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홈 개막전에서 웃었다.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는 지난 27일, 인천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생명 2021-22 여자프로농구 홈 개막전에서 부산 BNK 썸에 78-68로 이겼다. 주축 선수들의 무더기 결장으로 어려울 거라 예상됐던 경기였지만, 역전승으로 시즌의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신한은행에게는 1승 이상의 수확이 있었던 경기였다. 비시즌 내내 준비한 여러 가지 실험들이 시즌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개막전 승리로 얻은 신한은행의 수확을 살펴보자.

‘초보 감독 우려’ 극복한 구나단 감독 대행
‘여자 농구 최고 명문 구단’, ‘프로스포츠 최초의 통합 6연패’, ‘레알 신한은행.’

더할나위 없는 수식어가 넘쳤던 신한은행은 한동안 암흑기에 빠졌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요원한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리빌딩의 실패와 탄력 없는 경기, 특정 선수에 의존하는 농구가 반복됐다.

그러나 2019년, 정상일 전 감독이 부임하며 신한은행의 농구는 변화를 맞았다. OK저축은행 감독을 맡으며 ‘리빌딩’과 ‘언더독 반란’의 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힌 정상일 전 감독은 신한은행에 부임한 후, ‘반란군 수괴’의 면모를 여지없이 과시했다.

전력 면에서 리그 최하위권으로 평가절하 된 신한은행의 경쟁력을 높였고, 지난 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번 시즌을 준비하던 중, 건강 등 일신상의 이유로 갑자기 사퇴했다.

그 자리는 구나단 코치가 이어받았다. 감독 대행으로 이번 시즌 신한은행을 이끈다.

우려가 많았다. 감독으로서의 첫 시즌. 게다가 국내 농구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는 약점도 있었다. 정상일 감독을 보좌하며 팀에 대한 이해도는 높았지만, 코치와 감독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는 우려가 존재했다.

그러나 개막전 역전승으로 구나단 대행은 걱정보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키웠다. 한 경기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선수기용과 경기 준비, 운영 면에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중계한 김은혜 KBSN 해설위원은 “경기 중 작전타임을 보며 많이 놀랐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었다. 디테일 한 것도 있었지만, 벤치에서 원하는 것을 짧은 시간에 선수들이 빠르게 이해하도록 짚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농구는 감독의 역할이 많이 개입되는 스포츠다. 준비는 물론, 현장에서의 대응과 순발력이 결과를 바꾸는 경우가 상당하다.

정상일 전 감독의 부재는 이런 면에서 신한은행에게 위험요소였다. 하지만 개막전에서 구나단 대행은 이번 시즌에도 신한은행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에이스 부재? 저력 발휘한 신한은행
‘레알 신한은행’이 오랜 부진을 겪으며 새롭게 받아 든 이름은 ‘단비은행’이었다. 김단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농구. 그나마도 김단비가 부진하면 해법을 찾기 힘들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지적됐다.

정상일 전 감독의 부임 후 이런 부분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김단비가 신한은행의 에이스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 명제다. 그리고 ‘에이스의 역할’은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이날 경기에 김단비가 뛰지 않았다. 지난 시즌 주전으로 도약한 한엄지, 골밑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긴급 복귀시킨 곽주영이 결장한 가운데 김단비도 개막전을 쉬게 됐다.

구나단 대행은 “무리를 하면 뛸 수는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즌은 길다. 이제 시작인데 한 경기를 위해 무리를 하고 싶지 않다. 몸을 잘 만들어서 정말 좋은 상태로 복귀하도록 할 것”이라며 출전 명단에서 제외했다.

선수를 위한 배려와 시즌을 길게 보는 시야는 칭찬받아야 하지만, 만약 개막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여러모로 쫓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한은행의 다음 상대는 KB다. 하루 쉬고 우승 후보 KB와 경기를 치르는 쉽지 않은 일정은 연패에 대한 걱정과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겼다.

김아름이 3점슛 7개 포함 26점을 터뜨렸고, 맏언니 한채진은 37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열정을 보여줬다. 40분을 교체 없이 뛰며 무려 16개의 리바운드를 잡았다. 김아름의 26점과 한채진의 16리바운드는 모두 한 경기 개인 커리어 하이 기록이다.

신한은행 측은 “1쿼터 중반 무렵, BNK의 몸놀림이 생각보다 무거워 보였다. 체력적으로 우리보다 열세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체력전으로 밀어붙이면 후반에는 분위기가 넘어올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에이스 없이 경기를 운영하는 법, 그리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개막전에서 수확했다.

선수들의 가능성, 발견과 증명
에이스가 빠진 경기의 승리는 벤치 뿐 아니라, 코트에서 뛰는 다른 선수들이 여러 면에서 연동해야 한다. 맏언니 한채진은 에이스가 없는 상황에 대한 적응과 대처에 경험이 많다. 그런데 신한은행은 이 경기에서 한채진 외에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선수들도 제몫을 톡톡히 해줬다.

우선 앞서 언급했던 김아름은 득점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김아름은 상대에게 11점차로 리드를 뺏겼을 때도 3점슛을 포함해 득점을 올리며 반격의 서막을 알렸고, 신한은행이 흐름을 가져온 3쿼터에는 소위 ‘미친 슛감’을 자랑했다. 3쿼터에만 3점슛 4개를 던져 모두 성공했다. 마지막 4쿼터, BNK가 반격의 포문을 열었을 때도 김아름은 3점슛으로 응수했다.

이날 김아름은 13개의 3점슛을 던져 7개를 성공, 53.8%의 성공률을 보였다.

강한 투지와 거친 수비를 펼치는 김아름은 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한 지난 시즌부터 슈터로서의 가능성을 높였다. 3점슛의 장점을 확실히 보여줬고,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3점슛 부문 1위를 놓고, ‘리그 최고의 슈터’ 강이슬과 경쟁을 펼쳤다. 뒷심부족으로 끝내 1위 자리를 강이슬에게 내줬지만 분명 가능성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이날 개막전으로 김아름은 작년의 모습이 ‘반짝 활약’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구나단 감독 대행이 이번 시즌 주전 가드로 낙점한 김애나도 기대에 부응했다. 기존 국내 가드들과는 분명 다른 리듬과 스타일을 보여줬다. 자신의 힘과 드리블을 바탕으로 신장이 더 큰 포워드들을 상대로도 포스트를 공략했다. 

BNK에 흐름을 뺏겼던 경기 초반, 신한은행의 공격을 주도한 것도 김애나였다. 파울트러블로 일찍 교체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26분 36초 동안 14점 7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깜짝 선발로 기용한 신인 변소정도 겁 없이 코트를 누볐다.

김정은(우리은행)이 신세계 시절이던 지난 2005년 12월 20일, 2006겨울리그 개막전에 선발로 뛴 이후 5791일(만 15년 10개월 7일)만에 개막전 선발 출전 신인이 된 변소정은 팀의 첫 득점과 3점슛을 성공하며 당찬 모습을 보여줬다.

빅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한은행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변소정의 활용은 시즌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김연희가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김연희의 복귀는 신한은행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신한은행의 차세대 센터로 각광받던 김연희는 작년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1년 이상을 쉬었다. 부상 예후가 좋지 않았고 재활 속도도 더뎠다.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출전 시간을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끌어올리고 있다.

김연희는 3쿼터에 코트를 밟았다. 2019-20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이후, 598일(만 1년 7개월 18일)만이었다. 출전 시간은 단 4분 29초.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김연희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투입 직후 포스트에서 득점을 올렸다. BNK가 김연희에 맞춰 베테랑 김한별을 투입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김한별의 슛을 블록했다. 김연희는 그렇게 6점을 더하며, 성공적인 복귀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큰 부상으로 오랫동안 공백이 있던 선수는 복귀 후 첫 경기가 무척 중요하다. 김한별이 비록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를 차지했던 선수다. 그런 김한별을 상대로 자신의 장점을 보여주며, 올 시즌 전망을 밝게 했다.

경기를 마친 후 구나단 감독 대행은 “개막전에 맞춰서 정말 준비를 많이 했다. 선수들이 모두 열심히 뛰면서 제 몫을 해줘서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리그에서 좋은 전력을 갖춘 팀은 아니다. 위기가 있을 것이고, 더 힘든 경기도 많을 것”이라며 자만을 경계했다.

사실이다. 이제 30경기 중 단 1경기만 치렀다. 하지만 에이스가 없다고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팀이 아니라는 것을, 전임 감독이 이어온 장점을 충분히 계승해 시즌을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 신한은행은 높이의 약점을 극복한 스몰볼, 상대에 대한 다양한 맞춤 전술, 시즌 전체의 상황을 고려한 선택과 집중, 선수의 몸 상태를 철저하게 관리하여 효율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통해 최약체라는 평가를 뒤집어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치며 ‘미라클 농구’를 완성했다.

새 시즌 첫 경기에서 희망을 보인 신한은행이 지난 시즌 시작한 ‘미라클 농구’의 ‘시즌2’를 성공적으로 그려낼지 기대가 된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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