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12월호에 기재된 내용을 추가/각색했습니다.

비시즌부터 시즌 개막 후까지 브루클린을 향한 악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제임스 하든, 케빈 듀란트, 카이리 어빙으로 이어지는 초특급 Big 3를 구성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비시즌 듀란트의 트레이드 요청, 그리고 시즌 들어서는 어빙이 또 사고를 쳤다. 아무런 색깔을 보이지 못했던 스티브 내쉬 감독은 개막 후 7경기 만에 팀과 작별했다. 이처럼 브루클린은 끊임없는 부정적인 이슈와 함께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브루클린을 덮친 위기들을 조명해보자. 

시끄러웠던 비시즌

이미 비시즌부터 브루클린은 잡음으로 가득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듀란트의 트레이드 요청.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지난 7월 초였다. 'ESPN'의 애드리안 워즈나로우스키 기자를 포함한 다수의 현지 기자들이 듀란트의 트레이드 요청을 보도하면서 대박 드라마가 방영을 알렸다. 

당시 듀란트의 트레이드 요청 이유에는 어빙이 있었다. 듀란트와 어빙은 리그 내의 소문난 절친. 어빙이 그렇게 많은 사고를 치고도 당당할 수 있었던 데에는 듀란트라는 든든한 뒷배의 존재 역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당시 어빙은 읍트인 혹은 옵트아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듀란트와 어빙은 우선 옵트아웃을 선택한 후 브루클린과 장기 계약을 새롭게 맺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미 어빙에게 수차례 데였던 브루클린은 당연히 어빙에게 장기 계약을 주기를 꺼려했다. 

다른 팀으로의 이적도 쉽지 않자 결국 어빙은 옵트인을 선택해 우선 브루클린과 동행을 이어갔다. 이러한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듀란트는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불과 1년 전 듀란트는 브루클린과 4년 1억 9,800만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연장 계약을 맺었다. 당시 맺었던 연장 계약이 시작되는 시즌에 듀란트는 트레이드를 요청한 셈. 이에 아담 실버 총재 역시 "선수들과 구단 대표들 사이에는 항상 비공개로 대화가 오간다. 우리는 선수들이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그것이 그대로 진행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선수들이 코트에서 뛰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선수 협회와 의논하여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팀들이 듀란트 트레이드에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계약 기간이 무려 4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브루클린은 듀란트의 트레이드를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듀란트를 영입하는 구단은 리그 최고의 득점 기계를 4년이나 쓸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이는 곧 브루클린의 높은 요구로 이어졌다. 브루클린이 듀란트의 대가로 요구하는 것들은 다른 팀들 입장에서 터무니없는 수준이었고, 이로 인해 듀란트의 트레이드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이러한 슈퍼스타들의 트레이드 요청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는 계약 기간을 1년 혹은 길어야 2년 정도를 남기고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팀의 슈퍼스타를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 채 다른 팀에 넘겨줄 위기에 처한 팀들이 다급해지고, 트레이드 역시 예상보다 다소 낮은 가치로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듀란트의 경우는 4년이나 계약이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브루클린이 급할 것이 없었던 이유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미네소타가 루디 고베어를 영입하기 위해 엄청난 자산을 소모한 것 역시 듀란트 드라마에 영향을 줬다. 당시 미네소타는 고베어를 영입하기 위해 1라운드 지명권을 4장이나 소모했다. 고베어와 듀란트의 가치 차이를 고려할 때 브루클린은 그 이상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손에 넣은 셈이다. 

트레이드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자 답답해진 듀란트는 조 차이 구단주를 직접 만났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듀란트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요구를 해왔다. 만약 자신을 트레이드 시키지 않고 브루클린에 남기고 싶다면 스티브 내쉬 감독과 션 막스 단장을 해고하라는 이야기를 던졌다. 사실상 자신을 반드시 트레이드 시키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요구조건이었다.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자 조 차이 구단주는 SNS에 "나는 우리 구단의 프런트오피스와 코칭스태프를 지지한다""우리는 구단이 가장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에도 브루클린은 듀란트 트레이드를 위해 다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브루클린의 요구 조건은 높았고 다른 팀들은 브루클린의 조건을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결국 듀란트가 항복을 선언했다. 8월 말 자신의 트레이드 요청을 철회한 것. 트레이드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이후 약 45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브루클린은 "스티브 내쉬 감독과 조 차이 구단주, 케빈 듀란트와 에이전트 리치 클레이먼이 LA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협력 관계를 추진하기로 합의하기로 했고, 우승이라는 하나의 집단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농구에 집중하고 있다. 브루클린에 챔피언십을 가져다줄 지속적인 프랜차이즈 구축이 목표"라며 듀란트의 잔류 선언을 공식화했다. 

그렇게 브루클린과 듀란트의 갈등은 겨우 봉합됐다. 비시즌 내내 브루클린을 넘어 NBA 전체를 뜨겁게 달궜던 듀란트 드라마는 잔류라는 다소 허무한 결론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러나 브루클린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빙... 어빙...!

한 시즌이라도 이상한 사유로 결장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사나이. 카이리 어빙은 시즌 초반부터 참지 않았다. 

또 사고다. 그리고 또 어빙이다. 이번에는 정말 심상치 않았다. 

어빙은 개막 열흘이 막 지난 시점에서 사고를 쳤다. 자신의 SNS를 통해 책과 영화를 홍보한 어빙이었는데, 내용이 문제가 됐다. 해당 책과 영화의 내용에는 반유대주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큰 논란으로 이어졌다. 최근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으로 인해 철퇴를 맞은 래퍼 칸예 웨스트의 사례와 유사한 사건이었다. 

어빙의 SNS가 논란이 되자 브루클린 구단은 "우리 팀은 혐오 표현을 조장하는 행위를 규탄하고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문을 바로 발표했다. 조 차이 구단주 또한 "카이리 어빙이 반유대주의적 허위 정보로 가득한 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홍보하는 것에 실망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 브루클린은 어빙의 인터뷰를 막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빙이 지핀 불씨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빙 역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사태가 심각해지자 결국 브루클린은 어빙에게 철퇴를 내렸다. 어빙에게 최소 5경기 출전 정지의 징계를 내린 것. 

일이 커지자 어빙은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다. 어빙은 "내 게시글로 상처를 입은 모든 유대인 가족과 커뮤니티에 고통을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유대인과 종교에 대해 사실이 아닌 모욕적인 반유대주의 진술과 서술이 담긴 영상을 SNS에 올렸고, 내 행동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며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늦은 사과였다. 어빙을 후원했던 나이키는 곧바로 어빙과의 관계를 끝내겠다고 발표했고, 르브론 제임스 역시 어빙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브루클린의 태도 역시 강경했다. 어빙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행동들을 하지 않으면 복귀를 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브루클린이 어빙에게 요구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영화 홍보에 대한 자필 사과 및 반유대적 신념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할 것
2. 혐오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 50만 달러 기부
3. 구단이 자체 제작한 반유대주의 관련 교육 이수
4. ADL 및 브루클린의 유대인 리더들 만나기
5. 조 차이를 비롯한 프랜차이즈 관계자들을 만나 자신이 야기한 피해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보장하기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어빙은 브루클린의 요구 사항들을 하나씩 수행했다. 그 사이 어빙의 출전 정지 기간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결국 어빙은 팀의 요구를 모두 수행한 후 8경기가 지난 시점에서야 다시 코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빙이 또 다시 사고를 치고 초반부터 팀이 흔들리자 스티브 내쉬 감독의 입지 역시 크게 흔들렸다. 결국 내쉬 감독은 개막 후 단 7경기 만에 브루클린의 지휘봉을 내려놔야 했다. 당시 브루클린의 성적은 2승 5패. 슈퍼스타들에게 의존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내쉬 감독과 브루클린의 이별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해고 소식이 발표된 후 내쉬 감독은 “브루클린에서 감독 기회를 준 션 막스와 조 차이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선수들, 프런트 오피스와 함께한 것도 영광이었다. 또한 팀을 지지해 준 팬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이 아름다운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을 사랑했다. 브루클린이 앞으로 반드시 성공하길 바라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역대급 Big 3의 탄생,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제임스 하든, 카이리 어빙, 그리고 케빈 듀란트. 이들이 한 팀에서 뛴다는 시나리오는 비디오게임에서나 실현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브루클린은 이를 실제로 구현해 낸 놀라운 팀이었다. 비록 실패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휴스턴에서 언해피를 띄운 하든은 다른 팀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하든을 품은 팀은 브루클린이었다. 인디애나-클리블랜드까지 포함된 4각 트레이드. 당시 트레이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브루클린에 합류했던 하든 *
브루클린 get : 제임스 하든 
휴스턴 get : 빅터 올라디포, 단테 엑섬, 로디언스 쿠루츠, 1라운드 지명권 4장(2022, 2024, 2026년 브루클린 비보호 1라운드픽, 밀워키 2022년 1라운드픽), 지명권 스왑 권리 4장(2021, 2023, 2025, 2027년)
클리블랜드 get : 재럿 알렌, 터린 프린스 
인디애나 get : 카리스 르버트 

 

공격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보였던 브루클린의 역대급 Big 3는 하든 트레이드가 완료된 이후 약 일주일이 지난 2021년 1월 21일에 처음으로 가동됐다. 당시 브루클린의 상대는 4각 트레이드의 일원이기도 했던 클리블랜드. 

이 경기에서 브루클린은 클리블랜드와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다. 듀란트가 38점 12리바운드 8어시스트, 어빙이 37점 3어시스트로 코트를 맹폭했다. 하든 역시 21점 12어시스트 10리바운드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의 최종 승자는 브루클린이 아닌 클리블랜드였다. 연장을 접수하며 무려 42점을 폭발시킨 콜린 섹스턴이 브루클린 Big 3의 첫 승리를 막아섰다. 

이후 이틀 뒤 열린 클리블랜드와의 리턴 매치. 브루클린은 이번에도 113-125로 패하며 2연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러나 브루클린은 백투백으로 홈에서 열린 마이애미전에서 128-124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를 바꿨고 이후 4연승을 질주했다. 

브루클린의 Big 3는 함께 가동되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다. 이들이 돌아가며 부상을 당하며 셋의 조합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순항을 이어간 브루클린은 48승 24패의 성적으로 동부 컨퍼런스 2위를 거머쥔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무대에서는 Big 3가 제대로 가동됐다. 그 결과 브루클린은 5경기 만에 보스턴을 물리치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문제는 2라운드에 발생했다. 어빙과 하든이 부상을 당하며 듀란트 홀로 남게 된 것. 

이 시리즈에서 어빙과 하든은 4경기 출전에 그쳤다. 어빙은 평균 20.0점 4.3어시스트로 부진했고, 하든은 10.8점 6.0어시스트로 최악의 모습이었다. Big 3 중 두 축이 무너진 브루클린은 시리즈 평균 35.4점 10.6리바운드 5.4어시스트를 기록한 듀란트의 초인적인 힘을 바탕으로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갔으나 결국 밀워키에게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 

당시 브루클린을 꺾고 올라간 밀워키는 이후 애틀랜타와 피닉스를 연이어 격파하며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Big 3의 부상 이슈와 너무나 강했던 상대. 어빙-하든-듀란트 삼각편대의 첫 시즌 실패에는 분명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첫 시즌의 실패를 뒤로 한 브루클린의 Big 3는 이듬해 다시 우승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도 브루클린을 향한 악재는 끊이질 않았다. 이번에는 어빙의 백신 이슈가 터졌다. 

당시 시의 정책에 따라 브루클린의 소속 선수들은 홈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백신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다.(현재는 이 정책이 폐지가 된 상태다) 백신 접종을 강력하게 거부했던 어빙은 경기 결장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원정에서는 뛸 수 있었던 어빙이었지만 팀 조직력 측면에서 이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브루클린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션 막스 단장은 당시 “어빙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파트타임으로 일정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빙의 전체 경기 출전과 훈련 참가를 금지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어빙은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브루클린은 어빙을 배제한 채 시즌에 나섰다. 당연히 팀이 온전히 돌아갈리 만무했다. 그런 와중에 듀란트가 부상을 당했고, 홀로 고군분투하던 하든은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쓰러졌다. 

연이은 부상 소식 속에 브루클린은 우승후보에서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그러자 결국 브루클린은 어빙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렸고, 원정 경기에서 어빙의 출전을 허용했다. 이후 시즌 막바지 뉴욕시가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를 해제함에 따라 어빙은 홈에서도 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미 당시는 홈에서 35경기가 열린 뒤였다. 

직전 시즌에도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경기에 빠지고 했던 어빙이 이번에는 백신으로 팀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자 우승이 간절했던 하든은 결국 브루클린에게서 마음이 떠나고 말았다. 더불어 하든은 어빙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하든은 라커룸에서 인디언의 의식인 세이지 불태우기를 하는 어빙을 마치 머리가 3개 달린 사람을 보는 것 마냥 신기하게 쳐다봤다고 한다. 

 

결국 하든은 브루클린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팀에게서 마음이 떠난 하든은 점차 브루클린 동료들과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든의 트레이드를 격렬하게 반대했던 듀란트 역시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브루클린은 벤 시몬스라는 폭탄을 떠안고 있던 필라델피아와 트레이드를 단행했고, 하든은 조엘 엠비드의 품으로 떠났다. 브루클린이 야심차게 결성했던 Big 3가 처참한 실패로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 브루클린을 떠난 제임스 하든 *
필라델피아 Get : 제임스 하든, 폴 밀샙
브루클린 Get : 벤 시몬스, 세스 커리, 안드레 드러먼드, 2022년 1라운드 비보호픽, 2027년 1라운드 보호픽

하든이 떠난 후 브루클린은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거쳐 힘겹게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이미 브루클린을 향한 기대치는 밑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브루클린은 1라운드 무대에서 만난 보스턴을 상대로 단 1승도 챙기지 못한 채 플레이오프 도전을 마무리해야 했다. 

부상과 코트 외부 이슈로 결장이 잦았던 브루클린의 Big 3는 2년 가까이 브루클린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16경기만 함께 출전했다. 사실상 가동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함께 뛴 16경기에서는 13승 3패로 높은 승률을 기록했으나, 이는 사실상 무의미한 수치다. 그렇게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샀던 브루클린의 Big 3는 아쉬운 결과를 맞이하며 해체 수순을 밟았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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