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오는 22일부터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FIBA 세계여자농구 월드컵에 나선다.
도쿄 올림픽 본선에서 1승을 거두는 데 실패했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최근 국가대표 경기에서 중국을 제압하는 등 여러 기대요소가 있었지만, 에이스인 박지수의 출전이 불발되며, 성적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하지만 국제대회가 이번 월드컵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닌 만큼, 꾸준한 발전과 성장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선수단의 발전도 필요하지만 협회차원의 지원도 필수다. 특히 우리 대표팀이 다른 나라와 치르는 평가전이나 연습경기의 필요성은 절실히다.
이번 대표팀은 지난 8월 1일에 소집됐고, 지난 20일과 21일에는 라트비아와 청주에서 평가전을 가졌다. 이를 놓고, ‘여자 대표팀 최초의 국내 평가전’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됐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7~80년대에 국내에서 여자농구 대표팀의 평가전을 치렀던 적이 있다. 하지만 WKBL이 출범한 이후 국내에서 여자 대표팀의 평가전이 진행된 적은 없다. 아주 오랜만에 열린 여자 대표팀의 국내 평가전인 것이다.

하지만 ‘최초’이든 ‘오랜만’이든, 어디에 나가 자랑할 부분은 아니다. 평가전을 마련한 협회의 현 집행부에게는 큰 의미일 수 있지만, 협회 자체만 놓고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올해로 여자 프로농구 WKBL이 출범 25년째를 맞는다. 과거에 비해 여자 농구의 위상이 많이 낮아졌지만, 여자 대표팀은 세계 선수권대회(현 월드컵) 4강,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의 성과를 거뒀다. 이런 대표팀이 2022년이 되어서야 21세기 최초의 국내 평가전을 가졌다는 게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국내에서 평가전이 없었다면 해외에서는 있었을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대표팀이 체코로 전지훈련을 떠났던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평가전은 없었다.
곧, 우리나라 여자 대표팀은 최소 8년간, 단 한 번도 정상적인 평가전을 해보지 못한 채, 각종 국제대회에 나섰던 것이다. 대한민국 여자 농구 대표팀의 연습 상대는 주로 중고등학교 남자 선수들이었다. 이웃 나라 대만이 우리나라로 전지훈련을 와 주면, 대만과 연습 경기는 치를 수 있었다.
전임 방열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대표팀 경기력 향상과 국제 대회 개최를 공언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 역시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대표팀이 평가전 한 번 없이 대회에 나선다면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닌 책임자들의 직무 유기를 의심해야 한다.
당초 우리나라가 정상 전력이었다면, 이번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1승의 상대로 노렸을 팀 중 하나가 푸에르토리코다. 푸에르토리코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9월 첫 주에 세르비아에서 전지훈련과 연습경기를 갖고 호주로 이동하며, 이후 호주, 말리, 캐나다 등과 연습 경기를 갖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FIBA 랭킹은 세계 13위다.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와 한국 여자농구팀의 위상과 비교할 때 그에 어울리는 준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정선민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의 국제 대회 낯가림을 걱정했다.
그는 “외국 선수들과 경기를 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국제대회에서 늘 버거워한다. 빨리 탈피하고 적응해야 하는데 두 경기 모두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고 라트비아와의 경기를 평가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선수와 경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자연스럽게 평가전의 기회가 더 많아야 한다는 부분도 언급했다.
정 감독은 “솔직히 감독 입장에서는 평가전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지만, 선수들에게는 정말 귀한 시간이다. 이런 경기가 지속적으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선수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박지현(우리은행)은 국내에서 열린 이번 평가전에 대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이기에 뜻 깊었고 크게 다가왔다.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었고 자주 있었으면 한다. 팬들도 좋아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베테랑인 박혜진(우리은행)도 “평가전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팬들의 응원에 즐겁고 재미있었다”며 “우리가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서 앞으로 국내에서 평가전이나 국제대회가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도자들도 대표팀의 평가전에 대해서는 생각을 같이했다.
김도완 하나원큐 감독은 “국제대회에서 외국 선수를 상대하는 것은 ‘얼마나 경험을 했느냐’는 부분에서도 확실히 차이가 난다. 여건이 되는 한, 자주 경기를 치르면서 익숙해지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던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선 일본의 성장에는 많은 평가전 경험도 한 몫을 했다. 일본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꾸준히 대표팀 평가전을 진행했다. 지금도 1년에 10번 정도는 대표팀 평가전을 갖는 것 같다. 호주하고는 거의 매년 하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대패를 당했지만, 거듭할수록 익숙해지면서 이기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꾸준히 하면서 성장했기에, 일본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도 외국 선수들에 대한 낯가림이나 부담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도 활약했던 경험이 있는 하은주(전 신한은행) 웨이크업바디 센터 대표는 “일본은 외국인 선수 제도를 쓰지는 않지만 거의 모든 팀에 혼혈 선수나 귀화 선수가 있다. 학생때부터 이런 선수들과 경기를 했다. 그리고 국가대표의 평가전이나 해외 전지훈련이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에 외국 선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도 없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많은 경기 경험은 당연히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또한 대표팀간의 경기로 인해 팬들의 관심을 더 끌어 모을 수 있다.
국내에서 펼쳐질 경우, 일방적으로 대표팀을 성원하는 팬들의 열기 속에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의 자긍심과 동기 부여를 높일 수 있다. 경기장을 찾아 관전하는 다른 선수들과 관계자의 모습도 이색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이번 라트비아와의 평가전에 청주 체육관을 찾은 팬들이 기대만큼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표팀의 막내인 허예은(KB)은 “투입될 때 관중들의 함성을 들으면서 정말 좋았다. 신기했고 감사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을 포함해서 국가대표로 국내에서 경기를 처음 해봤다. 앞으로 대표팀의 평가전이나 국제 대회가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다행히 농구협회도 대표팀의 평가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내년에도 여자 대표팀의 평가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평가전이 꾸준히 개최되고 그 회수를 늘려서, 전임자의 취임일성에만 그쳤던 국제대회 유치까지 이어져야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은 물론 농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더 끌어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대한민국 농구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