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미드레인지는 현재 NBA에서 굉장히 중요한 구역으로 꼽힌다.

림에서 4피트(약 1.2미터)에서 14피트(약 4.3미터)까지 3미터 거리에 이르는 공간은 미드레인지 구역에서도 림에 가깝고 거리가 짧기 땝문에 쇼트 미드레인지(short midrange)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림 근처와 3점 라인 근처 수비가 극도로 강해진 현대농구에서 쇼트 미드레인지는 에이스급 선수들이 득점을 폭격하기 위해 적극 활용하는 공간이다.

루카 돈치치, 샤이 길저스-알렉산더, 케빈 듀란트는 물론이고 올 시즌 공격 부문에서 인상적인 성장세를 이룬 뱀 아데바요 역시 턴어라운드 점퍼와 훅슛으로 쇼트 미드레인지 구역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그리고 올 시즌을 앞두고 '거품 논란' 속에 뉴욕으로 이적한 FA 가드 역시 쇼트 미드레인지 구역의 새로운 왕자로 떠오르고 있다. 제일런 브런슨이다.

브런슨은 지난해 여름, FA 자격을 얻어 뉴욕과 4년 1억 400만 달러의 조건에 계약하고 이적을 택했다. 데뷔 4년 만에 이뤄진 첫 이적이었다.

이적 당시만 해도 브런슨이 받는 연봉에 대해 말이 많았던 것이 사실. 두 시즌 동안 ‘폭풍 성장’을 일궈내며 돈치치를 받치는 댈러스의 2옵션으로 자리잡았지만, 총액 1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받을 만한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였다.

하지만 정규시즌이 절반 정도 치러진 지금, 브런슨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브런슨에게 1억 달러 계약을 안긴 뉴욕이 오히려 ‘땡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올 시즌 38경기에 출전한 브런슨은 21.6점 3.5리바운드 6.5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야투율 46.1%, 3점 성공률 38.1%로 효율까지 잡고 있다. 지난 시즌 대비 자유투 획득 능력도 좋아졌다. 경기당 5.1개의 자유투를 얻어내 4.3개를 성공, 에이스급 선수들이 흔히 보여주는 자유투 기반 득점력도 잘 발휘하고 있다.

브런슨은 지난 일주일 동안 ‘인생 경기’를 두 번이나 펼친 선수이기도 하다. 5일 샌안토니오전에서 38득점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기록을 새로 썼는데, 불과 5일 뒤인 10일 밀워키전에서는 44점을 폭격하며 커리어-하이 기록을 곧바로 갱신했다. 상대 밀워키가 즈루 할러데이, 제본 카터, 그레이슨 알렌 등 터프하고 뛰어난 수비수들을 다수 보유한 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활약이었다.

브런슨의 활약의 비결은 앞서 언급한 쇼트 미드레인지 공략에 있다.

올 시즌 브런슨은 림에서 4-14피트 구역인 쇼트 미드레인지에서 총 127개를 성공했다. 이는 케빈 듀란트, 루카 돈치치, 뱀 아데바요, 샤이 길저스-알렉산더에 이은 리그 5위 기록이다.

쇼트 미드레인지(4-14피트) 누적 야투 성공 순위
1. 케빈 듀란트: 153개
2. 루카 돈치치: 150개
3. 뱀 아데바요: 132개
4. 샤이 길저스-알렉산더: 128개
5. 제일런 브런슨: 127개

누적 개수가 아닌 100포제션 기준으로 환산하면 4.94개로 리그 4위까지 순위가 올라간다. 100포제션 기준 성공 개수에서 브런슨보다 쇼트 미드레인지 점퍼를 많이 성공하는 선수는 ‘괴물’ 루카 돈치치(5.51개), 미드레인지의 왕자 케빈 듀란트(5.34개), 공격에서 성장세가 가파른 뱀 아데바요(5.08개)뿐이다.

100포제션 환산 쇼트 미드레인지 야투 성공 순위
1. 루카 돈치치: 5.51개
2. 케빈 듀란트: 5.34개
3. 뱀 아데바요: 5.08개
4. 제일런 브런슨: 4.94개
5. 샤이 길저스-알렉산더: 4.69개

 

브런슨의 쇼트 미드레인지 점퍼는 매우 다양한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2대2 과정에서 스크린을 활용해 미드레인지 구역으로 진입, 이후 스네이크 드리블을 활용해 등과 엉덩이로 공간을 확보하고 쇼트 미드레인지 점퍼를 터트리기도 하고, 드리블 돌파 과정에서 포스트업으로 전환하는 바클리(Barkley) 동작 이후 턴어라운드 점퍼를 터트리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브런슨은 플로터를 쇼트 미드레인지 공략을 정석적인 풀업 점퍼, 턴어라운드 점퍼를 통해 해내는 스타일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플로터도 여유롭게 구사한다. 10일 밀워키전에서는 이 같은 브런슨의 스타일을 간파한 밀워키가 쇼트 미드레인지에 진입하는 브런슨을 상대로 과감한 더블 팀 수비를 시도했지만, 이 역시 킥아웃 패스와 컷인을 봐주는 적절한 엑스트라 페스(extra pass)로 무너뜨리면서 밀워키 수비를 마음껏 농락했다.

▲ 브런슨 역시 현대농구에서 가드들의 가장 전형적인 미드레인지 공략 방법인 스네이크(snake) 드리블에 이은 풀업 점퍼를 활용한다. 핸들러가 미드레인지 진입 과정에서 드리블을 이어가면서 8자 모양으로 드리블을 이어가는 움직임이 마치 뱀의 움직임과 같다고 하여 스네이크 드리블 혹은 스네이크 무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위 장면에서는 브룩 로페즈의 드랍백 수비 위치가 꽤 높음에도 브런슨이 엘보우 점퍼로 득점을 마무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브런슨의 또 다른 장기는 미드레인지 구역에서의 스핀 동작이다. 크로스 오버 드리블로 상대의 수비를 흔들고, 본인은 낮은 무게 중심과 강한 하체 힘을 활용해 좌우 방향으로 스핀 무브를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위 장면을 자세히 보면 브런슨의 스핀무브 동작의 가장 큰 특징이 드러난다. 볼을 캐치할 때 오른발 스텝을 길게 밟으면서 수비수를 림 가까이 밀어놓고, 왼발을 피벗 풋으로 턴하면서 점퍼를 던지는 것이다.

 

▲ 위 장면에서는 리그 최고급 외곽 수비수인 즈루 할러데이의 무게 중심을 온 드리블(on dribble) 과정에서의 왼쪽 턴 동작으로 무너뜨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턴하면서 턴어라운드 점퍼를 던진다. 이때도 볼을 캐치하면서 오른발 스텝을 길게 밟으면서 수비수를 몰아부친 후, 왼발을 피벗 풋으로 턴하는 특유의 습성이 드러난다.

 

▲ 브런슨은 루카 돈치치, 데빈 부커 등이 사용하는 바클리(Barkley) 동작을 리그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NBA 레전드 찰스 바클리가 현역 시절에 잘 활용했기 때문에 바클리라고 불리는 이 동작은 특징은,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다가 등을 돌리고 포스트업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공격법은 핸들러의 볼 소유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특정 선수 1명에게 넓은 공간이 필요해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잘 활용할 경우 위 장면처럼 쇼트 미드레인지를 아주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공격법이기도 하다. 뉴욕은 제일런 브런슨과 줄리어스 랜들에게 모두 이 형태의 공격을 펼칠 그린 라이트를 주고 있다. 브런슨은 이미 댈러스 시절부터 돈치치와 이런 형태의 공격을 즐겨 쓰면서 '미니 돈치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브런슨의 탁월한 미드레인지 게임은 상대 수비 입장에서 당연히 중요한 경계 대상이다. 위 장면에서는 브런슨의 순간적인 미드레인지 구역 진입과 펌프 페이크에 PJ 터커와 조엘 엠비드가 완전히 속아버리면서 덩커 스팟에 있던 미첼 로빈슨이 완전히 오픈 찬스를 얻는다. 브런슨은 자신의 미드레인지 구역 공략 능력을 미끼로 활용하는 데도 능하다. 올 시즌 브런슨은 데뷔 이래 가장 많은 평균 6.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최근 5연승 행진이 중단되긴 했으나, 쇼트 미드레인지 구역의 새로운 왕자로 떠오른 브런슨의 활약 속에 뉴욕은 동부 7위를 질주 중이다.

6위 인디애나와 승차가 1경기에 불과하고 5위 필라델피아와의 승차 역시 3경기다. 뉴욕과 브런슨이 이런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브런슨은 동부 올스타 가드에 뽑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7일 공개된 올스타 팬 투표 1차 결과에서 브런슨은 총 103만 2,522표를 획득하며 카이리 어빙, 도노반 미첼, 제임스 하든에 이은 동부 가드 부문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브런슨의 입지가 얼마나 커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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