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민재 기자 = 2005 신인 드래프트 전체 57순위로 뽑힌 마친 고탓은 2007년 NBA에 입성했다. 그는 올랜도 매직과 계약을 체결한 뒤 신인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고탓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케빈 듀란트, 그렉 오든 등이 복도를 지나다녔다. TV에서 보던 선수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한 선수가 고탓에게 말을 걸었다. “몇 번 픽으로 뽑혔어?”라고 물었고, 고탓은 “57번픽!”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를 들은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57번픽? 2년 안에 리그를 떠나겠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탓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어디 한번 두고 봐.” 마음속으로 외쳤다.

고탓의 첫 번째 시즌은 순탄치 않았다. 올랜도와 계약한 이후 그는 D-리그에서 머물렀다. 이후 다시 올랜도로 콜업되었지만 데뷔전을 3월에나 치를 수 있었다. 데뷔 시즌에 단 6경기 출전, 평균 6.8분을 소화에 그쳤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팀 내 에이스 드와이트 하워드(現 애틀랜타 호크스)가 부상으로 결장할 때 주전으로 나서며 활약했다. 주전으로 나온 경기에서 28분간 16점 13리바운드로 깜짝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2008-09시즌 평균 출전 시간은 12.6분으로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출전할 때마다 그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활용한 우직한 플레이가 남달랐다. 그러면서 그는 데뷔 2년차 만에 파이널 무대를 밟으며, NBA 파이널을 경험한 첫 번째 폴란드인이 되었다.

사실 고탓은 폴란드 출신답게 농구에 그리 관심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17~18살까지 농구공을 잡아본 적도 없었다. 대신 축구에 빠져있었다. 육상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컸다. 키가 크고 빨라 골키퍼를 주로 봤다.

그럼에도 고탓은 농구를 즐겨 봤다. 매번 TV로 세르비아 출신의 드잔 보디로가의 플레이를 챙겨봤다. 보는 것을 좋아할 뿐 한 번도 농구를 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농구를 접할 기회를 맞이했다. 당시 고탓은 친구들과 축구를 하기 위해 경기장에 도착했다. 그때 고탓은 ‘내가 보디로가처럼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슛을 던졌다. 들어가진 않았지만 꽤 근접했다. 친구들은 “그쪽 골대가 아니야”라면서 웃었다. 그러나 고탓은 멈추지 않았다. 훅슛을 던졌는데 손끝 감각이 좋았다. 이때 고탓은 농구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우연한 기회에 농구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농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고탓은 NBA에 진출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당시 고탓은 드래프트 진행 방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고탓은 “에이전트 말로는 내가 1라운드 30명 안에 들 수 없었다. 대신 2라운드 30명 안에는 무조건 뽑힐 거라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고탓의 NBA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2005년 드래프트 된 이후 로스터에 들지 못하며 유럽으로 떠나야 했고, 2006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이언 힐 감독이 그를 로스터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그 순간을 기회로 삼았다. 고탓은 “오프시즌에 훈련하는 게 좋다. 나는 훈련장의 노예다”라고 말하며 연습에 집중했다. 독한 마음을 품은 결과, 2007-08시즌 결국 NBA에 입성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형 센터 중 한 명이 되었다. 기록 자체는 뛰어나지 않지만 단단한 스크린과 수비력, 뛰어난 농구 재능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런 고탓은 신인 오리엔테이션 당시 자신에게 독설을 퍼부은 선수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현한다. “얼굴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선수 덕분에 동기부여가 생겼다. 그에게 다시 말하고 싶다. 네가 말한 것처럼 되지 않았다고.”

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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