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경험한 케빈 러브는 '러브 펀드'를 설립해 선수들의 정신 건강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공황장애를 경험한 케빈 러브는 '러브 펀드'를 설립해 선수들의 정신 건강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①편에 이어...

1편에서 제시한 다양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운동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상당한 부담에 노출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소위 A급으로 불리는 선수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멘탈 케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필요
전문의의 진단을 받고 의료적인 도움을 받는 것 또한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과 상황도 각기 다르다. 어려운 상황과 주변 여건에 의해 정신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점의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고통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효근 원장은 “원인이 있어 생기기도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자연인으로서 누구에게나 아무 이유 없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프로 스포츠에서도 선수들의 멘탈 케어와 관련된 부분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다.

케빈 러브는 공황장애를 극복한 후 2018년 9월,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는 ‘러브 펀드’를 설립해 정신 건강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단순히 운동선수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일이다. 우리는 모두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걸 속에 묻어두면 스스로를 다치게 할 수 있다. 나도 살면서 이를 계속 피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를 알아가는 힘든 일을 이제 막 시작했다”고 말했다.

더마 드로잔의 솔직한 우울증 고백은 NBA와 NBPA(NBA 선수협회)의 적극적인 문제 인식을 촉발했다.

NBPA는 2018년, 선수들이 정신 건강 상담사에게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정신 건강에 대한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NBA 사무국은 정신 건강 교육에 더 큰 중점을 두기 위해 신인 프로그램을 변경했다. 또한 NBA는 건강에 관한 팁과 운동, 자가 진단, 그리고 정신 건강자료들로 구성된 51페이지 분량의 플레이북을 제작해 NBA, WNBA, G리그 선수들에게 배포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키온 둘링은 현재 NBA 정신 건강 및 웰니스 프로그램에서 선수들에게 조언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둘링은 현역은 물론 은퇴한 선수들의 멘토 및 가이드로 활동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신 건강 관련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앞서 언급했던 일본인 NBA리거 하치무라 루이 역시, NBA의 마인드 헬스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더마 드로잔의 우울증 고백은 NBA가 선수들의 정신 건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됐다.
더마 드로잔의 우울증 고백은 NBA가 선수들의 정신 건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여러 부분에서 이전보다 나아지고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남녀 프로농구 16개 구단 중 3개 구단(SK, KT, KB)은 멘탈 코치, 혹은 멘탈 트레이너를 보유하고 있다. 다른 팀들도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외부 상담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더 체계화하고, 선수들의 멘탈 관리 자체가 특별한 부분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과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한국 스포츠 정책 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인 김영숙 박사는 “이전에는 ‘선수는 강인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 이런 문제를 작은 일로 봤다. 하지만 이제는 문화적인 변화와 선수들의 세대적인 변화, 자신의 결정권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바라보는 지도자나 팬들의 의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박지수의 소속팀인 KB스타즈는 여자농구에서 유일하게 멘탈 트레이너가 있는 팀이다. ‘멘탈 트레이너가 있어도 결국 박지수의 공황장애는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르다.

이효근 박사는 “멘탈 트레이너가 있었기에 문제를 인식할 수 있었던 사안으로, 오히려 모범적인 사례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앓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대성 역시 자신의 번아웃 증후군을 인지하지 못했다.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어요. 고통에 비해 알 수 있는 정보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어쨌든 알게 돼서 방법을 바꾸고 나아질 수 있었지만, 많이 아쉬워요. 사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번아웃이라는 걸 모르니, 그때는 그냥 제 방법대로 더 부딪치고 뛰면서 넘어 갔어요. 일찍부터 그런 걸 알고 잘 대응했다면, 더 빨리 회복하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B 관계자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만약 멘탈 트레이너가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는 박지수가 정신건강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여전히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선수에게 ‘이겨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결국 박지수의 공황장애는 소속팀에 ‘멘탈 트레이너가 있었는데도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있었음에도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멘탈 트레이너가 있어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해 낸 것이다.

이제는 특정 선수가 아닌 모두에게 각기 다른 형태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도 집중해야 한다.

번아웃 증후군을 극복한 이대성
번아웃 증후군을 극복한 이대성

시스템과 문화 구축
멘탈 코치(혹은 트레이너)를 보유하고 있는 팀들은 이들을 통한 심리 상담의 효과와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한다. 멘탈 트레이너를 도입한 구단들이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 KBL 챔프전 MVP를 차지한 김선형(SK)은 과거, 부상에서 복귀하는 과정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고, 현재도 소속팀에서 심리 상담과 멘탈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김선형 역시 심리 상담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제가 모든 선수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감독님, 코치님이 지도자로서, 또 선배로서 상담해주시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심리 상담과 멘탈 트레이닝을 받으니까 상황을 다른 시각과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었거든요.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됐고, 도움을 받았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많이 봤습니다. 자기 문제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외부적인 부분들, 과거에는 포털 댓글 때문에 고통 받는 선수들도 있었거든요. 선수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멘탈 트레이닝이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도적으로 시스템화 된다면, 아마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이대성 또한 같은 생각이다.

“농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스템의 구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제 경험에서도 그랬고, 선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멘탈 코치나 트레이너를 기용하는 구단들이 생기고 있는데, 더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있겠지만, 시스템이 없어서 도움이 필요한 선수가 나올 때 마다 진행하는 것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는 분명 다르지 않을까요? 제가 번아웃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도 ‘그런게 어딨냐’며 소위 ‘라떼는...’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분들이 계셨어요.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구단은 매년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몸 관리를 위해 종합 검진을 비롯한 메디컬 체크를 실시한다. 멘탈과 관련된 부분도 이제는 여기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선수 뿐 아니라 스트레와 정신적 압박이 큰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도 이는 필수다. 한 감독은 “아마, 지금 전체 선수단을 모두 상담해보면 ‘문제가 없다’고 나오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 큰 효과를 위해서는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진행해야 한다. 여자농구에서 오랫동안 멘탈 트레이너를 두고 있는 KB의 관계자는 말한다.

“아무리 좋은 상담사, 혹은 전문의가 오신다고 해도 일시적으로, 혹은 드문드문 진행해서는 효과가 없을 겁니다. 어쩌다가 한 번 보는 사람한테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할 수가 있을까요? 꾸준히 만나보고 상담하면서 서로 간의 신뢰가 생겨야 선수들도 마음의 문을 열수 있죠. 트레이너도 여러 번 대화하며 자료가 쌓여야 선수에게 효과적인 상담을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정신 건강을 바라보는 저변의 인식과 문화도 더 개선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물리적 부상은 구단이 관리하지만 정신적 문제는 개인적인 부분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었다. 또한 정신적인 상담과 진료를 받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도, 사회도 달라졌다.

김영숙 박사는 “최근 2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는 과거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선수들도 성과 지상주의와 정신력을 강조하던 시대에서, 페어플레이와 선수의 인권과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로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과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멘탈 트레이닝과 스포츠 상담의 영역이 있고, 일반 상담이나 치료는 또 다른 영역입니다. 전문의가 계시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상담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게 맞습니다. 이건 나약한 게 아니에요. 체력 측정처럼 꾸준히 진행해야 하고, 어려서부터 진행하는 게 더 좋습니다. 인식 제고가 필요해요.”

이효근 원장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나 구단이 함께 나서는 것이 맞다”고 조언하며, “그런 문화를 구축해야 하고, 정신적인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정신력만 말하는 것 자체는 편견”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수는 지난 7월 진행된 KB스타즈의 태백 전지훈련에서도 소속팀의 멘탈 트레이너인 최옥숙 박사와 꾸준한 유대관계를 이어왔다.
박지수는 지난 7월 진행된 KB스타즈의 태백 전지훈련에서도 소속팀의 멘탈 트레이너인 최옥숙 박사와 꾸준한 유대관계를 이어왔다.

▲ 선수들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언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과학연구실 선임 연구위원 김영숙 박사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부분을 말해주고 싶다. 프로나 대표 선수들은 더 성장하기 위해 단점을 고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자기 강점을 더 생각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지를 쓰더라도 단점의 수정보다는 잘했던 점을 더 키워가는 위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또 신체 컨디션 조절도 잘 해야 하기 때문에 휴식이 정말 중요하다. 운동 외의 취미를 갖는 것도 필요하고, 긍정적인 생활 습관을 통해 작은 부분에서도 행복을 찾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웨이크업 바디 트레이닝 / 스포츠 심리 센터 대표 하은주 박사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올림픽 이후 목표를 잃어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승이나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후, 급격하게 무력감을느끼는 경우도 있다. 너무 멀리 있는 추상적인 목표보다는 가까운 시일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서, 한 단계씩 전진해나가는 게 필요하다.

일본은 어려서부터 이런 습관이 잘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프로에 온 선수들도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말은 해도 “어떻게 도움이 되겠냐”고 물으면 말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동기부여 할 수 있는 목표를 만드는 게 필요하고, 어려서부터 이런 습관을 길러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본다.

 

사진 = 이현수 기자, 박진호 기자, 로이터/뉴스1,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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