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위버는 최근 농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력자였다. 그는 샘 프레스티를 도와 오클라호마시티의 중흥기를 10년 넘게 이끌었다. 그런 위버가 미국 중남부의 오클라호마시티를 떠나 중북부의 디트로이트에 둥지를 튼 지 어느덧 14개월이 흘렀다. 오랜 암흑기를 겪어온 디트로이트는 드디어 한줄기 빛을 발견하고 있다.

 

 

#1. 강팀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근래 NBA만큼 선수 한 명, 한 명의 파워가 강한 리그도 없을 것이다. 스타 플레이어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팀은 무엇이든 한다. 모양새가 썩 좋지는 않지만, 그게 현실이다.

대릴 모리는 휴스턴 단장 시절 “러셀 웨스트브룩은 언제 데려오냐”는 제임스 하든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고, 클리퍼스는 카와이 레너드를 데려오기 위해 그에게 엄청난 편의를 약속했다.(그리고 이 약속은 팀을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안드레 이궈달라는 최근 NBC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드마커스 커즌스가 처음 골든스테이트에 온 뒤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커즌스를 충격에 빠뜨린 선수는 다름 아닌 스테픈 커리. 당시를 돌이켜보며 이궈달라는 이렇게 설명했다.

“커즌스가 우리 팀에서 뛸 때였다. 하루는 커즌스가 커리에게 가서 ‘너 정말 그런 거야?’라고 물었다. 커리는 ‘이건 무슨 소리지?’하는 반응이었다. 커즌스가 커리에게 그러더라. ‘이봐, 넌 리그 최고의 선수잖아. 그런데 팀에 화도 안 내? 팀에 요구하는 것도 아무 것도 없어?’”

커즌스는 소위 구단을 향해 ‘갑질’하지 않는 커리의 모습을 신기해 했던 것이다. 커리의 인성과 구단에 대한 충성심을 알 수 있는 동시에, 다른 슈퍼스타들이 구단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그렇다면 강팀은 스타 플레이어를 많이 모으면 만들어지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NBA는 스타 플레이어 없이는 절대 우승할 수 없는 리그다. 원맨 팀의 우승조차도 그 ‘원맨’은 강력한 슈퍼스타여야 한다. 슈퍼 팀이 쏟아지고 강력한 원투 펀치, 빅3, 나아가 판타스틱4까지 등장하는 마당에 스타 플레이어 없이 뭘 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한다. 스타 플레이어가 중요하다면, 그 스타 플레이어는 도대체 어떻게 모아야 할까?

여기서 논의는 완전히 다른 층위를 향해 전개된다. 정답은 ‘스타 플레이어가 신뢰하고 기대를 걸 만한 구단 운영 능력을 발휘하며 이를 어필하거나, 엄청난 인사이트를 활용해 드래프트에서 미래의 슈퍼스타를 뽑아오는 것’이다.

전자는 이미 존재하는 슈퍼스타를 FA 계약이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오는 것이고 후자는 드래프트에서 거물급 선수를 식별해 지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에 모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 바로 프런트의 수장이다.

 

#2. 조 듀마스의 명과 암

어떤 팀은 단장이, 어떤 팀은 사장이, 어떤 팀은 경영 부사장이 프런트의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한다. 댈러스의 마크 큐반 구단주, 샬럿의 마이클 조던 구단주처럼 구단주가 팀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경우도 있으나 NBA 전체로 보면 많지는 않은 사례다. 대부분 구단주는 따로 있고 프런트의 수장도 따로 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프런트의 수장의 무능력으로 오랜 암흑기에 빠졌던 팀이다.

디트로이트에서만 14년 동안 뛰며 팀을 두 차례나 우승으로 이끌고 영구결번까지 됐던 조 듀마스는 2000-2001시즌을 앞두고 디트로이트의 사장이 된다.

스타트는 매우 좋았다. 듀마스 부임 초창기 디트로이트는 동부지구에서 너무 잘 가는 팀이었다. 듀마스의 수완이 빛을 발했다. 트레이드로 벤 월러스, 라쉬드 월러스, 리차드 해밀턴을 데려오고 FA 시장에서는 천시 빌럽스와 계약했다. 드래프트에서는 테이션 프린스를 지명했다.

듀마스의 맹활약 속에 디트로이트는 2004년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고 2005년에도 파이널에 진출했다. 동부를 주름잡는 강호로 다시 올라선 디트로이트는 1980년대 배드보이즈 시절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듀마스는 2003년 올해의 경영자상까지 받으며 구단 운영 능력을 공인받았다.

하지만 듀마스의 시대는 해가 거듭될수록 어두워졌다. 2003년 드래프트에서 단 한 번의 워크아웃에 시야가 흐려져 대학 무대 최고의 신입생이었던 카멜로 앤써니를 두고 다르코 밀리시치를 뽑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전성기가 꺾인 앨런 아이버슨을 팀의 정신적 지주 천시 빌럽스를 내주며 데려오기도 했고, 2009년 FA 시장에서는 벤 고든과 찰리 빌라누에바에게 샐러리캡 여유분을 투자해 거액을 쏟아 붓는 최악의 실수도 저질렀다. 2004년 우승 멤버의 틀이 유지된 2009년까지 디트로이트는 계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으나, 2010년부터는 6년 연속 플레이오프 티켓도 못 따내는 신세로 전락했다. 디트로이트의 암흑기가 문을 연 것이다.

2016년과 2019년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으나 결과는 모두 1라운드 탈락. 디트로이트는 지난 12년 동안 10번이나 플레이오프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그것도 동부지구에서 말이다.

 

#3. 트로이 위버의 부임과 반전

2014년, 듀마스는 14년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비로소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디트로이트의 악수는 계속됐다.

듀마스를 명목상 구단 고문으로 둔 상황에서 제프 바우어, 에드 스테판스키까지 새로 들어온 단장마다 어설픈 구단 운영 능력을 드러냈다. 급기야 2014년 디트로이트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며 사장직까지 겸한 스탠 밴 건디는 당시 부상 여파로 하락세가 뚜렷했던 블레이크 그리핀을 데려오는 최악의 실수까지 저질렀다. 디트로이트가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2020년 6월, 톰 고어스 구단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에드 스테판스키 단장을 고문으로 보직 이동시키고 오클라호마시티의 사장이었던 트로이 위버를 데려온 것이다.

사실 위버가 부임할 당시 디트로이트 구단 안팎, 그리고 언론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전직 단장과 프런트의 주요 수뇌부가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위버가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는 꼭두각시 인형, 화살받이가 될 수도 있다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14개월이 흘렀다. 트로이 위버는 보란 듯이 디트로이트를 진두지휘하며 미래가 밝은 팀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사실 지난해 가을 오프시즌에는 위버의 무브에 의구심을 갖는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팀의 미래로 평가받았던 루크 케너드, 브루스 브라운을 트레이드로 내보냈고 급성장을 보여준 크리스찬 우드도 허무하게 놓치고 말았다.

그 후엔 3&D 자원인 제라미 그랜트에게 4년 8,000만 달러의 큰 계약을 안기는가 하면 메이슨 플럼리, 조쉬 잭슨을 데려오며 물음표를 자아냈다. 팀의 기둥은 없는데 엉뚱하게 벽부터 도배를 한 격이었다. 블레이크 그리핀은 바이아웃으로 방출했다. 디트로이트 팬들은 방출을 의미하는 ‘웨이버’를 트로이 위버의 이름에 붙여 ‘트로이 웨이버’라고 부르며 그를 비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조차도 위버의 큰 그림이었다.

3&D 자원인 줄 알았던 제라미 그랜트는 26세의 나이에 스텝 업하며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루키 사딕 베이, 아이재아 스튜어트는 빠른 프로 무대 적응과 성장세로 팬들을 놀라게 했다. 실패한 유망주 조쉬 잭슨은 디트로이트에서 다시 잠재력을 발휘했고 2라운드 신인 세이븐 리 역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올여름을 통해 디트로이트는 성공적 리빌딩 팀의 길에 한 걸음을 더 내딛었다. 전체 1순위로 케이드 커닝햄을 지명하며 미래의 코어를 확보한 것이다. 커닝햄은 킬리안 헤이즈, 세이븐 리, 사딕 베이, 아이재아 스튜어트와 함께 디트로이트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다. 아직은 유망주들을 더 까봐야(?) 하기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이 정도 단계까지 온 것만 해도 유의미한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이적시장에서는 팀에 도움이 될 만한 선수들을 영입했다. 켈리 올리닉을 3년 3,720만 달러에, 트레이 라일스를 2년 513만 달러에 데려오며 빅맨진을 보강했다. 코리 조셉과는 2년 1,000만 달러에 계약하며 가드진도 안정화시켰다. 당장의 성적은 아니어도 미래를 보며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는 로스터를 만든 것이다.

*2021-2022시즌 디트로이트 확정 로스터*
가드: 킬리안 헤이즈, 코리 조셉, 조쉬 잭슨, 세이븐 리, 프랭크 잭슨
포워드: 케이드 커닝햄, 제라미 그랜트, 사딕 베이, 아이재아 스튜어트, 로드니 맥그루더, 세쿠 둠부야
센터: 켈리 올리닉, 자릴 오카포, 트레이 라일스, 루카 가르자

관건은 주요 유망주들의 조화와 동반 성장이 될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8월 서머리그에 헤이즈, 커닝햄, 세이븐 리, 세쿠 둠부야, 사딕 베이, 루카 가르자를 동시에 출전시키며 이들의 호흡과 경기력을 테스트했다.(아이재아 스튜어트는 발목 부상으로 서머리그에 불참.) 향후에 이어질 오프시즌 훈련과 트레이닝 캠프, 프리시즌을 통해 유망주들의 성장세를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4. 위버의 마법은 통할까

위버는 지도자 출신의 경영인이다. 그는 1996년부터 피츠버그 대학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이후 뉴멕시코, 시라큐스에서도 코치로 일했다. 그의 삶이 바뀐 것은 2004년 유타 재즈에 스카우트 팀장으로 합류하면서부터였다.

스카우트 팀, 인사 팀을 거친 위버는 2008년 40살의 나이에 오클라호마시티의 부단장에 임명됐고 이후 구단 부사장과 사장직을 거치면서 업계에서 알아주는 조력자가 됐다. 현역 최고의 단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샘 프레스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도와준 인물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2000년대 초반 시라큐스 대학에서 어시스턴트 코치 트로이 위버를 이끌었던 짐 보에하임 감독은 위버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모두가 르브론 제임스를 주목했고 그가 농구를 잘할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테픈 커리가 이렇게 좋은 선수가 될 거란 건 누구나 예상한 일이 아니었다.”

“트로이 위버는 (커리 같은 선수를 찾아낼 만한) 눈을 가지고 있다. 위버는 선수와 사람을 정말 잘 알아보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눈을 가지고 경영자의 기민함과 감각을 익힌 트로이 위버는 이제 NBA에서 주목할 만한 단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목표는 오랜 기간 이어진 디트로이트의 암흑기를 끝내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다른 팀을 무시할 의도로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만,” 위버가 입을 열었다.

“미네소타의 경우 복원할 영광이 있는 팀은 아니잖아요. 우리처럼 세 번의 우승을 경험한 팀이 아니니까요. 애틀랜타도 그런 면에서 미네소타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요. 디트로이트는 복원할 영광이 있는 팀입니다. 저희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프랜차이즈의의 위대함을 복원해서 다시 가져올 겁니다.”

“그동안 청사진은 계속 있었어요. 어떤 운영이 NBA에서 통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오직 디트로이트에 세 번째 중흥기를 다시 열어주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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