀에 몸을 담았으니 한 팀에서 평균 1시즌 가량밖에 보내지 못한 셈이다. 그 많은 팀들 중, 잭슨이 정규시즌 통산 세 자릿수 경기출전을 기록했던 팀은 댈러스(5시즌, 총 289경기)와 휴스턴(2시즌, 총 104경기)뿐이었다. 

NBA 역사상 잭슨과 함께 최다 유니폼 타이 기록(12팀)을 세운 선수들로는 처키 브라운, 토니 매센버그, 조 스미스가 있다. 11팀을 거쳐 간 선수는 마이크 제임스와 케빈 올리 둘뿐이다. 드래프트 1순위(1995년)였던 조 스미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자 혹은 지명조차 되지 못했던 선수들이다. 즉, 잭슨과는 애초에 기대치부터가 달랐던 선수들이라는 얘기다. 잭슨은 한때 ‘마이클 조던 시대’ 이후 NBA를 이끌어 갈 슈팅가드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잘나가던 유망주였다. 

그랬던 그가 기대와 달리 험난하고 실망스러운 커리어를 보낸 데는 역시 첫 단추를 잘못 꿰었던 탓이 크다. 순탄치 않았던 계약, 잊을 만하면 찾아온 부상, 한 팀을 산산조각 낸 3J 트리오의 붕괴 등 좋지 않은 이미지를 떠 앉고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이 자업자득이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잭슨은 구단 프런트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선수로 이미지가 굳어져갔다. 그러면서 이 팀 저 팀 옮겨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쉽게 쓰고 버리는 선수로 격하됐다. 구단이 선수를 트레이드 할 때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팀의 중심이 될 선수를 영입하려는 경우가 있고, 샐러리캡을 줄이기 위해 선수를 처분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함께하기 곤란한 선수를 내보내거나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단기간 활용할 선수를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잭슨의 트레이드는 대부분 좋지 않은 경우에 해당했다.

하지만 잭슨 본인은 아마추어 시절의 영광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하위권 팀에서는 늘 팀 성적에 불만이 많았고, 알렌 아이버슨 같은 슈퍼스타와 함께 할 때는 줄어든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했다. 만일 그가 좀 더 일찍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받아들였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 팀 저 팀 옮겨 다니면서도 기본 이상 활약했던 것을 보면 재능만큼은 확실했던 선수다. 이미 선수가치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던 2003-04시즌, 그가 휴스턴에서 보여줬던 분전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움이 크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기에 앞서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는 건실한 슈팅가드로 오래 활약하며 올스타 혹은 그 이상의 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무려 12개 구단이나 떠돌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사진 제공 = Gettyimages/이매진스, 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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